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
세상의 얼음이 모두 녹아서
바다가 건물을 뒤덮었어도,
그래서 인천이 수몰된 다음에도,
온갖 나라들이 전쟁을 벌인 뒤에도,
그래서 한국을 지켜주던 댐이 무너지고 나서도,
서울 사람들은 계속 서울에 살았다."
작년 늦가을 우리는 투발루 외교장관이 무릎까지 물에 잠긴 채 기후 위기에 관한 연설을 하는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지금 살고 있는 학생들에게 '투발루에서 자라나는 마지막 세대일 수도 있다.'라는 점을 각인시키고 있다고 한다. 지구촌 한 쪽은 물에 잠겨 사라지고 있고, 다른 한쪽은 극심한 가뭄으로 땅이 갈라지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 권의 책이 찾아왔다.
소설Y클럽 『다이브』
2057년 우리나라는 물에 잠겼다. 높은 지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감자와 콩을 기르거나 물고기를 잡아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소설은 물에 잠긴 세계를 배경으로 삶과 죽음, 기억과 치유, 고통과 성장을 그려내고 있다. 기후 위기로 내일을 불안해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디스토피아 세계(이 또한 우리의 관점에서 그럴듯하다)에서 살아가고 있는 십 대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지금의 서울과 그들이 모르는 예전의 서울은 단순히 시간의 간격뿐만 아니라 세계 자체가 다른 차원이다. 물에 잠긴 것은 건물, 사람, 자동차, 핸드폰 등 형태를 지니고 있는 사물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 가치관 그리고 낱말까지!!! 예전의 세계를 송두리째 집어삼켜 버렸다.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지난 시절의 흔적과 식량을 찾는 이인 물꾼 선율. 노고산 물꾼인 선율은 남산 물꾼 우찬과 시비가 붙어 내기를 하게 되었다. 기한은 보름, 심판은 중앙의 둔지산 물꾼들이 맡기로 했다.
내기에 이기기 위해 깊은 물속으로 내려간 그녀는 수호를 데리고 온다.
아이콘트롤스의 최첨단 시냅스 스캐닝 기술은
고인의 기억과 의식을 그대로 구현합니다.
평생 플랜 구독을 통해 당신의 아이를
다시 한번 품에 안으세요.
부모님에게 못다 한 말을 남기세요.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너의 기억을 깨워 줄게."
2057년 서울, 잠든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정
불과 20년 후인 2042년에 서울이 물에 잠기게 된다는 설정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지구의 이상 기후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고 이제는 SF 수준에 머무는 공상 판타지 미래가 아니다는 경각심은 커지고 있다. 그럴 수 있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이어지는 내일의 삶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무서움도 컸다. 이 소설, 어른인 내가 보기에 참 무겁고 무섭고 어렵고 미안한 이야기였다. 마지막 책장까지 넘기는 데 힘겨웠다. 기어이 책장을 덮고 다음날 다시 읽었다. 그제서야 선율과 수호와 지오와 우찬이 노을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광경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 그 아이들의 내일이 그려졌다.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을 방법을 찾은 그들이 나아갈 다른 시간이 기대된다.
예전의 서울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곳이었다고들 했다.
지금의 서울은 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이 바라보는 예전의 서울은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없어진 것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도 눈앞에 불러낼 수 있었던 세상, 그게 너무 당연해서 만질 수 있는 무언가를 간직할 필요가 없던 세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예전에도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지금에도 고통은 존재한다. 살기 위해서는 잊어야 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는 것이랑 마음이랑은 다르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이들은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지우거나 무시하거나 잊어버린다. 하지만 정답이 아니라는 듯 그 고통은 매일 밤낮으로 생채기를 낸다. 이런 고통을 겪는 이들 앞에 나타난 기계 인간, 채 수 호! 18살이었던 2038년에 멈춰있는 기억을 가진 이 소녀는 잃어버린 4년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이는 노고산 사람들과 수호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따라가보자.
다이브/단요 지음/창비
과거와 현재의 인물들이 교차하고 있는 이 소설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서문경' 과거에도 현재에도 삼촌인 그가 품고 있는 상처가 이 소설의 열쇠이다. 그로 인해 현재의 고통이 되었다. 그가 입을 다물기로 선택한 결정으로 오랜 시간 엉켜 있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천천히 느슨해져서 마지막 매듭이 풀리길 기다리던 상태에 수호가 그 매듭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선택한 선율과 수호 덕분에 등장인물들은 오랜 자책과 미안함과 원망을 차례대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
예전의 서울에서 살아있을 때조차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었던 수호는 죽어서도 선택할 수 없었다. 착하고 예쁜 딸을 강요받았던 그녀를 보면서 가족의 이기심을 고통스럽게 깨닫는다. 수호를 떠나보낼 수 없는 자신들의 아픔을 아픈 수호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수호의 부모님은 죽음으로 끝을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아픈 어머니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계획을 바꿔야 하는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지쳐가는 경이는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놀랍게도 모든 게 끝났는데도 세상은 더 끔찍해질 수 있다. 예전의 세상 이야기다. 하지만 낱말조차 물에 잠겨 예전의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관계가 다 무너진 현재, 어린 사람을 돌보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있다. 사람을 사람 한 명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 낱말들에서 벗어나 느슨하면서도 끈끈한 그물 속에서 사람들은 모두의 삶을 함께 만들어 나갔다. 물질적 풍요의 시대에서 오히려 가난하고 고립된 생활을 했던 사람이 물에 잠긴 세계에서 더 여유롭고 자유롭다. 수호와 선율의 대화를 읽으면서 아, 탄복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인데……
"애들은 여기 있는 게 좋아서 남았다고 해도……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
다른 산에 있는 사람이 보고 싶어질 때도 있을 거잖아."
"그러면 가서 만나면 되지!"
아픈 수호는 경이 삼촌을 통해 자신이 누리고 싶은 삶인 다른 차원의 세계를 접했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삶이었기에 애달팠는데 경이는 자기 나름의 현실에 치여 어느 순간 따뜻하게 보살피지 못하게 되었다. 그 과거가 오늘을 옭아매어 괴롭다. 이 모든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율의 말처럼 솔직해진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건 아니어도 문제를 풀려면 솔직해져야 한다.
내기 때문에 시작된 일이지만 선율은 수호가 과거를 바라보게끔 도와주었다. 남의 세계를 뒤흔들려고 한 게 하니라 수호의 지금을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비난하거나 틀렸다고 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었다. 선율은 그렇게 수호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이렇게 그 사람 자체를 위한 진실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오랜 시간 생채기를 냈던 고통을 지우거나 잊거나 피하지 않고도 마주하면서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다.
노고산 물가에서 손을 꼭 잡은 채 노을을 보고 있을 선율과 수호를 떠올리며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단요 작가의 편지 속 피난처가 되길 바란다는 글귀처럼 마음을 치유해 주는 소설Y클럽 『다이브』
어린 사람을 돌보는 나이 많은 사람인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Y클럽 4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