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날아 차 - 작심삼일 다이어터에서 중년의 핵주먹으로!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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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날아~차/ 고선규 지음/ 한겨레출판



읽는 내내 저자가 내뿜는 기운에 압도되어 읽었다. 저자가 다니는 태권도장 근처에 살았더라면 어느새 입회원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 기분 좋게 설득당했다.

 

<여섯 밤의 애도>, <우리는 모두 자살 사별자입니다> 저자가 쓴 에세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기운찼다. 중년, 지천명이 가까운 나이에 저자는 역동적인 태권도를 시작하였다. 시대의 유행에 따라 안 해본 운동, 다이어트가 없을 정도인 그는 친구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너랑 어울려. 네가 하면 재밌어할 거야. 한 번 해 봐."

 


진득함이 없는 그였기에 주위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으나 어느새 1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는 태권도에 매료되어 망설이고 있는 미래의 수련 동지들에게 손을 내민다, 아주아주 적극적으로.

 

본책에서도 나왔지만 태권도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많이 다니는 체육 학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파트가 새로 들어서면 상가 건물에 가장 먼저 걸리는 간판은 학원이고, 그중에서도 피아노 학원과 태권도장이 1위다. 여자아이들은 피아노 학원, 남자아이들은 태권도장으로 유치원 하원 후, 초등학교 하교 후 줄지어 가는 모습은 흔한 동네 풍경이다.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들 위주라 태권도가 무술, 무예보다는 생활체육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성인이 다니는 태권도장을 연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희귀성 때문일 것이다. 특히 2,30대가 아닌 40대가 앗! 얏! 핫! 기합과 함께 땀 흘리고 있는 태권도장은 별천지나 다름없다. 그런 진귀한 세상을 고선규 저자는 <내 꿈은 날아~차> 책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라는 설명에 흥미가 생겨 서평단 신청을 한 책이었다. 우리 집에는 나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유단자이다. 남편은 태권도 1단, 딸과 아들은 합기도 3단이다. 아이들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니 더 높아질지도. 한참 공부에 매진할 시기라 주위의 염려를 사고 있다. 하지만 달리기 외에는 체육활동을 좋아하지 않은 나였기에 휙휙 날고 떨어지는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고 멋져 보여 그네들이 그만둔다고 할 때까지 무한 응원할 것이다.

 

청소년이 진로가 아닌데 도장에 다니는 것도 이렇게 신기한 일인데 중년의 여성이 태권도를 시작하였다. 계기나 배경을 비롯한 모든 게 궁금했다. 저자는 자신의 출생 일화부터 시작하여 삶의 순간 함께 했던 운동과 다이어트들을 되짚어보면서 태권도와의 역사적인 만남을 기록하였다.




 

 

자신의 체구에 대해 솔직하게 적어내려간 2장의 웃픈 역사를 안고 중년이 된 저자 앞에 '노화'라는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을 똑딱똑딱 타이머를 재며 다가오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하지만 심리치료자답게 불안감을 다독여가는 3장의 이야기에 덩달아 힘을 얻는다. 몸으로 먼저 맞이하는 늙음, 나이가 들어 무언가를 욕망하려면 건강이 허락해야 한다는 진실을 깨닫고 새삼 서글퍼졌다는 글에서 마음이 서걱거렸다. 그래, 고통의 근원인 몸이 내는 소리, 신체 감각이 내는 소리를 듣기 위해 태권도를 시작했구나.

 

 

"나에게 태권도는 몸과 마음이 매우 민첩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마음에만 집중할 때는 알 수 없었던 해결책이 신체감각을 자극하고

몸을 제대로 쓰면서 발견되기도 한다는 걸 깨닫게 한 운동이다.

태권도는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여러모로 특별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 "

 


태권도를 시작하면서 미처 몰랐던 자신의 악력을 깨닫고 타고난 핵주먹의 재능을 썩히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안타까워하는 모습, 즐기다 보니 기운이 참 좋고 그 기운이 격투기와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닫는 모습, 동년배들과 함께 수련하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주고 힘을 받는 모습, 무엇보다 태권도를 사랑하는 모습이 멋졌다. 그리고 그 행복과 충만함, 자신감을 널리 나누고자 애쓰는 각고의 노력이 깊이 전해져 왔다.

