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문호진.단요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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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해킹/ 단요ㆍ문호진 지음/ 창비





<사교육의 기술자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온 『수능 해킹』을 드디어 만나보았다. 

'사교육 한복판에서 활동해온 사설 모의고사 출제자 소설가 단요와 의사 문호진이 입시 사교육의 작동 원리와 수능의 본질을 낱낱이 밝힌다'는 홍보 문구는 고2 학부모인 나의 가슴에 콱!!! 박혔다. 주저 없이 가제본 서평단 신청을 했고, 감사하게도 일부 내용이 담긴 가제본을 미리 접할 수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역시나 읽는 내내 고구마 100개를 물 없이 먹는 듯 답답함에 몸서리쳐졌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공교육과 사교육 그리고 수능과 입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입장과 질문들이 사교육 현장에서 뛴 출제자들의 글로 명확하게 정리되어 생각 알갱이들이 또르르 정리되고 있다. 아직 읽지 못한 내용들이 품고 있을 거대한 수능과 입시의 세계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수능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등 과거와 현재의 수능과 입시를 분석하여 미래의 수능과 입시를 정립해나가는 길에 우리가 가져야 할 관심과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논하고 있다. 









<1부. 1장. 수능이라는 시험>에서 거론하고 있는 바와 같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가지는 사회적 위상은 엄청나다. 이번 4월 10일에 치러진 2024 총선 경우, 3월 모의고사 실시일인 3월 28일부터 선거 유세가 시작되어서 관련 뉴스들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듣기 평가 시간에 울려 퍼지는 선거 유세 소리는 많은 국민들의 질타를 받았다. 이렇듯 수능은 수험생들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특별한 행사인 것이다. 왜 대학을 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인 '수능'이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게 되었는지 아이러니하다.  『수능 해킹』은 이에 대한 의문들을 하나씩 해소해 주고, 변화의 방향을 잡아가도록 인도하고 있다. 



『수능 해킹』은 박제가의  『북학의』 중 한 구절을 서두에 떡하니 제시하여 수능을 '비교육적'이 아니라 '반교육적'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옛날의 시험은 인재를 얻으려는 방법이었지만, 오늘날의 시험은 그 반대다. 어릴 때부터 시험 보는 법만을 가르쳐서 몇 해 내도록 그것만 생각하게 만들면 그 후로는 병을 고칠 수 없다. 운 좋게 시험에 붙으면 그날부로 배운 바를 모두 잊는다. 평생의 정기를 시험에 소진했는데도 정작 그 사람을 쓸 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바로 책 제목인 『수능 해킹』과 일맥상통하는 의미이다. 저자들은 사고력, 논리력, 추론을 기르기 위한 학습이 아닌 논리 흐름과 접근법, 행동 전략 등을 숙달하게 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능 해킹』이라 칭하고 있다. 박제가 실학자가 말한 '시험 보는 법'이 바로 '수능 해킹'이며, 10여 년간 사교육 업계가 해온 일인 것이다. 그리고 수능을 출제·관리하는 평가원이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방식으로 적대적 공생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평가원의 이런 실용적인 결단을 두고 저자들은 관료 조직이며, 수능 개편 같은 중대 사안을 스스로 결정할 힘은 없으니 정치권이 변화의 의지를 드러내기 전까지 취할 수 있는 최선이라 말한다. 







하지만, 『수능 해킹』을 출간한 본질적인 의미는 사교육계의 수능 해킹과 평가원의 타협적 개입이 맞물리면서 벌어진 현상을 해결하고 변화의 의지에 촛불을 붙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수능의 난이도는 기형적으로 상승했고, 서울과 지방의 수능 등급 차이는 역대급으로 커지고, N 수생 비율은 상승세다. 그리고 수능이 추론이 아닌 퍼즐적 사고(목적 없는 추리, 형식만이 존재하는 추리)를 확산시켜 종국에는 사고의 외주화(접근법 자체를 외우게 되면서 주체적인 정신 활동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크게 와닿은 문장들이다.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저자들의 행보에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한국의 교육열이, 성취보다는 승리에 그 목적을 두기 때문일 겁니다.(62쪽)

