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밑의 책 -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윤성근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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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윤성근은 헌책방 주인이라 했다.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된 사실이지만, 은평구에 위치해 있다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진 헌책방이다. 인터넷 서핑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에는 헌책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소품들도 많이 있고, 포근한 느낌의 소파와, 약간의 간식도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문화 공간이며, 때때로 전시와 공연을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이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지금껏 내가 다녀본 오래된 빵냄새가 나는 골방같은 헌책방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주인장은 이 책 이전에 이미 두 권의 '책에 관한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책에 관한 책을 유별나게 좋아하긴 하지만, 특히 이 책이 탐났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많이 읽히는 책이 아닌 좀 색다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듯한 지은이의 이력이 탐났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내 기대가 실망스럽지 않을만큼 충분히 색다르고, 어쩌면 엉뚱하기까지 한 책 목록을 얻었다.

 

흔적없이 사라지는 스파이기술과 암호 해독을 위한 책이라던가, 방안에 앉아 세계를 여행하는 책, 온갖 잡다한 것들을 모으는 콜렉터에 관한 책은 그다지 놀랍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악령의 힘을 빌리는 흑마술에 관한 책, 좀비와 목숨을 건 사투를 담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1700년대 후반에 800명이 넘는 아기를 받은 산파의 일기 등에 비한다면이야.

낯설고 새로우며, 엉뚱 황당한 이 책들은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닌지라 꼭 읽어봐야겠다 라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지은이의 책방을 찾아와 '재미있는 책을 추천해 줄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침대 밑의 책>을 본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 글쎄 '코 파기의 즐거움'에 관한 책이라니!

 

지은이 추천의 엉뚱 발랄 유쾌 통쾌 신기한 책목록을 살펴보다가, 나름 관심이 가는 책을 찾아내었다. <도구와 기계의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 게을러서도 그렇지만 두려움 때문에도 기계 종류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데, 지은이가 <모험도감>을 발견하고, 어린시절에 <모험도감>과 같은 책을 사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했듯이 나도 그랬다. 엄마가 진작에 <도구와 기계의 원리> 같은 책을 사주었더라면, 훌륭한 사람이 됐을것이라는 기대는 접어두고라도, 과학과목에 그토록 경기를 일으키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당장 사보고싶은 책이지만, 그러나 이 책은 현재로서는 절판된 책이다. 인터넷 헌책방을 두루 살펴본 결과 원래 책 가격의 네배를 훌쩍 넘는 이 책을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고야 만다. 참으로 안타까운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헌책방 순례를 해보지 않은 자 없겠으나, 나 역시 한때는 헌책방에서 숨어있는 책 찾기를 즐겼었다. 정기적으로 신촌에 줄져있는 헌책방들을 찾은 것은 물론이고, 인천 배다리, 부산의 보수동까지 원정을 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읽기 위한 책을 찾는 것인지, 수집을 위해 책을 사냥하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나름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희귀본이나 귀한 책을 소장하고 싶은 욕구보다는 읽고싶은 책을 읽어야 겠다는 욕심이 크다는 깨닫음이 왔다.

그 후로 헌책방 순례는 그만두고 말았다. 정기적으로 책을 사다 쌓아놓기보다는 그시간에 한권이라도 더 읽자는 쪽으로 기울은 것이다. 읽고 싶은 책중, 이미 절판된 책은 인터넷 헌책방을 이용하곤 하지만, 여간 운이 좋지 않은 다음에야 인터넷 헌책방을 통해서는 절판본을 구하기가 쉽지않다. 해서 한번씩 헌책방을 순례할 필요를 절감하고 있는 이때에, 어째서 헌책방들은 모두 서울의 북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것인지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헌책방을 따라 이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가까이에 아무때고 들러볼 수 있는 헌책방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을 읽는 목적은 지식을 얻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식은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책 한 권을 읽고 지식을 얻었다면 그는 작은 것을 얻은 것이다.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자기 발밑만 보는 것과 같다. 책 한권은 브라질 밀림처럼 수많은 생명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하나의 우주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짚어가며, 소리 내 읽고, 또 다른 어떤 방법으로든 읽을 수가 있다. 그럴때마다 책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상 모든 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254쪽) 

 

나 역시 책을 읽는 이유가 지식이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책을 읽음으로써 알게되는 것들은 참으로 많지만, 그보다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독서를 선호한다. 때문에 어떤 책을 읽든 지은이의 입장에서 책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내 나름의 느낌을 소중히 하는 독서를 강조하는 지은이의 생각이 나와 꼭 같아 몹시 기뻤다. 뿐만아니라 나로서는 어쩌면 평생 읽지 않을지도 모르는 색다른 책들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음, 뭐랄까. 늘 월넛 아이스크림만 먹다가, 알갱이가 팡팡터지는 아이스크림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기분이랄까.

