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음은 죽음'인 그대
소설가 해이수씨의 단편 '몽구 형의 한 계절'은 신춘문예 당선을 향한 갈망을 이야기로 풀어 쓴 작품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젊은 시절의 재능을 세월에 저당잡혔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는 아들인 '나'가 대학 학보사 주최 문학상 공모에 당선하자 아들이 자신의 옛날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란다. 신춘문예 지망생인 몽구 형과 팀을 짠 '나'는 그가 성(性) 도착증보다 더 무서운 소설 도착증에 걸려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증세도 그 못지않다. 어느 날 우연히 화장실 창문을 통해 여자의 엉덩이를 훔쳐보게 된 '나'는 눈을 떼지 못할 만큼 강렬한 유혹을 느낀다. 소설은 신춘문예를 통과하고 싶은 '나'의 열망을 '엉덩이 목격사건'의 참을 수 없는 유혹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몽구 형은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쓰지 않음은 곧 죽음이야."
스무 살 새내기 대학생이던 198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김인숙씨는 이 '쓰지 않으면 죽음'을 몸으로 실천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씨가 오는 24일 열릴 시상식을 앞두고 수상 소감을 미리 보내왔다. 김씨는 "그동안 너무 많이 써서 이제 와서는 '내 인생 단 한 편의 작품' 같은 말은 입에도 올리지 못하겠다"고 했다. 등단 후 27년간 12권의 장편과 7권의 소설집을 묶었으니 3년에 두 권꼴로 책을 낸 셈이다. 그 모든 작품을 낼 때마다 '내 인생 단 한 편의 작품'으로 느꼈을 테니 더는 쓸 게 없을 것 같은 암담함이 그녀를 짓눌렀을 것이다. 김씨는 그 막막함을 "상은 호된 회초리 같은 것이기도 해서, 또 더 쓰라고 하는 것이다. 더 쓰고, 더 많이 쓰고, 더 기를 써서 쓰라고 하는 것"이라는 다짐으로 극복한다.
11월은 신문사 문학기자들에게는 '대목'이다. 11월 첫 주에 신춘문예 사고(社告)가 나가고 공모가 끝날 때까지 한 달 동안 문학기자들은 신춘문예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 한 달 사이에 전국 방방곡곡, 심지어 해외로부터 1만 편 남짓 응모작이 쏟아져 들어온다. 새해 첫날 신문에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알리는 꽤 극적인 등단 방식은 화려한 비상을 꿈꾸는 작가 지망생에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신춘문예는 문학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애호가와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문예 창작을 배운 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문학의 프로암 대회다. 세계에서 오직 한국만 갖고 있는 문화적 자산이다. 문단의 신인을 뽑는 잔치로 한 해를 시작한다는 점에서 문명(文名) 얻는 것을 최고의 명예로 여긴 문예 숭상의 아름다운 전통을 현대적 방식으로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2011년도 조선일보 신춘문예 공모를 알리는 사고가 2일자 종합 1면에 실렸다. 지난 1년간 응모작을 다듬으며 "쓰지 않음은 곧 죽음"을 되뇌었을 그대들이여, 1월 1일자 신문의 주인공이 되시라.
-김태훈 문화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