한국 사회의 경쟁 과열을 줄일 묘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수의 딜레마지요. 다 함께 경쟁을 멈추자고 합의하더라도, 그 약속을 배반한 누군가는 큰 보상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다들 필사적으로 달려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거기에 소모되는 에너지의 총량이 고정적이라면, 그 에너지를 유용한 방향으로 돌려보자는 제안은 가능할 것입니다. 수능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만큼은 자명합니다. 관건은 언제나 '어떻게?'입니다. (91쪽)

개개인의 마음가짐을 탓할 사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시험의 형식과 요구사항이 잘못된 인식을 유도하고 강제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잘못된 인식은 학습 태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지요. (84쪽)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과열된 입시 제도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쩌면 열을 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복잡한 마음이다. 사교육을 하지 않다가 고등학교 입학 후 힘들어하는 큰아이를 위해 1학기 기말고사 후부터 학원을 등록해 주었다. 공교육만으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입시의 관문. 학원을 다니면서 성적이 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기쁘고 대견하면서도 복잡한 마음이다. 내년에 고등학교를 입학하는 둘째 또한 사교육 테두리 밖에 있는 아이다. 그런데 큰아이가 힘겨워하는 것을 보면서 더 빨리 사교육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진다. 책에서 거론된 국민의 첨예한 문제의식을 읽으면서 속마음을 들킨 듯 불편하였다. 하지만 분명 이를 넘어서는 변화의 의지가 필요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공동체적 관점에서 좀 더 세심하게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할 때일 것이다. 



수능과 입시의 작동 원리를 적절한 사례와 논거를 들어 충분히 설명해 주고 반교육적으로 변형된 수능의 변화를 논의하고자 하는 『수능 해킹』이 과열된 경쟁을 식혀주는 마중물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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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짓 - 기적을 그리는 소년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6
팀 보울러 지음, 김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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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그리는 소년 미짓/ 팀 보울러 지음/ 다산책방/ 다산북스





미짓, 그 고통스러운 이름을 입안에서 되뇌어본다. 마지막 장의 충격을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크게 숨을 내쉬어본다. 그래도 눈가는 떨리고, 마음은 저리다. 



팀 보울러 작가는 데뷔작 <기적을 그리는 소년 미짓>에서 환상적인 서사로 '죽음에 가하는 폭력과 공포'를 포용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엮어냈다. 작은 키에 볼품없는 외모, 말까지 더듬는 열다섯 살 소년이 보여준 마지막 선택은 그가 겪은 고통을 뛰어넘는, 숭고한 희생과 진정한 용서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하고 있다. 



자신조차 본명보다 별명 미짓이 익숙해진 아이. 가족과 이웃은 미짓의 빛나고 순수한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 겉모습으로만 그를 판단하여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괴롭힌다. 

특히 미짓보다 2살 많은 형 셉은 끔찍한 폭언과  잔인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엄마의 죽음을 미짓 탓으로 여겨 지독한 증오를 뿜어내는 그는 악마 그 자체였다. 미짓이 같은 공간 안에서 형 셉의 존재를 인식하면 보이는 신체적ㆍ심리적 반응을 주변의 누군가가 눈여겨봤더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교묘하게 이루어져 더 가슴 아팠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미짓에게 병원 치료를 받게 하는 등 마음을 쓰는 아버지조차 아무것도 몰랐다. 오히려 신경 써주는 형을 멀리하는 미짓을 꾸짖기까지 한다.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형은 만인에게 사랑받고 주목받는 존재이고 자신은 폭행 당하는 사실조차 말하지 전하는 작고 못생긴 존재라 여기는 미짓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이제 열다섯, 가족 모두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성장해야 할 아이에게 오늘은 그저 버터 내야 할 가혹한 현실일 뿐이었다. 활자를 뚫고 전해지는 참담함에 어른인 나조차 무너져 내렸다. 부디 그에게 온정의 손길이 미치기를 바라며 읽어 내려갔다.




팀 보울러 작가는 작고 못생기고 팔다리가 뒤틀리는 소년을 통해 삶의 소중한 가치를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미짓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품어왔던 꿈이 있었다. 아버지가 심어주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하는 그 꿈을 간절히 원하고 바랐다. 그리고 그의 온 마음을 알아주는 이, 미러클 맨 조셉 노인을 만나 '원하는 대로 이뤄지는' 기적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완전하게 꿈꾸는 이가 되어야 기적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오래 산 조셉 노인은 미짓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인간이라면 휘둘릴 수 있는 부정적인 마음을 경계하라고 미리 주의 주는 것이었을까. 조셉 노인의 말은 복선이 되어 <기적을 그리는 소년 미짓>을 묵직한 작품으로 완성 짓는다. 나쁜 기적을 바라면 대가가 따라온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미짓의 상황에서 그가 그리는 나쁜 기적이 마냥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더 마음 저렸다. 



