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온통 펄펄 끓는다. 뱀처럼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온몸에 휘감긴다.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다. 목덜미에 퍼붓는 선풍기 입김이 달아오른다. 더위가 뇌의 절반을 파먹고 들어간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냐! 이따위 열정은 제발 사양하고 싶다고!’

반쪽짜리 뇌가 안간힘을 쓰며 이빨 사이로 으르렁 댄다. 목소리가 빈정거린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 절대 알 리가 없지. 어떻게 알겠어? 반쪽짜린데. 그것도 곧 뭉개져버릴 젤리처럼 흐늘거릴 뿐인 걸. 그래도 방법이야 있지 않겠어? 한 번 찾아봐. 남은 반쪽마저 아예 뭉개져버리기 전에…’

‘제발 그만하자. 쏟아낼 기력도 없다.’

반쪽짜리 뇌는 이내 온몸의 힘을 쭉 빼내버린다. 목에도 어깨에도 손목에도…

눈을 감는다. 그리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는다.  

 

눈으로 한없이 뒤덮인 시베리아 벌판,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온몸으로 듣던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의 울림, 거뭇한 관목들의 그림자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던 밤풍경, 달빛과 눈빛이 어우러져 눈을 시리게 하던 그 날 밤, 슬픔인 듯 알 수 없는 감정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찰랑찰랑 차올라 목 줄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던… 뚝뚝 끊기는 기억의 단편들… 나는 왜 그곳에 있었을까?…  

 

도저히 안 되겠다. 어제로 끝냈어야 했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온갖 허접한 잡동사니뿐이다. 온전한 게 하나도 없다. 여전한 꼬락서니하고는… 들쭉날쭉 뻗친 머리, 꾀죄죄한 몰골, 덕지덕지 들러붙은 찌꺼기, 핏발사이로 엿보이는 불투명한 시선… 가관이다. 그만 정신 좀 차리지? 누구? 아니면 무엇? 기를 썼는데도 고작 이것뿐이었나?

대낮인가 했는데 캄캄하다. 하늘이 박살나는 소리, 이어서 쏟아지는 물소리. 달궈졌던 대지가 훅! 열기를 뿜어낸다. 지겨워! 냉동관棺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싶다. 꽁꽁 얼어버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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