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점수 : 6 / 10

나는 예전부터 라틴어에 대한 동경심을 새가 알을 품듯이 마음 속 깊숙히 품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서구에 대한 동경이나 사라진 것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그저 내가 하는 말을 남들이 좀 못 알아들었으면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영어와 닮은 듯하고 또 의미도 비슷한데 도저히 그 진정한 뜻을 알 수 없는 게 라틴어 아닌가. 허세나 과시욕이 없지는 않겠지만 사실 그보다는 누가 내 일에 알은 체를 안 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진지하게 한글 자모에 기반한 암호를 개발하기도 했는데 결국 쓰지 못했다. 첫째로, 한글에 기반하되 원래 글자와 닮은 구석이 없어야 하니 더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비효율적이었다. 둘째로, 한국어도 어렵게 말할 수 있다는걸 깨달았다. 굳이 티나게 암호를 끼적이는 것보다는 어려운 단어를 쓰는게 더 편하다(문제는 ‘그게 무슨 의미냐‘고 굳이 되묻는 경우인데 그냥 적절히 맞춰주면 된다). 어쨌든 이렇게 일단락 된 후에도 라틴어에 대한 집착(?)을 나는 쉽게 떨치지 못하여서 책을 읽다가 만나는 라틴어를 반짝이는 물건을 본 까치처럼 수집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뒤늦게 이 책 <라틴어수업>이 작년 인문교양 베스트셀러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신간을 좀처럼 읽지 않고 또 구입보다 도서관을 애용하는 도서산업의 암적인 존재인데 이건 사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이례적인 경우다. 내용은 생각보다 체계적이었고 동시에 생각보다 가벼웠다. 라틴어는 사어(死語)라서 전문연구자가 아니면 거의 사용하지 않는줄 알았는데, 대부분 유럽국가에서 학생들이 교양으로 배운다고 하여 제법 놀랐다. 또 바티칸을 비롯한 교회에서는 여전히 사용되며 실제로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어휘와 발음과 문법이 정비되어 있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배울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문법이 너무 복잡하고 유럽의 역사,문화와 결부된 내용이 많아서 배우기 힘들다고 한다. 결국 이 책은 라틴어의 기본적인 특징을 알려주고 유럽 문화의 기초소양을 살짝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데서 그친다.
동시에 이 책은 ‘따스한 말‘과 ‘위로‘외 ‘격려‘가 나머지 반이다. 사실 나는 이런 류의 글에 잘 이해하지 못한다(가끔은 내가 싸이코패스인걸까 고민한다). 이런 글은 감정선을 따라서 논지가 흐르기 때문에 논리의 흐름을 따라가는 나는 종종 길을 잃는다. 앞에서 이 얘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다른 주제로 넘어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넘어갈 수 있는건지 의아하다. 그리고 왜 새로운 질문을 던지면서 글을 끝내는걸까. 나는 질문만 하고 답을 주지 않는 글을 싫어한다. 글에서 질문을 했으면 맞든 틀리든 답하는 게 책임감 있는 태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혹 ‘질문을 주는 게 나의 역할‘이라면서 질문만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만난 그것은 대개 무책임의 다른 표현이었다. 진정 훌륭한 가르침은 명시적인 질문의 형태를 띠지 않더라도, 즉 뒤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더라도 독자에게 질문 무더기를 안겨준다. 그것은 내면에서 쏟아지는 것이므로 남이 정해서 물어보는 질문보다 더 진지하고 치열한 법이다. 자꾸 질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별로였다.
그럼에도 라틴어라는 희귀한 언어, 바티칸 생활이라는 드문 경험, 유럽의 역사와 문화라는 매력적인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위의 투덜거림이 어째서인지 나한테만 있는 불만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여전히 크다. 개인적인 혹평에도 불구하고 ‘읽으면 좋은 양서(6점)‘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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