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 이메이의 어반스케치와 펜드로잉으로 기억하는 대만 여행
이명희(이메이) 지음 / 밥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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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공포로 몰고 갔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안정세를 보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가도 되려나?라고 설레고 있다. 코타키나발루, 다낭, 타이베이 등 여러 후보지들이 거론되었다.

때마침 출간된 이메이님의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책을 통해 타이베이'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유용하겠다 싶었다.


걷고 그리고,타이베이/이명희 글과 그림/밥북



코로나19 창궐 이전에 떠난 타이베이 드로잉 여행을 책으로 엮었다. 여행은 함께 하는 사람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공간이지만 시선이 닿은 곳이 달라진다.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은 그림 그리는 지인들과 함께 한 드로잉 여행이었기에 일반 여행과는 결이 살짝 다른 느낌이다.

 

그리운 낯선 공간,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사진으로 접하는 풍경과 음식들인데 드로잉으로 만나니 느낌이 색다르다. 사진처럼 찍어낸 완벽한 전달이 아니라 화가의 눈에 담겨 다시 종이에 펜으로 그려진 2차 산물로 마주하는 타이베이의 이곳저곳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색채가 없어 더 단순하면서도 깔끔해 본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이메이 작가의 눈에 비친 공간, 음식,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구나.

여행지로 타이베이에 호기심이 있는 상태라 더 세세하게 보게 된다. 나는 이곳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도 해보고, 아, 이곳은 꼭 가봐야지. 이 음식은 내 취향인데. 소중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잔망스러운 포즈의 오숑이 새겨진 스탬프(출처 : 브런치)

 


여행의 시작은 공항에서부터다. 이메이 작가 역시 공항에서 미션을 시작으로 타이베이 여행을 호기롭게 시작한다.

귀여운 미션 깨기에 이메이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 타이완 관광청 공식 캐릭터인 반달곰 '오숑' 스탬프로 시작한 여행은 어떤 소소한 행복을 전해줄 것인지 두근두근했다.

 


★ 역사와 낭만이 담긴 타이베이의 가게

타이베이 하면 음식을 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이다. 식도락 여행이라 할 정도로 많은 여행객들이 자신의 베스트를 정리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유명한 맛집뿐만 아니라 숙소 옆 딤섬 가게나 계획했던 유명 맛집이 열지 않아 우연히 들어가게 된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우연들이 오히려 여행을 더 값지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향신료 같아 좋아한다. 물론 적당히~

타이베이 여행 계획에 디저트 가게 '빙두'를 추가하였다. 디저트 문화가 잘 발달한 타이베이이기에 작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디저트를 꼭 먹어보고 싶어졌다. 곧 그 따스함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사람과 삶이 보이는 타이베이의 시장

우리 가족도 여행을 가면 꼭 시장에 간다. 재래시장에 가면 그 나라의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물론 '여기는 관광객을 위한 공간입니다.' 대놓고 판이 벌어지는 시장도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일상을 조금은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메이 작가가 추천해 준 시장들이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자라나게 하는 영양분이 되어서 괴롭다. 코로나19 팬데믹, 정말이지 싫다.

 


★ 탐험의 묘미가 있는 타이베이의 거리

이메이 작가에게 타이베이의 첫인상은 언뜻 보기에 한국과 비슷해 보였지만 달랐다고 한다. 특히 도로 위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부대들을 예로 들었다. 타이베이도 이웃 동남아 국가인 베트남처럼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지만, 이메이 작가 말로는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덜 혼잡해 보였다고 한다. 영상으로 접하는 오토바이 부대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쭉 이어지는 행렬을 처음 접했을 때는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골목의 낯선 이름이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골목을 걷고 또 걷고 싶었다.

