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평전
최하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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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다가, 정작 내가 김수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았다. 경찰이나 관리에게는 힘도 못쓰면서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에게 화를 내고 있는 자신의 비굴함을 자책하며 자신이 얼마나 작으냐고 묻는 시, <어느날 고궁을 나오며>를 읽고 느낀 전율과 그가 만취한 채로 버스에 치여 어느날 비명횡사했다는 것 외에는 그가 <풀>의 김수영이라는 것도, '자유'를 떠올리게 하는 시인이라는 것도 몰랐으며, 어쩌면 김수영이 시인이였다는 것조차도 제대로 몰랐다는 것이 맞다. 나는 어렴풋하게 그가 저널리스트이거나, 혹은 저항작가 이거나 쯤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김수영의 시집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거대한 뿌리>라는 제목의 시집인데, 그중 제대로 읽은 시라고는 <어느날 고궁을 나오며> 정도이고, 산문같기도 시같기도 한 다른 작품들은 읽어도 공감하지 못하고 무슨말인지 이해못해 오랫동안 던져두었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한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2003년 민음사에서 출판된 김수영 전집 중 2권 '산문'을 가지고 있다. 그 역시 언젠가 김수영을 이해하고 말겠다고 몇년 전 구입한 책이지만, 아직 목차조차도 읽지 못하고 책장에 고히 모셔두었다.

 

 

그러니까 내게 김수영이란 알고싶지만 당장은 아닌, 혹은 모르지만 아는척에 두고 싶은 '허영'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강신주가 쓴 <김수영을 위하여>를 읽게되자, 작정하고 김수영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부랴부랴 김수영에 관한 책을 찾았다. 1981년 시인 최하림이 쓴 <김수영 평전>이 2001년에 실천문학사에서 개정되어 나왔지만, 어쩐일인지 책은 품절된 채 어느곳에서도 구입할 수 없었으며, 그나마 도서관의 책은 관외대출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운 좋겠도 중고서점에서 <김수영 평전>을 만났다.

 

환경 속의 인간이라고, 타고난 기질보다는 나고 자란 환경과 주변체계로 부터 한사람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나는 평전을 좋아한다. 물론 주변체계가 아무리 훌륭했더라도, 받아들이는 본인의 기질이 문제가 있다면 그역시 무용지물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는 때때로 내 자신이 자라온 환경이 '나'라는 인간을 만드는데 그다지 썩 훌륭하지는 않았다고 믿음으로써 나의 현재를 위로한다. 또 하나 평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나는 훌륭하지 못한 체계 속에서 성장했지만, 아이에게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되도 않는 욕심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전을 읽을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주변환경과 관계 없이 타고난 '기질'이 중요하더라는 것이다. 되는 나무는 어떻게든 되더라는...

 

 

김수영은 자유주의자 였다. 그가 자유주의자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남으로 부터 영향을 받기보다는 고유한 자신의 성질을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구한말 땅부자였던 조부 아래서 태어난 첫자식 아닌 첫 자식으로 허약한 체질 때문에 더더욱 귀하게 자랐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어린시절 그는 항상 가족의 중심이었다. 그가 죽음을 두려워 했고, 돈벌이를 위해 글을 쓰고 번연을 하는 것을 고역으로 여겼으면서도 원고료를 목표로 작업을 계속했으며, 원고료 독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린시절 허약한 자신을 중심으로 돌던 가족의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그가 자유주의자일 수 있었던 것은 김수영이 6.25 시절 의용군에 강제로 징집되었으며, 목숨을 건 탈출 시도와 실패, 그리고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이념은 인간의 자유에 걸림돌일 뿐이다. <김일성 만세>라는 시는 그래서 탄생된 시이다. 자유정신은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에 있으니까.

모든 억압으로 부터의 해방, 그것은 내가 추종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모든 권력으로 부터의 해방. 내 어린시절에는 무슨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권력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일까.

그러나 그는 아나키스트는 아니였다. 그 역시 돼지같은 설렁탕 집 주인년에게 작은 권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적 권위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김수영은 한때 자신을 배신했던 아내 김현경을 용서하지 못했으면서도 수용했다. 무엇때문에..? 최하림이 정리한 <김수영 평전>에서는 그 내용을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다. 그저 아내의 물질적 욕심을 책망하는 시를 쓰기도 하고, 아내에게 작은 폭군처럼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던 내용을 적고 있기도 하지만, 아내의 배신에 대해 보인 김수영의 정신적 방황이나 고뇌는 의외로 소소하게 다뤄졌다. 아마도 이 책의 상당부분이 그의 노모와 아내의 구술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혼자 짐작할 뿐이다.