두 형제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제니는 이 소설에서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섬세하고 배려심 넘치는 이 소녀는 미짓을 진실되게 대하는 몇 안 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의 존재가 미짓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던가. 그리고 그녀는 이 소설에서 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삶의 메시지를 뼈아픈 경험과 함께 녹여낸다. 그 진정성에 미짓뿐만 아니라 우리 독자들도 감화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쉽지 않은 문장이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무언가를 건드리는 이 문장을 실천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인가 생각해 본다. 하지만 우리의 작은 소년 미짓은 해내고야 말았다. 그가 보여준 마지막 위대한 기적이 일으킨 감동의 파장이 요동쳤다. 그리고 읽는 내내 그의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우리 삶을 충만하게 채워주고 있다.  이 아름다운 소년, 기적을 그리는 소년 미짓을 내려놓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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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민박집 서사원 일본 소설 2
가이토 구로스케 지음, 김진환 옮김 / 서사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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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민박집/ 가이토 구로스케 지음/ 서사원




괴담, 기이한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요괴들이 나오는 글, 만화,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편이다. 미야베 미유키 월드, <세상이 가르쳐 준 비밀>, <나츠메 우인장>,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등 다양한 작품들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가이토 구로스케 작가의 『기묘한 민박집』이 그 궤적을 넓혀주었다.





저주의 눈을 가진 소년과

기묘하지만 다정한 존재들의 기상천외한 이야기




괴담을 좋아하는 이유는 삶을 어루만져 주는 따뜻함과 다정함에 있다. 비록 외양은 흉측하거나 마주하지 못할 정도로 무서울지라도 심성은 고운 요괴들이 있다. 또 악한 요괴라 할지라도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연유를 쫓다 보면 인간의 탐욕과 지나친 욕망에 닿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측은한 마음이 든다. 세상사를 아우르는 어둠과 민낯을 마주할 수 있는 명징한 욕망의 이야기가 '괴담'이라고 생각한다. 신화와 괴담은 종이 앞뒷면 차이처럼 인간을 들여다 보기에 적당한 이야기들이다. 특별한 존재들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신화보다 평범한 우리들의 분투기가 펼쳐지는 괴담이 더 가깝게 다가와 '괴담'을 즐겨 읽게 된다. 그들의 욕망을 마주하고 털어내는 과정을 통해 삶이 좀 더 투명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이번 『기묘한 민박집』은 '사람과 요괴의 구분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운영하는 '사람과 요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아야시 민박집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아야시'는 '괴이하다'라는 뜻으로, 아야시 민박집을 배경으로 사람과 요괴가 함께하는 기상천외한 모험이 펼쳐진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먼 친척 부부와 함께 지내던 야모리 슈는 친할머니의 부름으로 아야시 장에서 생활하게 된다. 요괴 만화의 일인자인 미즈키 시게루의 고향인 도시에 자리한 관광지 '미즈키 시게루 로드' 중간쯤에 있는 민박집이다. 

운치 있는 전통 가옥의 민박집을 상상했던 슈는 허름하고 낡디낡은 2층 목조 가옥 '아야시 장'을 보고 망연자실하고 만다. 더욱이 같이 살자고 청했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요괴 만화가 하츠코이 키라리 선생님이 자신을 맞아주는 상황에 걱정이 앞선다. 그러던 중 '관계자 및 요괴 외 출입 금지' 경고문이 붙은 철제문을 발견하게 되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기묘한 민박집』은 총 4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요괴들의 이름과 특징, 사연들이 특색 있다. 수많은 요괴들이 머무는 민박집 '아야시 장'답게 다양한 이야기로 마음을 뒤흔든다. 

