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가 책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칩거 후

읽은 

혹은 

읽을 

또 

읽어야 할...

다 

행 

이 



1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망각의 강 레테- 역사와 문학을 통해 본 망각의 문화사
하랄트 바인리히 지음, 백설자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4월
12,000원 → 11,400원(5%할인) / 마일리지 360원(3% 적립)
2011년 01월 11일에 저장
품절

살아서 레테를 건너가버린 기억들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펼쳐든다.
우리가 보낸 순간 세트 - 전2권-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2011년 01월 11일에 저장
품절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23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1년 01월 11일에 저장

돈 끼호떼 1- 기발한 시골 양반 라 만차의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민용태 옮김 / 창비 / 2005년 11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2011년 01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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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월이다.  일월이 꽝꽝 얼었다. 

꽝꽝 언 길을 미끄러지지도 않고 날은 벌써 열 발짝이나 성큼 걸어갔다. 

 

일월의 첫날, 나는 동해바다에 있었다.

부서지는 파도가 섬처럼 밀려왔다. 뒤집힌 파도를 향해 광기에 휩싸여 내리꽂히던 갈매기들처럼 내 마음도 갈피를 풀어헤치고 달아났다. 갈퀴를 흩날리고 발굽소리 천둥처럼 울리며 달려오던 파도에, 바다는 속수무책 허공에 부서져 흩어졌다. 그리고 나도…

부서져 허공에 흩어지는 바다 속으로, 비늘을 쏟아내는 칼바람 속으로, 하늘과 땅, 바다의 경계를 지워버린 잿빛 구름 속으로, 눈보라의 난무 속으로……

달아난 마음을 두고 빈껍데기로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길은 멀어도 상관없었다. 세 시간 가까이 대관령에 갇혀있는 동안 세상의 풍경을 모두 지워버리며, 마치 거위 털 가득 든 하늘만한 자루가 터지기라도 한듯 쏟아지던 눈보라에, 또 그 속에서 하얀 속살을 드러내고 섰다가 아닌 듯 얼른 눈옷을 두르던 자작나무들에 넋마저 빼앗겨버렸으니까.

덕분에 나는 돌아와 며칠을 열병을 앓아야 했다. 은유가 아니라 진짜 열에 들떠 몸살을 앓았다. 달아났다 지친 마음이 돌아올 때까지……

춥다. 춥다는 표현마저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처럼 눈발이 날리고 있다. 또, 한, 밤을 불면으로 지새울 가로등 주위로 눈발이 뱅뱅 돈다. 그러다 웅크리고 엎드려 잠든 자동차들 위에 침묵으로 내려앉는 밤이다. 독주라도 마시고 흠뻑 취하고 싶다. 그거 말고는 목구멍을, 위장을, 뇌를, 심장을 뜨겁게 해 줄 게 아무것도 없지 싶다. 오늘 같은 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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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몇 줄을 이해하기 위해 두텁고 지루한 책을 다 읽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을 누가 했던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단 한 문장이라도 내 의식을 건드리는 무엇이 있다면 그 책의 존재가치를 의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책이라도 그만의 존재의미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믿음과는 상관없이 책들의 운명도 여느 존재의 운명과 마찬가지다. 몇 세기를 걸쳐 주목을 받으며 장수하는 책들이 있는가하면, 사는 동안 온갖 고난을 당한 책들도 있고,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어버린 책들도 있으며, 반짝 빛을 내며 타버린 책들도 있다. 하지만 누가 알까. 태어나자마자 소멸해버린 그 책 속에 평생을 찾아 헤매도 찾지 못한 보물이 들어있었을지……  

 

해마다 되풀이 되는 연말의 감정에 휘둘리며 방황하다 기어이 딛고 선 발밑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유난히 춥고 아프다. 겨울은 아직 초입인데, 이 남루하고 헐벗은 마음에 따뜻이 지펴줄 불씨는 어디에 있는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보통 책들은 유성과 같다. 각각의 책들에는 단 한순간, 마치 불사조처럼 비명을 지르며 날아오르는 단 한순간, 모든 책장이 불타오르는 한순간이 있다. 그 한순간을 위하여, 비록 곧 재로 변할지라도, 우리는 책들을 그 후로도 영원토록 사랑하는 것이다. 씁쓸한 체념을 느끼며 우리는 가끔 깊은 밤에 나무로 된 묵주의 구슬처럼 그 돌같이 죽어버린 메시지를 전하는 멸종된 책장 사이를 방황한다.”

오늘도 이렇게 부르노 슐츠의 말에서 '책'을 '사람'으로 바꿔 되뇌며 행간 사이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표현 너머의 표현을, 말해지지 않은 말을, 침묵에 감춰진 의미를 엿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침묵의 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한 후에야 ‘바벨’은 침묵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지 깨달았다. 음악을 들을 때 그는 더 이상 음표를 듣지 않고 그 사이의 침묵을 들었다. 책을 읽을 때 오로지 쉼표와 세미콜론, 마침표와 뒷문장의 대문자 사이의 여백에 집중했다. 방 안에서 침묵이 모이는 곳도 발견했다. 커튼 주름이 접힌 곳, 움푹 파인 은식기. 사람들이 그에게 말할 때 그는 그들이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을 들었다. 어떤 침묵의 경우는 그 의미를 해독하게 되었다. 단서는 없고 직관만 있는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비슷했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선택된 직업에서 다작을 하지 않았다고 아무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는 매일 침묵의 완전한 서사시를 만들어냈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당신의 아이가 하느님이 존재하느냐고 묻거나 사랑하는 여인이 당신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침묵을 지키기란 어려웠다. 처음에 바벨은 ‘예’와 ‘아니오’라는 두 단어만 사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 단어만 말하더라도 침묵에 담긴 그 미묘한 유창함을 잃어버리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그를 체포하고 빈 여백뿐인 그의 원고를 모조리 불태운 후에도 그는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들이 머리를 한 대 치거나 군홧발로 사타구니를 걷어차도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침내 총살대가 눈앞에 다가오자 작가 바벨은 자신이 실수했을 가능성을 감지했다. 총들이 그의 가슴을 겨냥할 때 침묵의 풍요로움이 실은 말하지 않은 빈곤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침묵이 무한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총에서 총탄이 터져 나올 때 그의 몸은 온통 진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일부는 통렬히 웃었다. 늘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떤 것도 하느님의 침묵에는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중에서>  

 

가슴이 서늘하다. 어떤 식으로도 말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침묵. 그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겠다. 이 겨울 동안은. 깊은 산속에라도 들어 눈 덮인 산을 건너온 바람이 전하는 소리를 이해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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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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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에는 '역사'가 있다. 사랑에도 침묵에도 말(언어)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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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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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스럽고 고통스러우며 지독하게 불편한 자아 들여다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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