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보고서.


첫머리(서론). 


<힘과 교환양식>을 읽었다. 그러나 유심하게 들여다 본다면, 이 저작도 문제는 너무나 많다. 가라타니는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일본에 대한 국가적인 논리를 전개한다. 가라타니는 여기서 교환양식D'의' 부활에 대해서 기대한다. <힘과 교환양식>을 서술하고자 <D의 연구>라는 소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라타니는 교환양식D로부터, A에 대한 회귀를 주장했지만, 결국, 봉건적(천황제) 국가로 귀결이었으며, 복귀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가라타니는 <아사히 신문> 연설에서도, 몸소 보여준다. 그러므로, 가히 '반동적'이라 부를 수 있으며, 청산되지도 않은 역사관을 '친한파'로 무장했다. 따라서 모순이다. 그리고, 주관적인 칸트주의에 대한 교조를 전하거나, 개인적으로 한정한, 경도된 시각들도 있다는 뜻이며, 매우 다른 뜻에서는 문제작임에 분명하다. 마르크스, 독자들이라면 가라타니에 대한 사상만이 아닌, 현대 철학이라 불리는 암묵적인 사상들에 대해서도, 매우 유념할 필요는 있으며, 오히려 '반면교사'의 내용들을 잘 보여준다. 후술하겠다. 


<힘과 교환양식>을 읽다보면, 먼저 어설픈 번역부터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의', '것'과 같은 빈번한 의존명사에 대한 높은 사용도나, 비문이라 불리는, 주어와 서술어를 갖추지 못한, 어색하거나, 혹은 어설픈 문장이나 교정들부터는, 책에 대한 신뢰부터 잃도록 만든다. 동시에 번역에 대한 일정하게 갖추지 못한 언어 체계를 잘 보여준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시로도 쓰일 수 있을 정도이다. <힘과 교환양식>은 조영일 교수로부터 번역했다.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가라타니에게 사사 받았으면서도, 한국어에는 소질이 없는 모양새이다. 과연 쪽빠리(쪽발이)라 의심 삼을 수 있을 만한 언어 구사력이다. 출판부 내에서도 교정 과정에서는 4명 정도가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책은 가볍게 제작했지만 정작 내용마저 가벼운 문장에 대한 정도부터 읽기에도 매우 불편한 반론을 제기해본다. 이전부터 일부 '국어학자'들 간에는, 의존명사에 대한 사용도를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여럿 있었으며, 대체로는 교사들로부터 교육적인 목적으로도 이뤄지거나, 알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저 선진적인 '학자'들이 논쟁을 벌여도, 결국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가장 잘 팔리는 책을 선택하기 위한 언어적 사용들도, 출판사 자신들에게만 매우 유리하도록 상업적인 수단들로부터, 책을 팔아야만 한다. 따라서 의존명사에 대한 언어적 사용도는 자본화된 출판사에 대한 기본적인 의도를 출발점으로 삼아야만 하기 때문에, 매우 아쉽지만 <힘과 교환양식>에 대한 제작도, 그리고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여러 책들에 대한 번역 제기에 대해서는 채택도 없는 무쓸모라는 비판으로 함축할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문장마저 정리하지도 못한 번역서로 수입된 책들을 읽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매우 불만이다. 


갈피(두서). 


여기서 다루는 마르크스주의란, 일본 마르크스주의라는 걸 감안한다. 일반적인 독자들이라면, 보통,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국내에서 다룬 마르크스주의로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 마르크스주의라 부르고자 한다. 그러나, 구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아닌, 국적에 따라서 더욱 세분화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라타니도, 앞선 여러 국내 사상가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거나, 심지어는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가 아무리 국가에 대한 시각이 크다고 할지라도, 자국에 대한 일본 논의로 한정할 때, 비로소 국내에서도 가라타니를 더 잘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본 마르크스주의에서도, 특히나 가라타니도 <자본론> 해석에 있어서는 우노 고조나, 이토 마코토, 스즈키 고이치로 같은 경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가치론에 근거해서 학파를 이뤘으며, 일본 가치형태론에 대해서는 전형적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반영하고자 해왔던 가라타니는, 교환론에 따라 나아가 일본 소비 문화를 적용해보거나, 파악하고자 했다.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베버, 뒤르켐과 같은 '어용' 학자들도 나온다. 또한 프로이트에 대한 반박들을 토대로, 심리학이 아닌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례들을 소개하거나, 프로이트 사례들에 대한 자신의 주장들을 덧붙이기도 한다. 부르주아 비평가라는 작업을 감안해봐도, 늘 그렇지만, 서술에 대한 방법들은 주로 사실에 대한 베끼기에 기초한다. 따라서 앞 단락에 대한 인용들이나, 중간 주석들로 글을 채우는 방식들을 이룬다. 책을 나름대로 정리하거나, 직접 쓰겠지만, 뒷받침되는 주장들은 모두 자신의 견해나 생각을 지지하기 위한 용도나, 목적마저 없는 수단들로 채워진다는 걸 '신중한' 독자들이라면 곧잘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저작들은 가라타니만 속하는 문제는 아니다. 현대에 들어선, 서구 지식인들, 그러니까 사상(철학)들을 다루는 학자들이나, 일부 논문들에서도 독서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정리나 독해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는 해석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같은 저자로는 <트랜스크리틱>, <세계사의 구조>와 같은 책들이다. 시중에서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일화로는 수상할 정도로, 국내 문학계에서도 벌써 다뤘거나, 심지어는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관념적 사고에 기반해서 범주로도 '분류화'해서 세계사를 해석하고, 정리하고자 하지만, 정작 주로 다뤘던 칸트는 후반부에서 <영원한 평화>로 다룬다. 이전 저작들에서는 또한 마르크스는 칸트적 사고로 비판하는 방식들이 같았다고 주장했으며,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헤겔에게 충실했다고 공언한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법·철학 비판>(1843)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마르크스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종교적 소외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저작이지만, 정작 가라타니는 일부로 다루지 않았거나, 의도해서 마르크스에 대한 초기 저작들도 충실하게 소개하지는 않았다. <법철학 비판>을 읽어본다면, 마르크스는 상대들과 겨루면서 이뤄진 힘 겨운 비판으로, 비판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들과 방법들을 잘 드러냈다. 또한 헤겔, <법철학>에 대한 관념적, 치우친 종교적인 태도를 비판했으며, 매우 자세하게 읽었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에 대한 저작들보다는 엥겔스에 대해서 더욱 재평가를 했다. 정작 사적 유물론에 대해서는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오해했거나, 오도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엥겔스,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도 소개했던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토머스 모어와 같은 유토피아를 제시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는 카우츠키에게 더 힘을 밀어준다.    

