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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 플러스 - 철학은 어떻게 현실을 정의하는가
데이비드 차머스 지음, 서종민 옮김 / 상상스퀘어 / 2024년 9월
평점 :
8월 이전이었다면 난 이 책 《리얼리티+: Reality+》를 조금 읽다가 내려놓았을 것이다. 난 여러 이유로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10월 9일 현재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긴 이유가 있겠지만, 생각하는 지점이 조금 다른 곳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라고 짧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유연해졌다고 하면 자랑질일 테고, 어떤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구석이 뇌에 조금 생겼다고나 할까. 나이가 들면서 근육이 조금씩 빠지듯 뇌에서 뭔가가 삭제되는 자연 노화 현상을 겪으면서 빈틈이 생겼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비루한 생각으로 들어찼던 뇌가 조금씩 변화했던 것일까?
이런 게 다 아닐 세스(Anil Seth)가 말한 '조정된 환각'과 연결되는 문제일지도 모르고, 차머스의 가상현실에 대한 복음을 살짝 받아들인 결과일 수도 있겠다. 차머스에 따르면 내가 지금 가상세계 속에 살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뭐라는 건지…. ㅠㅠ
나는 차머스가 제시하는 모든 문제와 그 답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런 자세가 공부하는 사람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초반부지만 의심이 가는 구석도 있다. 물론 내 수준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더 많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어려움을 겪겠지만 그 안에서 '이해'라는 걸 조금씩 얻어 가는 게 작은 목표이기도 하다. 이것이 내 생각을 쌓아 갈 바탕이 될 수도 있으니까. 모래성을 쌓는 게 아니길 빌 뿐이다. 😅
"이 책의 핵심 논제는 이렇다. '가상현실은 진짜 현실이다.' 또는 적어도 '가상현실들은 진짜 현실들이다.' 가상세계라고 반드시 2차 현실 second-class realities은 아니다. 가상현실 또한 1차 현실first-class realities이 될 수 있다." - p.17
이 책 《리얼리티+: Reality+》의 첫 느낌은 직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직관에 반하는 주장을 믿을 만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가상세계가 진짜 현실이 아니라 가짜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깊이 고민하지 않고도 곧바로 동의할 만한 생각이다.
차머스는 이 부분을 살짝 비튼다. 그게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책은 가상세계가 환상이나 허구가 아니며, 우리가 사는 세계가 가상세계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우리가 실제로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ㅠㅠ
하지만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나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려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보다 더 근본적인 현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그리 낯설지 않다. 《매트릭스》에서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사실은 시뮬레이션이고, 네오는 그 바깥의 현실로 깨어난다.
그런데 차머스에 와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가상과 비가상은 서로 다르지만, 가상이라고 해서 가짜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뭐라는 거야?
이런 걸 주장하면서 데카르트를 모셔 온다. 그리고 외부 세계의 문제라는 걸 꺼내 든다. 많이 들어는 봤다. 그런데 이게 가상현실과 무슨 상관인데?
"나는 내 외부의 세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지각한 세계가 환상이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지금 꿈속이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실제도 아닌 걸 사악한 악마에게 홀려 모두 실제라고 생각하게 된 게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차머스는 이런 데카르트의 회의를 살짝 비튼다.
"지금 내가 가상세계 속에 있지 않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난 이게 궁금해서 지금 열심히 읽는 중이다. 이걸 궁금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단 책을 읽는 보람은 찾은 셈이다.
자, 그건 그렇고 왜 제목에 플러스(+)를 붙였는지 차머스가 설명하는 부분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제목은 나의 핵심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제목은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각 가상세계는 새로운 현실이므로 '리얼리티 플러스'이며, 증강현실은 현실에 무언가를 더하므로 '리얼리티 플러스'이다. 어떤 가상세계는 평범한 현실만큼, 또는 그보다 더 좋으므로 '리얼리티 플러스'이다.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다면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므로 '리얼리티 플러스'이다. 앞으로는 온갖 종류의 여러 현실이 존재할 테니 '리얼리티 플러스'이다." - p.19
내가 리얼한 현실을 살아온 지도 꽤 오래됐어. 나름 충분히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기에, 이제 그 리얼리티(현실)에 플러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남은 인생을 조금 투자해 볼까 한다. 그러면서 형이상학적 단물을 좀 빨아볼까 하는데…. 그런데 이것도 가상현실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고 하네. 차머스가 말이야.
자, 그럼 나는 실제 상황을 어디까지 겪게 되는 걸까? 아니면 이게 다 시뮬레이션일 수도 있는 걸까?
일단 내가 읽고 있는 이 책은 물리적인 실체다. 적어도 지금 내게는 그렇다.
"가상 객체와 비가상객체는 다르지만, 양쪽 모두 동등하게 '실제'다." - p.45
좀 어지럽다.
*독서의 순서상 차머스의 주저인 《의식하는 마음: The Conscious Mind》(1996)을 먼저 읽고 싶었으나 한국어 번역본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한국어로 번역된 《리얼리티+: Reality+》를 호기심이 동하여 구입했다. 처음에는 관심 분야가 아니었지만 읽다 보니 정말 호기심을 충족해 주는 책이 되었다. 이렇게 관심 분야가 새로워지면서 넓어지는 게 책 읽기가 주는 리얼리티 플러스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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