이십억 광년의 고독 대산세계문학총서 81
다니카와 슈운타로 지음, 김응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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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나는 화성에게 말 걸고 싶어진다.

이쪽은 흐려서
바람도 낮고
바람도 강해질 뿐
이봐!
그쪽은 어때.

달이 보고 있다.
완전히 냉정한 제3자로서

많은 별이 주시해서 아프다
아직도 어린 지구의 자식들이여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화성의 붉은색이 따뜻한 것이다.

슬픔은
깎다 만 사과
비유가 아니고
시가 아닌
그냥 거기에 있는
깎는 도중의 사과
슬픔은
그냥 거기에 있는
어제 날짜 석간신문

사랑의 시작

너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도
네 얼굴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정신 차려 보니 문득 귀에 익은 음악 한 소절을 반복해서 읊조리고 있는 거야
너를 만나고 싶지만
그것은 정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호기심으로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린 건가
다시 한 번 네 앞에서 나의 마음을 ㅗ학인하고 싶은 거야
그 이전의 일은 떠오르지 않네
너를 포옹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어
단지 네가 없는 세계가 정말 따분해서
나는 고속 촬영하는 영화 속 배우처럼
천천히 담배에 불붙이는 거야
그러면 너 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쾌락처럼도 생각돼
너는 어쩌면 언젠가 내가 타국에서 본
아득한 옛날 아름다운 조각상의 하나일지도 몰라
그 옆에서 분수는 높이 솟아 햇살에 빛나고 있네

울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려
눈시울을 눈물로 적신 채
상대의 농담에 나는 웃었다.

내가 운 이유는 통속 소설의 통속적인 한 줄 때문이지만
하지만 알 수 있다는 것에 나는 구원받아
덕분에 웃었을지도 모른다.

5월의 노래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는 달
그 사람을 사랑해도 좋다고
푸른 하늘 눈동자 따뜻하게
나를 내려다보시는 달

바바루아가 흔들리는 달
꽃나무 아래 앉아
심장의 알레그로에 귀를 기울이고
내가 새로운 나를 만나는 달

집집마다 숲이 있고
숲에는 바다가 있고
바다에는 사막이 있어
모든 역사가 겹쳐지는 달

- 할지도 모를 달.

9월의 노래

당신께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슬픔이 아니지
바람에 흔들리는 맨드라미를
말없이 바라본다.

당신 곁에서 울 수 있다면
그건 슬픔이 아니지
파도 소리 반복되는 저 파도 소리는
내 마음 늙어가는 소리

슬픔은 언제나
낯설다
당신 탓이 아니다
내 탓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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