교환론(교환양식).


여기서 교환론이란 저, 마르크스 교환론과는 매우 다르며, 또한 그릇됐다. 왜냐하면, 증명된 물리적인 힘에 기반하고, 증명하고자 했던 역사적인 희생으로도 이뤄진 과학들에 대해서, 특히나 계급관계에 대한 구분도 없이 맨 처음부터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랍다. 아무리 계급관계에 대해서 '문학적 허구'라고 지적하는 사람일지라도, <자본론>에서 증명된 교환론은 자본화된 상품이라는 관계에서도 물신화만이 아닌 판매되거나, 거래할 수 있는 교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론>은 두꺼워 보여서 그렇지, 읽으면 어렵지도 않다. 시중에 나온 해설서들도, 심지어,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자본론>에 대한 독해를 어려워하거나, 힘 겨워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도, 따로 저작들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과 자본>이나 <경제 철학 수고>도 추천해본다. 노동계급들이 생산하고자 하는 생산품들이 단지 소비만이 아니라, 생산품에 대한 유통 과정들이나, 심지어는 노동계급들을 갈아서, 희생하고, 또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가라타니 교환론을 살펴보자. 애덤 스미스, 리카도를 고전 경제학으로 분류했으며, 교환법칙에 따라서, 노동시간과 이윤율은 동일하며, 생산관계에서도, 비례한다는 주장은, 물물교환과 일치하므로, 따라서 마르크스는 정작 교환법칙은 이해했어도, 경제학은 잘 몰랐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자본론> 1권을 마치고, 다음 권을 모건, <고대 사회>를 연구하느라, 집필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내세운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틀렸다. 


