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자신의 존재를 모두 던져야 비로소 얻을 수 있고, 익숙하고 굳어진 것들로부터 과감히 벗어나야 만날 수 있는 세계다. 그것은 모두들 긍정하는 질서에 대해 품는 왜라는 의문이고, 보이는 세계에 안주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며,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반드시 확인하고자하는, 열정과 모험심, 그리고 ‘앎’보다는 ‘행동’을 우선하는 용기이다. 그렇게 창조된 세계가 바로 문학(소설)이다.
문학(소설)은 그저 아름답게만 보이는 세계, 상상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깊은 고뇌이며 갈등이고, 부딪히고 찢기는 상처의 아픔이며 고통이다. 그럼에도 그것을 간절하게 원한다면 '바라봄'에서 멈추지 말고 내가 그 속으로 들어가 그것 자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신(?)내지는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 세계를 열망하면 할수록 두려운 게 사실이다. 꿈의 세계이지만 동시에 반역의 세계에 다름 아니므로.
성석제의 ‘모래밭’은 그러한 문학의 창조적인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글이다.
"그 지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출구가 없고 입구도 없다. 그 지방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그 지방에서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변두리에서 태어나 차츰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최후에는 가장 안쪽에서 죽게 된다고 한다. 그들은 바깥세계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바깥세상에 대해 말하는 것도 금기다.
남처럼 변두리에서 태어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들처럼 죽기 위해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다가 어느 날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 산과 하늘밖에 없는가. 살거나 죽는 일밖에 없는가. 왜 아무도 오지 않는가. 입구가 없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왜 당연한가.
그는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밖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산으로 갔다. 산에는 ‘입산금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는 팻말을 거꾸로 돌려 ‘지금 산으로 들어감’이라는 뜻으로 바꿔놓았다.
산에 올라서자 바다가 보였다. 바다다! 그는 바다라는 말을 몰랐지만 그게 바다인 줄은 알았다. 그는 잠깐 자신이 태어난 곳을 돌아보았다. 커다란 주름이 잡히듯이 천천히 안으로 밀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는 다시는 그곳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돌라가지도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공처럼 산을 굴러 내려갔다. 몸 어딘가가 긁히고 부딪히고 깎였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바다에 이르렀다.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갔다. 그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바다, 바다, 바다, 바다, 바다, 바다.
숨을 헐떡거리며 바닷가를 뛰고 뒹굴기도 했다. 파도는 밀려오고 밀려갔다.
파도가 밀려와 그의 구두를 적셨다. 그의 양말을 적시고 발목을 덮쳤다. 문득, 그의 몸은 가벼워졌고 또한 무거워졌다. 발목 아래가 모래로 변했던 것이다. 파도는 그의 발목과 함께 밀려갔다.
다시 파도가 밀려왔다. 그의 무릎 아래가 모래로 변했다. 그는 꿇어앉은 것처럼 보였으나 이미 무릎이 없었다.
그는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와 그의 배를 적시자 그는 모래밭에 파묻힌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가슴이 모래로 변했다.
마지막 숨을 쉬기 전,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모래밭은 자신처럼 산에서 뛰어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