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 7 / 10‘한국형‘이라는 수식어는 종종 조롱거리가 된다. 무언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 그 이름 앞에 ‘한국형‘만 붙여서 수백억원씩 홀라당 까먹는 정부기관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형 알파고 개발‘과 ‘한국형 <너의 이름은> 제작 지원‘이 있었다.학계에서도 ‘한국식‘이라는 수식어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이 제법 있다. 이론은 언제나 추상적인 차원에서 정립된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이해관계가 대립된다‘ 이 문장은 어느 국가도 특정하지 않는다. 다만, 전제(assumption)가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배분할 때‘ ‘모든 행위자가 합리적일 때‘ 등. 설령 그 모든 전제를 충족하는 국가가 한국 단 한 곳뿐이더라도 그것은 추상적 세계 속의 독립적인 이론이다. 그것은 ‘한국의 특수한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사회과학 이론‘이지 ‘한국식 이론‘이 될 수 없다. 아무리 화려한 말로 포장해도 그건 ‘국뽕‘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한국형 추리소설‘이라는 광고문구를 흘기면서 불신가득한 심정으로 이 책을 펼쳤다. 선물할 책을 고민하는 게 아니었으면, 자의로는 펼치지 않았을 책이겠구나, 하고 되뇌면서 말이다. 그런데 무척 재밌게 읽었다. 그것도 -당황스럽게도- 내가 불신했던 그 ‘한국형‘이라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지금까지 내가 접했던 추리소설은 하나같이 외국이나 과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범죄의 트릭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배경의 생활과 문화도 함께 이해해야 했다. 나는 그게 여행하는 기분도 들고 배우는 것도 더 많은 장점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막상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소설을 읽으니 추리소설이 전해줄 수 있는 다른 차원의 짜릿함이 느껴진다.지금까지 읽은 추리소설은 매우 흥미롭지만 사실 다른 세상 이야기 같았다. 살인이라는건 런던의 어느 뒷골목이나 첩첩산중의 대저택에서 혹은 CCTV도 지문감식도 없던 시절에만 있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아니다. 이 책 속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무척 사실적이고 또 친숙해서 정말로 우리 동네에서 일어날 법한 일로 느껴진다. ‘진짜 같은 허구‘라는 소설의 본령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추리소설이 주는 쫄깃함(?)도 공감각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기발한 트릭과 극적인 해결을 통해 독자에게 지적인 만족감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등장인물과 배경에 대한 묘사를 통해 한국사회의 풍토와 인간성도 아울러 다룬다. 읽으면 좋을 양서(7점)다. 선물은 이걸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