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럴 - 반인간선언 두번째 이야기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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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을 때마다 이 소설이 떠오를 듯하다. 아니, 한동안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지 못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와 상반되는 고통과 폭력 그로 인해 사라진,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영혼의 절규가 오롯이 새겨진 그 노래를 말이다.

 

너무 빨리 금방 읽었다. 이 빠른 호흡 때문에 소설이 주는 충격과 파장이 너무 컸다. 집중한 만큼 일우에게 빠져든 만큼 결말을 받아들이기 버거웠다.

 


크리스마스 캐럴/주원규/자음과모음/네오픽션



'반인간선언 두 번째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크리스마스 캐럴]은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온 세상 사람들이 사랑의 온기를 나누고 갈구하는, 거룩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터져버린 비극을 그리고 있다. 그로 인해 괴물이 되어야만 했던 주일우가 펼치는 핏빛 복수는 섬뜩하다기보다 처절했다. 오로지 하나, 그날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주일우의 집념은 그를 괴물로 만들고야 말았다. 복수의 길 끝에 마주하게 될 진실을 주일우는, 우리는, 이 사회는 감당할 수 있을까?

 

날카로운 펜을 사정없이 휘둘러 토해내는 악의 세계, 폭력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살아남는 방법 밖에 익히지 못한 이들을 그린 작가는 그들을 만들어낸 사회, 학교에 주목한다. 주일우, 고방천, 문자훈, 백영중, 최누리 그리고 주월우와 손환을 그렇게 만든 진짜 악의 실체를 파헤친다. 악의 민낯을 낱낱이 들추는 그의 손길에 오히려 자비를 베풀라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가면 속 진실은 잔인하다. 손환의 눈빛, 그 눈빛을 아로새긴다. 분노도, 증오도, 울화도, 놀라움도, 두려움도,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지독히도 냉정하고, 지독히도 객관적인 눈빛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시작은 이렇다. 크리스마스 아침, 성곡 아파트 17동 물탱크 청소를 하던 이들이 시체를 발견한다. 정신지체 3급 장애였던 주월우의 죽음은 단순 익사 사고로 처리되고, 단 3일 만에 부검도 없이 화장 처리되었다. 쌍둥이 형인 주일우는 이 모든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도, 어느 곳도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 눈을 뜬 일우는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눈을 마주하게 된다.


한 줌의 분노도, 가슴이 조여드는 슬픔도 없었다. 

그 순간 주일우는 자신이 죽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같은 얼굴, 같은 몸, 같은 옷을 입고 자란 주월우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었다.

_1장. 괴물의 등장 p.36

 

그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주월우와의 마지막 통화를 기억했고, 진실의 퍼즐을 직접 맞추기로 했다.


 

 

 

동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해, 복수를 하기 위해 스스로 소년원에 들어간 소년. 악을 응징하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 악이 되었다.

 

'난 괴물이 될 수 없다. 아니, 괴물이 되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만 생각하자. 그것만.'

_ 3장. 괴물들의 사회학 p.169.

 

 

소년원에서 만난 교정 교사 한희상과 상담 교사 조순우외 다른 어른들과 원생들 모두 방관자들이다. 모르는 척 정도를 넘어 무관심한 그들의 태도에 가슴이 답답하다. 학교에서든 소년원 밖 사회에서든 이런 이들이 가장 많다. 그렇기에 한희상도 조순우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고방천, 문자훈 무리와 주일우, 주월우 형제 그리고 손환이 우리 옆에 있을 수밖에 없겠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괴물이 탄생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얼굴엔 '이건 너희들끼리 해결할 문제야'라는

무책임한 무관심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_2부. 괴물의 이유 p.111

 

 

소년원은 푸른 시멘트벽으로 둘러싸여 상식과 사회적 통념이 깡그리 무시되는 지옥으로 그려진다. 무소불위의 힘으로 원생들을 굴복시키는 한희상, 하지만 주일우가 들어오고는 모든 게 틀어진다. 그 이후 자신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는 고방천까지 등장하여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진다.