훗날, 엥겔스와 자녀들에 대한 도움으로, 심지어는 생전에는, 아내 덕분에, <자본론>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아무리 마르크스, 홀로 <자본론>을 집필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도움이라는 손길을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교열을 맞추도록 인연으로 이뤄진 가족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혼자, <자본론>을 완성한 건 아니다. 다음으로, 모건에 대한 <고대사 연구>는 이전에 서술된 마르크스, <파리·수고> 말고도, 정작 해당 이론들을 수입해서 번역했음에도, 아직까지도 번역이 안 된 여러 서신이나 기록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주로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달리 민족(민속)학 연구가 아닌, 경제학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엥겔스는 당대 역사학에 주로 정통했기 때문에, 여러 기록물들 가운데, <민족학·노트> 혹은 <민속·기록>으로는 엥겔스와 따로 간추려서 세간에도 알려졌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수입된 요약 자료를 읽거나, 뽑아내서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평소에도, 다른 글들을 발췌해서 따져보고자, 가려내서 뽑았으며, 간추리고 요약했다. 이외에도, 증명하고자, 마르크스만이 아닌 엥겔스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선별한 선집만이 아니라, 전집을 읽어본다면, 주로 엥겔스와 주고 받은 서신들이 많으며, 엥겔스도 평가를 내렸던 흩어진 서한들도 잘 모아놨다. 그리고 <자본론>을 작성할 당시에도 마르크스는 이미 혹독한 정신적 부담, 과도한 음주(술)와 흡연(담배)으로부터 신체적으로도 요양을 요구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알제리로 가서, 휴식을 취해야 했을 정도였다. 따라서 모건에 대한 <고대사 연구>를 집필하느라, <자본론>을 쓸 수 없었다는 건 단순한 일화로 보자면, 단지 재미로 볼 수는 없으며, 근거로도 성립할 수는 없다. 또한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본론>을 직접 읽지도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가라타니는 원문을 중요시 한 저자임에도, 자신은 원문에 대한 출처를 어디에서 구했는지를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물론 학계에서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연구자들을 고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구하는 건 매우 흔하다. 그러나 정작 연구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란 매우 어렵고, 정보에 대한 권한이나 이용을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에, 관계인을 거쳐야만 하거나, 허가를 구해야만 한다. 따라서 비슷할 수는 있으나, 정보를 구하거나, 구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매우 달랐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에게 교환이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생산과정에 대한 논리로 전개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노동계급들이 직접 생산하는 생산물들을 누가 가지는지에 대한 논의에만 한정한게 아니라, 늘 생산된 생산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생산되며, 늘 이뤄지는 노동계급들로부터 생산한 생산물들은 구매하거나, 판매해서 이뤄진 생산과정들로부터 생겨난 몫들은 과연 노동계급들에게 전부 지불되지 않으며, 또한 늘 자본가들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노동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죽이고도, 다시 생산과정이라는 일부로 노동하도록 참가하게 하며, 사람들을 또 설득하고, 암묵적으로는 착취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생산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이 산 사람으로 '교체'되는 과정을 두고도, 재생산이라 불렀지만, 알튀세르와도 같은 후기 마르크스주의에서 재생산이라 부른 이면에는, 단지 한 구조에 대한 사상적으로, 억압된 심리로만 다뤘으며, 심지어는 개념부터 싹 바꿔놨기 때문이다. <자본론>에서는 잘 알려진 10시간을 초과 노동했던 영국 아동노동 사례를 다뤘다. 사례를 두고도, 단지 10시간을 덜 노동하게 된 현실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라타니에게 교환이란 영적인 힘이었다. 쉽게 말해서, 영적인 힘으로 노동착취를 극복할 수 있다는 물신화(페티시)에 대한 '저질'스러운 믿음이다. 심지어 해당 저작에서도 그대로 쓰여진 내용이다. 그러므로, 과연 가라타니에 대한 논리를 복잡하다고만 끝낼 문제였을까.  


- 교환양식A. 


여러 양식들 가운데, 교환이란, 꼭 순서대로 적용되지는 않으며, 일정한 시기에 도달하면, 화폐에 대한 교환들도 효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체제 내에서 교환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화폐는 오래 됐으며, 교환으로도 가장 손 쉬웠기 때문이다. 화폐로부터 거래하기 시작된 뒤로부터는, 만들어진 상품에 대한 값어치(가치)를 가질 때, 지불할 용이도 생긴다. 그러나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상품들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자본적인 축적이 생겨나는 원인을 파악할 수조차 없어진다. 같은 노동시간을 들여도, 한정된 물건으로만, 물물 교환만 이뤄진다면, 오히려, 일을 할 이유조차 사라지고, 생산력마저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구분했다. 모든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힘들이 있지만, 자본에 대한 모든 노동들은 자신들에 대한 생산력을 지불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불한 생산수단들을 소유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본가들이다. 지불한 생산수단만큼이라도, 비용을 지불하고, 이윤을 얻을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타인들에 대한 목숨마저 버릴 각오는 됐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가들이 착각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자본가들이 이윤들을 늘린다고 애쓸지라도, 초과가치 내에서 벌 수 있는 이윤들은 한정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자본가들에 대한 논리와 똑같이, 자신들에 대한 이윤들은 무한정하게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비록 한 평생, 사상만을 고집했던 가라타니도 있다. 씨족사회는 매우 순수했으며, 정주화 이전에, 씨족사회에서는 호수관계에 따라서, 증여와 답례가 확실했으며, 이동들은 매우 자유로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씨족사회는 오랜 투쟁이라는 자취들이다. 가라타니는 신당을 모시는 승계 싸움으로 일단락하지만, 실제로는 섬 나라에 대한 사례만이 아니라, 여러 씨족사회에서는 국가를 이루고자, 여타 많은 부족들을 죽여왔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관념의 일부로 유지됐을만큼만 국가는 절대적으로, 강력했던게 아니라, 비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냥, 채집으로 획득할 수 있는 물자들이 부족해지면, 필요하다면 부족 간의 전쟁도 매우 빈번했다. 가라타니는 역사적으로 교환양식을 구분했지만, 때로는 시기적으로 뒤섞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역사란 생각보다는 차례대로, '역사적'이라 불릴 수 있는 시기들에는, 늘 우연적으로 보이는, 때란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엥겔스는 초기 모계사회로부터, 생산수단에 대한 분배는 균등하게 이뤄졌다고 봤다. 가라타니가 다루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여기서, 씨족사회 안에서 모계사회는 사냥으로 모아진 생산물이나, 채집물들을 분배하고, 관리하는데는, 매우 적합했기 때문에, 엥겔스는 모계사회에 대한 연구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모계사회가 우월하다던가, 수준이 높았다는 걸 상정하는 논리에 대한 주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문제다. 그래서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적 기원>에서 씨족사회를 고찰했다.          


