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반군국주의와 독일 사회민주주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강령과 국제 사회주의, 적지만 마르크스주의 학교를 대상으로 한 정치적 힘의 점령, 자본주의적인 소수독재제 대 프롤레타리아트들의 힘들 간에 사회적인 상관관계를 철폐하고, 민주적인 프롤레타리아 힘들의 상호관계로 잠정적으로 대체하면서 이는 우선 자본주의에서 소수독재제의 권력에서 가장 중요한 조각인 자본주의적인 군국주의의 철폐도 포함한다.

 

최적의 강령은 특수한 방식으로 군국주의 물음을 다루고, 군국주의와 관련한 특수한 문제와 특수한 목적들을 결정하면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에 대한 모든 반론들도 원칙적으로 충족한다. “수비적으로 장비들을 착용하는 보편적 훈련을 요구한다. 상비군들을 민병대로 대체한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결정은 사람들로 대신한다. 중재로부터 모든 국제적인 분쟁들도 해결한다.” 그래서 이 강령은 현재와도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분명하게 공상적인 견해도 거부하며, 직접적으로 군국주의에도 맞서지만 분류할 수 있는 모든 전쟁을 위한 태세에도 맞서며 자본주의로부터, 정치적이고 국가적인 반동으로부터 유발한 전쟁만이 아니라 모든 전쟁에 참가하고 관여하는 걸 원칙적으로 거부하며 전쟁에 맞서 싸울 뿐만이 아니라 공상적인 방식을 거부하고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는 전쟁과 그로 인한 결과들에도 맞서 싸운다. 그래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모든 외국의 정당에서 대부분은 압도적이고 심지어 프랑스 정당에서도 헤르베적인 의미에서 반애국적이거나 크로포트킨적으로 반국가적인 건 아니지만, 계급 전쟁의 성격의 결과를 따라서 함께 비애국적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 사회민주주의 당을 반론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적이라는게 당연시한다면 자국에서는 군국주의의 찬칼를 위한 적, 한 마디로 적이며 가장 중요한 과업들 중 하나로는 그 뿌리와 가지를 뜯어야한다. 1900년 파리 회담의 결정을 실행하고자 지금까지도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사회민주주의에 실력있는 지도자들도 독일에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을 개시하려는 시도에는 반복적으로 저항해왔으며, 독일 사회민주당만큼 전 세계에서 군국주의에 싸우는 사회민주당은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대부분 진실이 있다. 독일 의회가 현존한 이래로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에 게 무자비하고 끊임없는 수준으로 비판했으며, 의회와 언론에서 모든 내용들과 오용들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를 기소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도 수집했으며, 그리고 끈질긴 끈기로 전반적인 반대운동의 일환으로 군국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수행해왔다. 이에 당은 옹호도 찬사도 필요하진 않은 경의로, 행위들이 이를 대신한다. 그리고 아직은 대규모로 발생한 문제도 보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전개한 반군국주의는 싸우는데도 성공적이었고 이 투쟁를 형성하는데 일치하는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전혀 부인하지도 않았고 그리고 분류하자면 투쟁이 미래에도 절대적으로 필수적이고 매우 유익하면서도 성공적이라는데에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다. 반군국주의 선전의 가장 필수적인 부분인 젊은 사람들의 교육적인 문제도 간과할 순 없다.

 

 

물론 전반적인 반대운동은 사람들의 눈을 뜨게하고 모든 반자본주의자와 사회민주당원들도 자체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반군국주의자다. 그리고 일반적인 계몽적인 노력도 반군국주의적인 편견에 대한 모든 의혹을 해결해주지만 일반적인 반대운동으로는 아직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겠는가? 이는 성인 노동자, 남성과 여성의 척도를 정당하고 필연적으로 잘라낼 수 있지만 우리는 성인 프롤레타리아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인 어린이들, 프롤레타리아인 젊은 사람들과도 함께하고자 한다

 

젊은 사람들사람들은 어린시절이 있었고 미래도 있다.”

 

 

여기에 이어서 부모들도 자녀였으며 자녀들도 부모를 이루는 젊은 사람들도 있다!

 

 

