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점수 : 7 / 10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는 종종 조롱거리가 된다. 무언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 그 이름 앞에 ‘한국형‘만 붙여서 수백억원씩 홀라당 까먹는 정부기관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형 알파고 개발‘과 ‘한국형 <너의 이름은> 제작 지원‘이 있었다.
학계에서도 ‘한국식‘이라는 수식어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제법 있다. 이론은 언제나 추상적인 차원에서 정립된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이해관계가 대립된다‘ 이 문장은 어느 국가도 특정하지 않는다. 다만, 전제(assumption)가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배분할 때‘ ‘모든 행위자가 합리적일 때‘ 등. 설령 그 모든 전제를 충족하는 국가가 한국 단 한 곳뿐이더라도 그것은 추상적 세계 속의 독립적인 이론이다. 그것은 ‘한국의 특수한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사회과학 이론‘이지 ‘한국식 이론‘이 될 수 없다. 아무리 화려한 말로 포장해도 그건 ‘국뽕‘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한국형 추리소설‘이라는 광고문구를 흘기면서 불신가득한 심정으로 이 책을 펼쳤다. 선물할 책을 고민하는 게 아니었으면, 자의로는 펼치지 않았을 책이겠구나, 하고 되뇌면서 말이다. 그런데 무척 재밌게 읽었다. 그것도 -당황스럽게도- 내가 불신했던 그 ‘한국형‘이라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추리소설은 하나같이 외국이나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범죄의 트릭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배경의 생활과 문화도 함께 이해해야 했다. 나는 그게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배우는 것도 더 많은 장점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막상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을 읽으니 추리소설이 전해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짜릿함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은 매우 흥미롭지만 사실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살인이라는건 런던의 어느 뒷골목이나 첩첩산중의 대저택에서 혹은 CCTV도 지문감식도 없던 시절에만 있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아니다.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무척 사실적이고 또 친숙해서 정말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날 법한 일로 느껴진다. ‘진짜 같은 허구‘라는 소설의 본령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추리소설이 주는 쫄깃함(?)도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기발한 트릭과 극적인 해결을 통해 독자에게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한 묘사를 통해 한국사회의 풍토와 인간성도 아울러 다룬다. 읽으면 좋을 양서(7점)다. 선물은 이걸로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