 

책 제목처럼 많이 걸은 여행이었다. 어반 스케치를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피사체를 그리는 작업은 일반적인 관광명소를 방문하는 여행과는 다르다. 그리고 구불구불 복잡하게 이어진 타이베이의 골목길은 우리네 옛 향수를 자극하는가 보다. 도시 계획으로 반듯반듯하게 낸 도로가 빠르고 편하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 한 번쯤 헤맸을 골목길에 대한 추억 하나 간직한 나는 골목길이 정겹다. 그 같은 마음이 닿아 나도 어느새 타이베이의 골목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미로 같은 그 길 끝에 애틋한 할머니 집, 그리운 단짝 친구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발걸음마저 가볍다.





★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타이베이의 명소

 

여행 중에만이라도 마음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타이베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명소들을 그림으로 만났다. 사진과는 또 다른 감성이다. 여행 기간 중에 비가 자주 와서 더 운치 있는 그림으로 표현되어서 마음에 닿는 곳이 많았다. 연말에 간 여행이라 타이베이에서 새해를 맞이한 이메이 작가는 타이베이 101 불꽃 축제를 함께 하게 되었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특별한 순간에 가슴이 울컥했다는 글에 부러움에 울컥해졌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오래된 군인 마을 쓰쓰난춘, 시먼딩의 별 서문 홍루도 계획표에 추가되었지만, 나를 설레게 하는 공간은 따로 있었다.

'타이베이'하면 떠오르는 게 디저트,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타이베이의 골목길을 읽을 때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주인공들이 걷던 거리들이 떠올랐다. 그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생생한 건물과 거리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이베이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명소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를 소개해 주는 글에서 반가운 이름이 나왔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 DVD 수집이 취미여서 결혼할 때 혼수로 DVD를 가져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 좋아하는 영화가 '카페 뤼미에르'였다. 그런데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가 바로 그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과거 미국 대사관 건물을 복합공간으로 개조한 건물이라고 한다. 애정이 퐁퐁 샘솟아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카페 뤼미에르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는 상상으로도 행복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는 취향은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 내 카페 뤼미에르 전경


독특한 드로잉 여행 에세이를 만나 색다른 여행을 떠났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언제쯤 캐리어를 끌고 타이베이로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메이 작가의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덕분에 그 시간이 더 빨리 올 것 같다.

많은 이들의 여행 감성을 자극할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밥북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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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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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NO BONES/애나 번스 장편소설/창비



도서와 서평단 미션 종이와 함께 담당 편집자의 편지가 도착했다.


서평단 자격으로 미리 받아본 도서는 정식으로 출간될 책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가제본이며, 전체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저자의 편지를 받아본 적은 있지만, 담당 편집자의 편지는 처음이다. 그만큼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서도 우려되는 점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은 배경지식이 소설에 대한 이해 정도에 크게 작용한다. 애나 번스의 장편소설은 <북아일랜드 분쟁>을 다루고 있기에 이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뒷받침되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노 본스>를 읽으려는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손수 남긴 편집자의 바람처럼 가치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the Troubles*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약 30년간 계속된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둘러싼 혼란기를 일컫는다. 지리상으로는 아일랜드섬이나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에서 친아일랜드계인 카톨릭교도 세력과 친영국계인 개신교도 세력이 충돌한 비극적인 현대사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북부의 구역인 '아도인'이라는 작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마다 중심인물이나 시점이 달라지며, 7살 아이 어말리아를 시작으로 '평범한' 이웃들이 등장한다. 7살 아이들이 모여 한가로이 노는 평범한 일상에 '트러블' 소식은 아이들 말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꾸며낸 이야기처럼 현실성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처럼 '트러블'은 정말 일어났고 일상은 파괴되었다.

