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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 첫 5,000년 -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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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류학자인 저자가 한 파티에서 변호사이며 동시에 사회운동을 하고있는 한 사람을 만나는데서 이 이야기는 시작한다. 런던의 빈곤퇴치 집단들에게 법률 지원을 하는 재단에서 일하고 있었던 변호사는 IMF가 하는일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고, 뿐만아니라 돈은 빌렸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라는 주장을 했다. 저자로서는 변호사의 주장이 놀라웠던 것인데, '부채는 반드시 상환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사회통념이며, 그만큼 일반적인 생각이다. 나 역시도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부채를 갚지 않는다는 것은 내 몫이 아닌 남의 것을 강탈하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생각의 오류에 대해 이 책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 첫 작업으로 화폐는 물물교환을 좀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주류 경제이론에 반하는 주장을 펼친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시장은 자본주의와 같은 의미가 아니며, 시장이 재화 창출의 장이기 보다, 서로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관계의 장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얻기위해서 정작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신용과 상호부조이며 그에 합당한 규범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전통적인 '시장' 본래의 의미일뿐더러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제안한다. 이러한 시장구조를 회복할 때 '경쟁'은 더이상 생존을 위한 덕목이 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은 매우 타당해 보인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단순한 생존 외에도 자식을 돌보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평균적인 삶을 지탱하기 위해서 다방면에서 빚을 끌어안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딱히 사치를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대출을 권하는 사회가 현대의 자본주의이며,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손쉽게 물건을 사들일 수 있는 신용카드와 대출은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무작위로 권하여 지고, 부채없는 소박한 삶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사회에서 정작 부채를 갚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는 그 책임은 고스란히 당사자에게로 돌아간다. 이는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라는 사회통념과 맞물려 채무자는 부도덕하며, 범죄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부채를 갚지못하는 채무자, 즉 범죄자를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들은 채무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노예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막을 내렸지만 현대사회는 새로운 채무 노예들을 마구잡이 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 책을 '부채'에 촛점을 맞춰 읽기 보다는 '시장'에 주안점을 두고 읽었는데, 필요한 것의 충족을 위한 '시장' 본연의 의미를 회복할 때 '인간 경제', '공동체의 의미'가 회복된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공감한다. 과거 부채의 역사는 부를 쥔자들이 빈자를 향해 행하는 갈취와 폭력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러한 의미의 부채는 현대에도 여전히 사회 절대다수인 빈자들을 향한 자본의 '폭력'으로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일까에서 출발한 의문은 해소되었는가.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도 여전히 부채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옳다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어떤 부채는 채권자의 부당함이 채무자의 도덕적 의무에 가려지고, 도덕적 의무라는 관념은 채권자들이 제시한 시스템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유한한 세계에서 무한한 욕망은 곧 끝없는 경쟁을 의미하고, 유한한 행성에서 성장의 엔진은 영원히 가동될 수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논리에의 귀결을 위해 저자는 물물교환 시대로 부터 다양한 시장의 사례와 금전 외에도 다양한 부채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양이 너무 방대하다못해 자못 산만하기까지 하다. 때문에 모든 것이 금전으로 환산되는 부채의 시대를 넘어 서로 호의를 빚질 수 있는 인간관계를 회복하자는 인류 미래를 위한 제안에 이르기까지의 책읽기가 너무도 힘에 겨웠다.

자본주의는 영원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은 자본주의를 대신해 새로운 상상을 하고, 그를 실현할 수 있는 역사의 행위자로서, 금융의 힘에 의해 우리 모두가 약탈자이며 동시에 채무자로 내몰리는 현실을 극복하자는 취지의 이 책이 좀더 대중적으로 좀더 요약되어 쓰여져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읽을 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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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 인생 -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홍윤(물만두)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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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넷 서점이건 서평을 남길라치면 별의 갯수를 체크하게 되어있다. 리뷰를 읽고 책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취지겠는데, 나 역시도 책을 구입할 때 리뷰어들이 체크한 별의 갯수를 참고로 하곤 한다. 그중에 가장 맘에 든 책은 별 다섯개로 표시된다. 호텔도 그렇지않은가. 시설좋고, 서비스 좋아 가장 좋은 호텔로 분류되는 호텔을 오성급이라고 분류하듯이 말이다.

리뷰어 물만두 홍윤, 그의 삶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 책은 별 다섯개로는 모자랐다. 특별히 훌륭한 책이라서가 아니다. 그의 글이 쫀득하게 맛깔져서도 아니다. 그가 시한부 삶을 살다 떠난 사람이라서는 더더욱 아니다. 내가 이 책이 별 다섯개로는 도저히 모자라는 책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그가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즐겼기 때문이다.

