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 삶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던 실존주의자들의 살아 있는 철학 이야기
사라 베이크웰 지음, 조영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사르트르와 하이데거를 비롯한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사유를 촘촘히 추적한 인문서입니다. 저자가 어떤 문헌을 딛고 이 논의를 세웠는지 보여주는 주와 참고 도서, 독자가 다시 찾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찾아보기는 이런 책에서 장식이 아니라 학문적 최소 신뢰 장치입니다.
그걸 빼놓고 '개정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책의 알맹이는 그대로 두고 그 알맹이가 근거를 가진 논의였다는 증거만 조용히 삭제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일러두기를 보니 이 장치들을 온라인 링크로 제공한다고 안내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학술적 장치를 링크에 배치한 인문 도서는 처음 봅니다. 수험서 중에는 해답이나 부록을 링크로 제공하는 경우를 종종 봤지만, 인문서에서는 낯선 방식입니다.
출판 시장의 어려움에 대한 글을 자주 접합니다. 그런데 가격만을 중시하고 정작 중요한 장치는 다른 곳으로 미루는 방식이라면, 그것 역시 지금 출판 시장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아무리 싸고 좋아도 중요한 '가치'를 외주로 돌리는 건 적어도 인문학적인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매자도 아닌데 태클을 건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만 제대로 된 인문학 책을 사서 읽고 싶다는 열망이 큰 독자로서 남기는 의견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yadic1 2026-08-02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격을 낮추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종이 질을 바꿀 수도 있고, 판형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문적 장치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추는 일은, 독자에게 ‘더 싸게‘가 아니라 ‘더 적게‘ 주면서 그것을 개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번 개정판이 반가웠던 만큼, 그 반가움이 무엇을 대가로 얻어진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dyadic1 2026-08-02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분이 제 리뷰를 읽고 100자평을 다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구판의 독자로서 주석/참고문헌의 부재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초점이 현상학사의 일화들을 어느 독자가 읽더라도 쉽고 말 재밌게 소개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하필 이 책에 ‘학술적 가치‘라는 잣대를 들이밀고 운운하며 별 1점을 부여하는 것도 정당할까요?> 이분의 글에 제가 댓글을 아래와 같이 달았습니다. 참고로 올려드리는 것이니 일독 바랍니다. <저는 ˝학술적 가치˝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학문적 최소 신뢰 장치˝와 ˝학술적 장치˝라는 워딩만 있는 것을 확인해 주십시오. ˝학술적 가치˝라는 잣대를 들이댄 적도 없습니다. 학문적(학술적)이라는 말은 적당한 것 같아 제가 사용했습니다만, 일종의 오독이 있으신 것 같아 다시 정리해 드립니다. 먼저 ‘장치‘와 ‘가치‘를 구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동차 엔진이라는 ‘장치‘와 자동차 엔진의 ‘가치‘는 서로 다른 의미이듯이 말입니다. 제가 적시한 것은 ‘장치‘이며, 이는 책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제가 문제 삼은 건 이 책의 서술 방식이나 지향점—현상학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대중서로서의 성격—이 아닙니다. 그 지향점 자체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고,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제가 짚은 건 그 지향점과 무관하게 존재해 온 ‘장치‘가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구판에는 주와 참고 도서, 찾아보기가 있었고, 그건 이 책이 쉽고 재밌다는 사실과 전혀 모순되지 않았습니다. 즉 이 책은 원래 ‘쉽고 재밌으면서도‘ 그 ‘장치‘를 갖추고 있었던 책입니다. 이번 개정판에서 사라진 건 그 ‘양립‘이지, 대중적 서술 방식이 아닙니다. 그러니 제 비판은 ˝이 책이 학술서가 아니라서 부족하다˝는 게 아니라, ˝원래 갖추고 있던 것을 왜 뺐는가˝에 가깝습니다. 대중서라는 정체성이 주와 참고 도서, 찾아보기를 빼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쉽고 재밌게 쓰인 책일수록, 그 재미 뒤에 있는 근거를 확인하고 싶어지는 독자가 다음 책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통로를 없앤 것에 대한 아쉬움이지, 이 책의 성격 자체에 대한 폄하가 아닙니다. 또한 그러한 ‘장치‘를 가격과 맞바꾸며 사라지게 한 것은, 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와는 조금 맞지 않는다는 게 제 소신입니다. 가격만 낮추면 인문학 책도 많이 팔릴 수 있다는 생각이 ˝중고가 16만 원의 전설의 책이 돌아왔다˝는 광고 카피에 깔려 있는 것 같아, 처음 이 글을 쓸 때부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