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문제는 확전했다. 복잡한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생사가 걸린 문제로는 복잡한 문제란 없다.
중동은 가스와 배럴 석유 문제,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다.
비단 중동 문제만이 아니다. 아프리카와 남미에서는 주로 기아 문제를 거론하지만,
장기적인 군부 독재 국가들로부터 전 세계가 파산 난지는 오래다.
새삼 뒤늦게 민주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지적으로는
경제 문제마저 선진적인 민주화 문제로 환원해서 돌려버린 시각은
어디에서 유래했는가를 살펴보면 명확해진다.
국가로 보자면, 정작 중동, 아프리카, 남미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도 공산당은 절실하다.
그러나 기반은 매우 취약하거나, 낮다. 소수 운동 단체들, 개인적인 성명으로만 유지해왔다.
매체로는, 국가들 간으로는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폭 넓은 토대를 갖추고 있음에도,
혁명에 대한 의식 부재와 단편적인 운동으로만 머물기 때문에 손 꼽는다.
전쟁 중단. 매우 중요한 말이다.
그러나 평화적인 호소로, 연대를 도모한다고 해서,
학살을 빙자한 속국 수용이라면 더욱 문제다.
과연 선진국의 위상이 아니라 위선을 제대로 보여준 셈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경제를 안정화하겠다는 전략이 언제까지나 먹힐 수 있을까.
쉽사리, 정작 군대를 복무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참 할 말도 많겠다.
누구도 그러한 전쟁에 대한 전말마저 숨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국내도 똑같다. 아직 통일도 안 됐다. 그리고 공산당에 대해서는 반감마저 갖췄기 때문에,
중동 문제라는 일부로 본다면, 자국 독립을 요구하는 시각마저 놓치기란 쉽다.
북한도 파견한 마당에, 누가 중동 문제를 다루고자 하겠는가.
누가 아프리카를 다루는가. 누가 남미를 다루던가. 그리고 아시아는 누구인가.
정작 적을 모르고는 모든 걸 부정하기만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남은 공산당은 그러한 부정에 대해 도전해야만 한다.
각국에도 공산당은 필요하다. 그리고 실권을 잡고 국가를 유지하는 권력이 아니라,
이전 혁명가들로부터 말해준 교훈으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들은 국가라는 질서를 지배하고, 또 파괴한다.
부르주아 국가라면 조직 기구로부터 소멸만이 아니라 분쇄하는 건 옳다.
보다 중요한 건,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낡은 부르주아 조직 기구를 폐기하고,
오랜 부르주아 조직 국가를 더욱 폐지할 수 있는 힘도 남기 때문이다.
언젠가 각국 내외 지배자들이 품은 공상에도 맞설 혁명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지배란 달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