 

'물만두'라는 북블로거를 알게 된 것은 그녀가 막 세상과 작별하고 난 후에 올라온 기사를 보고서였다. 인터넷 서점이라는 한 공간을 이용했지만 그녀의 생전에 나는 그녀를 알지 못했다. 서로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달랐기도 했지만, 나는 다른 블로그를 방문하거나,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다는 등의 활동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부고를 접하고는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것처럼 가슴 한켠이 아련했었다. 같은 취미를 갖었고, 같은 공간을 사용했다는 것에서 오는 상실감 외에도 죽음이 주는 쓸쓸함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물만두 홍윤의 <별다섯 인생>의 출판 소식은 더더욱 반가웠고, 꼭 읽어야만 하는 책이었다.

책을 읽기 전, 이제부터 많이 울게 될 것이라고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랬기에 2004년에 쓴 자신이 진행성 근육병을 앓고있는, 그래서 앉는 동작조차도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의 환자라는 고백의 프롤로그 '만두의 진실 또는 고백'을 읽고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전혀 슬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방울도 눈물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가장 오래 남을 인물이 만두일 것이라는 '질긴 만두' 타령을 보고 나자, 나도 모르게 그럴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이렇게 유쾌한 가족이 있을까 싶었다. 명랑 시트콤이 따로 없다. 그녀의 병은 가족에겐 이미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그녀의 고통이나 아픔 따위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명랑 시트콤 사이사이 보이지 않는 가족의 눈물이 묻어났다. 대수롭지 않게 자신의 일상을 적어내려간 행간 사이사이 그녀의 절규가 배어있었다. 역시 나는 울지 않을래야 않을 도리가 없다. 언니를 보내는 동생 만순의 글은 특히나 가슴 찡했다.

그녀가 떠나고 1년이 지난 지금 그의 가족들은 평온을 되찾았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렇지 않은듯 그렇게 웃던 가족들이 이제는 제발 소리내어 울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슬프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울때 울어야 한다. 울지않으면, 가슴에 맺힌 큰 멍울이 살아있는 삶을 잠식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고, 리뷰 쓰기를 사랑했던 그는 갔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녀의 예언대로 북블로그 사에 길이 남을 역사가 되었다.

 

'물만두'의 소소한 일상을 읽기로 선택한 당신은 제발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며, 비루한 자신의 삶을 위로할 방패로 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말처럼 누구나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니까.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지만, 저런 삶보다는 이런 삶이 났다는 섯부르고 천박한 판단은 하지 말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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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한명숙 전 총리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읽고 용기를 얻었다는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이 새로 개정된 법 조항을 반영하여 재출간 되었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는 이 책을 현재 구속수감 되어있는 정봉주 전 의원에게 추천했다고 해요.

전문가주의를 비판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 이야기를 지향했다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알아야 내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 복지 찬성/무상급식 찬성/ 반값등록금 찬성/반FTA/반MB/반 종편/반 개인의 자유 침해/나 빨갱인가요..? 요즘의 나는 나이드신 할아버지 무리들이 무서워서 은근슬쩍 피하게 됩니다. 나 따위는 감히 대화상대가 되어주시질 않으실뿐더러, 느닺없는 호령이 두렵고 그분들의 근본없는 충성심이 소름끼쳐요. 처지는 99%에 머물면서 생각만은 1%처럼 하고 싶으신 그분들.. 그분들의 자녀들도, 손자손녀들도 하우스 푸어, 워킹푸어, 삼포세대일 수 있다는 것을 진정 모르시는 걸까요.. 나는 초딩이 아들만 보면 안쓰러워요. 벌써부터 사회책을 달달 외우고, 수학문제를 100문제씩 풀어제끼지만 그 아이도 청년실업, 88원 세대, 비정규직에 시달릴 것이라는 불안때문에....
오! 우리들의 나라를 꿈꾸며, 이 책을 기대해 봅니다.

 

 

 

 

 

환경분야의 최고의 고전이라는 책, 나는 솔직히 처음 보는 책이다. 그러나 환경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드시 읽어야 겠다라는 절박함을 느낀다. 침묵하는 봄이라니, 지구의 멸망은 헐리우드 판 블록버스터에서만 볼 수 있는 가상현실은 아닌것 이다.

 

 

 

 

 

 

 

 

 

 

급추가하는 책이네요. 대한민국 안에 미국의 힘, 차마 숨지도 않고 드러나있는 추악한 대한민국의 미국화를 수동적인 대한민국의 이미지가 아닌 능동적인 역할의 수행에 촛점을 맞춘 책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너무 표나는 반미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저자는 친미와 반미를 넘어서 제3의 시각으로 대한민국의 성장(내생각엔 미국화)을 보고있다고 해요.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쩌면 나는 한미 관계에 있어 좀더 균형잡힌 견해를 갖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추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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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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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배 부를때 가끔 한번씩 생각하는 한진중공업의 노동자 김진숙 씨..