 

'뒤듬바리'라 불렸던 중년의 지식 노동자가 즐기고자 시작한 태권도에 푸욱 빠져 무도로서의 태권도 면면을 통찰력 있으면서도 인간미 넘치는 매력을 뽐내며 전하고 있는 <내 꿈은 날아~차> 덕분에 땀 흘리며 운동하던 소싯적 기분에 젖어들었다. 70년대 태어나 향유했던 추억이 듬뿍 담긴 책이라 더 집중하면서, 공감하면서 빠져들어 읽었다. 특히 중년의 수련생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꿈꿀 수 있는 힘과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태권도는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지 타인을 공격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태권도의 정신은 평화이며, 태권도는 평화의 무예입니다."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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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커피일 뿐이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2
이선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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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커피일 뿐이야/ 이선주 장편소설/ 자음과모음


 

상실은 성인에게도 큰 상처를 준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남은 이들끼리 떠나보낸 이에 대해 같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면서 감정을 토해내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죽음, 상실로 인한 슬픔, 고통을 같이 나누는 것을 어려워한다. 더 슬플까 봐……, 더 아플까 봐……, 더 힘들까 봐. 이런 장애물들이 상처를 드러내는 행위를 망설이고 꺼리게 한다. 하지만 안으로 안으로 삼키기만 한 상처는 곪을 뿐이다. 되려 독소가 되어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을 힘들게 한다.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상처를 내보일 수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강산의 이야기에 마음이 찡해지는 이유이다.

 


 

 

 

[단지 커피일 뿐이야] 주인공 강산은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와 여동생과 함께 생활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 상처가 아물기도 전인 1년 만에 엄마가 재혼을 했다, 아빠의 단골 카페 사장이랑.

 

아직 아빠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집에 낯선 남자가 들어오고, 커피 냄새가 퍼져나갔다. 산이는 커피 냄새가 불쾌하고 역겨웠다.

 

예전에 비해 다양한 가족 형태를 만날 수 있다. 강산의 재혼가정도 그렇다. 초혼의 남성과 재혼의 여성 그리고 여성의 두 자녀가 결합한 가정이다. 주위에 남 말 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타깃이 되기에 딱이다. 안타깝지만 남의 일은 구경거리요 이야깃거리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억측들이 쏟아지고, 생명을 지닌 듯 커져간다. 드디어 산이에게도 그 억측의 줄기가 톡! 도착했다.

 


고등학생 2학년, 신체는 거의 다 자랐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면은 자라는 중이다. 그런 아이에게 연달아 찾아온 아빠의 죽음, 엄마의 재혼은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납득하고자 노력하는 산이의 고투가 이해가 되고 안쓰러웠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진행된 일들이 자신의 삶을 뒤흔들고 있으니 얼마나 당황스럽고 화나고 싫을 것인가. 그리고 아빠와의 마지막 기억으로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 산이에게는 더욱더 큰 고통일 것이다.

 

아빠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산이가 주위의 도움으로 갑작스러운 엄마의 재혼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참 가슴 시렸다. 산이가 가여워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실은 이미 산이도 알고 있었기에 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산이에게 엄마도, 새아빠 브랜든도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인다. 산이가 힘들다 SOS 구조요청을 보냈기에 늦었지만, 서로의 진심을 보여주었다.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재혼의 이유였다. 엄마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처음부터 이런 시간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움이 들지만, 

내 생각도 산이의 생각과 같다.

우리는 좀 더 빨리 이런 시간을 가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도 너무 늦진 않은 거겠지, 그렇게 믿고 싶었다.

 


 

 

 


브랜든의 시선에 눈길이 머물렸다.

"커피 냄새 같은 걸 늘 가지고 다니는 게 인생 같더라고. 그건 절대 없어지지 않아. 없어진 것 같더라도 조금만 방심하면 뒤에서 슬쩍 나타나서 나 여깄어, 하는 거지."

 

강산의 커피 냄새에 대한 불쾌한 반응은 엄마의 갑작스러운 재혼으로 생겨냈다. 폭풍우를 견뎌낸 강산과 가족들은 이제 일상을 보낸다. 시간과 제대로 된 설명이 있었다면 강산에게 커피 냄새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강산은 커피 냄새를 맡고 속이 울렁거릴 때마다 아빠를 떠올릴 것이다. 아빠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자신의 방식이다. 어느 순간 커피 냄새에 아무렇지 않게 된다면 아빠를 온전히 떠나보낸 것이니 그냥 받아들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일,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일에 대해 청소년 주인공이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다. [단지 커피일 뿐이야] 청소년 추천 도서를 많은 청소년들이 읽고 힘을 얻기를 바란다.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구나.