책에서는 문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근대시와 현대시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시인들과 그가 동시대 인물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새삼 놀라기도 했다. 김수영이 이렇게 오래전 또는 아주 최근의 시인이었던가. 살아있다면 팔순을 넘겼겠구나. 어쨌든 그는 행복한 시인은 아니였던 것 같다. 시대적으로 불행했으며,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그가 느낀 소소한 행복은 어떤 것이였을까. 그에대해 더 많은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이제 <김수영 위하여>를 읽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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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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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교수의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를 강렬한 느낌으로 읽은 나는 저자 강연회를 찾아가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 후, 성적소수자와 장애인, 그리고 어린 학생들의 인권이야기까지를 다룬 <불편해도 괜찮아>를 찾아읽었지만, 강렬했던 전작에 비해 무난하게 읽혀진 인권 이야기로 김두식 교수에 관해 조금 심드렁해졌다. 그렇더라도 처음읽었던 김두식 교수의 책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신작을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권위로 똘똘뭉친 그나이 또래의 지식인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 책을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역시 김두식'이었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숨겨진 욕망에 대해 자연스러워지자고 말하는 그는 우선 자신의 감춰진 욕망을 발가벗기는 일부터 놓치지 않고 있다. 그의 글을 따라 읽다보니 나 혼자서만 욕망의 덩어리, 욕심 덩어리, 부끄러움 덩어리가 아니였다는 안도가 들었다. 영화 <색.계>의 탕웨이를 보고 욕망으로 부터 자신을 발가벗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김두식 교수의 고백은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커다란 권력을 쥐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소한 권력을 쥐게 되었을 때,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행하는 폭력에 가까운 권력행사는 참으로 추하고 끔찍하다. 또한 '계'에 묶여, 자신에게 조차도 자연스럽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의 잘못이나 치부를 드러내고 욕하는데 무척이나 부지런하다. 그러한 부지런함은 오히려 지식인일수록, 혹은 진보적인 사람일 수록 더 극심하게 나타나곤 한다라고 김두식 교수는 말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뒤로 감춘채로 상대방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멀리갈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나 자신이 지금껏 그래왔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욕망을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도록 해준 김두식 교수의 이번 저작에 박수를 보낸다. 십년 묶은 체증은 이런 책을 만났을때 내려가는 것이 아닐까.

 

특히 나는 8장 '몰락의 규범, 규범의 몰락'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장을 읽으며 어버이 연합의 어르신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밤이건 낮이건 검은 선글라스로 중무장한 어르신들은 각종 집회에 정의의 사도마냥 나타나서 자식들을 부끄럽게 만들곤 하는데, 흔히 어르신들이 용돈 몇푼에 현혹이 된다라고들 생각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그분들은 그분들 나름의 '계'가 있는 분들이며, 그러한 행동이 나라를 위한 애국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나서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규범에의 맹목적인 복종으로 '악의 평범성'을 예루살렘이 아닌 대한민국 서울바닥에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일생에 꼭 써야할 '지랄 총량의 법칙'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점잖다는 평을 듣는 나의 남편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그는 도대체 '지랄'을 언제 다 써버릴 것인가 은근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부디 나를 만나기 이전에 쓸만큼의 '지랄'을 이미 다 써버렸기를 바라면서, 그에게 제발 이 책을 읽어달라고 추천할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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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지구마을 여행 - 꼭 한번은 떠나야 할 스물다섯, NGO 여행
이동원 지음 / 예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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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이었다. 달랑 80만원 들고 세계 여행을 떠난 22살의 청년에게 홀딱 반했던 것은. 

그 청년은 영어 울렁증 상근이의 자급자족 세계여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80만원으로 세계여행>이란 책의 주인공이었는데,

당시 초딩2학년 아들과 밤마다 한 챕터씩 읽으며, 종횡무진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로부터였다. 각종 여행기를 섭렵하게 된 것이.

몇년간 여행기를 두루 읽다보니 이제는 누가나 가는 해외여행일뿐더러,

아무나 쓰는 해외여행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여행기에 시들해졌다. 사진으로 도배된 책은 무겁기도 했고, 어느곳이건 여행기란 다 똑같았다.

개인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일뿐. 더이상 공유할 즐거움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일상의 탈출을 곧바로 '일탈'로 연결하는 버릇이 남아,

가끔은 어디 색다른 여행기 없을까, 뒤져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제목에서부터 까놓고 조금 다른 여행이라길래 관심을 갖고 목차를 살펴보았다.