자신의 몸이 바로 자신의 신념인 고방천이나 할머니와 동생을 돌보고자 했으나 방법을 모르고 시간도 놓쳐버린 주일우 모두 가정, 학교,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한 채 폭력으로 스스로를 지키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한 아이들이었다. 소년원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 없이 지옥이었던 그 아이들에게 한희상 본인만 모를 뿐 특별할 게 없는 어른이었다. 폭력으로 군림하던 권력자의 몰락은 씁쓸한 맛을 남긴다. 오히려 상담 교사 '조순우'를 눈여겨보게 된다.

 


주일우의 복수극은 성공인가.

복수 하나만을 목표로 시작한 암담하고 무거운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럴]은 마지막 장까지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내지 못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남은 이들의 내일은 해가 떠오를 것인지 궁금하다.

 

 [크리스마스 캐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 영화가 제작되어 12월 7일 개봉 예정이다.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드라마 <구해줘>에서 흡입력 있는 연출을 선보였던 김성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핵심 인물인 주일우·월우 쌍둥이 형제는 가수이자 배우인 박진영이 1인 2역으로 연기한다.

 



활자로 만난 세상은 지독히도 아프고 쓰리고 자극적이었는데, 이를 영상으로 담아낸다고 하니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크리스마스 캐럴] , 그 폭력의 이유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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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유물유적에 신기한 과학이 숨어 있어요! - 고인돌부터 수원 화성까지, 역사를 공부했더니 과학이 보여요!
이영란 지음, 정석호 그림 / 글담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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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놀라운 과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말이다. 그리고 이는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한다. 그럼 우리 조상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 안에는 어떤 놀라운 과학이 숨어 있을까?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신기한 과학의 세계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우리나라 유물유적에 신기한 과학이 숨어 있어요!> 책을 통해 그 궁금증을 해결해 보자.

 

 

우리나라 유물유적 신기한 과학이 숨어 있어요!
글 이영란/그림 정석호/글담출판

 


이 책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선조들이 남긴 숨결인 유물과 유적을 살펴보고, 그 안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본다. 고인돌부터 수원 화성까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를 공부하면서 들어봤던, 익숙한 유물과 유적들을 시대적, 사회적 관점이 아닌 '과학'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색다른 시간을 선사한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유물, 유적이었는데 과학적 영역으로 넘어온 순간 이해의 폭과 깊이가 달라졌다. 왜? 어떻게? 질문의 답을 찾아가면서 우리 선조들의 해박한 과학 지식과 기술력에 놀라움을 넘어 경외심을 품게 되었다.

 

 

 

이 책은 총 15 종류의 유물유적을 다루고 있다. 독자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질문, 추가 정보들을 제공하는 강점이 돋보인다.

1. 유물유적과 관련 있는 교과서 단원들을 알려준다.

2. 한 페이지 분량의 만화로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먼저 선보인다.

3. 유물유적에 담긴 과학적 수수께끼를 제시한다.

4. 다양한 그림과 사진으로 시각적, 직관적 이해를 돕는다.

 

 

'고인돌' 하면 무덤, 계급 등 옛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유추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유물유적에 신기한 과학이 숨어 있어요!>에서는 역사적인 접근을 다룬 후, 본론을 펼치고 있다.

 

 

Q. 고인돌에 별자리를 새긴 이유는 뭘까?

우선, 고인돌에 새긴 별자리를 통해 그 당시의 죽음과 탄생에 대한 생각과 별자리에 대한 지식이 해박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Q. 커다란 돌을 바위에서 어떻게 잘라내고, 멀리 옮겼을까?

커다란 돌덩이를 떼어 낼 때 바위에 구멍을 뚫은 후 마른 나무를 박고 물을 뿌리면 물을 흡수한 나무가 불어나 돌에 틈을 만들어 낸다. 그 틈에 힘을 가해 돌을 잘라 냈다고 한다. 그렇게 잘라낸 돌덩이를 지렛대와 밧줄을 이용해 옮기고 나서 빗면을 이용하여 덮개돌을 올렸다.

Q. 고인돌은 어떤 돌로 만들었을까?

고인돌은 커다란 돌을 쪼개서 만들었다. 결(절리)이 있는 화성암과 퇴적암은 그 결에 집중적으로 충격을 주면 쉽게 쪼갤 수 있다.

