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기대를 조롱이라도 하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갑니다. 계획했던 일들을 반도 해내지 못하고 날씨 탓만 하며 헉헉거리는 자신이 한심하다 못해 자괴감마저 듭니다. 하고 싶은 것들과 해야 할 것들 사이에서 갈등하며 매일 순서를 재정리하지만 어제도 오늘도 매 일반입니다. 내일은 다른 날이길 바라며 초조하게 동동거립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제의 실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괴롭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말은 필요 없는 말이었는데…… 좀 더 신중했어야 했는데…… 왜 좀 품위 있고 세련되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따위의…… 어쩌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무의미한 것들로 인해, 설령 의미가 있다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어제로 인해 지금을 허비하고 있는 자신에게 화가 납니다. 그 때 초인종이 울리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상품이 배달됩니다. 대수롭지 않은 소품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주로 책이나 작은 물건들을 구입하던 터였습니다.

무겁지 않은 조그만 상자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쳐 든 청년이 문 앞에 서있습니다. 대부분은 문이 열리자마자 물건만 불쑥 들이밀고 얼굴도 볼 새 없이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거나, 아예 올라오지도 않고 경비실에 맡겨놓고 찾아가게 하기 일쑤였는데, 용모도 단정한 이 청년은 미소까지 띠고 서있습니다. 바라보는 눈빛이 선량해 보입니다. 물건을 건네고 고개 숙여 깍듯이 인사하고 떠납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른 그 모습에 오히려 어색해진 나는 미처 그가 발길을 돌리기도 전에 서둘러 문을 닫습니다.

박스를 뜯어 안을 들여다보고 또 한 번 놀랍니다. 펜으로 또박또박 눌러쓴 판매자의 감사의 메모였습니다. 알록달록한 과자도 한 봉 들어있습니다. 깔끔하고 꼼꼼하게 포장된 상품에서 정성이 느껴집니다. 내가 산 물건임에도 아주 귀한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감동스럽기까지 합니다.

타성에 젖은 채 바쁘고 숨 가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것을 당연히 여기며 그 속에서 휩쓸리며 살아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안고 사는 나. 자주 불안하고, 자주 우울하고, 그러다 지쳐서 주저앉아 지레 낙담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마땅치 않게 여기면서도 모두가 묵인하여 당연해진 것들을 별도의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새롭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비록 작기는 해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이 그런 거라고, 눈에 보이는 것만 좇아 무시하고 지나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기쁨이 될 수 있는 거라고, 얼핏 스치기만 하고 다시는 볼일 없다 해도 오래도록 향기로 남을 수 있는, 그런 게 바로 고급스러움과 세련됨이라고 말입니다.

과자를 하나 입안에 넣습니다. 달콤합니다. 어느새 복닥거리던 마음은 가라앉고 슬며시 미안해지는 마음에 낯선 행복이 스며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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