 

 

『노 본스 NO BONES』는 분쟁으로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아도인'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족과 이웃, 친구, 학교, 마을. 적이 아닌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 더 이해할 수 없고 잔인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폭력에 잠식당하는 아도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외면과 무관심 그리고 냉대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그 자리에 폭력과 광기가 자리 잡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기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영국과 아일랜드, 가톨릭교와 개신교. 편가르기로 팽팽하게 분열되고 상대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아무런 고민 없이 망설임 없이 일어나는 혼란과 파괴의 일상을 마주하였다.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톤 가족의 아들, 제임스 톤이 영국군으로 북아일랜드에 배치되어서 선물을 사들고 군인 친구들과 어머니 친척인 러빗 가족을 방문하여 안부를 묻고 친해지는 초반의 훈훈한 이야기가 『노 본스 NO BONES』 소설 속 유일한 다정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제임스 톤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죽음은 더 비극적이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에 대한 순수한 개인의 호의가 시대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짓밟히는 현장을 목도하는 것은 커다란 아픔이자 슬픔이었다.

 

어머니의 잉글랜드식 벨파스트 말투가 점점 벨파스트식 잉글랜드 말투로 바뀌고 있었다.

 

분쟁과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인간들을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전쟁이 벌어지면 각종 범죄와 비극이 발생한다. '나라의 독립'이라는 명목으로 각자 옳다고 믿는 가치와 명예를 위해 시작된 일이겠지만, 정의롭고 공평하며 정당한 목적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들이 무분별하고 폭력적으로 진행된다. 폭력뿐만 아니라 온갖 범죄들이 자행된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진실은 약자가 가장 큰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 아이, 노인, 성소수자, 장애인, 환자 등 사회적 약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무겁게 고통받게 된다. 『노 본스 NO BONES』 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죽음, 폭행, 협박, 상실 또한 어밀리아를 비롯해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해졌다.

 

 

보편적 상식에서는 사회의 보호막인 가정, 학교가 소설 속에서는 폭력이 만연한 공간으로 묘사되어 더 충격적이다. 제임스, 믹, 어밀리아, 메리, 빈센트.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신체적 상처를 입고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 폭력과 광기는 '트러블' 이전부터 있었지만, '트러블'로 인해 더 잔인해지고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건은 러빗네에서 벌어진 '트러블'이었다.

오빠 믹과 새언니 미나는 집에서 변태적인 성행위를 벌이고, 이를 가족과 이웃들은 외면하고 무시한다. 그런 공간에 어밀리아가 들어오고, 믹과 미나는 자기들의 논리로는 장난스러운 행동일 뿐인 극악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거기에 리지와 친구들이 가세하니 이 아수라장이 실재할 수 있는가? 부정하고픈 욕구만 강해졌다. 너무 행복하거나 너무 고통스러운 극한의 상황을 접하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눈 뜨면 사라지는 허구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읽게 된다. 활자로 접하는 것만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숨 막히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아일랜드'를 각인시킨 작품이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EIDF2018 출품작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A Mother Brings Her Son to Be Shot>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터뷰를 통해 가족의 사연을 하나씩 밝히는 가족 드라마 형식이지만 훨씬 더 큰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오도넬 가족이 살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수 십 년에 걸친 분쟁과, 이후 평화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갈등 중에 있는 현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국 관할이지만 경찰이나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일랜드공화국군 IRA의 통제를 받는 마을 '데리'에서 사는 필립 오도넬은 '처벌 사격'이라는 벌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사회에 피해를 주는 자에게 벌을 주겠다는 IRA의 행위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폭력이다. 어머니 마젤라는 아들 필립을 그들에게 내어줄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아들을 IRA에게 데리고 간다. 아들은 다리에 총을 맞고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영화는 오도넬 가족의 처벌을 보여주고 있지만 끝나지 않은 역사적 비극의 연장선을 담고 있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아일랜드'가 묵직한 바윗 덩이가 되어 마음 한켠에 박혔다.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동시대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은 서글픈 현실이 되어 굴레처럼 옭아맨다.

