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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
루이자 길더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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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양자역학 이라니! 용어만으로도 머리가 옥죄여오는, 많이 들었지만 전혀 낯선 물리학 이론이 나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하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책을 받아들고 한탄에 한탄을 거듭했다(빙고! 물리시간에 엎어져 잠만 잤어요).

고백컨대, 나는 이 책과 전혀 무관하게 살고 싶었으나,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당장 포기하지 않는 한 이 책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책을 펼쳐들었다. 의외로 저자가 젊은 여자다. 뿐만아니라 얼굴까지 예쁜 그녀의 이력이 참으로 독특하다.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그 후 몇년동안 염소 농장에서 젓을 짜고 치즈를 만들면서 이 책을 8년간 기획했다. 또한 영화관의 영사기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동물을 기르며 생리학 관련 새 책을 쓰고 있다고.

그녀는 도식적이고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풍부한 대화와 인용문으로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썼다고 했다. '양자역학이라는 머리아픈 물리학 이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어디 높은 곳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나같은 이가 읽기에는 그다지 무리가 아닐듯 싶은 생각이 설핏 들었다. "그래, 읽어보는 거야!"

 

현대 물리학의 기초인 양자역학은 현대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많은 기술들의 이론적 바탕이라고, 네이버 지식 사전은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과 전혀 관계없이 사는 사람이라는 나의 주장은 확실히 틀린 것이다. 도대체 양자역학은 내 생활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양자역학이란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으로 간단히 말해 양자역학이란 '힘과 운동'의 이론으로, 띄엄띄엄 떨어진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라는 것이다(이런건 도대체 왜 밝히는거야!).

오래전부터 과학자들은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여왔는데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이긴 하지만 그 에너지가 일정한 단위로 띄엄띄엄 떨어져 있다는 주장을 한다. 이어 닐스 보어가 띄엄띄엄 떨어져있는 새로운 원자 모형을 제안했고, 막스 보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파스쿠알 요르단 등이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냈으며 그 뒤를 슈뢰딩거가 있었다. 파동함수, 불확정성의 원리, 상보성 개념 주장,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 등등 읽을수록 알 수 없는 용어들의 나열을 이 지적인 염소짜는 여인이 한마디로 압축해 준다.

 

"과학의 뿌리는 대화다!"

이말은 물질과 빛의 근본 성질에 관한 법칙을 처음으로 정립한 선구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말로 정확히는 과학이 실험에 의존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대화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그녀는 이 말에 힘입어 대화로 시작되고, 대화로 증명되는 '양자역학'에 관한 책을 세상에 내어놓은 것이다. 과학은 실험이고, 증명이고, 대화이지만 사실은 생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의 특성상 두 사람간에 오고간 말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루이자 길더는 이를 위해 수많은 논문과 편지, 회고록 등의 문서를 철저히 수집해 이를 자룔로 대화를 재구성했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이라는 이론 안에 '불확정성 원리'가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우리가 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문제이다. 루이자 길더는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당시의 하이젠베르크와 파울리, 보어, 아인슈타인과의 대화를 회상함으로써 과학을 설명하기로 한 것이다.

"세상을 p 눈으로 볼 수 있고 q의 눈으로도 볼 수 있는데, 하지만 두 눈을 함게 뜨고자 한다면 어질어질해지고 만다."이것이 그 유명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181쪽)

 

비엔나 대학교의 솟구치는 아치 아래에서 또 하나의 회의가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비엔나는 파울리와 슈뢰딩거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도 하다. 차일링거가 트위드 코트에다 등에는 배낭을 멘 차림으로 걷는다. 그의 옆에는 납작한 중절모를 쓴 혼이 있고, 그린버거가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실은 주정뱅이가 선으로 그려 놓은 이차원 세계 안에서 사는 아주 똑똑한 파리 같아."(541쪽)

 

위와 같은 대화의 재현을 위해 루이자 길더는 많은 자료들을 오랫동안 모았고, 자료들을 총동원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가상의 대화는 어느정도 작가의 상상력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한 재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고 난 후 이전에 전혀 관심이 없던 양자역학에 관심이 생겼다거나 책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었다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 <리처드 파인만>을 만화로 보았을 때의 감상과 비슷한 것으로 책의 기획이나 작가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개인적 취향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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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광기
대리언 리더 지음, 배성민 옮김 / 까치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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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광기란 무엇일까?