오늘이 단식 17일째인지 18일째인지 날짜조차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주제이지만 생각날때마다 인터넷을 뒤져본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무슨탈이 났을까. 이건 뭐 걱정인지 불안인지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관심이지만, 못내 불안하다. 어쩌면 이렇게도 무심할까 오십줄의 그녀는 차디찬 길바닥에서 곡기를 끊고 움푹패인 목울대를 드러내고 누워있는데... 그녀의 소식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녀가 쓴 몇 편의 글을 찾아 읽었다.

어쩌면 이렇게 쓴 글마다 가슴 저아래가 뻐드득대면서 아픈 소리를 내는지.... (2010. 1.29일 메모)

 

처음 김진숙을 알게 된 것은 2010년 1월 경향신문에 실린 하종강의 글을 읽고서였다. 하종강에 의하면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은 부산 영도의 한진중공업 앞에 홀로 텐트를 치고 앉아 십몇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였는데, 나는 불현듯 나타난 그녀의 이야기가 못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아 인터넷 서핑으로 그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찾아낸 그녀의 글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를 읽는 내내 가슴 속에 찬바람 한줄기 윙윙 소리를 내었다. 내가 알던 노동자 전담 인권 변호사 노무현,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애도하던 글이었는데, 참 야속타 싶었다. 어느 쪽이건 내 쪽이 아니라면 다 적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그리고 몇 일 후 그녀는 단식 농성을 중단했다.
다시 김진숙이란 이름이 신문 귀퉁이에 아무렇게나 떠오르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이번에는 농성장을 크레인 위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85호 크레인을 선택한 것은 2002년 바로 그곳에서 129일 동안 농성하던 김주익이 목을 맨 곳이기 때문이라 했다. 그랬다해도 쉰이 넘은 해고 노동자가 20여일을 단식하며 길바닥에서 한뎃잠을 잤을때도 몰랐던 사람들은 여전히 몰랐고, 혹은 모르는 것처럼 살아갔다. 그러나 모르쇠로 일관되던 한 노동자의 투쟁은 곧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참 많은 사람들이 크레인 위의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즈음 <소금꽃 나무>를 책꽂이에 꽂았다. 꽂아만 놓고 읽지는 않았다. 그녀를 응원하는 마음에 책을 구입했지만, 나는 노동자가 아니였고 노동자의 삶을 알지도 못했고, 알지 못했지만 대충 노동자의 삶이 어떨것이라고 짐작만 하고 있었으므로 특별히 그녀의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구구절절히 한맺힌 사연일 것이 뻔했으므로.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어설프게나마 그녀에게 위로의 메세지를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날린 첫 멘션에 답글이 왔을때 괜히 코가 찡했다. 어설픈 나의 치기가 그녀에게 통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 멘션.. 그녀의 고공투쟁이 헛된일만은 아니니 힘내시라는 요지였는데 "누군가의 목숨은 사위어가고"라는 그녀의 답은 너무나도 쌩하게 찬바람이 불었다. 선의가 선의로 전달되지 못했을때의 민망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후, 다시는 그녀에게 멘션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올리는 글을 읽었고 마음으로만 응원했다. 무사히, 오늘도 무사히, 곧 내려오시라...
309일만에 땅을 밟은 그녀는 아직도 여전히 병원에 있다. 그리고 몇일전 트윗에서 본 그녀는 병원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고, 올해 가장 많이 한 말이 '고맙습니다'이며 누구보다 고마운 그사람은 아직도 갇혀있다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꽂아놓기만 했던 그녀의 책 <소금꽃 나무>를 읽기 시작했다.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중학교 때 일기장에 칼을 그리고 선생한테 얻어맞은 뒤로
일기조차 진실을 은폐한 관제 일기만 썼고
글 쓰는 걸 취미로 삼아 본 적도 없다.
....
글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었다.
억울하다고, 이럴수는 없는 거라고, 난 빨갱이가 아니라고....... (책에서)

 

 

학생운동이든 노동운동이든 과거 운동권이였을 어떤이가 트윗을 통해 고공에 있는 그녀에게 '누군가가 목숨을 받쳐야 할 때'라는 글을 보내왔더란다. 그래서 그녀는 답했다고 한다. '너나 죽어'.
노동자가 아니였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몸으로 일을 해야만 먹고살아지는 그런 노동자가 아니였다면, 그녀 아버지의 표현대로 그녀가 높은 공부를 했더라면 그녀는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자신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처음 읽었던 그녀의 글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와 똑깥은 강도의 아픔으로 가슴 저 밑바닥의 뼈들이 뻐걱뻐걱 소리를 내고, 끝없이 가슴 속으로 속으로 질척한 물이 흘렀다.
도저히 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없게 처참했던 그녀의 삶을 어설프게 추측했던 내가 너무도 죄스러웠다. 모르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알량한 내 자만심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아니라고 믿었던 노동자가 바로 나의 정체성이었음을 알게되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는 표면적인 배움 밑에 깔린 노동에 대한 경시가 몸에 밴 나는 노동자임을 거부했다. 나는 몸을 써서 먹고 산 그런 노동자가 아니었다. 나는 적어도 책상에서 펜대를 굴렸으니까. 그러나 이제야 안다. 나는 노동자, 그토록 부끄러운 이름의 노동자 였다. 내 남편도 노동자, 전문직으로 남들보다 편하게 자식들을 키운 내 아비도 자본 앞에 비굴했던 노동자였다.