나와의 추억을,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구나.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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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 배달 사고로 읽는 한국형 플랫폼노동
박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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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박정훈 지음/ 한겨레출판

 


혁신의 아이콘 플랫폼 산업,

사고 현장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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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정지했을 때 급상한 몇몇 산업이 있다. 그중 플랫폼 산업은 우리 일상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거리에 사람이 줄어드는 것만큼 도로에 오토바이가 늘어났다. 이 놀라운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리고 이 변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이제는 도로 위를 종횡무진하는 배달라이더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질주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는 듯 느껴져 경계하고 되고, 많은 사고로 이어진다. 그로 인해 그들은 비난받고 지탄받는다. 그렇지만 배달라이더들은 생존을 위해 오늘도 오토바이를 몰 수 밖에 없다. 타인의 기준에는 못 미칠지도 모르는 그들만의 안전 기준에 합당하게. 이 안타까운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악플을 달고 비난하기에 멈춰선 사회 구성원들에게 현장의 한복판에서 방법을 고하는 이가 나타났다. 여러 사례와 발표 자료를 토대로 플랫폼 산업의 현실을 고발하고, 미흡한 제도와 규제, 관리 체계를 꼬집는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을 우리에게 시사한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를 당당히 요구한다. 이는 배달라이더에 한정되는 영역이 아니다. 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CHAT GPT열풍이 보여준 AI의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체감한 오늘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토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법과 규제로 플랫폼 기업들의 실험장이 되는 영역들이 있다. 배달로봇, 자율주행, 무인주행 등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영역들은 별다른 법, 규제없이 각종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로 인한 문제, 사고 발생 시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기준이 되는 법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없다는 뜻이 된다.

 

AI 알고리즘으로 관리되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인상적이다. 배달료, 배차, 배달구역, 미션 및 프로모션, 평점, 페널티 등 크게 6가지로 노동을 통제하고있는 AI 알고리즘 작동 방식을 통해 배달라이더들이 내몰린 취약한 노동 환경을 잘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에서

"우리는 데이터가 아니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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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기업은 전통적 사업자가 져야했던 사업주의 책임에서 벗어나 무한한 인원과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고, 무한한 노동자들을 데이터로 치환시켜 앱에 모아둘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도 도로를 주행하는 수많은 배달 라이더들은 배달 플랫폼 기업들과 계약을 맺고 '배달' 서비스 상품을 고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기업과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계약을 맺지만 실상은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전가받은 1인 사업자인 개인일 뿐이다. 여러 산재 사례와 그 이후 이야기들이 그들의 처참한 현실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노동법 바깥에 존재하는 그들이 처한 문제 해결의 시작은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된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진짜 책임져야할 기업에 잘 전달하는 것부터다.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초대 위원장이자 7년 차 배달 라이더인 박정훈 저자는 글 마무리에 한국형 플랫폼 산업의 안전을 위해 여러가지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안전을 중시하는 라이더가 배달산업 생태계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치솟는 배달료와 도로의 무법자 배달라이더들로만 채워졌던 세계가 새로운 시각으로 분해되어 재조립되는 시간이었다. 이윤 추구을 목표로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어 몸집을 키워가는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각성과 함께 '인간과 노동'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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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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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세상은 나를 널빤지 아래로 떠밀어

악어들의 먹잇감으로 만들었다."

 



그로운 GROWN/ 티파니 D.잭슨 장편소설/ 한겨레출판

 



꿈꾸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펼쳐졌다고 믿었다. 주위 어른들은 어렵다 했지만,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다듬어 주고 이끌어 주겠다는 낯선 그렇지만 누구나 다 아는 어른을 만났다. 간절했지만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꿈, 미래를 가능케할 문의 손잡이를 비로소 찾았다 확신했을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인챈티드는 한순간에 '사랑'과 '꿈', 열망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행복에 빠져들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의 늪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면서도 위험을 자각하지 못했다. 매혹적인 목소리의 아름다운 흑인 소녀, 인챈티드는 아직 열일곱이었다.