 

 

 

다른 유물유적 이야기도 이전과는 다른 접근으로 절로 호기심이 생긴다. 신라의 왕들이 대대로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으며 연회를 벌이던 곳인 '포석정' 편에서는 지표의 변화와 물의 흐름 및 회돌이 현상 같은 물체의 운동을 다룬다. '한지' 편에서는 재료(식물의 한살이와 식물의 구조와 기능 등)와 제작 방법(혼합물의 분리, 산과 염기 등)에 숨어있는 과학을 알아보면서 1,000년이 넘게 보전될 수 있는 비밀을 파헤쳐 본다.

 

역사 속에서만 존재했던 유물유적이 뚜벅뚜벅 걸어 나와 현대의 과학 원리와 과학 기술로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였다. 이제는 단순히 '오래된 옛것'이 아닌, 우리 선조들이 우수한 과학 기술로 제작하여 우리에게 남긴 유산으로 배우는 자세로 소중히 여기고 대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유물유적에 신기한 과학이 숨어 있어요!> 

역사 & 과학 통합적 접근으로 융합적 사고를 키우기 좋은 책으로, 초등 중학년 이상에게 추천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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쌤예 할매의 비밀 - 2023 읽어 주기 좋은 책 선정 책 먹는 고래 37
정영혜 지음, 김청희 그림 / 고래책빵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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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한글을 모른다. 아니,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도 누구에게는 신기하고 누구에게는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조그만 거슬러 올라가면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조차 다니지 못하고 일하러 나간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으시다.

 

 

쌤예?? 할매의 비밀/정영혜 글/김청희 그림/책 먹는 고래 37/고래책빵


 


<쌤예?? 할매의 비밀> 속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8살 학생 3명, 할머니 학생 2명이 모여 선생님과 즐겁게 수업하는 모습은 도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시골, 산골, 어촌, 섬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이 이 정도인 학교도 분명 있다.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누구보다 열의 넘치는 늦깎이 학생들의 자세에 '배움이란 무엇인가?'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살던 은애네 가족은 작년 봄에 할아버지께서 다치시자, 시골로 이사 왔다. 은애가 신입생이 되어 입학하는 초등학교에 학생이 없어 곧 폐교한다는 얘기 끝에 어르신들께 입학의 기회를 드리고 있다는 소식에 할아버지는 냉큼 할머니에게 입학을 권하신다. 조은애 어린이의 할머니인 김순해 님은 비밀이 밝혀져 부끄럽고 화가 났지만, 학교에 다니기로 하셨다.

 

"은애야, 니캉 내캉 친구 됐뿟다."

 


 

 


같이 초등학교 입학한 우리들은 1학년, 은애와 순해 할머니는 친구들을 사귀고, 공부도 하면서 즐겁게 생활한다. 특히 순해 할머니가 할매 대신 이름으로 불려서 너무 좋다고 하셨을 때 울컥했다. 자신을 나타내는 기본인 이름을 잃어버린 채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 할머니로 역할이 자기인 마냥 살아오셨을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1학년 다른 친구들과 여러 사건사고들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실감 나게 그려진다.

은애는 자꾸 쌤예~ 쌤예~ 부르는 할머니가 영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학교에서도 밭에서도 집에서도 할머니와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듣고 접한다. 자연 속에서 조은애는 밝고 건강하게 몸과 마음이 성장하고 있다.

 

따뜻하고 유쾌한 이야기 중간중간 뿌옇게 흐릿해지는 상황들이 있어서 가슴 졸이며 읽어나갔다. 혹시 김순해 할매의 비밀은? 역시! 비밀에도 불구하고 순해 할머니는 쉬었던 학교도 다시 다니고 열심히 생활할 것이다. 손녀 은애와 예서, 민혁, 세이 지화자 할머니, 담임 차성원 선생님 모두 찾아와 전해준 진심에 용기를 내시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역시 '사랑♥'이다. 입학 통지서를 소중히 간직한 순해 할머니는 비밀을 들킬까 봐, 은애에게 짐이 될까 봐 간절한 마음을 잠갔지만, 친구들이 또박또박 써 내려간 마음에 스르르 열렸다.