- 교환양식B.


가라타니에게 국가적(의) 성립이란, 교환양식B를 따르며, 주로 계약으로부터 성립된 제도들이다봉건제에 대해서, 가라타니는 근세로도 보지만, 중세 들어서는 국가적 보호(안전)란, 가라타니는 홉스를 인용한다. 괴물(리바이어던)과도 같은, 국가는 전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안정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환양식B에서는 곧바로 민족주의가 성립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삼국시대와도 같은, 국가 대항전들은, 주로 계약들이나, 제후(왕)들, 귀족들에 대한 거래로부터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약탈하거나 국토를 넓히고는 확대하고자 노예들도 합법적으로 부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종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 파스칼, 보에시,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등과 같은, 철학자들에 대한 예시를 든다. 국가 성립 이전에는, 제국이 먼저 생겨났으며, 가라타니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신권에 대해서 우호적이다. 수도사들도, 그때부터 생겨났다. 루터보다는, 칼뱅에 대한 예정설로부터, 죄악에 대한 구원들을 지지했다고 밝힌다. 전염병(페스트)들에 대해서도 본래부터 인간이란 질병으로부터 나약하고, 고통 받았기 때문에, 제후란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아서, 질병으로부터 '치유'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치워' 보자면, 바로 두고 신격화라고 부른다. 델포이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로, 비록 고대였지만 같은 이유로, 신탁을 받아서, 이오니아에서, 자연철학에 대한 무지배(이소노미아)를 본받아, 아테네에서 토론할 수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는 여러 섬들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이오니아만이 아니라, 식민국가였던, 에페소스도 있었으며, 엘레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테네 이전 시기에도, 여러 지역에서도 철학자들은 있었다. 에페소스에서는, 가라타니마저 두려워하는, 헤라클레이토스도 있으며, 에페소스에서는 파르메니데스, 역설로도 유명한 제논도 있으며, 심지어 가라타니도 다뤘던 스토아 학파 가운데로는,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외에도, 아우렐리우스, 키티온 제논도 있다. 제국의 성립에서도, 늘 식민국가들은 잔존했었으며, 고대부터 내려왔던, 비열한 제국 간 전쟁들로부터 성립된 역사들이었기 때문에, 제후 중심의 역사관들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급적으로도, 역사관을 다룰 때마저 신중한 근거로는, 수 많은 노역(포노스)에도 종사한 노동자(에르가티스), 민중(오클로스)들마저, 의도적으로 따로 빼내어서, 소외하도록, 제외하거나,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며, 단지 제국의 역사는 반복됐기 때문이 아니라, 배제와 박탈된 역사들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세를 크게 다루지 못하는 이유란, 바로 대숙청만큼이나, 봉건적이었던, 피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그리고 질병마저 관리하지도 못했던, 제후들의 민중학살들과 관리들의 지시와 병정들 간의 살해들, 그리고 음모마저 서술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관료제가 끼친 해악들은 처음부터 나오지도 않는다. 식민사관들에 대해서라면, 오스터 함멜 뿐만 아니라, 마르크 페로, 마틴 버낼, 댄 힉스마저 읽어보시라. 식민지 건설 업적들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가!   


- 교환양식C.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를 강조한다. 화폐라는 교환으로부터 중상주의 무역이 등장했기 때문에, 사적 소유(재산권)라는 개인적 부만이 아니라, 국가적 부에 대해서도 근대 상업과 화폐경제로부터,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각 나라들마다 상용화된 화폐 교환으로부터 먼 곳까지 무역했으며 주로 부를 얻은 상인들은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중상공인들이, 주로 개인적 부를 과시하고자, 또한 국가에 대한 신임을 얻고자 노력했었고, 영주권을 소지해서 지배적인 권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따라서 봉건제는 부를 누리는 귀족들로부터 기고만장했다. 봉건제 붕괴는 혁명 때문이 아니라, 왕과 절대 권력자들이 정작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무너졌다고 본다. 가라타니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중상주의에서 상업에 대한 보호 무역을 제도적으로 비판했지만, 수입 의존적인 자유 경제를 펼쳤다고도 주장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를 고전 경제학으로 다뤘으며 실제로는 리카도 좌파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리카도는 차액지대론을 내세웠는 데, 지대는 토지에 대한 비옥도와 생산력으로부터 계산할 수 있다고 봤으며 초과(잉여)가치를 먼저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호 무역이든, 자유 무역이든, 화폐라는 교환 과정에서는 투자(투기)와 매매들도, 상품에 대한 구매(소비)로 꼭 일치하지는 않았으며, 이를테면 경제학 투자에 대한 예시로는 네덜란드 튤립 파동에서도, 초기 상인들은 구매를 대신해서 한정된 튤립들을 다시 팔고자 사들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이전 경제학에서는 생산물들을 많이 소유한 개인들이나, 국가는 가격에서도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거품이라는 개념은 생겨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정작 경제적인 파동이 생겨났을 때는 해석하거나, 대처할 줄은 몰랐다. 애덤 스미스는 주로 경제적인 기틀을 잘 닦아놔서 자유 경제로부터 현재에도 복잡한 제도라는 기틀을 '튼튼하게' 만들어놨다. 그리고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비판했어도 거래하는 개인들에 대한 도덕적 품위와 개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중시하고, 매우 개인적인 소유권을 강조하도록 했으니 그러니 저, 도덕적으로도 흠 없고, 품위 있는 국내 경제학자들도, <국부론>을 읽으면서, 국가에도 기여하고 보호도 받는 자유 무역 제도와 정책들을 환영하고, 식민지까지도 옹호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초과가치학설사>에서 마르크스, 엥겔스는 그들의 열렬한 도덕과 품위를 비열한 가식과 위선까지 썩도록 바꿔놨다.  


