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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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들어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먼 길 떠나는 아들에게 어미가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이리도 방대할 수 있다니. 과학적·역사적 배경을 기반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이끄는 <악의 유전학>은 달콤 쌉쌀한 초콜릿처럼 매료시킨다.

 

 


악의 유전학/ 임야비 소설/ 쌤앤파커스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테러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을 서슴지 않는 극단적인 혁명가 '이오시프'를 조명한 다음, 그의 어머니 '기적의 케케'가 묵혀둔 지난날의 비밀을 내민다. 차디찬 유형지로 떠나는 아들에게 차디찬 그곳에서 살아남은 존재로서 알려줘야 할 의무라는 듯 어머니 케케는 심연에서 어둡고 끔찍한 이야기를 끌어올려 들려준다. 그 이야기 끝에 조우하게 되는 존재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나는 무척 놀랐다.

 

과학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모습을 다듬어가고 있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비밀의 장막을 걷어내고 있다. 그중 인간의 진화와 유전에 대한 영역은 큰 논란이자 불가사의였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일으킨 사회적 반향이나 유전법칙과 유전 물질인 DNA 구조를 밝히기 위해 불붙은 연구들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악의 유전학>은 그 흥미로운 유전의 영역에 '악'을 포함시켰다. '과연 악은 유전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파생된 이야기는 지독히도 강렬하고 파괴적이다.

 

 

케케와 베소 그리고 이오시프.

이 세 명이 가족을 이루기까지의 여정을 듣는 일은 인간과 인간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져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미래를 꿈꾸는, 아름답고도 평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참혹함은 아들 이오시프가 인간 백정이라 불릴 만큼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일과 그 목적을 나열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는 왜 이리도 잔인하고 흉포한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을 어머니 케케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임야비 작가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함께 차르의 로마노프 제국을 뒤집어엎고,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을 세운 스탈린을 <악의 유전학> 주인공으로 선택하였다. 레닌조차 그를 당에서 제거하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흉포하고 잔인하였던 인물, 스탈린. 이제 그의 탄생은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절묘하게 재배열되어 그가 지닌 악의 근원을 드러내고 있다.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스탈린이 한 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가 한 말들이 뿌리내려 구체적으로 형상화될 때 이오시프일 수도, 리센코일 수도, 스탈린일 수도, 그 누구일 수도 있는 악을 마주하게 되었다.

 

리센코 후작은 '획득 형질의 유전'에 심취하여 인간에 적용해 보기로 결심한다. 혹독한 추위에도 견딜 수 있는 '한랭 내성' 형질을 장착하기 위한 기나긴 실험을 시작하였다. 이는 늠름하고 강력한 백성을 가질 수 있다는 설득에 넘어간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 만큼 열정적이고 굳게 믿었던 리센코 후작은 기한인 20년 후 도망치기에 바빴다.

 

 

"죽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아무도 없으면 문제도 없다."

 

 

사상과 신념은 살아가면서 배우고 깨우치며 받아들이게 되어 따르게 되는 것일 테다. 하지만 분명 그 믿음의 시작부터 그릇되었다면 결과 또한 옳지 못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홀로코스트'를 가능케한 우생학처럼 말이다. 이미 결과가 정해놓고 시작한 실험은 의도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한랭 내성 형질 획득은 문서 속에서만 성과가 보이는 실험이었다. 이로 인해 리센코는 열정을 폭력으로, 광기로 폭발시킬 수밖에 없었다.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지요."

 

 


 

 

리센코는 백성을 개조하고자 하였고, 스탈린은 세상을 개조하고자 하였다. 원하는 바를 위해 수많은 목숨을 거리낌 없이 희생시키는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진정 악은 유전될 수 있는가. 이오시프의 가련한 큰아들 야사를 떠올려본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수치일 뿐이다."

 

 

 

차르와 귀족들에게 착취당하는 세상을 뒤집으려 했던 이오시프 자신도 결국 공포와 처형으로 인민을 개조하고자 하였다. 생명은 그 자체로 귀히 여겨야 할 존재이다. 진정 지켜야 할 것을 잊어버린 악의 최후는 비루하고 쓸쓸했다.

 

 


 

 

- 한줄평

작가의 상상력으로 탄생한 <악의 유전학>

악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은 서늘하고도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기적의 케케가 가라앉았다 건져올려진 차디찬 연못이 다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 인상 깊었던 부분

케케는 리센코 후작이 죽은 (나타샤와 베소의 딸) 소냐를 위해 흘린 눈물 뒤에 이어지는 먹물 같은 눈물을 보고는 겁을 먹었다. 그 미세하게 떨렸던 검은 눈물이 악과 관련된 것이라 케케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베소와의 결혼도 따뜻한 어둠이었고, 베소도 검은 설렘이라 표현되었다. 이미 악으로 가득 찬 어둠 속에서도 따뜻함을, 설렘을, 달콤 쌉쌀함을 느끼며 버텼던 케케는 진정 기적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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