 '어느 지하 생활자의 행복한 책일기'라는 부제를 단 윤성근의 또다른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과, <심야책방>을 기어코 지르고 말았다. 커다란 저택의 한없이 많은 방문들을 일일히 열어보는 것처럼 '책에 관한 책' 이야기는 아무리 읽어도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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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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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선물받았던 때가 고등학교 1학년 즈음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반 친구로 부터 받은 책이였는데, 오랜세월 책꽂이만 장식했던 책이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친구로부터 받은 선물이 였고, 당시 고전을 즐겨읽지 않기도 했으며,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이 다소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그토록 오랜세월을 책장에서 얌전하게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을 수 있었다. 영화로도 상영되었던 이 유명한 책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어디에선가 읽은 추천글로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이미 오래 전에 읽었어야 했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빠져 '나에게도 이런일이 일어나기'를 은연중 기대하던 그 시절에 읽어야 했다. 할리퀸 로맨스와 드라마 사이를 오가며 밀고 당기는 쾌감을 알았던 바로 그 시절, 친구로부터 선물받았던 그 즈음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충분히 감동을 받았을테고, 그로 인해 훨씬 더 바람직한 연애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순수한 사랑, 사랑의 진실 혹은 결실 따위를 믿지않는 지금에 와서는 엘리자베스의 당돌한 사랑이 오히려 진부하게 여겨졌다. '아, 또 사랑 타령이라니.'

 

근대 여성의 부당한 처지를 고발하고, 결혼을 신분상승의 기회가 아닌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동등한 파트너의 관계로 보고자 했던 제인 오스틴의 시도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이었을 이 소설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울림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베넷가의 다섯딸들을 통해 나를 볼 수 있었다. 온화하고 절대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감춰진 진실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싶어하는 제인의 품성을 담고 싶어하는 나는 오히려 호전적인 엘리자베스와 비슷한 성격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할때 마다 엘리자베스의 말과 행동이 편하지 않았다. 타고난 통찰력과 깊은 사고로 누구보다 사리판단이 분명하다고 자만하는 엘리자베스는 사실 편견덩어리이며, 오만한 자아의 표상이다. 그녀에게서 그러한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던 것이다. 또한 경박하고 경솔하며, 무지하고,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한 리비아와 같은 기질도 내 속에 있다는 것과 재능도 소양도 없으면서 허영심만은 메리 못지 않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흔히 이해하는 방식으로 <오만과 편견>을 읽지는 못했지만, 다섯자매를 통해 나를 이해하는 것 만으로도 큰 즐거움이었다고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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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시계 - 개정판
앤 타일러 지음, 장영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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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종이 시계>를 읽은 것은 2003년 출간된 책이였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서 <종이 시계>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읽은 책으로 남아있다. 아마도 중년부부의 일상적 감정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어린시절에 읽은 책이라서 오래전 읽은 책이라고 기억하는가 보다.

2013년 올해, 새롭개 재출간된 <종이시계>를 다시 읽게 되었는데, 역자가 고 장영희 박사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처음 이 책을 읽은 그 시절에는 역자가 누구건 관심도 없었지만, 장영희가 누군지도 몰랐었다. 고 장영희 박사는 소아마비 장애와 유방암, 척추암, 간암의 투병속에서도 번역가이며, 수필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간암으로 2009년에 사망했다. 나는  그녀의 책 중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감동깊게 읽었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 장왕록 선생도 번역가이며 영문학자 였다. 나는 그의 수필집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좋아한다.