- 교환양식D. 


가라타니는 D를 X로 표시하기도 했는데, 단지 없다고 부를 수는 없어서, D에 대한 서술은 <힘과 교환양식>에서 드러낸다. 그리고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를 다뤘다. 반면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라는 공산주의에 대한 해설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공상적 사회주의(유토피언 사회주의)로는 생시몽, 오웬, 푸리에를 거론했다. 주로 사유 재산 제도를 철폐하고자, 지역 협동조합 설립에도 노력했으며, 노동 교육을 강조했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공상적 사회주의로는 바뵈프가 앞섰으며, 자코뱅 파벌에서도 일부분 기여했다고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바뵈프에 대해서는 프랑스 혁명기를 서술할 때 먼저 다루기도 했지만, 엥겔스와 서신을 주고받을 때는 블랑키와도 비견했다. 그러나 무정부적 태도와 당시 지배계급(부르주아) 혁명기라는 한계도 보였으므로, 주로 정부와는 재산권과 보통선거권을 두고 벌어진 격화된 투쟁 시기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가라타니는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메시아주의를 강조한다. D에 대한 도래로부터 메시아는 기적이고, 수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현재에도 칸트가 제기했던, 세계연합이라는 보편적이고, 구상적인 국가(UN)들은 도래할거라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A, B, C는 모두 D를 위한 준비이자, 세계적인 평화를 위한 준비이며, 역사는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가라타니는 지배계급(부르주아)들도 내세우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공유한다. 연합체(어소시에이션)로부터 국가, 자본, 민족(네이션)을 이루지만, 매우 인위적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주변국(아주변)으로, 흐리터분하게, <성서>를 인용한다. <구약성경>에서 야곱(이스라엘)은 권력에 도전하다, 심판을 받는다. 끝으로 <묵시록>에서 예수는 계시를 강조한다. 부처나 제자백가들과 비슷하게, 가라타니는 D로 묶는다. 그러나 D에 대한 부활은 A에 대한 반복된 회귀일 뿐이며, B, C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연합체(어소시에이션)를 이루고자 한다면, D로 나타나기 때문에, 가라타니는 지배 간 전쟁을 마치고, 어느 국가에서든,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혁명을 기대한다. 그러나 벤야민만이 아니라 루카치도, 헤겔 관념론을 그대로 수용한 채로 마르크스주의를 독해했다. 따라서 경도된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계급투쟁이란 실제로는 자세하게 관찰하는 비판이 아니라, 머뭇거려 방관하는 비평에 다름 아니었다.   


동시혁명론.


무정부주의(아나키즘)에 근거하는 그러한 혁명은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소비 운동이나 파업(데모)에만 머물거나, 그친다. 세계적인 통화정책(화폐)과 연합체들로 이뤄진 세계공화국이란, 멀리 떨어진 논의도 아니었다. EU가 출현하기 이전에도, UN이라는 기구가 설립되기 이전에도, 모두 평화적인 국가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말해왔으며,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도 유엔군이 창설되기 이전부터, 내전에도 깊숙한 관여를 해왔다. 바로 드 넓은 미국은 모든 자유를 너그럽게 허용하는 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혁명에 대한 경로를 차단하면서부터, 아프리카 식민국가들에 대한 독재 체제를 옹호했었고, 중남미, 중동에 대해서도 평화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자국에 대한 복지를 강조하면서, 식민지 구축에도 힘써왔다. 그러한 반동적인 혁명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다. UN이 창설된 뒤로부터, 냉전은 끝났고, 현대에도 전쟁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충격에 빠지기도 했었다. 세기를 뒤돌아봐도, 앞날은 무수한 전쟁과 내전들, 그리고 학살로 자행된 합법적인 범죄를 혁명으로 가장한 내전들로, 지배계급들의 우세를 보여주고, 국가를 쟁탈하고자 서로 다퉜다. 심지어,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지배하고자 있지도 않는 괴상한 '초'제국주의까지 만들어 강조했으니, 제국주의라는 지배적인 원류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제국의 하수인으로는 어디 자본주의 국가만이 그러하겠는가. 공산권에서도 마찬가지로, 남북한에 대한 분리 정책들과, 한 민족으로부터 떨어진 노동자와 민중들을 국가로부터 귀속하게 하고는, 서로 다투고, 이간질하도록 만들어놨으니, 그들만의 공산주의는 과연 옳았는가. 그러나 공산주의는 틀리지는 않았다. 각 자국에서도 체제에 대한 여러 토론과 논쟁을 거치고 고르고, 다듬어진 논의, 언제나 노동계급들에 대한 투쟁들도 지지할 수 있도록 힘 써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오랫동안 핍박 받고, 가난하게 마르크스주의 사상들을 배워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국으로부터 체포되어 고문을 받거나, 심지어는 풀려나도, 감시를 받거나, 심하게는 유도된 심문이나 추궁하도록 조사를 받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모두 무장 단체로부터, 그리고 지배 국가로부터, 아니 전범 국가들로부터 무기를 수출해서 원조받거나, 수입한 무기로부터 인민들과 노동 민중들을 학살해왔다. 그러니 아무리 힘 겨운 싸움에서도 계급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전쟁에서도 누가 이겼다고 장담하고, 안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동시(同時) 혁명이란 매우 동시(童詩)적이다. 어린이들도 그거 보단 잘 배우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박 및 결론. 