『노 본스 NO BONES』를 읽으니 이 영화가 자연스레 소환되었다. 영상으로 접한 처참한 현실이 더 잔혹한 활자가 되어 나를 강타했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



장난처럼 시작한 자경단 활동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갑자기 얻은 권력을 남용하는 십 대, 그들을 처벌한다며 무릎에 총을 쏘는 IRA,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 학생들에게 온갖 폭력을 가하는 선생님, 호기심으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철부지 십 대 등등. 일상을 폭력과 혐오와 외면으로 채우는 이들이 토해내는 숨에 호흡이 힘들어진다. 그들과는 다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선택 아닌 선택으로 정신병에 걸리고 집착을 드러낸다. 안타까운 마음은 그들을 어루만져 주고 보살펴주고 싶지만 이런 참상에서 그려본 그들의 결말은 밝을 수가 없다. 암울한 현실이 계속되고 휘둘리면서도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어말리아와 빈센트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들의 앞날에 실낱같은 빛줄기가 깃들길 소망한다.



네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고.

네가 접하든 아니든, 좋아하든 아니든 삶은 계속되고,

사실 등 돌리고 떠나는 건 너 자신일 때가 많잖아.




『노 본스 NO BONES』 절반을 읽었다. 과연 남은 절반은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을까? 혐오와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피폐해져 가는 '평범한' 이웃들에게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움과 연민을 담아 변화의 불씨를 기대해 본다. 작가 애나 번스가 작품 속 문체는 냉정하지만, 연민과 유머를 잃지 않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에 희망을 품어본다. 달라질 내일을! 어밀리아가 애타게 부르던 외침에 대답하는 목소리를, 손 내밀어줄 누군가를! 우리를 그려본다.



 

 <창비출판사에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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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
이자혜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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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표지의 책,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표지부터 시선을 집중시킨다.



밀알의 양식을 주시옵고/이자혜 만화/중앙북스



순수한 눈망울로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는 한 청년과 그 기도에 답하여 다채로운 음식을 주시는 다정한 손이 그려져 있는 표지를 벗기면, 헉;;;

표지 속 밝고 뽀얀 한밀알 -> 여기저기 기운 옷을 입은 궁색한 한밀알

포동포동한 고양이 -> 돈이 없어 굶주린 영혼

다채로운 음식 -> 컵라면과 삼각김밥

극명한 대비가  와닿는다. 역시 만화가라 표현력이 남다르구나 싶었다.






이제 직장인이 된 사회 초년생인 한밀알. 그녀는 대학 때문에 혼자 지방에서 올라왔는데 돈이 없어서 친구도 남자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직장인이 될 때까지 지탱해 준 건 덕질이었다. 그녀는 애니메이션 <도봉 히스테리아>에 입덕하여 다른 팬들의 연성을 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커플을 응원한다. 면접 대기 시에도 연성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면접을 봤으니 덕질의 정도는 상상불가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이렇게 덕질과 취업 준비만이 전부였던 그녀가 직장인이 되면서 다른 청년처럼 일반적인 고민을 털어놓는다.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데이팅 앱을 통해 만남을 가져보기도 하고, 재테크로 남들이 다 하는 주식에 투자해 보기도 한다. 비슷한 연령대인데 결혼한 이들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고, 전문가 포스를 뽐내는 직장 동료들을 보면서 멋진 어른이 된 자기를 상상한다.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왔던 한밀알이 경제적 자립을 하게 되면서 타인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직장 동료들 그리고 같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SNS 지인 '미지근'(전작 미지의 세계 등장인물) 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청일점인 조이삭 팀장은 한밀알 사원을 티 나지 않게 배려해 주고 챙겨준다. 은근한 연애 기류가 감지되기도 한다.

음식과 잘 어우러진 주변 이야기를 통해 현대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직장 생활, 취미 생활, 연애 생활 등이 그려지는 데 밀알의 덕질이 압권이다. 애니메이션 연성에 폭 빠져 상상의 나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낄낄거리는 그녀, 미지근와 만나서 덕토크에 진심인 그녀, 그 순간 그녀의 표정들이 살아있다. 마이너 감성이 진하게 전해져온다.