 

 

 

 

이번에 다시 읽은 <종이시계>에서 주인공 매기의 오지랖이 어느정도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완전 공감은 쉽지 않다. 매사에 남일에 관심이 많은 매기는 초점에서 약간이라도 벗어나 잘못 꼬인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자기 관점에서 제자리로 돌려 놓고 싶어한다. 이러한 오지랖이 지나친 관심병, 혹은 간섭병처럼 여겨지는 것은 어린시절이라고 기억되는 미혼때나 한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이나 여전하다. 단지 그녀는 자기뜻대로 모든것을 조정하고 싶었던 것이라 보여지는 것이다. 마치 우리 엄마처럼. 혹은 엄마처럼 행동하고 싶어하는 나처럼.

 

세레나가 말했다.

"모두 그대로 내버려두란 말이야! 그것이 내가 하는 식이야.

난 오늘 아침에 린다의 아이들이 뒷담장에 올라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저런, 안으로 불러들여야겠어 하고 생각했지.

그 예쁘고 작은 양복들이 찢어질 게 분명했거든. 하지만 난 다시 생각했어.

아냐, 잊어버리자. 내 일이 아니다 하고 말이야.

너희 애들도 다 떠나가게 내버려두라구."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매기가 말했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117쪽)

 

그녀의 오지랖이 절정을 향해 치닫으며, 오랜 친구인 세레나의 남편 장례식을 끝내고 쫓기듯 돌아오는 길에 만난 흑인 노인 오티스에 관해서는 읽는 나조차도 그녀의 남편 아이러만큼 짜증이 났다. 어째서 매기는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걸까, 단순한 관심이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어떤 관념병에라도 걸린 여자처럼 느껴졌다.

오지랖넓은 음모의 여왕, 매기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이라고 굳게 믿기에 그처럼 거침없이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선의의 거짓말은 당연한 것이라는 듯. 그것이 '선의'에서 출발하는 관심임에도 불구하고, 관심의 표적이 되는 입장에서는 내심 좋은 기분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건, 아들이건, 이혼한 전 며느리건 말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매기의 오지랖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도리질 치다가도 문득, 그녀의 간섭이 나에게도 미치기를 꿈꾸는 순간이 있었다. 지나친 관심이지만 그것을 충분히 사랑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누군가 내 인생에 매기처럼 마구 침범하려 든다면, 절대 허용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종이시계>의 원제는 <숨쉬기 연습>이다. '숨쉬기 연습'이라는 원제가 우리나라에서 자칫 건강법으로 읽힐 수 있어,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저자가 추천한 제목이라고 한다. '숨쉬기 연습'과 '종이시계'는 순환과 반복, 즉 '일상'을 의미한다. 이 이야기는 친구 남편의 장례식을 다녀오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지만, 하루 속에서 매기와 아이러가 그간의 일생을 일상처럼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생은 어떻든 자신이 원하는대로 원하는 만큼 풀려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을 들려준다 함은 어쩌면 지루함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다. 허를 찌르는 듯한 저자의 유머감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어이없게 웃다가도 간간히 가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것. 매기가 일하는 요양원의 한 노인은 천국에 가면 생전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자루에 넣어 성 베드로가 돌려준다고 믿는다. 매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자루에는 오빠의 부인이 가져간 살랑거리는 녹색 원피스라던가, 연애할 때 아이러에게 받은 첫번째 선물인 작은 고양이 '솜털'이 들어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뿐만 아니라 바람 한 병, 신선한 눈 한 박스, 그리고 성가대 연습을 마치고 아이러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줄 때 그들의 머리 위로 비행선처럼 떠돌던 달빛에 젖은 구름 등이 자루에서 나올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내 자루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꼬마시절 엄마처럼 여기던 할머니를 떠나올 때 싸준 수저세트와 예쁜 한복 한벌, 결혼식 전에 택시에 두고내린 투피스, 목욕탕에서 잃어버린 남편이 처음으로 사준 반지, 그 겨울 수정바다라고 불렀던 곳에 점점이 뿌려져 있던 바위들, 기억에 없는 따뜻한 엄마의 품.. 같은 것들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할때면 나는 자못 행복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앤 타일러의 <종이시계>를 10년만에 다시 읽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10년만에 다시 읽은 <종이시계>에서는 매기에 완전 공감하지 못했지만, 10년 후 다시 읽는다면 어쩌면 매기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때는 나도 누군가의 인생을 내 뜻대로 옮기는 것이 서로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안그랬으면 좋겠다. 영원히 매기와 완전공감할 수 없다 해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종이시계>를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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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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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며 동시에 지식소매인이라고 그간 자신을 밝혀온 유시민이 출판한 책은 적지 않다. 그중 나는 2009년 출판된 <청춘의 독서>와 2011년 출판된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지식소매상이라고 불리우는 유시민의 책 이야기는 유쾌하였으며,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편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훌륭한 국가에서 개인의 훌륭한 삶이 가능하다며 원칙과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말했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은 글쎄..? 그는 보건복지부 장관시절이든 그 이후든, 최근까지 무던히도 욕을 먹는, 그래서 조금은 지겨운 정치인이라고 생각했다.