 


 

 

비 온 뒤에야 땅이 굳어지고, 예쁜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화자 할머니 말씀을 새겨본다.

"서로 모자라면 채워주고 남으면 나누고 그라면 되재." 

"하모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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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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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러닝/이지 소설집/한겨레출판




팔, 다리가 다른 부분에 비해 과장된 신체로 표현된 두 여성이 붉은 길을 달려 올라가고 있는 역동적인 표지가 시선을 잡아끈다. 【나이트 러닝】이지만 푸른 하늘은 그들이 달리는 길 옆에 봉긋 솟은 무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달리고 또 달리는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우리 아니 봉인된 선과 악이 벌어진 틈새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인생에서 곁에 있는 이의 숨소리에 비로소 평온한 잠을 이룰 수 있다.

 

사랑하는 이, 가까운 이의 죽음, 이별이 소재가 되어 그 상처에 새살이 돋기를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움직여 행동하고 변화를 갈구하는 인물들에게서 '사랑'의 끊어지지 않는 생명력을 느끼기도 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듯 집착을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부터 당연한 관계와 노력해야 하는 관계에서 서로에게 이끌리는 마음은 '사랑'의 범주만이 아닌 '운명'처럼 인연을 이어주게도 하였다.

 

 

찬바람이 불고 따뜻한 공간과 뜨거운 차에 마음이 가는 요즘에 딱! 어울리는 소설집이었다. 읽다 보면 마음이 시려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읽기도 하고, 주인공과 함께 울다 먹먹하고 멍해지기도 하였다. 지나간 것에 대한, 내가 놓쳐버린, 내가 놓아버린 것에 대한 설움에 발가락만 꼼지락거리기도 하였다. 헛헛하다가도 지금의 안온함에 감사하며 한 편 한 편 읽어나갔다. 이리도 힘내서 사는, 이리도 섞여서 살아가는 생명력 넘치는 이들을 만나는 그 순간에 집중하였다.

 

소설집은 표제작인 <나이트 러닝>을 시작으로 8편의 이야기로 꾸려졌다. 유일하게 죽음이 등장하지 않은 <모두에게 다른 중력> 또한 '의안'이라는 생경한 소재가 주인공의 보장된 미래에 묵직한 무게를 더해 중력을 증가시켰으니 '죽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생명은 모두 죽는다.'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우리는 죽음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너머의 영속성을 갈구한다. 별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팔을 자르면서까지 환생을 바라기도 한다(나이트 러닝).

 

어떤 하룻밤은 아주 짧지만 어떤 하룻밤은 모든 것을 바꿔놓기도 한다.

나는 그 어떤 밤, 끝도 없이 달리며 생의 내력에 대해 생각했다. (나이트 러닝, 34)

 

 

 

<곰 같은 뱀 같은> 이야기에서는 한밤의 울음소리를 내는 이가 누군지 명확하게 그려내지 않는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울음소리라 생각하는 모습만 나온다. 울음소리에 죽음이 연결되고, 이는 슬픔인지 죄책감인지 모호하다. 사람의 얼굴에 새 몸통으로 그려진 고대 이집트의 영혼을 뜻하는 바(Ba)처럼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모호한 이 이야기는 꿈인지 여행인지 헷갈린다. 하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날카롭게 고개를 쳐드는 느낌이 좋았다. 나도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죽음과 퇴사로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내가 언니를 찾아떠나는 이야기 <슈슈>

슈슈, 대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는데 숨소리였다. 이지 작가의 명명법이 매우 맘에 들고 흡족하다.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와 좋아한다고 믿었던 나. 좋아한 적이 별로 없지만, 미워하지도 않는다 말하는 언니의 집에서 지난 시절 함께 했던 시간을, 진심이 아니었다 해도 따뜻했던 날들을 떠올린다.

자신의 기억과는 너무나 다르게 변해버린 언니의 현재와 실제를 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 옆에서 아주 오랜만에 꿈 없는 잠을 잔다, 슈슈.