<힘과 교환양식>은 아쉽지만 현상적인 분석에만 그친다. 따라서 마르크스에 대한 음미에 불과하다면, 마르크스에 대한 회귀도 아니고 자책에 가깝다. 또한 기본적인 개념들마저 일부로 혼동하거나, 주장을 내세우고자 있는 사실에 대한 논리를 비약하기도 한다. 매우 쉬운 예시로는 자본주의 생산과 교환에 대한 관계를 생략하거나, 상품에 대한 생산이란 우리가 쓰는 물질적 수단들에도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쓰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에 대한 교환만 있다는 건, 상품들에 대한 생산수단들이 어디에서도 기인하는지를 연구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와는 같다고 볼 수도 없으며,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는 없다또한 가라타니는 국제주의 운동을 무시했으며, 칼 리프크네히트도 노동계급들에 대한 근원적인 에 대해서도 앞서 사고하고, 연구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칼 리프크네히트, 아버지는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로, 엥겔스와도 두터왔다. 그리고 엥겔스로부터 먼저 이뤄진 힘에 대한 연구를 마르크스와도 혼동했다. 그래서 글은 겉보기에는 아무리 쉬어 보여도 복잡하고 지나치게 혼란스럽다. 마찬가지 논리로, 국내에서도 친일 행적들을 숨기는 일부 정치경제학자들도, 일본 마르크스주의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가 아니던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역사적 자료들에 대한 혼동을 우선시한 탓에, 국내 마르크스주의를 심화하는 연구마저 절실해졌으니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훼손이라는 역사로는, 정치경제학은 예시로 삼을 만큼 잘 보여준다. 시기적으로만 구분한 후기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은 그저 고전적일 뿐이라는 고리타분도 지워내고, 마르크스에 대한 '오독'에서 구출해서, 혁명을 사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대한 더욱 올바르고, 새로운 생각들을 지지하고, 강조하고자 한다. 또한 외부 자본을 외계 자본으로 보거나, 상품 교환에 대해서도 수상할 정도로 낯설게 의심한다. 더욱 괴상한 논리를 더욱 펼칠 뿐이다. 칸트적인 관념주의에 대한 오류를 고스란히 베낀 나머지, 그대로 수용만 하고, 비판하지는 못한 결과다. 하나의 사례에서 일반화를 제시하기 때문에, 경험적 오류에 대한 여지도 충분하다. 종교적 신앙으로는, 무속을 따르는 물활론(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등)을 은근 강조하면서도, 정작 계급적 초월론과 학살 관계를 잘 언급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가라타니가 비신앙이라도 오류는 많다. 개인적인 수상과 행적은 별개로 두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논의는 새로워 보여도, 생각이라는 근저로는 비판을 수용하기란 참 어렵기 때문에, 일부 논리와 사고들은,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기각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잡다하거나 중복된 주장들도 많기 때문이다.  


더 읽어 볼 자료. 

조영일,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박가분,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 주로 국내에서 가라타니를 소개한 저작이지만, 계급적 타협으로는 박유하만큼이나 선두에 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국내에서는 구 소련 아래에서 스탈린주의를 암묵적으로 따르는 이론을 많이 접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는 역사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도 많은 변모 과정들을 거쳐왔다. 일부 스탈린주의를 따른 사람들 가운데로는 경도된 페미니즘으로 치우치면서부터, 좌익 공산주의에 대한 논리를 두둔하거나 많이 수용해왔다는 점이다. 정작 마르크스주의 우익과 결탁한 좌익 논리를 숨긴 채로 멕시코에서 스탈린주의에게 죽임을 당했던 트로츠키를 비방하고, 은폐하고자 했다. 오히려 막무가내로 수정해서 역사 왜곡으로 고치고는 무임승차한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스탈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학자나, 좌익 관점들에 대해서는 보다 '특수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참된 노동자들이라면 지배계급들에 대한 논의에만 치중된 정치관에 대해서도 역사적 왜곡들을 일국적으로나, 또는 다양해서 많거나, 잡다하고, 연속적이라 수정된 구성체에 대해서는 앞으로 매우 비판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 전쟁이 아니라 내전인가. 


