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에서 배워라 - 해나 개즈비의 코미디 여정
해나 개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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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서 배워라/ 해나 개즈비/ 창비




우리나라에서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낯설다. 하지만 OTT라는 플랫폼을 타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는 오늘날에 약간의 생경함은 오히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그렇게 넷플릭스에서 해나 개즈비의 <나네트>를 만났다. 쇼 내내 그가 말한 대로 긴장감을 조였다 풀었다 강약 조절하면서 분위기를 압도했다. 강렬한 조우만큼 아쉬움이 큰 짧은 쇼 타임이었다. 그 아쉬움을 달래줄 두툼한 책을 마주했다.

 

 

 

 

선천적 기질과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해안에 있는 작은 섬 태즈메이니아의 문화와 정치와 사회 그리고 관습 안에서 형성된 후천적 성격이 '해나 개즈비'로 발현되는 여정을 담고 있었다.

 

"액체가 분필에 스며들듯 자연스럽게"

 

 

코미디쇼에서도 느꼈지만, 활자로 만나는 그는 한층 더 독특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다층적인 면모를 보였다.

 

첫 번째 책 시핀 소폰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이층 침대에서 자는 언니의 발이 달랑거리며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이야기는 그가 세상을 만나고 바라보는 방법을 보여주는 듯 여겨졌다.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 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이 발꾸러기에게 했다. 그래서 이 발이 더 이상 밤에 자신을 찾아오지 않게 되자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실감에 빠졌다고 한다. 저런, 발꾸러기가 이렇게나 부러울 수가.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이야기를 그 발꾸러기는 맞장구치면서 잘 들었겠지.

 


 

"괜찮았다.

나는 언제나 한참 있다 보면 괜찮아진다.

변화에 적응하는 일이 남들보다

훨씬 더 어려웠을 뿐이다."

 

 

 

 

1998년 웨스턴의 커밍아웃

생뚱맞았지만 왠지 해나 개츠비 다웠다.

"너는 레즈비언"

평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풍경에 더해진 한 문장의 무게가 고스란히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70세 이하의 첫 성인 친구에게 커밍아웃할 기회를 안전한 장소에서 선물 받았지만 해나는 받지 않았다.

 


 

 


해나 개즈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태즈메이니아 출신과 뚱뚱한 몸 그리고 레즈비언으로 드러냈다.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웃음을 주던 그는 이제 코미디를 그만둬야 되겠다고 했다. 반의적인 표현으로 달라진 그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여자들은 안 웃겨. 하지만 당신은 예외야!

당신은 웃겨, 그러니까 당신은 괴짜야.

 

 


 

 


태즈메이니아를 떠나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까지 7여 년의 방랑 시절도, 멜버른 국제 코미디 페스티벌에서 주최한 신인 코미디언 대회인 로 코미디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어서도, 경력의 정점에 있을 때조차 충만한 행복감과 안정감을 누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대에서 타인에게 펀치라인을 날리며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자신은 연애도 잘 안 풀리고, 즐겁게 쇼를 마치고 만족감과 자신감에 도취된 상태에서 피드백을 받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그리고 그가 언어로 표현하기 싫어하는, 수치심의 밑바닥에 파묻혀 열심히 휘저어야 들출 수 있는 성추행, 강간의 트라우마도 있다.

 

감정을 정제한 듯 최대한 절제한 표현에서도 해나의 내밀한 상처와 고통이 느껴져서 울컥하면서 읽고, 같이 분노하면서 읽었다. 그러다가도 피식 웃어버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는 천상 코미디언이다.

코미디 동료에게도, 다른 레즈비언에게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아 부모에게도 그리고 엄마에게도 피드백을 받거나 부정 받는 상황에서도 해나는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에 열심이다. 바로 농담이다. 이 지치지 않고 뿜어내는 생명력에 압도당한다. 멋지다!

 

 


"내가 제일 후회하는 게 뭔지 아니?

내가 널 이성애자처럼 키운 거야.

네가 바뀌길 바란 거 같아. 세상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엄마가 네 친구가 되어줬어야 했는데 못 했지. 나를 용서 못 할 것 같다."

해나 개즈비의 엄마의 말

 


<차이에서 배워라>

그가 코미디 페스티벌 무대에서 항의 시위 이벤트로 벌이는 동료들의 결혼식 축사에서 쓴 것처럼 배제의 부당함에 깊이 공감한다. 배제가 개인에게 가져온 파장을 조근조근 짚어주는 그의 섬세한 통찰력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간이 동료 인간을 배제할 권리가 있는가?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성숙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본다. 힘들고 어려울 수도 혹은 거북하고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찍어내는 인형이 아닌 이상 우리 인간은 다 다르고 다양하다. 반려견 더글라스가 전하는 온기뿐 아니라 우리가 발휘하는 인간애에 녹아들었으면 좋겠다.


 

"다양성은 우리의 힘입니다.

차이는 우리의 선생님입니다."

해나 개즈비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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