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마르크스주의로는 국가로부터 발생한 여러 참사나 재난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못하고
별 일이 아니라고 우습게 여기기도 한다. 사고들에 대한 원인으로는 주로 구조나 체제로부터 기인하거나, 앞선 대책을 미리 수립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지배자 이전에 국가 지도자와 관료들에 대한 책임마저 묻는다.
마르크스주의 이전에 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지배자와 관료들은 보고를 누락하거나, 느슨한 고리를 형성하고, 방안 부재까지 참사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정작 하지 않거나, 가볍게 생각하기만 하고는 미루고 쌓는다. 단지 우발적인 사건일 수는 없겠다. 노동 대중들도 지적했지만 안전 수칙은 괜히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직적인 계급 관계로는 사고를 더욱 빠르게 대처하기란 매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경찰 통제마저 불가피하지만, 국내로는 인력이 마약 단속으로 분산해버렸다고 한다. 과연 경찰 국가답다.
작은 사고부터 시작해서, 자본주의 체제로는 여러 범죄부터, 대형 사고까지, 축제가 끝나도 사람이 죽는 일은 매우 쉬워졌다. 개별적인 사람 한 명은 소중한 재산 따위가 아니다. 당시로는 언론도, 여론도 문제였다. 젊은이들이 축제를 가는 일만 문제 삼았고, 질서가 무너졌다고 하소연만 해댔다. 잘 놀지도 못하고, 놀 줄도 몰랐던 젊은이들은 저마다 사연들이 있음에도, 풀 수 있던 해방구마저 정작 사라지고 말았다.
과연 한국은 경찰 국가이자 자살 국가다. 보고를 받았음에도, 연락받지 못했다고 변명하고,
아는 한, 법적인 침묵 아래로 해명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부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국가 체제에 대한 부정 논리를 더욱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지도자가 있음에도, 무정부적인 성질도 보였다. 그리고 결국 같은 참사는 일어나고 말았다.
역사적인 참사나 재난들은 환경이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구분하거나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 모순으로는 상부로부터 계급적인 요인, 부패한 구조를 지적하지 않는 한,
모든 체제 안에서도 일어날, 수 많은 참사와 재난은 반복할 수밖에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