 

"한 번은 참새가 차에 치여 죽는 걸 본 적 있어. 죽어도 싸다고 생각했거든.

새가 못 날면 죽어도 할 말 없지 안 그래? 근데 돌아서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법을 잊어버렸으면, 완전히 잃어버렸으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슈슈, 66)

 

 

 

 

 

【나이트 러닝】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이 독특하고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드리, 드레, 은유, 온유, 단, 오리 가슴, 교호, 유구, 해원…… 어떤 의미로 지었을지 작가의 시선을 쫓아가고자 했으나, 닿지 못한 의미들도 있다. 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마음이 헝클어졌다가도 아니지, 나만의 감상이 더 좋다 싶어서 다시 읽었다.

타인의 악을 꺼내는 재능을 지니고 사랑을 계속 생각한다는 유구가 남긴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무덤에 기대어 누워 자신이 누워있기를 소망하는, 남겨져 기다리는 '나'를 애도하였다. 그가 하염없이 흘리는 눈물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것도 영원히 오해하는 것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랐다.

 

살아있는 우리는 작은 악과 작은 선들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는 오늘을 보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그것들을 베풀었든 저질렀든 오늘 여기 발붙이고 있는 힘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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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면하는 마음 - 나날이 바뀌는 플랫폼에 몸을 던져 분투하는 어느 예능PD의 생존기
권성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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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TV에서 방영된 <톡이나 할까>

독특한 포맷으로 시선을 집중시킨 프로그램이다.

작사가 김이나의 카톡 토크쇼를 제작한 권성민 PD가 에세이집을 출간하였다. 벌써 3번째 책으로 예능 PD으로서의 고민과 생존을 현실적으로 담아냈다.

 


직면하는 마음/권성민 지음/한겨레출판



 

 

예능?!

권성민 PD의 말처럼 예능의 카테고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예능의 프레임과 포맷은 무궁 무궁해진다. 그는 드라마와 시사교양 그 사이 어디쯤이 예능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드라마(온전한 허구)이거나 확실히 시사교양인 것들을 빼고 난 뒤에 남은 애매한 것들이 모여 복닥거리는 곳이란다. 정해진 모양이 없는 만큼 자유롭고, 좋은 뜻으로 제멋대로인 예능판에서 10년을 살아남은 권성민 PD의 생존기는 예능을 향한 직진 열정이 가득하다.

 

MBC 예능국에서 PD 생활을 시작한 그는 상암동 시절을 회고하는 것으로 <직면하는 마음>을 연다. 그곳에서 PD 생활을 하면서 체득하고 연마한 기술과 자세 그리고 사람들과 시간을 노래한다.

옷차림부터 조금은 철이 부족하게 든 어른 같다는 분석까지 예능을 생활화하는 상암동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난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이 전해진다.

 

소비자인 시청자 입장에서 확 와닿는 이야기가 있었다. 방송을 만드는 PD에게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해도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편성'이란다. 죽이든 밥이든 '채우기로 약속한 자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채워줘야 하는 것'은 아날로그가 태생인 미디어의 숙명이다. 늘어지는 방송이나 편집된 방송을 보면서 그 이면의 수고와 아픔을 미처 읽어내지 못한 채 눈살을 찌푸렸던 1인인지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PD, 제작진들이 가장 안타깝고 속상하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에 조금은 너그러운 시선으로 시청하고자 한다.

 

그는 PD 개개인이 시스템인 곳에서 8여 년의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뭐 하나. 다른 기본적인 것들을 탄탄하게 갖춰놓은 다음 뭔가 새로운 거 하나, 독특한 거 하나. 이 하나에 대한 고민이 프로그램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톡이나 할까?>에서의 '뭐 하나'는 '만나서 카톡한다'였다.

……

'세로 화면'이라는 형식이 정해지고 '카톡'이라는 소재를 선택한 이 기획의 '뭐 하나'는 '만나서 마주 보고'라는 조건이었다.

