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1
천계영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연재 될 때는 띄엄띄엄 한 권씩 봤던지라 막연히 특이했던 작품으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거진 5년만에 마음잡고 밤새워 열 권을 다 읽어내고 나니 생각보다 참 괜찮은 작품이었구나. 하는 감상.

앞에서도 말했든이 한꺼번에 읽지 않고 중간 중간 시간을 둬가며 읽었기에 그 당시에는 줄거리가 좀 복잡하게 여겨졌었다. 많은 밴드가 나오고 주인공들은 모두 제각각의 에피소드 속에서 성장을 하고...근데 한꺼번에 보니 사실 별 줄거리가 없어서 놀랐다. 오디션이 그리는 시간은 딱 세달, 토너먼트 오디션이 시작하여 우승자가 가려질 때 까지이다. 재활용밴드가 결승에 나가기까지 거치는 오디션 수가 4차례던가 3차례던가..하여튼 그리 많은 오디션을 거치지 않는다. 그 흐름만 알면 줄거리는 끝. 참 심플하다. 그게 이 만화의 특징이다. 주인공의 천재적 재능이 자라는 과정을 그린 만화들을 보면 대체로 참 길.다. 대표적으로 배가본드, 유리가면 등등은  읽다보면 줄거리가 어땠는지 까먹을 만한 종류(?)의 만화가 아닌가.  그만큼 꼬고 비비고 얼키고 설킨 스토리들과 차별화되는게 오디션의 특징이다. 그 심플함, 그리고 어떤 종류의 얕음. 이 오디션을 성공시킨 비결이 아닌가 한다. 일반적인 한국만화에선 보기 드물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스토리속에 녹아들어 보는 동안에는 와,,와,,어떻게 이런걸 알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서도 냉철히 보면 그닥 전문적이고 심도있는 지식은 아니다.(전문 장르만화와 비교해봤을때.) 그 얕은 지식과 심플한 스토리와 쭉쭉 뻗어나가는 시원시원한 펜 선 그리고 만화속에 흐르는 적당히 인간적인 '따땃한' 분위기 그리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천계영표 감수성이 더해져 만들어진게 바로 오디션. 이라는게 나의 생각이다.

적당히 인간적인 '따땃한' 분위기란 그닥 감정묘사나 주인공들의 감정을 그리지 않고서도 무난하게 따뜻한 분위기를 그려내는 걸 말하는데 캐릭터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는 감정묘사가 적게 그려지고 너무 스토리 전개가 빠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만화를 자세히 보면 천재 4명은 모두 서로를 믿고 사랑하고 있다. 장난치며 서로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사 하나하나 그리고 사소한 것에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상황이 진행되는데, 오디션을 계기로 모이기 전까지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던 천재들이 그냥 어느날 모여서 오디션을 준비하는데..이미 그 때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고 있었다는 식이어서 나로서는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서로의 관계에 관한 부분보다는 개개인이 오디션을 거칠때마다 어떻게 내적으로 성장하느냐에 더 촛점을 맞추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누구 하나 들어갈 틈 없는 그들만의 견고한 관계가 형성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류미끼와 옛친구 이야기 에피소드는 상당히 괜찮았다. 만화에서 그린 '관계'중 가장 좋았다)

또 천계영의 뎃생솜씨. 그림 못그려서 대학 때 만화동아리에 가입거부를 당했다더니 정말 독을품고(?) 연습을 하신겔까, 선이 참 좋다. 최근작 DVD에서는 실험적으로 나가시느라 그런지 인체를 더 왜곡하고 거친선으로 그리던데 오디션의 선은 참 탄탄하다는 느낌이 든다. 보는 재미가 있다. 거기다가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의상을 보는 재미도..

표현과 관련하여 안 좋았던 부분도 있다. 주인공들의 오디션 장면에서 작가는 주로 주인공들 즉 천재들이 오디션 상대방과 대결하며 상대방의 어떤 점을 배워나가는지에 치중하다 보니 음악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 정도는 전달이 되는데 구체적으로 독자들에게 그 음악이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해야할까..주인공들이 아..아...이러면서 자기들은 삘 받아서 한단계 높은 단계로 뛰어오를때 오디션은 끝난다. 독자들로서는 무슨 음악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주인공이 성장했구나..이런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고 나서 그런거 같다. 비교가 되니 말이다. 물론 둘을 단순 비교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노다메의 경우 이미 존재하는 클래식을 듣고 그 한 마디 마디 섬세하게 만화로 그려낼 수 있지만 오디션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음악을 그려내야 하는 것이기에..작가의 고충은 이해한다만 좀 아쉬웠던 건 어쩔 수 없는 사실.

