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 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조경란 지음, 노준구 그림 / 톨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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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15 쪽) 페터 한트케의 소설 <어느 작가의 오후>에서 인용된 글이 조경란의 <백화점>을 읽는 나흘동안 쭉 내 삶을 지배하는 느낌이였다. 목욕탕을 갈까, 맛사지를 받아볼까, 미용실을 갈까... 어느 곳엘 가야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속된 내 욕망이 부드럽게 위안받을 수 있을까. 쇼핑을 하는 이유도 그럴 것이다. 물건 자체에 대한 욕망이라기 보다 물건을 사는 순간, 쇼핑백을 들고 백화점을 도는 동안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 위안받고 있다는 느낌을 쫓는 것이 아닐까.

서유미의 <판타스틱 개미지옥>이 백화점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다양한 군상들을 이야기했다면, 오현종의 <거룩한 속물들>은 인간의 속물성에 관해 이야기 했다. 속물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까지를 전부 포함해서. 앞의 두 책은 소설이지만, 조경란의 <백화점>은 소설이 아니다. 말하자면, 백화점의 모든 것과 함께 조경란의 개인적 쇼핑 취향, 몇몇 작품을 쓰는 과정 등을 기록한 에세이 이다.

이전에 조경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식빵굽는 시간>. 아주아주 오래전 읽었던 책이라 사실 기억에 거의 없다. 빵굽는 냄새와 함께 시작하는 사랑 이야기 였던가, 이제막 끝나가는 사랑 이야기 였던가.... 다만, 그 후에 조경란의 소설을 찾아 읽은 일이 없고, 선물로 받은 근작 <복어>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릴 정도로 작가 조경란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백화점>이 지금껏 조경란이 써온 소설보다 잘 된 글이라는 서평을 읽었다. 그 글과 함께 백화점, 쇼핑, 욕망 따위에 대한 관심이 함께 엮여 부랴부랴 <백화점>을 읽었다.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 깊이 매몰된 묘사들이 많은 <백화점>을 통해서 볼때, 그녀의 소설은 확실히 내 스타일이 아닐것이다. 그렇지만 인문학적인 에세이로 볼 수 있는 이 책은 확실히 내게 좋은 책임은 분명하다.

나는 너무 여성스럽거나,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어하거나, 여성스럽게 보여지는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가 너무 여성스럽고, 여성스럽게 보이고 싶어하고, 여성스럽게 보여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 속에 숨겨진 남성성을 나 자신이 알고 있는데, 어디서건 나약하고 부드럽고 차분하게 보여지는 내 모습을 싫어하는 것이다. 일부러 거친 표현을 써보기도 하고,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 보이는 경우도 있지만 언제나 마지막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 여성다움을 과시하는 꼴이라니...

<식빵굽는 시간>이후 조경란의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서 나의 내면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싫어하면서 매번 나를 드러내고 방어하는 무기로 삼고 있는 나의 여성성을. 반복노동인 단순하고 손을 움직여야 하고 몰두할 수 있으며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좋아하고, 논리나 반직관적인 인식을 요구하는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것은 영 질색이며, 독서는 취미라기보다 생활이고, 음악감상은 좋아하지만 감상의 수준은 되지 못하며, 남영동의 디자인 학원을 다닌 것까지 꼭 나와 같다. 거기에 정신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쇼핑 습관까지도 비슷했다. 동질감은 반가움인 동시에 거북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니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조경란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작가와는 관계없이 무척이나 개인적인 내 취향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그것만 뺀다면, <백화점>은 훌륭하다. 만물상이라고 해석되는 백화점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라고 해도 좋다. 외관과 내부, 마케팅 기법,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장소, 백화점에서 보여지는 일을 하는 점원들과, 보여지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까지. 노동에 관해서라면 조경란의 촛점은 비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하에 있는 집배실과 상품관리부를 나올 때 더없이 침울해졌다. 누구라도 이런 지하에서 하루종일 근무하고 싶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일 거다. 매번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쉽지도 간단하지도 않다.(334쪽)

노동에 대해 생각하는 어려움을 읽으며, 산업혁명기에 조지 오웰 자신이 파리의 식당 지하실에서 접시를 닦는 노예와 같은 노동을 하며 노동의 가치에 대해 서술한 책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이 떠올랐다. 물론 오웰이 르뽀르타쥬 작가이긴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다 르뽀르타쥬 작가여야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현실을 고발하고, 책을 읽는 이들을 경도시키며, 새로운 길을 생각하게 하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조경란이 백화점에서 노동을 경험했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조경란의 <백화점>이 이용객, 쇼퍼shopper, 소비자로서만 촛점을 맞춘것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사람들은 대상 자체보다 그것을 얻어가는 과정을 좋아한다. 파스칼의 말을 인용한 글을 보면서 다시 피터 한트케의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약간의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흘간을 그러한 욕망 속에서 약간의 쇼핑을 했고, 맛사지를 받았다. 내가 그정도는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뭏든, 정신적인 삶과 물질적인 삶 사이에서 매번 줄타기를 하고 있는 흔들리는 자아를 갖은 나에게 무척 도움이 된 책인 것은 확실하다. 이어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과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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