 

 

오늘자 신문에는 그녀가 크레인 농성으로 업무를 방해한 죄로 부산지검에 의해 불구속 기소 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해고 노동자 김진숙을 자유롭게 해달라. 그녀의 꿈인 그녀 소유의 단칸방에서 따뜻한 된장찌게가 끓을 수 있게 그녀를 이제 그만 놓아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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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덫 걷어차기
딘 칼란 & 제이콥 아펠 지음, 신현규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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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제구호개발기구인 월드비전에 매달 소액의 기부를 하고 있다. 월드비전에서 연결해준 과테말라의 한 어린 소년을 후원하고 있는 것인데, 내 기부금이 소년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인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한번도 직접 월드비전을 통해 확인해보진 않았다. 그러다 작년에 월드비전에서 근무하면서 후원금이 어떤 나라,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적은 최민석의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를 읽고 후원금은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기보다는 아이가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것들을 설비함으로써 아이가 굶지 않고 생활 할 수 있도록 간접의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이를테면, 후원금을 모아 학교를 짓는다던가, 마을에 우물을 판다던가 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였다. 그것은 이 책 <빈곤의 덫 걷어차기>의 저자가 말하는 물고기를 잡아주기 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으로 일시적인 자선이 아니라 빈곤을 해소하는데 근본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비영리단체 빈곤퇴치혁신기구IPA의 설립자 딘 칼런과 빈곤 퇴치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하고 있는 제이크는 이 책의 동 저자이다. 어느부분을 누가 적었는지 정확히 구분하고 있진 않지만, 딘 칼런은 화자인 '나'로써 제이크가 여러 빈곤 국가들을 다니며 직접 경험하고 도움을 준 장면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두 사람은 빈곤퇴치를 위한 7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는데 소액대출인 마이크로 크레딧을 통한 대출보다는 저축을, 그리고 저축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저축 시기 알림서비스와, 더많은 농산물을 생산하는데 꼭 필요한 비료의 선불 판매, 또 장기적인 안목에서 빈곤 탈출에 확실한 도움을 주는 교복지급이라든가 구충제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 진정한 교육을 위한 보충수업과, 식수를 정화해 빈곤국에 만연한 전염병을 퇴치할 것, 그리고 저축이나 교육, 비료 사용 등이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위한 자기 구속 장치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빈곤퇴치를 위한 아이디어 7가지는 행동경제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인간이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경제적 동물이라는 전통경제학의 비합리성이 빈곤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빈곤퇴치를 위한 7가지 아이디어를 보면서 나는 우리나라의 60, 70년대의 새마을 운동을 떠올렸는데 다른점이라면 우리나라는 그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냈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자랑스러웠다는 것보다는, 모든 나라가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활성화 되어야만 잘 살 수 있겠 되는 것이냐는 의문이 생겼다. 우리나라는 현재 경제대국의 수준에 진입했지만, 들여다보면 극심한 양극화로 이른바 서민들은 나날이 생계유지를 위한 경쟁에 내몰려 있는 상태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는 발문에서 빈곤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이러한 도전정신에 감동 받았을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감동보다는 빈곤퇴치라는 것이 경제대국의 위치에서는 또다른 시장개발을 위한 노력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빈곤퇴치를 위한 우리의 기부나 도움이 정말 도움인 것인지, 그들을 경쟁 속에 내몰고 그로 인한 불행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아닌지하는 의문이 생겼다. 분명 우리는 잘살게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고, 빈곤국의 사람들은 밥을 굶지않으며 잘살게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이제는 밥을 굶지 않는 우리들은 일말의 동정으로 그들을 위한 기부를 하고, 그 또한 나를 과시하는 욕구 내지는 속죄로 생각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잘 삶의 의미가 경제적인 속국이 되어 경쟁 속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며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일까.

저자의 말처럼 선량함 만으로는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한 비료를 사용의 권고보다는 그들의 먹거리를 수출이나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빈곤을 해결하고, 전 세계인이 똑같은 것에서 기쁨을 얻기보다는, 그들 나름의 문화 속에서 그들 나름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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