일상생활 속에서 알거나 혹은 모르는 사람들이 행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마디로 일축하곤 한다. "미친 것 아냐?"

광기는 일상 속의 가벼운 '미친 짓'으로 부터 알수 없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이상한 옷차림을 하며, 갑작스럽게 폭력적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본격적인 '병적인 증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읽혀진다. 그렇다면 '병'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경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 일반적인 이해의 범위를 넘는다고 해서 모두 정신병적 광기라고 진단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타인에게 해를 입히기 전까지는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을 모두 광기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우리는 사회규범을 따르지 못하는 상태의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뿐만아니라, 시대는 정해진 답만을 원하는 경향이 있으며, 정해진 룰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비정상이라는 틀로 묶어, 치료적 행위가 필요하다고 보는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저자는 망상과 일상이 동시에 스며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 '망상하는 자'를 정신병자로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책의 서문을 시작한다. 정신병이라고 명명되는 광범위한 증상들과, 그에 따르는 치료적 행위의 타당성을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은 기획되었다 라고 보여진다. 정신분석의 기초개념과 기본틀을 살펴보고, 정신병이 진단되는 과정과, 정신병의 증상, 여러 요인들에 의해 정신병이 촉발되는 과정을 지나 광기의 세 사례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저자는 정신병이라고 진단되는 오늘날의 광범위한 증상들은 오남용되고 있으며, 그것은 환자라고 명명되는 개인을 위한 최선의 치료, 혹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범주로의 회귀를 위한 도움이 아닌 '치료자' 혹은 '치료제'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그와같은 오남용이 횡행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자신이 혹은 주변 사람이 정신병을 앓고있다고 여기는 많은 이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채, 자기 자신과 주변사람을 정신병의 틀에 가두며 안도하기도 한다. 이들에게는 문제가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병에 의한 것이며, 이러한 병은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안도'가 필요한 것이다.

 

독특한 문화와 관습 따위의 다름을 배재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은 기질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모두 다르다. 비정상이라는 범주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각기 다른 개인을 통합할 규범이 필요한 것이고, 사회적 규범에 의한 정상이라는 범주는 한 개인이 시스템에 맹종해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또한 정신병으로 분류되는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적인 것으로 되돌리기를 진실로 원한다면,  정신병의 치료에 있어 '각자의 독특함'이 고려되어 치료행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 개인에게 발현된 비정상이라고 보여지는 어떤 '증상'이 문제가 아니라, 증상과 개인의 관계를 중요시 할 때 이른바 치료적 행위가 탄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가벼운 불안증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광기의 획일적 범주의 증상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받아들이는 개인 즉, 주체의 태도와 주체에 맞춘 치료행위가 중요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광범위한 정신병의 범주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발현된 정신병에 대해 올바로 진단하고, 환자 개인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 기질을 고려한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갈수록 광범위하게 만연하는 정신병을 줄일 의지가 과연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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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의 여행 - 내 안의 수도원을 찾아
진동선 지음 / 문예중앙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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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침묵은 그 자체로 의사소통의 중요한 표현이다.

몇 년 전 나는 정독도서관 앞의 CineCode 선재에서 알프스에 있는 한 수도원의 일상을 찍은

다큐영화 <위대한 침묵>을 보았다.

두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영화에서는 마당의 눈을 쓸어내는 소리, 바람에 낙엽이 지는 소리, 의자를 당기는 소리 따위 외에는

아무런 음향도 없이 길게 길게 이어지던 장면을 간간히 기억한다.

그 외에도 수도사들의 기도소리가 들렸던 듯도 하지만 정확하게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기도 소리가 들렸더라도, 그것은 침묵의 하나로 받아들여질 만큼 어둠 깊숙히 침잠한 조용한 몸짓의 하나로 보여졌다.

수도사는 오랜 기도와 오랜 노동 끝에 문틀에 기대 앉아 마른 빵을 걸죽한 스프에 찍어먹었는데,

그 모습마저도 너무도 숭고해서 나는 숨쉬는 소리조차도 몹시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 책 <침묵으로의 여행>을 보면서, 영화 <위대한 침묵>을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순서였다.

무엇보다 수도원 기행이기에 그랬고, 작가가 쫓고자 한 것이 '침묵'이였기 때문에도 그랬다.

