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ry Potter and the Philosopher's Stone (Hardcover)
Rowling, J K / Bloomsbury Paperbacks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쓴 책을 완독하기는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뿌듯하다.

처음에는 지하철에서 읽을 거리가 필요했다. 보통 주간지를 읽는데 일주일을 버티기에는 너무 짧았거든. 그렇다고 책을 읽자니 한국 책은 너무 무거웠다. 지하철에서 들고 읽으면 필경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길 거다. 아니면 거북목이 되거나. 그래서 선택한 게 원서다. 영어공부라는 정당한 명분이 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가볍다.

문제는 내 영어 실력이 책을(특히나 어휘가 풍부하게 등장하는 소설을!) 읽을 정도로 좋지 않다는 점. 그래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선택했다. 어렸을 때 몇 번씩 읽었던 책이니까 영어로 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적어도 해석이 좀 안 되도 답답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짧은 영어 실력으로도 술술 읽혔다. 음.. 엄밀히 말하면 ‘읽었다‘기 보다는 ‘떠올랐다‘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영어 문장을 더듬더듬 읽어나가다 보면 머릿속에 문득 그 내용이 떠올랐다.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인도한 게다. 전혀 모르는 단어가 수시로 나왔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지장 없었고, 그래서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때로는 내용이 먼저 떠올라서 모르는 단어의 뜻을 추측하기도 했다(그리고 또 때로는 정말로 맞췄다).

‘원서를 읽는 재미‘라는 것도 느꼈다. 오류의 가능성 외에도 번역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정보의 손실이 있다. 대표적으로 볼드모트를 돌려 말하는 ‘그 사람‘은 영어로 ‘You-Know-Who‘다. 직역하자면 ‘그 사람 있잖아‘ 혹은 ‘너도 아는 그 사람‘ 정도다. 이해한다. 이걸 일일이 직역하면 문장의 흐름이 너무 길어질 거다. 아니면 너무 긴 명칭이 볼드모트의 위엄(?)을 훼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라는 표현은 그 뜻을 전달하기에는 부실하다. 나는 예전부터 말할 때마다 공포감이 들어서 ‘그 사람‘이라고 부르기 싫다는 해리포터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사람‘이 어때서? 나도 가끔 누군가 이름을 부르기 껄끄러운 사람이 있으면 ‘걔가‘ ‘그 분이‘ ‘그 사람이‘로 돌려말한다. 그런데 그게 ‘You-Know-Who‘면 느낌이 다르지. 해리 입장에서는 만난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존재를 두고 ‘너도 아는 그 사람‘이라고 불러야한다면 거부감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마치 모두가 당연히 알아야 한다는 듯한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다는 듯한 그 명칭은 오히려 이 세상 모든 곳에 그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 나 같아도 쓰기 싫겠다.

어쨌든, 대단히 얻은 것이 많은 독서였다. 좋아하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예전의 그 기쁨을 느꼈고, 영어 실력도 쑥쑥 늘었고, 원서를 읽었다는 성취감과 자부심도 얻었으며, 원래 표현을 아는 재미도 느꼈다. 앞으로도 종종 시도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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