 

밀알의 열두 끼. 맛있는 음식을 매개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이 그려진다.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는데 다 처음 접하는 음식인 밀알의 생생한 후기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고 솟구치는 식욕은 덤이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식욕 돋우는 음식 그림은 영롱한 자태로 우리를 유혹한다. 맛있는 음식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치유와 행복의 힘은 거부할 수 없다.

'식구',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뜻하는 이 단어에 담긴 의미를 되돌아본다. 우리네 삶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그만큼 중요하다. 매번 도시락을 싸오는 밀알을 데리고 나가 맛있는 태국 음식을 사주는 상사, 색다른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덕질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온라인 지인, 집에서 연말 파티를 열어 회사 사람들을 초대하는 팀장, 모두 밀알에게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들을 통해 하나하나 배우가며 밀알은 성장하고 있다.




20대 평범한 청년이 경험하고 고민할 만한 현실적인 부분들이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한다. 하지만 중요하고 무겁게 다뤄지지 않아서 식도락 만화라는 큰 틀을 깨지 않는다. 밀알의 양식을 주는 손길은 미식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맛있는 음식들을 통해 삶의 다채로운 맛을 느끼고, 관계를 확장해가면서 인생의 선배들이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조언을 참고하여 천천히 자신이 생각하는, 되고자 하는 어른상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은 맛있는 음식만 사주면 좋다고 어디든 따라가는 철부지 그녀여서 염려스럽고 걱정이 되지만, 조 팀장 말처럼 "아무튼… 밀알 씨, 화이팅이다."




다음 책이 나온다면 식당 점원으로 자주 등장하는 남자의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좋겠다. 의미심장한 표정과 눈빛에 무언가 터질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서운하기까지 했다.

 

음식에 홀리고 다양한 캐릭터들에 끌리고 그중 특히 귀엽고 순수해서 무장해제시키는 밀알에 빠져든다. 너무 평범하고 단순한 청년, 한밀알이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지 상상하며 기다려봐야겠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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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닥거리는 가슴 고래책빵 동시집 23
윤동미 지음, 손정민 그림 / 고래책빵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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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기분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책이 바로 동시집이다.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콩닥거리는 가슴을 펼쳤다. 짧은 동시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재미나고 엉뚱하기도 하고 깜짝 놀라게도 한다. 윤동미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렇게나 사랑스럽고 따뜻하고 재미나구나 싶어 부러운 마음이 책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쌓인다.





1부 과속방지턱

2부 먼저 온 손님

3부 흔들흔들

4부 콩닥콩닥

이렇게 4부로 이루어졌다.

 

 

1부. 과속방지턱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소재이다. 돼지 저금통, 바나나, 식탁의자, 막대사탕, 과속방지턱, 배달 오토바이, 옹기종기, 공기청정기, 뻐꾸기시계, 곰인형 등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시는 <담쟁이>와 <갈대가 갈 때>이다. 계속 뻗어나가는 담쟁이를 탐험가와 연관 지어 풀어낸 시가 인상 깊다. 그리고 한껏 뽐내던 갈대가 부러지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는 신신당부를 한다.

 

갈대,

가더라도

내년에 꼭 와!

- 갈대가 갈 때 中




2부. 먼저 온 손님에는 자연을 관찰하는 시인 특유의 색다른 시선이 담겨있다.

잘라낸 무 머리를 버리지 않아서 만난 무꽃에 대한 감상을 아름답게 그려낸 '무 머리', 바닥에 떨어진 솔잎에서 할아버지 탈모를 떠올린 '탈모', 인간의 시선에 의해 달리 불리는 다소 이상한 '고양이는 고양이'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송아지를 키우는 모습을 보고는 어르신처럼 섬긴다고 표현한 '송아지 어르신' 시들을 읽다 보면 허투루 보지 않고 찬찬히 살피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2부 마지막 동시인 <공부> 속 '나'는 꼭 개구지고 유쾌하고 자신만만한 울 아들 같다. 의리, 유머, 운동, 친구, 외모까지 완벽한 아주 멋진 놈인데 공부에 발목을 잡히다니… 안타깝다. '다 잘할 수는 없잖아.' 하다가도 공부 고 녀석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을 찌르는 동시, <공부>이다.