작가는 부족한 수도원 정보때문에 알프스를 끼고있는 주요 4개국의 수도원을 무작정

몸으로 부딪힐 각오로 덤벼들 수 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결과적으로 '무작정'의 시도는 '운명적 발걸음'을 재촉했고, 무신론자인 작가에게 '깊은 영성'을 느끼게 했다.

그것이 이 책의 의미일 것이다.

만든이에게도 보는이에게도 은연중에 깃드는 마음의 평화, 안식, 그리고 신성.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위대한 침묵>의 촬영장소인 카르투시오 수도원은 볼 수 없었다.

작가는 교회의 건축이나 조각, 그림보다는 오로지 수도원의 깊은 빛과 어둠에 집중해 사진에 담았다.

빛과 어둠은 침묵을 담보로 한다.

사진 속 수도원의 어둠을 보고있노라면 어디선가 수도사의 기도소리가 들릴 듯 하다.  

책의 판형이 조금 더 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이다.

작가는 코모 호수에서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아름다운 왜곡'이기 때문에 실제 눈으로 본 것보다 더 멋있게,

더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나는 실제로 작가 본 수도원과 알프스의 풍경을 볼 수 없기에 이 아름다운 장면들이

얼마만큼이나 왜곡된 것인지 알 지못하지만, 청량한 공기와 신록과 아찔한 매혹의 들판을 알프스에만 선물한
신의 편파적인 애정에 대한 작가의 질투를 지극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침묵으로의 여행>을 보면서, 침묵보다는 탄성을 쏟아내게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며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과,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도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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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2-11-2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묵으로의 여행이라는 구절이 좋아 들어와 봤어요. ^^ 안녕하세요? ㅋ 흠...가끔은 저런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냥 조용히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살 수가 없는 인생이니..

어딘가 숨어서 아니면 조용한 곳으로 훌쩍 가버리고 싶다는 그런 마음...내 안의 수도원이라. 좋네요 ^^

비의딸 2012-11-21 19:5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요.. 생각만 많이 하죠.. ^^;

루쉰P 2012-11-22 10:03   좋아요 0 | URL
ㅋㅋㅋ 동지군요. 생각만 하시다니 ㅋㅋ

떠나고 싶다는 건 답답함 인데 근데 또 웃긴 건 떠난다고 해서 지금의 마음 속의 답답함이 그 곳에만 간다면(그곳이 어디든 말이죠 ^^) 해결되리라는 것도 없는 듯해요.

뭐 차원은 틀리지만 어떤 날은 너무 힘들어, 종각의 교보문고를 가면 기분도 나아지고 책도 사니 좋아질 거야. 그래! 한번 걸어서 가보자 하고 제가 일하는 곳에서 1시간 정도 걸어서 가는 거리라 걸었는데 마음의 위안은 커녕 다리 아프고, 게다가 서점에서도 사람도 많고 정신 없고 ㅋㅋ 그랬죠.

어딘가를 간다고 해결되면 좋지만 그건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 ㅋ 이래 저래 힘들어요. ㅋㅋ

비의딸 2012-11-22 13:36   좋아요 0 | URL
장소의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특별히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일까요..?

루쉰P 2012-11-27 12:15   좋아요 0 | URL
만족 못 하는 존재인 것은 사실인 듯 싶어요. 20대 때는 저것만 해결 되면 괜찮을 것이다. 좋을 것이다. 했는데 막상 그 고비는 넘겼는데 또 30대에 새로 부딪치는 문제들 ㅋ
예를 20대 때는 알바만 많이 해서 월 100만원만 벌어도 좋겠다 했는데 30대 때는 월 100은 넘지만 만족스럽지 못 하더라구요.
그렇다고 시중에 나오는 책들처럼 현실에 만족하라 뭐 이런 류의 책은 저에게 손에 잡히지도 않구요. 가끔식 보면 이렇게 불만덩어리 인데 어찌이리도 현실 속에 중력 속에서 적응하며 이리도 잘 사냐고 웃고 있을 때가 많죠 ㅋ

비의딸 2012-11-28 13:39   좋아요 0 | URL
중요한 것은 내 내면의 원천이 빈곤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때때로 하곤 하죠. 세상 어디에서도,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더이상 슬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할테고요. 이렇게 말하고 나면 답은 하나죠. 시중에 나온 책들처럼 현실에 만족하고, 지금의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 사실 생각해보면 나름으로 현실에 적응을 잘 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잖아요..? 이뻐해야 할 것 같아요. 내 자신을.