- 스탈린 반동 정권.

- 후퇴하는 소련 경제.

- 스탈린주의와 아류들.

- 제국주의 내전.

 

스탈린 정권에서는 레닌 사후로부터소련 공산당과 한반도를 둘러싼 한국 전쟁 간의 긴장그리고 미국과 대륙 간의 서열 대결과 내전 구도 양상제국 간 침략 전쟁으로 인한 소련 경제 퇴보와 후퇴그리고 반동화된 소련독일과 평화 협정 체결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에 대한 대의 배신을 들 수 있다그리고 스탈린식 변증법 유물론 논리에서 모순과 오류도 진단할 수 있다스탈린과 독소 전쟁을 중심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설명을 도출할 수 있다그리고 공산권 국가라는 북한에서 한국 전쟁을 중점으로 둔다그러나 우리는 한국 전쟁을 단순 침략 전쟁이 아니라 국가 대항전이었고또한 제국주의 아래에서 진행된 내전으로 본다그리고 한국도 임시정부를 저버리고, 이승만 독단 정치로 나갔으므로. 오히려 미군과 같이 친일 행적과 다름 없는 미화된 부르주아 독재 국가이자 파시스트를 지지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발을 감행한 쪽은 오히려 유럽 파시스트와 제국주의로 편승한 미군정과 남한이다. 그들은 아직도 김구와 같은 민족 운동가를 암살하고는 미화된 정부를 예찬하고또한 애국이라고 믿기 때문이다갈수록 매우 오래된 선입견과 편견을 믿음으로 고수한 주관적인 사례로만 드러날 뿐이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투쟁하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큰 피해와 손실을 보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 사후 소비에트에 대해 더욱 묻고자 한다스탈린이 활동했던 시기는 20세기였던 1900-1950년이다


1. 스탈린 집권 시기에는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제국주의 세계 속에서 전쟁은 어떻게 펼쳐졌는가레닌 사후로 소비에트는 어떤 상태였는가스탈린 전집과 선집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번역된 주요한 저작으로는 무엇이 있는가그리고 스탈린 저작들 가운데에서는 주로 어떠한 문제를 다루었고또한 중요한 부분들은 무엇이 있을까. 스탈린에 대한 대표 저작으로는 <레닌주의 기초와 여러 문제>, <사적 유물론변증법 유물론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이 있다. 그렇다면 <레닌주의 기초와 여러 문제>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스탈린은 무엇을 주로 지적했는가<사적 유물론변증법 유물론마르크스주의 언어학>에서 주요한 논점은 무엇인가


2. 스탈린주의자들로는 누가 있는가그리고 어떠한 철학과 논리를 배경으로 구사하고 있는가스탈린은 어떤 특징을 소지하고 있는가스탈린에 대해서는 어떤 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까스탈린 주변 관계는 어떠했으며주로 같은 시기에 혁명가들은 스탈린에 대해 어떻게 봤는가그리고 코민테른과 제2인터내셔널에 대한 관계는 어땠는가트로츠키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의식을 해왔고동지가 아닌 주적이라고 바라봤기 때문이다스탈린은 소련을 반동 국가로 만들었다스탈린은 소비에트 정권을 탈취했고민족 간 전쟁으로 맞섰다마르크스는 노동 계급들에게 국가는 없다고 했지만스탈린은 레닌을 추종하기만 했지 정작 마르크스를 잘 배우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3. 레닌은 분트 문제를 어떻게 보았고스탈린과 달랐는가룩셈부르크그람시트로츠키도 소련 경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를 내렸는가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에서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스탈린은 볼셰비키를 저버렸다스탈린은 왜 당시 자국 지배자들과 민족 간 전쟁으로부터 협상하고자 했는가스탈린은 왜 레닌을 추종했을까그리고 스탈린은 어떻게 레닌에 대한 대의를 저버렸는가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암살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경제를 어떻게 보았는가. 그렇다면 소비에트 후임으로는 누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쩌다 소비에트는 왜 붕괴했는가.  