오디션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게 역시 '천계영표 감수성' 일 것이다. 언플러그드 보이로 치고 올라온 인기가 오디션때 극에 치닫고 있었던 듯 하다. 황보래용의 그 유명한 대사 "우주가 넓어서...그래서 슬픈가봐." 캬......이것 저것 얕았다고는 하나 다 평균이상은 했던 천계영...그렇지만 정말 독자들에게 한 방 제대로 날린 건 그녀의 감수성, 감수성 만큼은 깊고도 깊었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밋밋해 보이지만 당시의 그 충격은 얼마나 컸던지. 그런 만화를 읽고 있다는게 행복했었지^,^

캐릭터. 순면 100퍼센트 삼각빤스 입고 맨발로 깡총깡총 뛰어다니는 조울증 천재 보컬 황보래용이 특히 눈에 띄는 캐릭터인데 (물론 류미끼역시 만만치 않다^,^) 당시 '오빠는 황보래용'이라는 유행가가 있었던 걸 떠올려보면 얼마나 천계영의 만화가 인기가 있었나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젊은이들이 황보래용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지어진 가사 아닐텐가. 뭐 캐릭터 하나하나 다 개성이 철철 넘치니 따로 말할 것 없을테고 내가 다시 읽으며 가장 맘에 들었던 캐릭터는 명자였다. 의외였다 나로서도.. 처음에 읽을 때는 별로 눈에 띄지도 않았었는데 다시 보니 명자의 분량이 가장 많아 보이고 그녀의 캐릭터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 거대기업의 상속녀이면서도 차분하고 희생적인 그녀의 모습이 만화속에서는 유일하게 좀 현실적으로 '비극' 적인 인물이어서였을까. (아무래도 너무 많은 음이 머릿속에 떠올라 밤 잠 못이루는 천재보다는 쌀이 없어서 구두를 내다 팔아야 하는 상속녀에게 더 공감이.ㅋㅋㅋㅋㅋ) 캐릭터 말이 나온 김에 이 만화는 참 성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을 깨는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류미끼는 남자이지만 아름답고 여리여리한 외모로 여자라는 오해를 받고 다니고  명자는 여자이지만 여자캐릭터에게 흔히 나타나는 나약함과 우유부단함보다는 모두를 끌어안는 따스한 리더십과 모성애를 보여준다.  탐정인 박부옥은 탐정이라는 직업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를 쫓아다니는 형사 오우삼이 오히려 여성적으로 그려진다. 오우삼은 일을 할 때는 거친 모습을 보이지만 사랑하는 박부옥 앞에서는 순종적이고 나약한 존재가 될 뿐이다. 이런 캐릭터들과 안 어울리게 작품 중간중간에 넌 남자랑 어떻게...하는 류의 대화들이 자주 나오긴 하는데(어떻게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냐는 ..)작가의 가치관이라기 보다는 작품 흐름 상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여진다. 결론은 그 캐릭터들이 맘에 들었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

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말 부분에 가서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차근차근 정리가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범생이' 적이어서 좀 별로였다. 중간이상은 하는 마무리였지만 (애초에 스토리를 다 짜놔서 그런지) 파격적인 이미지의 작품인지라 너무 조신하고 해피엔딩을 그리려는거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린 독자들을 많이 의식한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별 4개를 주자니 그러기엔 아까운 작품이라 별 5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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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07-01-2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언플러그드 보이에서 오디션까지 천계영의 최대 약점은 고래같은 감수성을 가둬두기엔 너무 얕은 스토리었죠. 재미있는 건 세부적인 인물묘사나 에피소드는 훌륭한데 전체적인 이야기가 그에 비해 너무 약하다는 거~

LAYLA 2007-02-01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뷰리풀말미잘님은 어떤 만화가 좋아하시는지 궁금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