오, 이것은 그이름도 공정하다는 NGO 체험 여행기. 욕심많고 오지랖 넓은 스믈다섯 청년이 쓴 여행기였다.

곧바로 4년 전, 밤을 밝히며 읽었던 '상근이 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여행서에 대한 흠모가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누구나 관광이 아닌 여행을 꿈꾼다. 그것도 진짜 현지의 삶을 체험하기를 바라면서.

나 역시 몇번의 해외여행길이 관광이 아닌 여행이길 소원해지만,

 계획을 짜고 비행기를 탈 무렵이면 여행이 아닌 관광이라는 것에

안도아닌 안도를 하기도 했다. 여행길이 고행길이 되어서는 곤란하니까.

 

조금 다른 여행을 꿈꾸었던 스물다섯의 청년 이동원은 말그대로 소통하는 여행,

부대끼는 여행을 실제로 해 내었는데, 이 책이 그 결과다.

그리고 똑같은 여행기에 지쳤던 나는 아주 많이 다른 이 여행기가 썩 마음에 든다.

한때 상근이 형에게 쏙 빠졌던 것처럼 이번엔 동원이 형에게 홀딱 반하고 만 것이다.

거북이를 지키고, 곰을 지키고, 물을 지키고, 평화를 지키고, 지구를 지키고,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을 지키려는 치기어린 이 청년은

꿈도 많고, 정도 많고, 눈물도 많다. 거기다 아줌마처럼 오지랖도 무척이나 넓었다.

가는 곳마다 다시오겠다는, 꼭 돕겠다는 약속을 남발한다.

그러나 그 모습이 밉지 않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들이 외려 듬직할 지경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걸은만큼 인생이다. 말해 뭐할까. 토익도 좋고, 스펙도 좋다.

다 좋은데 자기 자신하나 '주체'하지 못하면서 머리만 비대해진 어른이 되면 정말 잘 먹고 잘 살수 있는 걸까.

옆이나 뒤를 볼 수 없도록 차안대를 쓰고 달려가는 경마장의 말들처럼 바쁜 청춘들이

좀 많이 읽어줬으면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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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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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15 쪽) 페터 한트케의 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인용된 글이 조경란의 <백화점>을 읽는 나흘동안 쭉 내 삶을 지배하는 느낌이였다. 목욕탕을 갈까, 맛사지를 받아볼까, 미용실을 갈까... 어느 곳엘 가야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속된 내 욕망이 부드럽게 위안받을 수 있을까. 쇼핑을 하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물건 자체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 물건을 사는 순간,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을 도는 동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위안받고 있다는 느낌을 쫓는 것이 아닐까.

서유미의 <판타스틱 개미지옥>이 백화점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을 이야기했다면,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들>은 인간의 속물성에 관해 이야기 했다. 속물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를 전부 포함해서. 앞의 두 책은 소설이지만, 조경란의 <백화점>은 소설이 아니다. 말하자면, 백화점의 모든 것과 함께 조경란의 개인적 쇼핑 취향, 몇몇 작품을 쓰는 과정 등을 기록한 에세이 이다.

이전에 조경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식빵굽는 시간>. 아주아주 오래전 읽었던 책이라 사실 기억에 거의 없다. 빵굽는 냄새와 함께 시작하는 사랑 이야기 였던가, 이제막 끝나가는 사랑 이야기 였던가.... 다만, 그 후에 조경란의 소설을 찾아 읽은 일이 없고, 선물로 받은 근작 <복어>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릴 정도로 작가 조경란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백화점>이 지금껏 조경란이 써온 소설보다 잘 된 글이라는 서평을 읽었다. 그 글과 함께 백화점, 쇼핑, 욕망 따위에 대한 관심이 함께 엮여 부랴부랴 <백화점>을 읽었다.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 깊이 매몰된 묘사들이 많은 <백화점>을 통해서 볼때, 그녀의 소설은 확실히 내 스타일이 아닐것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적인 에세이로 볼 수 있는 이 책은 확실히 내게 좋은 책임은 분명하다.

나는 너무 여성스럽거나,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어하거나, 여성스럽게 보여지는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너무 여성스럽고,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어하고, 여성스럽게 보여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 속에 숨겨진 남성성을 나 자신이 알고 있는데, 어디서건 나약하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보여지는 내 모습을 싫어하는 것이다. 일부러 거친 표현을 써보기도 하고,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마지막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 여성다움을 과시하는 꼴이라니...