4. 스탈린 집권 뒤로 소련 공산당은 어떻게 붕괴했고해체됐는가스탈린주의로부터 미화된 혁명가들에 대한 초상그리고 현실사회주의 붕괴에도 기여했던 반동적 그늘그리고 허황된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점이란우리는 트로츠키주의 미명 아래에서 레닌을 계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억측이라고 밝힌다왜냐하면 역사란 소련에서도 마찬가지로 권력 계승에 대한 문제로 일단락할 수도 없고또한 무산 혁명에 대한 기여도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시각들도 매우 변증법으로는 체계적이지도 못하고협소하게 볼 소지가 다분하게 있어 보인다그리고 모든 국가를 공산권에 대한 비판에만 몰두한 나머지 내부 투쟁을 까먹고는 부르주아 국가로 한정하거나 지배계급으로 오인하기 때문이다그러나 모든 자국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국가를 이룩하고자 투쟁하고 있고또 더욱 새로운 조직으로 결사를 벌인다는 점을 잊을 수는 없다따라서 모든 편집된 그러한 저작들만으로 레닌마저 수정하고반동화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산 혁명으로 비판해야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회구조 아닌 마르크스. 


프랑스에서 일어난 68 운동은 과연 혁명이었는가. 어째서 재벌 철학과 함께했는가.   


구조주의. 


만개한 유럽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던 기회주의이자, 수정주의 조류들도 식는다. 여태까지 부르주아라는 재벌로부터 전개한 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선전하고, 또한 선동하고자 여러 논쟁들과 논의를 죄다 구조주의로 뒤바꾼다. 부르주아에게 공산주의도 실제로는 무산 계급 없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류이다. 유럽 모든 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관념 철학이라는 망령이란 바로 부르주아 지식인들, 재벌과 자본가를 위해 그리고 은밀하게 자본주의를 또한 옹호하고 결탁한 마르크스주의를 벗삼아서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전과 같이 힘 없는 중간 계급이라는 무산 혁명을 주도한다고 장담한다면 큰 오산이다. 제멋대로 해석하는 부르주아 재벌들에게 민주주의란 사회 구조와 체제를 따라 자본가를 고용하거나, 개량하고 개혁해서 변혁한다고 아직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마르크스와 소련에 대한 전방위적인 해석으로만 치장해서 부르주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본주의를 추상적으로만 안다. 물론 그들만이 쓰는 용어로 온갖 외국어를 뒤섞고 쉽게 풀이하지도 못한 채로 뒤얽히고, 슬쩍 바꾸고 고치기만 해서는 마르크스를 실천해서 꾸준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력이란 다름 아닌 머릿 속으로만 드러난 관념적인 헛수고일 뿐이라는 점이고, 또한 거짓말이라는 점을 이제는 알아야만 하겠다.   


정신분석학. 


심리학은 퇴보했다. 그리고 부르주아 가운데 학자들도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학문 영역에서는 프로이트, 라캉으로부터 새롭지도 아니고, 유물론도 아니고, 아주 낡고 오래된 자본주의를 복잡하게 비꼬아서 비평으로 방관해서 해석하고 보존하는 부르주아 이론이다. 재벌 학자들이 말하는 마르크스주의란 훨씬 고전적이고, 자본주의로부터 고정된 체제나 사회 구조로 보거나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파악한다. 그리고 정작 마르크스라는 주어를 빠진 채로 방관하는 객체와 똑같다. 그렇다고 꾸준하게 투쟁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러한 안일한 태도로부터 부르주아 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란 무산 혁명에 있어서는 방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아직도 프로이트, 라캉이라는 망령 속에서, 그리고 마르크스 유물론을 관념론으로 해석하고야 마는 어리석은 무리들도 이익 집단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는 심리학마저 부르주아를 위해 기능한다.       


후기주의 규탄. 


여기서 후기주의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다. 그렇다면 왜 후기주의인가. 바로 부르주아 종말론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부르주아 간 전쟁이 일어나서 핵전쟁이 발발하면, 인류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전쟁 소설을 쓰고 있다. 그리고 상상하는 허구가 꼭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전 인류 사회는 끝날거라 봤다. 그러나 그 역시 허구였다. 왜냐하면 재벌이라는 엄연한 부르주아지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도 곧바로 프롤레타리아트 종말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파시스트, 반공주의에서 똑같은 논리를 겉으로도 보여준다. 그들이 말하는 좌우익 평화란 노동자와 자본가들에 대한 화해이자 곧 융화였고. 자본주의에서 작동하는 기계적 사고란 바로 부르주아 사고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왜 남한 사람들은 아직도 재벌 철학에 매달리는가. 바로 마르크스를 죽은 개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서유럽, 일본심지어 미국에서도, 수입된 마르크스주의는 기괴하게변형됐다바로 후기 마르크스주의 때문이다그리고 일부 국제주의라는 '흐름'에서도 그러한 전통들은 마르크스 저작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계급적 관계를 잘 고찰해보지도 않는다일부는 식민지 영국관을 추종하거나 기반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그대로 수입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으부터가 아닌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보다 철저하고꼼꼼한 검토와 국내 변증법으로 비판하고 종합한다. 따라서 무산 계급들은 언제나 먼저다. 그래서 정치경제학이라는 논의와도 무관할 수 없다필자도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여러 논의를 제안하고자 한다수입된 기회주의 조류는 혁명이라 칭하는 수정주의교조주의심지어는 배외주의와도 같다따라서 맞서는 게 옳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21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