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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평점 :

정치인이며 동시에 지식소매인이라고 그간 자신을 밝혀온 유시민이 출판한 책은 적지 않다. 그중 나는 2009년 출판된 <청춘의 독서>와 2011년 출판된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지식소매상이라고 불리우는 유시민의 책 이야기는 유쾌하였으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편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훌륭한 국가에서 개인의 훌륭한 삶이 가능하다며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말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은 글쎄..?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시절이든 그 이후든, 최근까지 무던히도 욕을 먹는, 그래서 조금은 지겨운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유시민은 이 책을 출판하고 난 후, 직업정치를 은퇴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쯤으로만 이해했던 나는, 그가 정치계에서 은퇴하겠다는 말에 큰울림을 받지 못했다. 정치판에서 이것저것 여러 역할을 해보았지만 설 자리가 마땅치않아 진로를 바꾸려나 생각하는 한편으로, 정치인의 말은 반쯤 의심하고 보는 자동반응이 내 속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뭐, 책이나 좀 팔아보자는 생각 아니겠어?
그러므로 당연히 <어떻게 살 것인가>도 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3월 15일 한겨레 신문 토요판에 인터뷰 기사인 '김두식의 고백'에서 '내가 졌다'라고 고백하는 인터뷰이 유시민을 발견했다. 김두식은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분재가 되가는 소나무의 슬픔'이라고 압축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는 이 책이 사실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노라고 했다. 갑자기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였다. 최근들어, '죽음'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것, 그건 어쩐지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다. 요즈음의 나는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한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불현듯 우연히 죽고 싶지는 않다. 고통스럽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하며, 또는 애증이 깃든 내 지난 삶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죽음을 맞고 싶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는 헤어짐이 얼마나 두려운지 따위의 감정을 천천히 정리할 시간이 있는 죽음이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좋게말해 지식인이고 자칭 먹물인 유시민은 도대체 어떻게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와 <국가란 무엇인가>를 쓸 당시에는 직업적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자기 검열에 의해 책이 씌여졌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직업 정치인으로서 은퇴를 선언한 이 책에서는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만큼 이 책에는 유시민의 개인사라든가, 욕망에 대해 씌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삶, 혹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자신은 훌륭하거나 행복하거나 또는 품격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지.
사람은 누구든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 아니겠냐고 유시민은 묻는다. 그러나 자기삶을 자기 방식대로 산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훌륭한 삶이라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방식대로란 자기만의 신념을 의미하며, 그 신념이 옳은 것인지는 반드시 살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옳은 신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삶이 반드시 훌륭한 것이 아니고, 훌륭한 삶이 반드시 행복한 삶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마음가는대로 솔직하게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라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칸트의 충고를 기억하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326쪽)
1장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이야기했다면,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1장이든 2장이든 3장이든 결국 잘 죽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그것은 남은 삶에 대한 애착으로 보여진다.
누구에게나 노화가 찾아오고, 그리고 죽음을 맞게 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죽음은 생물학적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현상이다. 그러나 죽음을 맞는 방식이나 과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 죽음 이후의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두려워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음을 준비하는 매일을 사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무엇을 하든 죽음을 염두해 두고 막장으로 살자는 것이 아니라, 당장 죽는다 해도 억울하지 않을 순간을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당장 죽어도 억울하지 않는 순간이란, 그만큼 나를 쏟아붓는 매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하고싶지 않은 일을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싶은 만큼, 그렇지만 품격을 잃지 않는 방법으로 행하는 것이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유시민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해했는데, 내 생각이 앞서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잘 죽고싶다는 것은 잘 살고싶다는 에두른 표현이 아닌가. 무지와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자신이 이룬 것에 만족한다면, 그 인생은 후세에 이름이 남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행복하고 훌륭한 삶이며, 더불어 아름다운 죽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 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할 수록, 어떻게 살지를 숙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삶이 지겨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겨워 죽음 또한 고민하게 된다.
유시민 자신은 생전 장례식을 흥겨운 파티로 열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자기 자신도 충분히 음미하며, 남겨지는 사람들에게도 애통함이 아닌 유쾌한 기억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죽음을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지금 현재의 생각이고, 세월이 흘러 좀더 죽음에 가까워지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