 

 

3부. 흔들흔들에서는 변화를 잡아내고 있다. 계절의 변화, 씨앗의 생장, 감기 바이러스로 고생하는 가족 그리고 아이스크림케이크 녹지 않게 생일 축하하고 먹는, 어려운 과제를 순수하고 진솔한 동시로 표현했다.

 

 

4부. 콩닥콩닥에서는 마음을 읽는 시들이 가득하다. 나의 마음, 너의 마음, 우리네 마음이 가득 담긴 따뜻하고 다정한 사랑 넘치는 시들이다. 읽다 보면 어떻게 알았지? 싶을 만큼 마음이 통하고 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닿아 빙그레 웃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잘 알지>, <엄마는 늘 그래>

둘 다 엄마에 대한 시이다. 하지만 내용은 정반대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상냥한 아이인 나와 자신에게 짜증 내는 엄마에게 화가 난 나가 등장한다. 의젓한 것 같다가도 어린아이 모습 그대로인 '나'가 사랑스럽다. 서운한 마음 가득한 '나'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건 엄마이기 때문이리라.

 

딱, 한 번이라는 말속에

한 번이 아니라는 말이

딱, 숨어 있지

- 딱 속에 숨은 딱 中




깜찍하고 귀여운 그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짧은 동시에 담긴 메시지를 재기 있게 표현해 줘서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까지 더했다.

<먼저 온 손님>의 멧돼지 도둑을 깜찍하게 묘사해서 화를 낼 수 없다. 주머니가 터진 줄도 모르고 열심히 가는 멧돼지에게 누가 뭐라고 할 수가 있을까. 신이 나 올라간 입꼬리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면 오히려 위로해 주고 싶어진다.

 

윤동미 시인의 짧은 동시 안에는 큰 세계가 담겨있다. 35년이나 함께 한, 시골집의 커다란 라일락 나무를 더 넓은 곳으로 보내주고 그 자리에 어린 라일락 나무를 심으면서 엄마 나무처럼 아름드리가 될 35년이 담겨있다. 그 시골집에서 콩을 고르느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있는 할머니가 담겨 있다. 공부에 시험에 추욱 처진 어깨를 펼 수 있도록 보석 같은 날 동그라미 치며 일 년 계획을 세우는 우리가 있다. 숨어 웅크리고 울었지만 힘차게 날아가는 용기가, 희망이, 결심이 담겨 있다.

 

 

<콩닥거리는 가슴>은 본다는 게 단지 눈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이 담겨야 한다는 걸 알게 해주는 동시집이다. 호기심과 관심으로 세상을 보고 받아들이고 들려주는 그의 동시는 단조롭지 않고 생생하다. 통찰력으로 불어넣은 '독창성'이 우리에게 즐거움과 감사함과 놀라움을 선사한다.

 

"우리 깨어났어요."

- 착한 씨앗 中

 

<고래책빵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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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의 형제 1 - 맹수의 눈을 지닌 아이 이리의 형제 1
허교범 지음, 산사 그림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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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고개 탐정과 마술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허교범 작가가 신작과 함께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이리의 형제』 1. 맹수의 눈을 지닌 아이 

가제본으로 미리 만나본 이 소설은 외롭고 슬픈 그래서 고통스러운 판타지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이리의 형제/1.맹수의 눈을 지닌 아이/허교범 글/산사 그림/창비



본격적인 내용이 펼쳐지기 전에 우리는 의미심장한 성경 구절부터 만나게 된다.