<식빵굽는 시간>이후 조경란의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서 나의 내면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싫어하면서 매번 나를 드러내고 방어하는 무기로 삼고 있는 나의 여성성을. 반복노동인 단순하고 손을 움직여야 하고 몰두할 수 있으며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좋아하고, 논리나 반직관적인 인식을 요구하는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것은 영 질색이며, 독서는 취미라기보다 생활이고, 음악감상은 좋아하지만 감상의 수준은 되지 못하며, 남영동의 디자인 학원을 다닌 것까지 꼭 나와 같다. 거기에 정신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쇼핑 습관까지도 비슷했다. 동질감은 반가움인 동시에 거북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조경란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작가와는 관계없이 무척이나 개인적인 내 취향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것만 뺀다면, <백화점>은 훌륭하다. 만물상이라고 해석되는 백화점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고 해도 좋다. 외관과 내부, 마케팅 기법,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장소, 백화점에서 보여지는 일을 하는 점원들과, 보여지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까지. 노동에 관해서라면 조경란의 촛점은 비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하에 있는 집배실과 상품관리부를 나올 때 더없이 침울해졌다. 누구라도 이런 지하에서 하루종일 근무하고 싶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일 거다. 매번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다.(334쪽)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어려움을 읽으며, 산업혁명기에 조지 오웰 자신이 파리의 식당 지하실에서 접시를 닦는 노예와 같은 노동을 하며 노동의 가치에 대해 서술한 책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떠올랐다. 물론 오웰이 르뽀르타쥬 작가이긴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다 르뽀르타쥬 작가여야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현실을 고발하고, 책을 읽는 이들을 경도시키며, 새로운 길을 생각하게 하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조경란이 백화점에서 노동을 경험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조경란의 <백화점>이 이용객, 쇼퍼shopper, 소비자로서만 촛점을 맞춘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사람들은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얻어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파스칼의 말을 인용한 글을 보면서 다시 피터 한트케의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흘간을 그러한 욕망 속에서 약간의 쇼핑을 했고, 맛사지를 받았다. 내가 그정도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뭏든, 정신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매번 줄타기를 하고 있는 흔들리는 자아를 갖은 나에게 무척 도움이 된 책인 것은 확실하다. 이어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과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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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줄에서 통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시詩적 생각법'
황인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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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있다. 한편의 시를 읊고, 시와 철학의 조우를 통해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게하는 책으로 철학박사 강신주의 책이다. 강신주는 이 책으로 제법 재미를 보았던 모양으로, 1년 후인 2011년에 후속편 격인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이라는 책도 냈다. 강신주는 철학책과 시가 많이 읽히지 않는 이유로 읽는 이가 시나 철학으로 부터 일상적 삶을 동요시키는 듯한 불쾌감을 받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지만, 내 생각에는 오히려 철학과 시가 삶을 동요시키기에는 너무도 관념적이거나 혹은 현학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일상은 보다 피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강신주 박사의 두책을 다 읽어보았는데, 그가 일러주는 시 한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어렵지 않게 내 삶에 투영되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시 한 줄에서 통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즐거운 마음으로 펼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강신주의 책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인문서나 철학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간지 기자생활을 한 후, 문학경영연구원을 창업한다. 문학의 실용화라고 볼 수 있겠는데, 말하자면 밥 안되는 시 나부랭이를 밥 되는 수단으로 탈바꿈 시키는 작업이라 하겠다. 이어 저자는 문학경영학 CEO 과정을 창설해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한다.

강신주가 앞의 두 책을 시를 통해 사랑과 자유를 찾고, 삶을 낯설게 성찰해 제대로 살아보자라고 했다면, 황인원은 시를 해체하고 그 구조를 그대로 경영에 접목해 이윤을 추구하자는 실용적인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고 나는 보는 것이다. 현장과 동떨어진 개 풀 뜯어먹는 소리 대신에 인문을 실용의 장으로 끌어들여 좀 더 인간적으로 이윤을 남기고 성장하자는 좋은 의미라고 생각하고 싶다.

고정화된 지식과 통념을 버리고, 시인의 감성으로 새롭게 보고, 낯설게 보기를 시도해 창조적인 경영, 인문학적인 경영을 꿈꾸는 지은이 황인원의 시도가 새롭기는 하지만 그러나 어쩌랴. 나는 경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시 한 줄도 감성보다는 이성의 힘으로 해체해야 하는 이 책이 무척이나 버겁게 여겨지는 것을...

그러나 CEO가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일을 즐긴다는 것은 나름으로 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경험치를 넘어서지 못한다라고 한다. 그러나 경험하지 못했다면 배우고 익혀서라도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해서 더 많은 CEO, 엘리트들이 이율로 환산하지 않는 순수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갖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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