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 제120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야베 미유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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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했지요?

엄청나게 재미있었지요.

역시 미야베 미유키는 누가 뭐래도 최고지요. (660쪽, 시게마쓰 기요시의 해설 중에서) 

 

대단했다. 정말로 대단했다. 659쪽에 이르는 장정을 읽는동안 고요히 혼자서 맞는 새벽 여명이 오싹했고, 앞 동의 불꺼진 창이 무서웠다. 그리고 가끔은 등장인물들이 가엾기도 했다. 이를테면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도주하는 50대의 가장, 동정과 사랑을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던 10대의 아기엄마, 진짜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너무 괴로워 가짜 가족을 만들었지만 역시 그 속에서도 불화했던 가짜 가족들, 그리고 그런 생활을 동경하며, '나도 아주머니들을 죽였을까요..?' 라고 묻는 어린 소년.

사회파 소설가로 불리우는 미야베 미유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물질 문명 속에 퇴락해 가는 '가족'의 이야기 였다라고 생각한다.

피를 나누었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가족과 생판 모르는 남으로 구성되었지만 어쨌든 가족이라 불리우는 이들의 이야기로, 어떠한 형태의 가족이든 서로의 경계가 무너질때 파탄으로 이르는 가족간의 이야기다. 결국 가족이라는 굴레가 모든 것의 '이유'가 되더라는 무서운 이야기를 미야베 미유키가 하고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가족이니 핏줄이니 하는 것은 누구한테나 번거롭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야,

그런데 실제로 그런 것들을 싹둑 잘라내 버리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하지만 실패했잖아."

"그래, 실패했지, 그 사람들은."

어머니는 빈 코코아컵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돌아갈 곳도 갈 곳도 없다는 것과 자유라는 것은 전혀 다른 걸 거야ㅣ" (652쪽)

 

개인의 신용과 카드문제를 다룬 <화차>를 처음 읽었을때 등골이 오싹해지던 공포를 기억한다. 이번에는 부동산이었다. 주택자금대출이니 뭐니 억지로 돈을 끌어 분수에 맞지 않는 집을 구입한 사람들과, 결국에는 그 집에 먹혀가는 사람들. 그리고 경매에 붙여진 집을 조금 싸게 구입해보겠다는 사람과, 그속에서 이득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얽키고 설키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지금 이시대는 자기집을 갖는 것이 너무 쉽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댄다면.

또한 그만큼 내집을 잃기도 쉽다, 끌어댄 돈들이 야금야금 나와 내 가족과 내집을 갉아먹기기 시작한다면.

그 속에서 인간은 더더욱 이기적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두려운 존재가 된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고급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가 생각한 것을 증언한다. 이에 대해 미야베 미유키는 말한다.

'자석이 쇳가루를 끌어 모으듯 '사건'은 많은 사람을 빨아들인다. 폭심지에 있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제외한 주의의 모든 사람들을.'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라면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도대체 이 여자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다지도 치밀하게, 장황하게, 예리하며, 끔찍하도록 공포스러운 창작을 무던히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가 두려울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아주머니들과 계속 같이 살았다면,

역시 어른이 되어서 아주머니들이 방해가 되면

나도 아주머니들을 죽였을까요?"(658쪽)

 

라고 묻는 외로운 소년의 물음에 대해 '그렇지 않다'라고, '너는 그렇게 잔인하고 무서운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작가는 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돈과 이기利己의 만남은 사람이 괴물이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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