고난의 대명사 '욥'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는 욥기 중 한 대목이다.



선한 부자였던 욥이 고난을 겪게 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면서 내뱉는 말이다. 고통받는 자신을 외롭고 슬픈 동물로 회자되는 이리와 타조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허교범 작가는 이를 차용하여 신작 제목을 붙였다.  『이리의 형제』 

 

이리! 요즘에는 '늑대'로 불리는 동물인 '이리'는 떼를 지어 다니며 결속력이 강한 동물이다. 달과 연관 지은 이야기들이 많은 동물로 이번 이야기 역시 달의 변화와 힘이 중요하다. 신비롭고 오묘한 힘의 원천, 달이 등장하는 소설답게 전설, 설화,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구미호, 구울, 늑대 인간, 흡혈귀같이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소환하여 판타지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친숙한 소재인데도 새로운 이야기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스토리텔러로서의 허교범을 만날 수 있는 즐겁고 놀라움 가득한 시간이다.




인간이 아닌 존재인 노단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강한 존재만이 살아남는 종족 특성과는 다르게 유일한 핏줄인 그를 포기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10년이 넘도록 병원에서 수명을 연장시켰고, 열두 살이 된 그에게 '하유랑시'를 사냥터로 주고는 떠났다.

 

 

늘 아래 난히 사스러운 도, 하유랑시입니다.

 

 

홀로 남은 노단,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주어진 큰 임무는 도시를 장악해 인간의 힘을 흡수하여 살아남는 것이다. 실패하면 죽음뿐. 종족 중 높은 자리에 위치하는 아버지의 도움은 지금까지로 충분하다. 존경하고 두려운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서 자기 두발로 꼿꼿하게 서서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꼿꼿하게 걸어나가는 것만이 선택지이다. 저주를 받았다느니 운명을 벗어난다느니 하면서 다른 떠돌이처럼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노단의 눈에 들어온 한 인간, 그를 부하로 삼는 것부터 시작이다.



"첫 번째 부하는 반드시 강한 자여야 하는 건가요?

약하고 패배자 같은 인간을 고르면 안 되는 건가요?"

 

 

노단의 본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큰 임무를 시작하는 순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병원에서 살아남으면서 수없이 곱씹었던 질문과 고민 그리고 상처를 드러내며 극복하고자 한다. 노단은 운명에 순종하면서 아버지처럼 강한 존재로 살아남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첫 번째 부하, 연준은 그에게 힘이 되어줄 것인가?

 

 

먹이에는 한 방울, 부하에는 두 방울,

마음이 급하면 세 방울, 네 방울은 영원한 추방


 

 

『이리의 형제』 대서사시가 시작된 1권 - 맹수의 눈을 지닌 아이 - 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의 등장과 그와 엮이는 인간 그리고 배경이 되는 하유랑시를 소개하고 있다. 도시를 장악하고자 하는 노단과 그가 선택한 부하와 먹이가 될 인간 그리고 이를 막고자 하는 노단과 같은 존재인 유랑이 주축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노단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떠돌이 삶을 선택한 '유랑'이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자신이 선택한 하유랑시가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떠돌이 삶을 선택한 유랑에게 허락된 짧은 삶을 조용하고 안정적으로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내 남은 생을 망치려고 하고 있어."

 


유랑이 노단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를 막아내려고 준비하는 동안, 노단도 유랑의 존재를 감지한다.

 


"나는 네가 감히 여기 내 영토에 숨어 있다는 걸 알아.

널 찾아낼 거다. 그리고 없애 버릴 거야.

 


이제는 노단과 유랑은 대결을 피할 수 없다. 도망치고 싶지 않은 유랑은 애써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노단의 주변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노단이 선택한 첫 번째 부하 연준에게. 그리고 연준에게 노단이 감춘 비밀을 알려준다. 연준은 유랑의 말에 고민이 깊어진다. 과연 그의 선택은 무엇일지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올 결말은 어떻게 될지 긴장되는 전개가 펼쳐진다. 생존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예고되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의구심이 불씨가 되어 인간 세상을 활활 타오르게 할 『이리의 형제』

 


"너는 나를 섬겨라."