 

인챈티드 가족은 삶의 변화를 위해 이사를 했다. 해변에서 바다와 함께 자라온, 자신들을 물고기라 생각하는 인챈티드 가족은 울창한 숲인 새로운 터전에서 본연의 모습이 점점 바래고 있었다. 다섯 명의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만만치않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건 참 힘겹다. 부모는 예전처럼 가족 다같이 해변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과거에 물고기였다는 말을 할 수 없고, 인챈티는 그들을 대신해서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어린 보호자가 되어버렸다. 현실의 무게는 이리도 무겁게 짓누르지만, 인챈티드 가족은 끈끈한 정과 사랑이 넘쳤다. 인챈티드가 자신의 꿈을 향해 저돌적으로 달려들기 전까지는.

 

 

"도망쳐"

 

 

이 소설은 권력 남용과 그루밍으로 점철된 폭력에 노출된 흑인 소녀를 그려내고 있다. 빨강과 초록의 강렬한 보색대비로 시선을 잡아끄는 표지에 <그로운> 글자는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인챈티드의 눈은 빨간색으로 지워져있다.

소설 제목 '그로운'은 일반 성인이 흑인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유래했다. 한 대학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성인은 흑인 소녀를  순수하고  조숙한 존재로 바라봄으로써 이들에게서 어린 시절과 천진난만함을 박탈한다고 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힘을 지니고 우리를 끌어당긴다. 그 자력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 보이는 것에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가?

- 과연 나는 어느 쪽에 설까?

피해자인 인챈티드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쳤던 이들일까? 인챈티드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지고 폭력 당해 마땅할? 이유를 찾아내고자 헐뜯는 이들일까?

- 가해자인 코리뿐 아니라 그가 만들어낸 왕국에서 향유하면서 눈과 입을 다물어 진실을 덮어버리고 인챈티드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돕는 이들을 더 경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직접 하지 않았다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동조자와 방관자가 존재하기에 가해자가 힘을 얻는 게 아닐까?

 


 


 

 


인챈티드의 꿈이 그리는 세상에 우뚝 서 있는 코리 필즈의 권력이 첫 번째 무기였다면, 코리가 인챈티드에게 보여준 관심과 부드러운 애정은 섬세하게 스며든 최종 무기였다. 이렇듯 그루밍 성폭력은 친밀감이 형성된 관계에서 벌어져 더 큰 문제이다. 피해자는 폭력을 당했는지 혼란스럽고 피해를 인지해도 감정적 호소에 자신의 탓으로 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티파니 D. 잭슨 작가는 자신의 재능을 믿고 큰 꿈을 품고 자신으로 살아가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챈티드가 코리의 그루밍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고통스러울 정도로 묘사했다. 납치, 감금, 폭력, 약 그리고 회유와 거짓말, 작가는 이런 패턴과 터치를 놀라운 강도 조절로 흡입력 강한 사건으로 풀어내 독자인 우리에게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강하게 인식시켰다. 정신병이 있는 가족력, 친구 라틴계 소녀의 존재 등 다양한 장치로 잘 짜인 구성이 흔들림 없이 강렬하게 우리를 몰입하게 만든다.

 

 

"손님,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네, 도움이…… 필요해요."

 

 

인챈티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자 한 타인인 여성 경찰관과 니콜 비행기 승무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린 소녀 인챈티드가 고통에서 벗어나 가족과 친구의 곁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참으로 험난했다. 강력한 권력과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으로 천진한 소녀를 농락했던 코리에게 분노하고 돌을 던져야 마땅하거늘, 많은 이들이 자신이 사랑하고 이미 죽은 대스타 코리의 추악한 민낯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고통 속에서 살아남은 피해자 인챈티드의 면면을 비난하고 책임을 물었다.

인챈티드를 지켜내고 보호한 것은 바로 인챈티드 자신이었다. 살인죄를 벗어날 수 있는 증거를 스스로 찾았다. 그렇게 그녀가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가족, 친구, 윌앤드윌로우 공동체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덕분이다. 피해자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더 큰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결코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받아들일 수 있도록 포용해 주는 우리 사회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기를 바란다. <그로운> 이 소설이 그 바람을 한걸음 앞당겨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많은 이들이 읽고 느끼고 공감하고 연대하기를.

 


한겨레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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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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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김수민 저/ 한겨레출판




“언제나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연기한다”

 

좋아하는 배우 김태리 씨의 인터뷰 내용 일부이다.

