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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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세상은 나를 널빤지 아래로 떠밀어

악어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그로운 GROWN/ 티파니 D.잭슨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꿈꾸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믿었다. 주위 어른들은 어렵다 했지만,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다듬어 주고 이끌어 주겠다는 낯선 그렇지만 누구나 다 아는 어른을 만났다. 간절했지만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꿈, 미래를 가능케할 문의 손잡이를 비로소 찾았다 확신했을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인챈티드는 한순간에 '사랑'과 '꿈', 열망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행복에 빠져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의 늪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면서도 위험을 자각하지 못했다. 매혹적인 목소리의 아름다운 흑인 소녀, 인챈티드는 아직 열일곱이었다.

 

인챈티드 가족은 삶의 변화를 위해 이사를 했다. 해변에서 바다와 함께 자라온, 자신들을 물고기라 생각하는 인챈티드 가족은 울창한 숲인 새로운 터전에서 본연의 모습이 점점 바래고 있었다. 다섯 명의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만만치않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참 힘겹다. 부모는 예전처럼 가족 다같이 해변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과거에 물고기였다는 말을 할 수 없고, 인챈티는 그들을 대신해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어린 보호자가 되어버렸다. 현실의 무게는 이리도 무겁게 짓누르지만, 인챈티드 가족은 끈끈한 정과 사랑이 넘쳤다. 인챈티드가 자신의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기 전까지는.

 

 

"도망쳐"

 

 

이 소설은 권력 남용과 그루밍으로 점철된 폭력에 노출된 흑인 소녀를 그려내고 있다. 빨강과 초록의 강렬한 보색대비로 시선을 잡아끄는 표지에 <그로운> 글자는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인챈티드의 눈은 빨간색으로 지워져있다.

소설 제목 '그로운'은 일반 성인이 흑인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유래했다. 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성인은 흑인 소녀를  순수하고  조숙한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이들에게서 어린 시절과 천진난만함을 박탈한다고 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힘을 지니고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 자력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 보이는 것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가?

- 과연 나는 어느 쪽에 설까?

피해자인 인챈티드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던 이들일까? 인챈티드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폭력 당해 마땅할? 이유를 찾아내고자 헐뜯는 이들일까?

- 가해자인 코리뿐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왕국에서 향유하면서 눈과 입을 다물어 진실을 덮어버리고 인챈티드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돕는 이들을 더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직접 하지 않았다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조자와 방관자가 존재하기에 가해자가 힘을 얻는 게 아닐까?

 


 


 

 


인챈티드의 꿈이 그리는 세상에 우뚝 서 있는 코리 필즈의 권력이 첫 번째 무기였다면, 코리가 인챈티드에게 보여준 관심과 부드러운 애정은 섬세하게 스며든 최종 무기였다. 이렇듯 그루밍 성폭력은 친밀감이 형성된 관계에서 벌어져 더 큰 문제이다. 피해자는 폭력을 당했는지 혼란스럽고 피해를 인지해도 감정적 호소에 자신의 탓으로 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티파니 D. 잭슨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큰 꿈을 품고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챈티드가 코리의 그루밍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묘사했다. 납치, 감금, 폭력, 약 그리고 회유와 거짓말, 작가는 이런 패턴과 터치를 놀라운 강도 조절로 흡입력 강한 사건으로 풀어내 독자인 우리에게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강하게 인식시켰다. 정신병이 있는 가족력, 친구 라틴계 소녀의 존재 등 다양한 장치로 잘 짜인 구성이 흔들림 없이 강렬하게 우리를 몰입하게 만든다.

 

 

"손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네, 도움이…… 필요해요."

 

 

인챈티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자 한 타인인 여성 경찰관과 니콜 비행기 승무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린 소녀 인챈티드가 고통에서 벗어나 가족과 친구의 곁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참으로 험난했다. 강력한 권력과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천진한 소녀를 농락했던 코리에게 분노하고 돌을 던져야 마땅하거늘, 많은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고 이미 죽은 대스타 코리의 추악한 민낯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인챈티드의 면면을 비난하고 책임을 물었다.

인챈티드를 지켜내고 보호한 것은 바로 인챈티드 자신이었다. 살인죄를 벗어날 수 있는 증거를 스스로 찾았다. 그렇게 그녀가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가족, 친구, 윌앤드윌로우 공동체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덕분이다. 피해자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더 큰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결코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포용해 주는 우리 사회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기를 바란다. <그로운> 이 소설이 그 바람을 한걸음 앞당겨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많은 이들이 읽고 느끼고 공감하고 연대하기를.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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