"너에게 힘을 줄게. 이건 시작일 뿐이야."


 

지치고 나약한 틈을 파고드는 노단의 말. 자신은 결코 유혹에 빠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만만한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 지으면서도 매력적인 '힘'에 대한 욕망이 아가리를 크게 벌려 우리를 집어삼키는 장면이 떠올라 소름이 돋는다.

 


휘두를 기회가 없는 힘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선택된 특별한 존재, 연준은 노단에 대한 두려움과 힘에 대한 동경에 부하가 되었다. 그리고 힘이 생기자 사람을 해치는 것이라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쁘지 않을 것 같게 느끼는 연준이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갓난아이기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만큼 온화했다. 온화함 속에 태초부터 전해지는 악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맹수가 사냥할 때 먹잇감을 노려보는 눈, 칼날을 칠해 놓은 듯한 눈, 눈매는 타오를 듯했으나 눈동자에서 나오는 시선은 바늘처럼 차가운 눈 그렇게 뜨거움과 차가움이 섞이지 않고 공존하는 눈이었다.

 

명령을 내리는 자. 노단의 종족에 대한 묘사가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들이 부리는 힘의 크기가 놀라웠다. 그 무서운 힘 앞에 선 인간은 따르느냐 거부하느냐 고민할 수밖에 없다. 따르는 이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거부하는 이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거꾸로 사냥한다. 이를 단순한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까?

 


무리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배척되었던 노단이 자신의 생존을 위한 도시, 하유랑시에서 선택한 첫 번째 부하가 패배자같이 비를 맞으며 외롭게 걸어가던 연준이었고, 먹이를 연준이 가장 싫어하는 인간인 영식으로 정했다. 타인에게 무심하지 않고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노단을 인간의 시선으로 괴물이라 칭하는 게 정당한가? 고민이 깊어졌다.

'힘'에 대한 경외는 본성일 것일까? 그렇다면 이를 따른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것일까? 순순히 인정하기에는 가슴이 찌릿찌릿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편치 않은 무언가가 있다.



"아닌, 그건 네가 힘든 원인이 아니다.

성적이란 건 결국 종이에 적힌 숫자인데 

종이도 숫자도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 없어.

그 숫자를 가지고 널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야 힘들 수 있는 거야."

 

본질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노단. 초등고학년 대상의 어린이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담고 있는 소재와 주제, 내용이 범상치 않은 『이리의 형제』는 쉽게 결론을 내리거나 남의 생각을 자신의 의견이라 섣불리 믿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사고력과 판단력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를 일차원적인 관점에서 인식하지 말고, 본질이 무엇인지 들여다 보는 것을 권하고 있다.

 



이리의 형제 1. 맹수의 눈을 지닌 아이/허교범 글/산사 그림/창비



처절한 결말로 1권이 끝났다. 매듭지어지지 않은 마무리는 충족되지 않은 갈증을 키우고 있다. 선과 악, 힘과 자유 그리고 생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담긴 『이리의 형제』 1. 맹수의 눈을 지닌 아이. 끝나지 않은 노단과 유랑 그리고 인간의 대결이 무한한 상상력으로 펼쳐질 신호탄이 우리 앞에서 터졌다! 허교범 작가가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독자에게 아량을 베풀어 속히 속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날 하유랑시는 처음으로 노단을 품은 채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누구도 이날을 특별한 날로 기억하지 않았다. 나중에 악에 동참하는 이들, 희생당하는 이들, 알고도 침묵을 지키는 이들, 맞서 싸우는 이들, 그리고 아직 하유랑시라는 무대에 오지 못한 이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24쪽)

 

<창비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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