루쉰P 2012-12-03 12:18   좋아요 0 | URL
흠, 그러고 보니 기특하네요. ㅋ 저도 나름 적응 잘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죠. 그치만 전 반전의 인생을 꿈꾸는 자인지라 지금의 저를 뛰어넘고 싶어요. 흔히들 말하는 물질적인 것의 충족이라든가, 아님 지금 직업의 상승이라 든가 그런 걸 저도 부정하는 건 아니고 더욱 그런 걸 성취할려고 하죠. 제가 뛰어 넘고 싶은 것은 현실에서 부정적인 모습으로 뭔가 피해 받은 듯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제 자신을 타고 넘고 싶어요!!!
아주 박살을 내고 싶다고 할까? 물론 저도 이쁜 구석이 있긴 해요. 책을 잘 산거나 그런 것들...ㅎㅎㅎ
하지만 저에게 80%는 불만족스러워요. 마치 대장간에서 벼려지는 칼처럼 고난이나 고민이라는 문제에 뜨겁게 달궈져서 저를 내리치고 내리쳐 명검이 되고 싶다는 다짐과 생각을 많이 해요!
흠...이거 쓰다 보니 너무 진지한데요...기특하게도 전 참 평범한 사람이에요 푸하하하..게다가 이상한 정신도 아니랍니다. -.- 이런 말하니 더 이상해 보이긴 하네요...

비의딸 2012-12-03 17:53   좋아요 0 | URL
어라..이상해 보이걸 좋아하지 않으시나봐요. 전 좀 이상해 보이고 싶어 기를 쓰는 종족인데.흐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응을 잘 하고 있는 내가 기특한거죠. 이상한 것을 용인하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 루쉰님이나 나나 그런면에서 세상살이가 힘든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혼자 잘난척 해봅니다.

루쉰P 2012-12-04 15:15   좋아요 0 | URL
ㅋㅋㅋ 이상해 보이는 걸 좋아하는 체질은 아니에요 ㅋㅋ 왜냐 그게 더 눈에 띄거든요. 전 공기처럼 저 바람처럼 있어도 없는 듯, 없으면 진짜 없는 듯,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는 피해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소유자에요 30년 인생 그리 살아왔거든요. ㅋㅋㅋ

이상하긴 이상하죠. ㅋ 근데 남들이 볼 때 이상하다는 건 절대 들키면 안 돼요~어 -.- 그러고 보니 진짜 저는 이상한 사람 같네요....

근데 비의 딸과 저도 참 이상한 사람들 같아요. ㅋㅋㅋ 이렇게나 길게 댓글을!!! 이런 건 처음이에요. 부끄럽네요 @.@

비의딸 2012-12-05 09: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게요. 저도 이렇게 길게 댓글을 나눠보긴 처음이네요. 댓글에 무척 인색한 사람인데. ㅋㅋ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을 알아본걸까요. 이젠 그만~(텔레토비버전 ㅋㅋ) 오늘 대설주의보랬는데 눈길 조심하세요.

루쉰P 2012-12-11 17:06   좋아요 0 | URL
후후 이미 대설이 훨씬 지나 버렸네요 ㅋ 눈 길은 여전히 많네요. 추운 겨울인데 비의 딸님도 따사하게 다니세요. ㅋ
 
하루키, 하루키 - 하루키의 인생 하루키의 문학
히라노 요시노부 지음, 조주희 옮김 / 아르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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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인생과 하루키의 문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 밝히고 있는 평전 형식의 전편과 하루키 책들을 요약한 후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루키의 여행법>,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먼 북소리>, <잡문집> 등 하루키의 에세이는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막상 그의 소설은 단 한편도 읽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라던가 <1Q84>등의 소설을 읽으려고 시도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처음부터 턱하고 막혀서 도저히 책장이 넘어가질 않아 매번 책을 덮곤 하게 된다. 일본 소설을 즐기는 내가 유독 왜 하루키의 책만 읽을 수 없는 것인지 도대체 그 이유를 모르겠으나, 읽히지 않는 것을 억지로 읽을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같아 하루키의 에세이를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매번 밀리언 셀러가 되고 마는 그의 소설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고 싶은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 였다. 첫번째는 <먼 북소리>에서 하루키와 그의 아내 요코의 그리스 생활을 동경했기 때문인데, 즉 그의 사생활에 좀더 근접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그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욕구에서 였다. 줄거리 요약본을 읽고 나면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하루키의 사생활과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싶은 나의 두가지 욕구는 둘 다 채우지 못했다. 오랜 세월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완고한 하루키는 이 책에서도 다른책에서 만큼만 사생활을 오픈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그의 아내에 대해서도. 때문에 평전을 자처한 이 책을 읽었어도 여전히 내게 하루키는 미지의 작가로 남는다. 또한 하루키 작품에 대한 심사평이라던가, 해설은 안그래도 비평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읽기에는 좀처럼 재미가 없었다.