슈의 몸 안에 씐 우엉종, 댄디한 남자가 되고 싶다는 햄스터 코노스케, 어릴 때 죽은 아이의 혼이 들어간 올빼미인 타타리못케 요타, 비를 맞는 자신을 걱정해 준 남자에게 고백하기 위해 연습하는 아메온나 시즈쿠, 주인과 함께 여행하며 다양한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살아가는 의미라는 츠쿠모가미 카사바케, 시신을 빼앗아가는 요괴 카샤, 아야시 장의 수호신 이무기 손츠루 등 다채로운 요괴들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람과 시간을 공유한 요괴, 요괴와 시간을 공유한 사람, 그들 모두 살아가는 내내 행복하게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새기는 이야기가 바로 『기묘한 민박집』이다. 






할머니가 요괴들이 머무르는 아야시 장을 운영하는 것처럼 야모리 슈에게도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된 슈가 할머니의 제안에 응한 이유이기도 해서 마음이 애잔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생활하는 슈는 자신의 눈을 저주받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슈는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해 이유도 모른 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했다. 그 짐을 이곳 아야시 장에서 생활하면서 주변과 나눠질 수 있게 성장해 나가는 슈를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타인과 소통할 수 없었던 슈가 아야시 장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요괴와도,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모님이 지어준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처럼, 마음처럼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게 될 슈의 다음 이야기는 한층 더 다정하고 따스할 것이다. 







이야기 마무리에 미련 없이 떠나는 스에노 할머니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열심히 뜻한 바대로 살다간 이라 그리고 꿈꾸던 대로 '사람과 요괴가 공존하는 세상'같은 순간을 경험한 이라 빛으로 사라지는 마지막이 긴 여운으로 남았다. 




현관 앞 야캉즈루가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서 오십시오. 아야시 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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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종말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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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종말/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3/ 퍼플레인





보라와 환상의 결합으로 탄생한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정보라 작가의 신작 <작은 종말>이다. 

환상문학 단편선으로 <아무도 모를 것이다><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에 이어 나온 시리즈 3번째 작품이다.




가제본 서평단 활동으로 본책에 수록된 10편의 단편 중 3편을 미리 읽어볼 수 있었다.

[지향] - [무르무란] - [개벽]

보라월드, 그가 구축한 세계를 순수한 관찰자로만 관망하기에는 버거운 게 사실이다. 이번에도 역시 읽자마자 그의 세계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게 되었다. 





[지향]에서 '나와 강의 관계' 그리고 '시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서술되고 있다. 이 소설에 따르면 나(독자)는 시스젠더 이성애자로, 보통 타인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데 의연 중에 범주를 가족 - 친구 - 지인 - 동료 등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나와 강의 관계'는 '같이 데모하고 같이 행진하는' 사이다. 지향하는 삶이 같아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는 이들이 '나와 강'이다. 데모하러 가면 언제나 강이 있다. 언제나 내가 있다. 그 사실을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애인', '친구'가 아니라 명확히 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적확한 라벨로 표현하는 '나와 강'의 이야기는 그들이 지향하는 삶을 차분히 하지만 열정적으로 그려낸다. 그들의 논거에 우리가 '정상성'이라 여기는 범주를 받치는 정당성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당위로 규정해버린 닫힌 계에서 열린 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빛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탄하는 것은 본디 인간의 특권이 아닐까 싶다. 



인정받고 부여받은 정상성 안에서 살아가는 이로써 돌아보지 않았던 사회 곳곳의 목소리에 민감해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장애인권 활동가들 덕분에 나아지는 세상을 누리면서도 그 편리의 고마움보다 투쟁으로 인한 여파의 불편함만을 온전히 그들에게 전가하는 우리의 민낯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세상은 수많은 강이, '나'가, 장애인권 활동가들이 삶을 향해 나아가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아무런 의미도 약속도 가질 수 없는 모든 존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엄할 수 있기를 원하며 말이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나와 강"의 시공간은 맞닿아 있을까? 우리는 정체성을 떠나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겨본다. 




우리는 선택지를 원한다.

안전하고 합법적이고 다양한, 더 많은

선택지를 원한다. 






