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위즈덤하우스


끔찍하고 슬프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이를 위해 인간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서사시, 그 비극 속에서 끝끝내 살아남은, 작은 무법자에게 뜨거운 눈물 가득한 박수를 보낸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수십 시간이 흘렀건만 뜨거운 감정 덩어리가 울컥울컥 치솟아 버겁다. 여운이 이토록 긴 이야기를 만난 이 시간이, 이 감각이 놓아주지 않는다. 오열하면서 읽어 토끼 눈이 되어버렸지만, 그 진한 감정이 흐르고 흘러 사라지는 게, 흩어지는 게 마냥 아쉬운 이야기다.








케이프 헤이븐, 해안가에 위치한 한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이 한마을을, 사람들을 어떻게 지배하고 짓누른지 예리하게 써 내려간다. 의도치 않은 사고였지만 열다섯 소년의 삶은 어둠 속으로 깊이깊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유가족과 주변 인물들의 삶 또한 사건의 중력에 갇혀 다른 시간을 튕겨버렸다. 

더욱 슬프고 시린 점은 상흔이 대물림되어 고통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다. 어린 딸을 잃은 아버지 핼, 동생을 남자친구 빈센트 때문에 떠나보낸 언니 스타, 스타의 자녀 더치스와 로빈까지 래들리가 삼대를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몰아붙인다. 불행과 어둠은 생명을 지닌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강해졌다.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이기에 사실과 진실은 왜곡되고 감정은 불타올라 오히려 그들 사이의 공기를 고갈시켰다. 곁에서 지켜줄 수 없는 사랑은 그 크기만큼의 끔찍한 고통이었다. 

더치스, 핼, 빈센트, 스타… 그래도 마지막까지 그들과 함께 고통의 길을 걷다 보면 기구한 삶에 웃음이 스며든 기억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은 그저 흘러가고 우리 인간은 찰나를 살아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부인 그 순간을 격렬하게 그려낸 [나의 작은 무법자]는 경외스러운 작품이다.










[나의 작은 무법자]를 읽으면서 어린 더치스 앞에 놓인 삶의 냉혹함에 치를 떨었다. 가녀린 소녀에게 한 줌도 허락되지 않는 따뜻한 빛줄기가 야속했다. 읽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저릿한 통증이 가슴을 사정없이 휘젓는데 이 가녀린 소녀는 어떻게 매번 상처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지……. 결코 고개 숙이지 않는 투지를 한 꺼풀 걷어내면 여리고 여린 사랑스러운 심성이 웅크리고 있다. 그래서 더 거칠고 매정하고 차갑게 자신의 겉모습을 꾸미는 더치스였다. 동생 로빈을 위해 자신을 무법자로 칭한 소녀의 여정은 깊은 흔적을 새겼다. 그 흔적은 어떤 것으로도 지울 수 없는 상처이자 영광이었다. 


[나의 작은 무법자]는 동생 로빈을 지키고자 분투하는 더치스와 지나간 과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워커 경감이 탄탄한 두 기둥이다. 가여운 워커는 친구 빈센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우정으로 굳어버렸다. 워커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 모두를 집요하게 파헤치면서 진실을 쫓는 경찰이자 친구이다. 참과 거짓이 뒤범벅된 사건 속에서 숨겨진 진실을 찾아 길 위를 헤매는 그는 지독히도 외롭고 처절했다. 하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었기에 더치스도 그 자신도 가혹한 운명에서 벗어나 내일의 해를 바라보게 되었다. 








드디어 밝혀진 진실 앞에 참담하면서도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번뇌와 고통을 감내하며 묵묵히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온 삶에 감읍했다. 눈물을 참고 참았던 더치스가 드디어 눈물을 흘리는 결말에 나를 가득 채웠던 수많은 감정들이 빠져나갔다. 온 마음으로 읽은 [나의 작은 무법자]는 그렇게 나를 비웠고 또 서서히 나를 채워갔다. 

세상에 버려진 존재였다 믿었던 더치스, 불공평한 세계를 비웃었던 무법자 더치스, 상처를 거친 몸짓과 말로 감췄던 우리의 여공작 더치스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몰고 온 참담한 비극 앞에 무너져 버렸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나의 작은 무법자]가 오래오래 가슴에 머무르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