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문 - 2010년 제3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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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딛고 서서 숨 쉬는 이 세상은 더 이상 평안한 안식처가 아니다. 매일 아침 눈뜨면 어김없이 전해지는 소식이 끔찍하다. 폭력은 세상에 질병처럼 퍼져 있고, 자신을 살해하거나,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무참히 살해하는… 차마 입에 올리기도 싫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 왜일까? 왜 세상은 갖가지 증을 가진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판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들이 사는 세상은 생명 자체가 갖고 있는 존엄이나 신성 따위는 냄새나는 골목의 쓰레기통에 처박힌 지 오래다. 죄책감도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의 괴물들이 사는 세상에 남은 건 오직 두려움뿐이다. 그 두려움은 우리의 본능에 잠재되어 때때로 스스로를 위협하고 또 위협당하며 살아간다. 그런가하면 그러한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거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무뎌진 채 살아간다. 이런 세상에서 축복은 고사하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쏟아지는 혹은 엎질러지는 생명에 무슨 존엄이 있을까. 그럼에도 생명은 탄생하고 또 죽어간다. 사고처럼.

그런 의미에서 <아침의 문>은 오히려 지나치게 순화시킨 감마저 든다. 다행이다. 허약한, 무방비 상태의 생명들이 공격받는… 안팎으로 위협받는 이 세상에서 그나마 누군가는 희망을 읽으려 했다는 사실이.

한 남자가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자살을 선택했다. 죽었으나 살아났다. 사고事故다. 한 여자의 뱃속에서 생명이 꿈틀거린다. 어쩌면 똥일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자가 빈 옥상의 정화조 뒤로 숨어든다. 짐승처럼! 할 수만 있다면 칼로 배를 찢고 싶은, 낙타의 혹 속에 든 고름에 다름 아닌 고통의 덩어리를 안고…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쏟아지는 생명. 우연이든 필연이든, 남자는 문으로 형상화 된 죽음의 올가미를 통해 엎질러지는 탄생을 목격한다. 이 또한 사고다.  

 

바람이 분다. 낡은 건물의 옥상에. 황폐하다. 바람은 인간의 삶에 대해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없이 무심히 불어왔다 불어간다. 아무도 없는 그곳, 축 늘어져 흔들리는 타원형의 문. 끝이자 시작인, 죽음의 문이자 탄생의 문인. 그 문을 사이에 두고,

이곳을 나가려는 자와

그곳을 나오려는 자의

기이한 대면.

사고다!  

 

묵직한 운명의 구가 지나간 난간의 끝. 위태롭게 서서 맞닥뜨리게 되는 탄생의 사건. 엎질러져 버리는 생명. 남자는 울음을 터뜨린다. 이유도 모르면서 한 쪽 다리를 질질 끌며, 들어가려던 문의 반대편으로 이끌려 간다. 엎질러져버린 삶을 끌어안는다. 그의 울음과 아이의 울음이 하나가 된다.  

 

바람 부는 옥상 위에 쏟아지는 아침 햇볕이 뜨겁다. 비록, 징그러운 동물의 내장 같을지라도 뜨겁다는 건 살아있는 감정이다. 콘크리트보다 따뜻한 온기를 지닌 인간의 감정.

삶은 비로소 가능해진다.

세상을 부정하려는 몸짓에도 불구하고 위태롭고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생명에 대한 연민이 존재하는 한은 어떻게든 살아질 수 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진짜 이유, 그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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