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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헤리티지 - 공단과 구디 사이에서 발견한 한국 사회의 내일
박진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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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구로동을 아십니까?' 혹은 '구로동 하면 떠오르는 게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구로디지털단지'를 언급할 것이다. 남편은 '구로공단'을 이야기했다. 제법 나이차가 나는 우리 부부는 같은 70년대생으로서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편이다. 그 결과 남편은 '역시 우리는 같은 세대야'라며 흐뭇해하곤 했기에 서로 다른 키워드에 실망했다. 특히 이 책에서 나온 구로동에 대한 세대별 반응의 차이를 전해 들은 후에 더 그랬다.
구로동 헤리티지/ 박진서 지음/ 한겨레출판
박진서 저자는 구로동 토박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24년을 죽 한곳에서 살았다니, 그만큼 구로동에 대한 마음이 남다를 듯하다. 그런 마음이 <구로동 헤리티지>라는 책으로, 형태를 지닌 구체적인 결과로 발현되었다. 흥미롭고 참신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담아낸 '박진서의 구로동'은 구로동에 국한되지 않은 우리들이 생활하는 공간의 기록이었다. 구로동, 누군가에게는 중심이나 또 다른 이에게는 변방인 그곳. 보통 변화는 중심부에서 일어난다고 여겨지는 데, 저자의 시각으로 톺아본 구로동은 분명 변화의 흐름 위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 명확하다.
이미 탄탄하게 갖춰진 중심부보다 빈 공간이 있는 여유로운 변방에서 죽 살아온 터라 저자의 목소리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가 살고 있는 구로동과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곳이 교집합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공단이 있고, 중국인과 재한 중국동포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의 일상 속 공기와 감정을 명징하게 기록한 그 덕분에 주위를 향한 나의 시선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
24년을 살아온 동네. 그가 감각하는 동네 그 사적인 공간을 둘러싼 기억과 이야기들로 시대를 살피고 사회를 돌아본다. 잘 안다 생각했지만 익숙한 공간에서의 색다른 경험이나 동네라 인지하지 않았던 혹은 동네라 인지했지만 아닌 공간을 향한 낯선 기분들로 박진서 저자의 '나의 구로동 이야기'는 시작한다.
10년 전 모니터링했던 영화제가 건재할 뿐만 아니라 성장하여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화려함이 아닌 꾸준함'으로 오늘도 주어진 일을 묵묵히 헤쳐나가고자 하는 믿음을 노래한다.
혐오시설인 구치소 자리에 들어선 마천루에 대한 내용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감옥은 싫지만 감옥 같은 집에서 살고 싶다?' 현대 공공 주택은 감옥과 공간적 속성이 유사한 부분이 많다. 효율성이 강조된 공간이기에 감옥 같다는 사실을 알고도 외면하고 더 많이 창출한다.
박진서 저자는 공항 때문에 고도 제한이 있는 동네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를 보고 날카롭고 명민한 생각을 적고 있다. 이전한 구치소 자리에 들어선 마천루, 완화된 고도 제한 규정의 허가치 최대한을 적용한 45층, 재건축을 바라는 주민들과 떠나야 하는 공구 상가 주인들과 주민들의 상반된 입장 등 구치소가 떠나고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된 공간을 보고 적어내린 문장들은 오늘날 주거 공간으로서의 '집'에 관한 상념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구로공단 - 구로디지털단지 - 중국인'
결혼으로 고향을 떠나 이사한 경우라, 아이들 중심으로 한정적인 관계를 맺었다. 또래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 집단이다. 그런데 근년 마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과의 교류가 확장되었다. 우리 동네의 역사를 배우고, 다양한 활동가분들을 알게 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 우리 동네만이 가진 가치를 발견하는 기쁨은 생각보다 일상에 활력을 부여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기적으로 좋은 점, 아쉬운 점이 예전보다 도드라져 보이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구로동의 어제와 오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그와 비슷한 맥락을 읽었다. 기쁨과 자부심 그리고 걱정과 우려가 섞였지만 다채로운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었다.
공단에서 디지털단지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산업의 형태는 달라졌다. 공단과 디지털단지에 찬사와 칭송은 쏟아지지만, 그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관심이 부족하다. 실상 공단 시절처럼 디지털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 환경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일하는 당사자 본인들의 몫이다.
AI 시대, 최첨단 기술이 선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간과하고 있었다. 기술 너머 사람을. 저자가 수면 밖으로 끌어올린 '사람'이 다시 가라앉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사람을 가릴수록 기술이 대단해 보이기 마련이기에 인간의 노동이 남긴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고 떠올려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또렷하게 새겨졌다.
변방으로 떠넘겨지는 문제, 중국인과 재한 중국 동포에 대한 우려 그리고 이를 넘은 편견과 혐오를 다룬 저자의 시선 또한 인상적이다.
전가되어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우리로부터 멀어져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쩌면 해결되었다고 믿고 싶은 건 아닐까 자문해 보았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이다. 저자는 중국인 관련 불안과 혐오도 그런 맥락으로 풀어나간다.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안을 키우는 건 아닌지 경계한다. 편가르기가 아니라 그들에게 다가가기를 권한다.
분명 중국인, 재한 중국 동포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막연한 불안과 적대감은 잠시 내려놓고 그들을 제대로 알아가고자 하는 배려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해결책일 것이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저자의 포용심에 감화되는 걸까 부드러워지고 있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구로동을 기록하기 위해 기억을 되짚어나가고 외부인이 바라보는 구로동을 듣고 구로동을 바라보는 시선, 이미지의 의미와 진실을 쫓는 여정이 좋았다. 행정구역 상 구로동이 아닌 '나의 구로동'을 쓰기로 결심했더니 비로소 글쓰기가 수월해졌다는 표현에서 그가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 전해졌다. 그의 진심이 녹아있는 <구로동 헤리티지>는 부단히 애쓰며 살아가는 우리 한국 사회의 보통 사람들이 남긴 어제와 오늘과 그리고 내일의 기록이다. 세상에 대한 통찰과 사랑과 희망이 느껴지는 20대 청년의 글은 담담하면서도 열정적인 목소리로 다채로운 가능성을 들려주고 있다. 자신이 깨달은 이 경이로운 경험을 부디 많은 이들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그날, 구로동에서 만나요!
무조건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 글을 남기며 마무리한다.
한겨레 하니포터 7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