[무르무란]은 우리를 선사시대로 타임슬립 시킨다. 모권제 사회로, 현명한 큰어머니가 임신과 출산, 사냥과 분배 등 전반적인 사항들을 통솔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특히 사냥 지식과 기술을 이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선사시대 유적으로 남아있는 벽화를 새기고 있는 검은깃털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벽화를 그릴 수 있는 조건이 사냥을 잘 하는 임신한 여성이라는 점이 특색 있었다. 역사에서 밝혀진 사실인지 정보라 작가의 상상력인지 모르겠지만, 선사시대 사냥-수렵 시기의 중요한 상징이 잘 녹아들어 있어서 절묘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냥과 출산은 그 시기에 생존과 직결되는 부분이었으니 말이다. 

무섭고 두려울지라도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고야 마는 비밀과 전설의 은밀한 속내를, 강인한 의지를 실감 나게 담아낸 작품이다. 




아기에게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죽음을 물리치고 삶을 보호하는 방법을,

그 가장 강력한 지식을. 







[개벽]은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작품이다. '세상이 어지럽게 뒤집힘'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언어유희적으로 잘 표현했다. 태초에 외계인이 지구를 창조했다는 황당한 이론을 믿지는 않았으나 결국에는 사기당해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윤 씨의 우여곡절이 비약적으로 그려진다. 

가부장적ㆍ유교적 가치관을 지닌 윤 씨가 은퇴 후에도 퍽퍽한 삶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비집고 들어온 터라 감정이입이 더 되었다.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께서 겪을 수 있는, 겪은 듯한, 흔한 사기 수법이었다. 윤 씨 또한 부인이 생전에 다단계 화장품 회사를 다닌다고 했을 때 반대했을 정도로 사리가 밝은 양반이었다는 점에서 확 와닿았다. 





보라월드 세계관을 다채롭게 접할 수 있는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3' <작은 종말>





아직 꺼내보지 못한 7편의 세계는 어떤 경이로움을 선사할지 기대된다. 짧은 이야기로도 이토록 밀착하게 만들 수 있다니! 색다르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가 지닌 힘을 경험하였다. 시선이 머무르는 공간에서 온몸으로 발산하는 그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많은 이들의 귀와 눈이 쏠리는 일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진다. 우리의 시간은 정보라를 만나기 전과 정보라를 만난 사건에 존재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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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물리 공부 -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필수 물리 개념 그림으로 과학하기
커트 베이커 지음, 고호관 옮김 / 윌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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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필수 물리 개념 -


태어난 김에 물리 공부/ 커트 베이커 지음/ 윌북



'그림으로 과학 하기'라는 흥미로운 슬로건으로 접근하는 과학 책이 출간되었다. [태어난 김에] 시리즈로 물리 · 화학 · 생물 3종이 나왔다. 그중 '물리 공부'를 서평단 자격으로 만나보았다.


하늘색 책이 그려진 깔끔한 책 표지에 <태어난 김에 물리 공부>라고 적혀 있다. '태어난 김에'라고 마음먹기에는 '물리'가 어떤 학문인지 알기에 미리 겁이 났다. 공대생 출신이지만, 학창 시절 제물포였던 나로서는 물리는 참 먼 곳에 있는, 어려운, 두려운 과목이었다. 시간이 흘러 큰아이가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물리 · 화학·생물 과목들을 다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있다.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다음과 같다. 

총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은 두께의 책으로, 양적인 부담은 적다. '그림으로 정리하는 과학 공부' 콘셉트라 활자와 그림의 분량이 비슷하다. 읽고 읽다 보면 백과사전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림으로 1차 시각적인 정보를 인식하고 활자로 2차 설명을 첨하여 다시 그림을 보면 개념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차례를 살펴보니 13개 영역의 물리 개념을 다루고 있다. 힘, 전기, 파동, 광학, 열역학, 유체, 현대물리학, 천체물리학까지를 아우르고 있어 '필수 물리 개념'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된다. 






과학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특히 물리는 우리네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들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학문이다. 어렵다 느낄 수 있는 물리를 일상과 연결하여 또 그림으로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집필 의도가 인상적이다. "왜 그럴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익숙한 용어부터 낯선 개념과 용어까지 활자만이 아니라 그림, 도표, 차트를 통해 통합적으로 설명해 주니 좋다. 그리고 각장 마무리에 <다시 보기> 코너로 핵심 개념을 다시 한번 짚어준다. 






백과사전처럼 필요한 내용을 그때그때 찾아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정리하기가 편리한 책이다. [태어난 김에 물리 공부]는 우리가 '과학'을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서이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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