유시민은 이 책을 출판하고 난 후, 직업정치를 은퇴하겠노라 선언했다. 그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쯤으로만 이해했던 나는, 그가 정치계에서 은퇴하겠다는 말에 큰울림을 받지 못했다. 정치판에서 이것저것 여러 역할을 해보았지만 설 자리가 마땅치않아 진로를 바꾸려나 생각하는 한편으로, 정치인의 말은 반쯤 의심하고 보는 자동반응이 내 속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뭐, 책이나 좀 팔아보자는 생각 아니겠어?

그러므로 당연히 <어떻게 살 것인가>도 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3월 15일 한겨레 신문 토요판에 인터뷰 기사인 '김두식의 고백'에서 '내가 졌다'라고 고백하는 인터뷰이 유시민을 발견했다. 김두식은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분재가 되가는 소나무의 슬픔'이라고 압축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는 이 책이 사실은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노라고 했다. 갑자기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였다. 최근들어, '죽음' 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것, 그건 어쩐지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사실이 그렇다. 요즈음의 나는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한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불현듯 우연히 죽고 싶지는 않다. 고통스럽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하며, 또는 애증이 깃든 내 지난 삶과의 이별을 준비하며 죽음을 맞고 싶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는 헤어짐이 얼마나 두려운지 따위의 감정을 천천히 정리할 시간이 있는 죽음이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로서는 좋게말해 지식인이고 자칭 먹물인 유시민은 도대체 어떻게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와 <국가란 무엇인가>를 쓸 당시에는 직업적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자기 검열에 의해 책이 씌여졌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직업 정치인으로서 은퇴를 선언한 이 책에서는 정치적 자기 검열 없이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만큼 이 책에는 유시민의 개인사라든가, 욕망에 대해 씌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삶, 혹은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자신은 훌륭하거나 행복하거나 또는 품격있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앞으로의 삶은 어떻게 살 것인지, 그리고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것인지.

 

사람은 누구든 자기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 아니겠냐고 유시민은 묻는다. 그러나 자기삶을 자기 방식대로 산다고 해서 그것을 바로 훌륭한 삶이라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방식대로란 자기만의 신념을 의미하며, 그 신념이 옳은 것인지는 반드시 살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옳은 신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삶이 반드시 훌륭한 것이 아니고, 훌륭한 삶이 반드시 행복한 삶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마음가는대로 솔직하게 자신만의 삶을 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라는 것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칸트의 충고를 기억하자.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스스로 세운 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도록 하라. 어떤 경우에도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326쪽)

 

1장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이야기했다면,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때, 1장이든 2장이든 3장이든 결국 잘 죽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고, 그것은 남은 삶에 대한 애착으로 보여진다.

누구에게나 노화가 찾아오고, 그리고 죽음을 맞게 된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든 죽음은 생물학적으로 모두에게 동일한 현상이다. 그러나 죽음을 맞는 방식이나 과정은 누구에게나 동일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 죽음 이후의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두려워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음을 준비하는 매일을 사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무엇을 하든 죽음을 염두해 두고 막장으로 살자는 것이 아니라, 당장 죽는다 해도 억울하지 않을 순간을 사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닌가 말이다.

당장 죽어도 억울하지 않는 순간이란, 그만큼 나를 쏟아붓는 매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하고싶지 않은 일을 타인의 시선이나 기대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싶은 만큼, 그렇지만 품격을 잃지 않는 방법으로 행하는 것이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유시민의 이야기를 이렇게 이해했는데, 내 생각이 앞서 잘못 알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잘 죽고싶다는 것은 잘 살고싶다는 에두른 표현이 아닌가. 무지와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자신이 이룬 것에 만족한다면, 그 인생은 후세에 이름이 남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행복하고 훌륭한 삶이며, 더불어 아름다운 죽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더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할 수록 삶은 더 큰 축복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할 수록, 어떻게 살지를 숙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삶이 지겨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겨워 죽음 또한 고민하게 된다.

