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렸다. 반환되거나 환수하지 못한 문화재도 여러 점 있다. 무기 전시관은 따로 없어서 칼에 대한 유물들을 잘 볼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국궁이 유명하다. 그럼에도 옆 나라들에 비하면 무예 실력도 출중했다. 하지만 정작 문화재들은 전쟁으로 인한 파괴나 소실로 인해 훼손되거나 다른 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에서는 검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사무라이 정신이란 실제로는 약탈과 범죄로 무장한 침범을 일삼았고, 악랄했다. 물론 조선도 양반 정신이 그렇게 썩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왜냐하면 기생과 노비를 뒀기 때문에 신분만 세탁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 전에는 국내에서도 예술과 무기 문화를 전파했고, 바로 옆 나라와 교류하는 나라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문화재청>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못한 문화재들이 상당 수 있다고 들었다. 2023년에만 일본,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등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교류가 깊은 독일에서도 한국 칼에 대한 문화재가 여러 점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화재들은 왜 해외로 퍼질 수 있었을까. 왜냐하면 조선 후기로 들어갈수록 일제에 대한 침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폭 넓은 개방 정책이 오히려 독립 문화재마저 수출하고 수입하는 자본 거래의 대상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같은 문제를 식민주의로만 볼 수 있을까. 물론 일본 식민지를 전제한다. 그러나 조선 왕조도 근대화에 따른 개항을 추진하더라도 정작 봉건주의라는 잔재 속에서 제국 간 전쟁을 옹호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일본 식민주의에 따른 소실된 문화재만이 아니라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에서도 특히 아메리카와 유럽 등지에서도 국내 문화재를 여럿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남한만이 아니라 북한도 존재한다는 점을 잊곤 한다. 그래서 각국에서도 문화재에 대한 노력을 서로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여태까지 국가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제한된 관람을 보여주는 이유란 무엇일까. 바로 부단하게 정치적이고, 문화재는 자본 거래에 대한 대상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국궁만이 아니라 무예 실력도 출중했던 충무공의 칼만이 아니라 수 많은 전쟁에 참가했던 국내 검객들은 예전에는 무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 많은 문화재가 다시 국내로 반환하고, 환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