“치열하게 고민하며 오래 연기자로 남을 것 같다”는 말에 “언제나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연기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언제든지 자신이 하는 일에서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정답은 이거 하나뿐이다'라고 생각이 환기되지 않으면 삶이 너무 힘들잖아요. 저도 연기를 언제 때려치울지 몰라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오래 못할 것 같아요. 정말 도망쳐야겠다고 확신이 서면 그땐 다른 고민을 해야겠죠."

(2017.12.26 문화일보 인터뷰 中)

 

아~ 한방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힘들어도 버티는 것이 어른스러운 것이다. 훗날 분명 포기하지 않고 도망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길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디며 살아가는 시기가 다들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주는 숨통, 여유를 말하는 배우를 만났다. 그래, 우리네 인생에 '정답'이라는 게 있을까? 공감되고 위안받았다. 그리고 진짜 도망친 이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이 책의 저자는 만 21세의 나이로 SBS에 입사한 前 김수민 아나운서이다. SBS 역대 최연소 입사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입사 3년 만에 퇴사하였다. 이 책은 왜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와 그 이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수민 저자는 퇴사를 '도망'이라 당당하게 칭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너무 솔직한 그의 필담에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독자인 나이다.

 

그가 달려온 20대 전반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기록을 자신의 선택에 대한 변명이자 선언이라 말하는 그에게 "뭐 어때서" 말해주고 싶다. 그가 자신이 쓴 글을 읽고 위안받았다 말하는 대목에서는 뭐지? 의아했지만, 그만큼 고군분투하거나 도망치고 싶거나 하는 이들에게 깊이 와닿는 위로의 글이 되어줄 것이다.

 

김수민 저자는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이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 공부를 해 한예종에 입학했으나 더 이상 못 할 것 같아 진로를 모색하다 아나운서를 준비하게 된다. 그렇게 1여년 준비하여 최연소 아나운서가 되었다. 남이 보기에는 부러워할 만한 성공인데 왜 '퇴사'를 선택한 것일까?

 

우선 애기라 부릴 정도로 사회경험이 전무후무하였다. 그리고 말이 하고 싶어서 아나운서가 되었는데 오히려 말을 아껴야 했다. 화면에 맞춘 몸 크기와 짙은 화장, 평소 말하기 습관과는 괴리가 있는 대본, 변화무쌍한 방송 스케줄로 삶의 1순위를 절대적으로 일에 양보해야 하는 등 미처 몰랐던 업무의 경직성에 대해 알아갈수록 자유에 대한 갈망은 커졌다고 한다. 그에게 자유는 '나만'이 '나의 시간'을 써서 '성장'이든 '창작'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자율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도망쳤다. 실패했다. 하지만 씩씩하게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을 시작하였다. 매 순간 자기의 내면에ㅣ 귀 기울이는 그의 노력과 자세에서 나이를 떠나 '어른'의 모습이 엿보인다.

 

책 속에서 진로를 서식지에 비유하고 있다. 저자 자신이 미술에서 방송국으로 진로를 바꾼 것처럼 원하는 서식지에서 살아보기를 권한다. 비록 도망칠지라도, 실패할지라도, 두려울지라도 살아보자, 후회하지 않도록.

 

사회생활을 시작한 자신을 홀로서기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많은 것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면서 외로워졌다고 한다. 지독하게 공허해지고서야 깨달았단다. 어른은 사랑하는 사람과 기꺼이 연대하고 나 아닌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람이었다는걸.

 

퇴사 후에도 끊임없이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그가 멋졌다. 하지만 그보다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나 당혹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큰 변화를 받아들이는 그에게 더 눈길이 갔다.

엄마가 된다는 건 자기 인생에 '자기보다 중요한 사람'이 생긴다는 거다. 그는 힘이 세져서, 씩씩해져서 인생 최약체를 보호해야 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열심히 살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이제 20대 중반인 김수민 저자의 20대 전반전 기록은 스펙터클하다. 성공, 실패, 도망, 모험 등 온갖 요소들이 버무려져

있다. 하지만 답답하게 닫혀있지 않다. 꿈꾸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저자는 도망칠 자유에 대해 당당히 말한다. '도망'이 세간의 시선으로 '실패'로 읽힐지라도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호탕하게 대응한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고민한다. 이 책 속의 '도망'이 '자유', '날개', '용기', '도전'으로 읽히는 것은 삶에 성실하고자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멈추지 않는 저자의 용기 덕분이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6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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