 

유시민 자신은 생전 장례식을 흥겨운 파티로 열어 자신의 삶과 죽음을 자기 자신도 충분히 음미하며, 남겨지는 사람들에게도 애통함이 아닌 유쾌한 기억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죽음을 먼 이야기로 생각하는 지금 현재의 생각이고, 세월이 흘러 좀더 죽음에 가까워지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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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약국의 딸들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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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이지만 나남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으로 읽었다고 기억하는 <김약국의 딸들>을 마로니에북스의 재 출간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그러나 읽었다는 나의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읽지 않았음에도 그 유명세로 인해 읽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다 깨끗이 잊은것인지, 도통 내용이 기억이 나질 않고 마치 처음 읽는 책처럼 낯설었다. 정말 읽었던 책이라면 한장면이라도 기억이 나야 했을 것인데 말이다. 어쨌든 새로 출간된 <김약국의 딸들>은 양장본이고, 2003년도 판보다 더 깔끔한 디자인이다.

이 책은 박경리의 초기 장편으로,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씌여진 것이며, 배경 또한 일제시대이고, 항구를 끼고있는 소도시 통영에서도 한 마을의 이야기이다. 때문에 꼭 사투리나 방언, 혼용된 일본어 뿐만 아니라, 시대적 지리적 배경으로 인해 이해되지 않는 용어들이 많았다. 요즘 푹 빠져있는 러시아 문학보다도 더 낯선 용어들이 많았다는 것은 아니러니가 아니랄 수 없다. 때문에 용어해설이 페이지마다 있지않고 마지막에 한꺼번에 정리되어 있어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책장을 넘겨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싱둥겅둥 웃는다거나, 다글다글 볶는다거나, 감실하게 햇볕에 글은 얼굴 등의 풍부하고 아름다운 어휘와 표현으로 박경리만의 글의 맛을 느낄수 있기도 했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 살해혐으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쟁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쟁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예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408쪽)

 

<김약국의 딸들>의 줄거리는 둘째딸 용빈이 한 위와 같은 고백으로 함축된다. 약국으로 명성을 얻었고, 그후에는 배를 부리는 통영의 유지였던 김약국 집이 몰락해 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각자 다른 기질의 딸들이 살아가는 혹은 죽어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과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비상을 먹고 자살한 할머니로부터 시작되는 김약국 집안의 불운은 일제라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딸들 각각의 불행을 그린다.

한 자매이지만 각각 다른 기질을 타고난 다섯명의 여인은 꼭 자신의 기질 때문으로만 불행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불이익과 함께 시대적 문화적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 불행해지기도 한 것이다. 그렇게 볼때 나는 첫째딸 용숙의 탐욕스러운 기질은 어쩌면 가장 합리적인 삶의 방법으로 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누구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탐욕스럽게 보든 천박하게 보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않은가 말이다. 탐욕으로 똘똘뭉친 용숙은 스스로 일어나는 힘을 간직한 것이라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고 싶다.

다섯 딸들 중 유독 넷째딸인 용옥이 가엾게 여겨졌는데, 그는 소위 '착한'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싶었던 가장 가엽고, 어떻게 보면 가장 불행한 여인이 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물이 훤칠하지 못했고, 성격적으로 쾌활하지도, 영민하지도 못한 그저 눈에 띄지않는 넷째 딸이였다. 그녀가 부모의 눈에 혹은 타인의 눈에 들 수 있는 방법은 고운 심성을 드러내는 일이였을 것이다. 그녀는 짧을 인생을 그렇게 자신의 속마음 한번 제대로 들어내지 못하고 침몰한 것만 같아 내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런가 하면 할머니의 운명을 되풀이 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이루어지지 못하고 미치고 마는 셋째딸의 천진함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다. 내내 용란을 마음에 두었던 용옥의 남편 기두는 용란이 미치고 난 후에야 그녀를 온전히 거둘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은 사랑 이야기지만, 전혀 사랑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그보다는 기질이 다른 다섯자매가 시대에 순응하거나, 혹은 불응하며 자신의 삶을 지어가거나 혹은 마감하는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남 하동을 지날때면 <토지>를 생각하듯, 통영을 생각할 때면 자연스럽게 김약국 집의 다섯딸들이 떠오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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