 

기획을 거쳐 MC 김이나를 영입하면서 <톡이나 할까?>는 생명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세로 화면에 2,3 명의 인물이 핸드폰으로 연신 카톡을 주고받는 모습이 색달랐다. 추임새처럼 들리는 숨, 웃음소리 등 각종 의성어들은 카톡과 카톡 사이를 끈끈하게 채워주었다.

사실 '만나서 왜 카톡을 하지?' 생각했던 관객으로서 방송을 접한 후 "왜?"가 "오!'로 극적인 태세 전환을 하였다. 특이한 거 하나가 통했다. 아는 건데 새롭다. 이런 묘미로 예능 PD를 하지 않을까 싶다.

 

PD 스스로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 한국 방송업계와 나날이 새로워지는 플랫폼 모두를 겪어보고 '살아남는 콘텐츠'를 고민하는 예능 PD의 고군분투는 웃고 즐기는 재미와 감동을 표출하는 시청자들의 표현과 인정을 얻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실제'라고 느끼는 것에 강하게 반응한다. 진실에 좀 더 마음 놓고 감동하고 싶기 때문에 '거짓'에 민감하다. 권성민 PD는 이 마음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 '재구성된 현실'을 보여주는 예능 PD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한다. 즐거움은 주되 속이지 않는 것. 혹은 어디까지 마음 놓고 즐겁게 속아줄 것인지 정확하게 약속하는 것.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다."

 

 

예능 PD로서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우려도 드러내고 있다.

규칙적인, 정기적인, 잦은, 단골의, 일상의 미디어인 TV는 오랜 세월 레귤러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세월은 끝나간다. 더 이상 레귤러는 프로그램의 기본이 아니다. 매번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독특하고 창의적인 상태에 머물러야 한다. 일하는 재미는 있지만, 가끔은 괜찮을까 싶다고 한다. '틀면 늘 그 자리에' 있던 프로그램들이 사라져 간다. 이 예측 가능한 익숙함, 안온함, 지루함 같은 느리고 미지근한 덩어리들이 삶에서 자꾸 닳아 없어지고 있다. 익숙한 것들을 디디고 있어야 새로움도 느끼는 데, 디딜 곳이 점점 없어진다.

모두가 전력 질주하는 쾌감도 있지만, 나는 도저히 그렇게 뛸 수 없다고 느껴지면 아찔하단다.

새롭고 창의적인 것만 항상 반가운 게 아니니 조금 낡고 지루해도 항상 그 자리에서 안정감을 주는 것들이 우리 삶에 계속 남아 있기를. 저자의 말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나만 그렇게 느끼지 않다. 다들 지치지 않게 익숙하고 안온하고 느린 것들이 받쳐주면 좋겠다.

 

예능 PD로서의 묵직한 고민들이 직업적인 면에 국한되지 않고 삶의 자세와 연관된다.

세상이 좁은 게 아니라 어떤 좁은 세상의 안쪽 깊숙이 들어왔다고 느꼈다고 한다. 안주하지 말고 다른 물리적 공간으로의 이동은 새로운 마주침을 만들고 이는 세상을 섞는다.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야 하는 창작자들은 영감을 어디서 얻을까? 궁금하다. 김영하 작가와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도 실렸지만, 권성민 PD의 대답이 기억에 남는다. '스위치를 켜고 사는 것'. 그냥 살되, 매 순간 보고 듣고 만나는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 사소한 것이라도 꼬리를 물고 이야깃거리를 따라가 보는 것. 좀 피곤할 것 같기도 하지만, 무언가 흘러만 보내지 않고 수집하는 삶 같다.

<톡이나 할까?>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방법을 보여주고자 한 점도 인상적이다. '베니'의 구경선 작가, 농인예술전문기획사인 '핸드스피크', 이길보라 감독.

구경선 작가와 이길보라 감독은 작품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좋았다. 그리고 핸드스피크의 섭외는 신의 한 수였다.

 

한번 웃겨봐라 버티는 시청자가 아닌지라 예능 PD에 대한 호기심과 선망으로 읽어내려간 <직면하는 마음> '스위치를 켜고 사는 것'으로 나에게 닿았다. 왠지 쓸쓸하고 지쳐가던 정신에 'ON' 스위치 불이 들어온 느낌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5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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