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왜 부조리한가 -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
레오 카츠 지음, 이주만 옮김, 금태섭 감수 / 와이즈베리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점수 : 6 / 10

투표의 역설로 유명한 사회선택이론을 법학에 적용했다. 이론이 탄탄하고 내용이 풍부한 학술서적이다. 내 관심분야가 아니고 또 내 취향에 맞는 연구정향이 아니지만, 저자가 오랜 세월 동안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가 집적돼 있는 글이라서 6점(‘권함’ 영역의 최하점)을 주었다.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법한 깊이가 있다.
아쉬운 점을 세 가지만 들겠다. 첫째, ‘경제학·철학·통계학·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이라는 부제는 거짓말이다. 사회선택이론은 ‘순서 정하기’에 대한 딜레마다. 투표에 제일 먼저 적용된 건 사실이다. 그러면 ‘정치학에도 적용되었던 사회선택이론을 이번에는 법학에 적용해보았다’고 해야지 그걸 두고 ‘정치학으로 풀어낸 법의 모순’이라고 말하면 쓰나. 마찬가지다. 기회비용을 최소로 하는 경제적 선택도 비교를 통한 순서 정하기다. ‘경제학에도 적용되는 사회선택이론’이지 ‘경제학으로 법을 설명했다’고 하면 안 된다. 또 50%니 25%니 하는 확률이 좀 나온다고 그걸 통계학이라고 부르는 건 과도하다.
둘째, 저자가 말하는 ‘법이 부조리한 상황’이 불명확하다. “이 상황은 우리의 도덕관과 직관에 어긋난다.”는 표현으로 퉁치고 있다.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도덕감에는 최소 5가지 상이한 기준이 있으며, 그것은 지역 문화 계층에 따라서 다르다고 말한 바 있다. 법이 ‘우리의 도덕관과 직관’에 어긋나기 때문에 부조리하다고? 어느 도덕을 위배했는가, 또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까지인가. 저자는 법체계가 가진 구조적 한계를 주장하는데 정신이 팔려서 가장 중요한 전제(법은 부조리하다)를 검증하는 걸 건너뛰었다.
셋째, 저자의 결론은 ‘어쩔 수 없다’이다. 사회선택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똑똑하고 합리적이어도 다기준 의사결정 앞에선 왜곡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법이 부조리한건 어쩔 수 없고 변호사가 편법을 쓰는 것도 그러려니 하라는 거다. 법을 완벽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제로 보는 법학자의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법은 협상의 산물이다. 국민들의 정치적 열망을 반영한 사회의 가치와 규준이다. 단순히 ‘살인죄의 처벌과 형량의 적절성’이 아니라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한 나라 국민들의 철학과 가치가 담긴 게 법이다. 단순히 ‘세율’이 아니라 ‘시민의 경제적 삶과 공공성’에 대한 합의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법체계의 한계나 법조문의 모순을 다루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나는 ‘법의 정신’이나 ‘법철학’을 논하는 책이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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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 2016-03-28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째나 세번째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첫번째는 문제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출판사에서는 원작자가 쓰지 않은 이상한 부제나 부연설명을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들이 원작의 깊이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예를 들면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이라는 멋있는 이름(깔롱좀 지겨둠)에 출판사는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멘붕사회에 해독제로 쓰일 책!` 따위의 허접한 문구를 붙여놨던데, 이것 역시 출판사의 삽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