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한 기록 노동자 희정의 글 <베테랑의 몸>
베테랑의 몸/ 희정 글 최형락 사진/ 한겨레출판
'베테랑'은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을 일컫는다. 저자는 각 분야의 베테랑을 나름의 기준으로 찾아 인터뷰한다.
저자는 베테랑을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 균형 잡는 몸
2. 관계 맺는 몸
3. 말하는 몸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조산사, 안마사, 마필관리사, 세신사, 수어통역사, 일러스트레이터 · 전시기획자, 배우, 식자공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시간이 오롯이 새겨진 몸으로 전하는 이야기는 울림이 되어 마음을 뒤흔든다. 들어봤지만 그 세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에 가지는 환상과 편견을 비로소 멈춰주었다.
"어떤 사람이 베테랑이라 생각하세요?"
각자의 자리에서 소명대로 그 길을 꿋꿋이 걸어온 이들은 베테랑이 되기 위해, 그 노동이 몸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어주었다. 자신을 베테랑이라 말하기는 주저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지키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였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일한다는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
자존심 지키며 일하는 사람
내 안전 내가 지키는 사람
묵묵히 제 일을 하는 사람
자기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
자기 일에 모르는 것은 없는 사람
말을 이해하는 사람
내 몸 다치지 않게 일하는 사람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
내가 하는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
나에게 올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사는 사람
수많은 활자들 사이에서 길 잃지 않는 사람
서로 다른 연령 · 성별 · 분야의 베테랑 12인들이 말하는 베테랑을 정리하면서 새삼 깨달았다. 멈춰 서있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배려하고 존중하여 나아가는 이가 바로 베테랑이었다.
12명의 베테랑 중 '로프공'과 '수어통역사'의 이야기가 나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지했던 '로프공'이라는 직종에 대해 베테랑 김영탁에게 배우고, 법이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여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열악한 작업 환경이 안타까웠다.
산업안전법상 발이 땅에서 2미터만 떨어져도 비계나 안전대를 설치해야 한다는데 왜 로프공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로프에 의지하여 작업해야 하는지 먹먹하다. 저자의 말처럼 왜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일에 진심인 베테랑이 이를 악물고 지켜야 하는 걸까.
수어통역사 장진석처럼 대학생 때 수화를 잠깐 배웠었다. 당연히 농인의 언어인 줄 알았던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 괴리를 알았다. 그래서인지 장진석 수어통역사 이야기가 눈에 밟혔다.
구락부에 가서 가만히 보고만 있으면서 '수어 못하는 불쌍한 젊은 애'로 몇 개월 보낸 일화가 크게 와닿았다. 온몸으로 전하는 언어, 얼굴 표정으로 전하는 언어인 수어를 보고 소통하는 농인의 세계로 한발 한발 내딛는 느낌이다.
농인이 있고, 언어가 있는 자리라면 통역사가 있다. 텍스트 전달에 그치지 않고 맥락과 의미 그리고 분위기까지 전달해야 하는 그의 자리, 얼마나 준비가 필요한 일인지 새삼 무겁게 깨닫는다.
12명의 베테랑이 전하는 생생한 현장은 그들의 열정과 자부심에 반짝인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소통하여 지키고자 하고, 생존하고자 노력하고, 공존하고자 상상하고 있다. 그들의 시선과 저자의 시선이 고루 닿은 노동 현장은 인식의 변화를, 개선의 물결을 바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오랜 시간에 걸쳐 한 길을 쫓아 노동이 새겨진 몸을 지닌 베테랑들이 존중받으며 정당한 대우받는 사회를 바란다.
한겨레 하니포터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