또한 후편의 하루키의 작품 요약은 어쩐지 읽기가 너무나 지루해서, 그나마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싶었던 욕구를 싹부터 잘라버리기까지 했으니,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 '닥치고 하루키'를 이해하겠다는 생각이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했다. 문학사적 위치에서라던가, 평론의 지점에서 하루키를 이해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추천하고 싶다. 나로서는 그편이 오히려 하루키의 사생활과 하루키의 문학을 재미있게 느낄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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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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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했지요?

엄청나게 재미있었지요.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누가 뭐래도 최고지요. (660쪽, 시게마쓰 기요시의 해설 중에서) 

 

대단했다. 정말로 대단했다. 659쪽에 이르는 장정을 읽는동안 고요히 혼자서 맞는 새벽 여명이 오싹했고, 앞 동의 불꺼진 창이 무서웠다. 그리고 가끔은 등장인물들이 가엾기도 했다. 이를테면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도주하는 50대의 가장, 동정과 사랑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던 10대의 아기엄마, 진짜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너무 괴로워 가짜 가족을 만들었지만 역시 그 속에서도 불화했던 가짜 가족들, 그리고 그런 생활을 동경하며, '나도 아주머니들을 죽였을까요..?' 라고 묻는 어린 소년.

사회파 소설가로 불리우는 미야베 미유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물질 문명 속에 퇴락해 가는 '가족'의 이야기 였다라고 생각한다.

피를 나누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가족과 생판 모르는 남으로 구성되었지만 어쨌든 가족이라 불리우는 이들의 이야기로, 어떠한 형태의 가족이든 서로의 경계가 무너질때 파탄으로 이르는 가족간의 이야기다. 결국 가족이라는 굴레가 모든 것의 '이유'가 되더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미야베 미유키가 하고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가족이니 핏줄이니 하는 것은 누구한테나 번거롭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야,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들을 싹둑 잘라내 버리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하지만 실패했잖아."

"그래, 실패했지, 그 사람들은."

어머니는 빈 코코아컵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돌아갈 곳도 갈 곳도 없다는 것과 자유라는 것은 전혀 다른 걸 거야ㅣ" (652쪽)

 

개인의 신용과 카드문제를 다룬 <화차>를 처음 읽었을때 등골이 오싹해지던 공포를 기억한다. 이번에는 부동산이었다. 주택자금대출이니 뭐니 억지로 돈을 끌어 분수에 맞지 않는 집을 구입한 사람들과, 결국에는 그 집에 먹혀가는 사람들. 그리고 경매에 붙여진 집을 조금 싸게 구입해보겠다는 사람과, 그속에서 이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얽키고 설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지금 이시대는 자기집을 갖는 것이 너무 쉽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댄다면.

또한 그만큼 내집을 잃기도 쉽다, 끌어댄 돈들이 야금야금 나와 내 가족과 내집을 갉아먹기기 시작한다면.

그 속에서 인간은 더더욱 이기적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고급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생각한 것을 증언한다. 이에 대해 미야베 미유키는 말한다.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주의의 모든 사람들을.'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라면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도대체 이 여자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다지도 치밀하게, 장황하게, 예리하며, 끔찍하도록 공포스러운 창작을 무던히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가 두려울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아주머니들과 계속 같이 살았다면,

역시 어른이 되어서 아주머니들이 방해가 되면

나도 아주머니들을 죽였을까요?"(658쪽)

 

라고 묻는 외로운 소년의 물음에 대해 '그렇지 않다'라고, '너는 그렇게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작가는 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돈과 이기利己의 만남은 사람이 괴물이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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