모든 경우에 한 가정의 부모들도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자녀에게도 사회민주주적인 정신을 스며주지 않는 한 비참한 사회민주주의자로 남을 것이며, 자녀들도 사회민주주주의자로도 자라날 수 있다. 또한 프롤레타리아의 젊은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인 조건의 작용과 부모들의 영향도 함께 작용한다는 견해와도 일치하며, 가장 중요하고 동시에 가장 명백한 반대운동과 계몽적인 수단을 이루기도 하며, 당 활동으로부터 영향을 줄 수 없고 원칙적으로 무시해야한다는 반동적인 부분의 모든 시도들도 쉽게 지워버릴 수 있고 자본주의는 어린이들의 정신을 교활한 방식으로 붙잡는다. 그러나 이 주제만을 다룰 수는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사고의 경향을 분명하게 살펴보면 현재에 반대운동이 어디에서 실패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고 보다 더 크고 지속적으로 실패하는데 있는 시급한 해결책도 요구할 수 있다.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의 자녀도 사회민주주의자로 자라난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지만 이는 우선 심각한 결점이다. 시간과 선의가 주어지더라도 일반적으로 교육적인 과제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고, 사회민주주의적인 프롤레타리아들은 얼마나될까? 아무리 좋은 의지가 있더라도 교육에 필요한 시간을 가지지도 못하고, 필요한 지식들도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대부분은 계급의식이 있는 아버지가 발휘하는 교육적인 작용보다 계몽적으로는 후퇴하고 있는 여성과 다른 가족구성원들이 아쉽지만 더욱 큰 영향력을 미친다. 당이 의무를 다하고자 한다면 젊은 사람들을 전반적인 방식으로 교육한 후에 노력하여 가정적인 교육도 함께할 준비를 마쳐야만 한다. 특히 반군국주의적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젊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부분적으로 특수한 반대운동도 지속하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서 프롤레타리아 중에서 정말로 계몽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몇 명이나 될까? 사회민주주의적인 비판의 원리들과 사회민주주적인 포부에 대해 이들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도 계몽할 수 있을 정도로 알릴 수 있는가? 그리고 평화적인 시기에 얼마나 많은 프롤레타리아가 헌신할 준비를 마치고 꾸준하고 끊임없이, 날마다 지속적으로, 기꺼이 어렵더라도 부지런하게 교육적인 노력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부분적으로만 아는 사람, 더욱 알아간 사람, 덜 알은 사람, 그리고 막대한 숫자로 미적지근한 사람들도 포함한다면 말이다. 얼마나 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여전히도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얼마나 문외한가! 여기에 가장 좋은 프롤레타리아 싹으로 가득찬 거대한 벌판이 있으며, 심지어 측량조차 할 수 없고 성인 프롤레타리아트가 퇴보한 부분들까지도 우리들에게 넘어올 때까지 재배를 미룰 수 없는 벌판들이다. 물론 계몽한 부모들의 자녀들에게 작용을 미치는 건 더 쉬우며 할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젊은 프롤레타리아의 괴로운 부분을 위해서도 노력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젊은 사람들 가운데 반대운동이 필요하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고 이런 반대운동으로 인해서 대상에 따라 서로다른 생활의 조건들과 조화를 이루며 기본적으로 상이한 방법으로 작업해야하며, 젊은 사람들의 서로다른 견해, 서로다른 성향과 서로다른 성격은 세부적으로 다루어야한다는 추론을 따르며, 일반적인 반대운동과 나란하게 특수한 부분을 부여해야하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특수한 단체들의 손에 맡기는게 좋으며. 당이 직면한 문제들과 결정적인 투쟁들도 더욱 가까워져 오면서 반대운동은 너무 광범위하고 파생하는 많은 결과들을 가져오며 분업할 필요를 더욱 더 강조하며, 상대적이더라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분업도 우리는 전혀 모른체하지 않는다.

 

 

이제 한 걸음 더 전진한다면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젊은사람들 내에서 반대운동 가운데 매우 특수하고 독특한 역할을 해준다. 젊은 사람을 교육해보고자 한다면 사회민주주의에 도달하기 어려운 계급들에게 자주 호소해야 하며, 프롤레타리아인 젊은 사람들을 더욱 포용하기 위해선 교육적으로 일반적인 노력보다 훨씬 더 멀리 퍼져나가야 하며,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교육적인 시설, 교육적인 과정, 강연 과정들에서 자주 접할 수는 없고 젊은 사람들에게 저작을 정기적으로 읽도록 접할 수도 없다. 또한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나이가 들면서는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노력들과 거의 접촉할 수 없기에 젊은 프롤레타리아들에게 호소하는게 좋다. 그렇다, 17세에서 21세 사이에 젊은 사람들이 적절한 대상이다.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노력들보다 훨씬 더 선전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 이런 반대운동을 형성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후자의 교육적인 형태에서는 벗어나는게 좋으며, 또한 특수한 위험들도 있기 때문에 분류하자면 일반적인 분투들과는 결합하지 않는게 좋으며 한편으로 이런 일반적인 분투들보다 더 어렵지 않게하는 건 무조건적으로도 필요하고 불신을 초래하지 않고자 하며 또 한편으로는 모든 함정들을 잘 알고 특수하게 전수받은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을 괴롭힐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자 단계적으로 조치를 취하는게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군국주의 자료의 예로 군인들의 학대, 군사적인 정의 등은 너무 방대하고 흩어져 있기 때문에 이 모든 자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단순하게 세분화하고 분업하는게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활용할 뿐만이 아니라 편집하고 엄선해서 모양을 갖추어야한다.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은 성인들 가운데서도 더욱 세부적으로도 효과적일 수 있다는걸 보여주는 바로 마지막 주장이다.

 

그러므로 보답을 줄 수 있는 충분한 작업의 기회도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 헌신한 반군국주의 반대운동으로부터 반군국주의를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성취했던 성공들은 무엇이 있는가?

 

 

확실히 독일군들의 대부분은 붉다”. 독일 국가 내 정당 무리들을 한 눈에 흘긋봐도 상태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로 여기는 근거로 제국 연합의 유명한 수장인 폰 리베르트 중장(Lieutenant General von Lieber)사회민주주의의 발전과 독일 군대에 미친 작용이라는 흥미로운 화제의 책을 쓰고자 펜을 들었다. 지금은 사회민주당 배신자인 심지어 막스 로렌츠(Max Lorenz)조차도 무력감 때문에 경멸하고 있으며, 그의 고백에 따라 한때는 헌신적이었던 신봉자를 불태우고 있고, 폰 아이히혼 장군(General von Eichhorn)1906년 가을에 군대에 반사회민주주의적인 훈련교육을 신봉하도록 도입하고자 했다. 확실히 독일 유권자들의 3분의 1은 즉 25세 이상의 독일 남성 유권자들은 1903년 독일의회 선거에서 거의 사회민주주의에 투표한 건 사실이며 물론, 적어도 당분간은 사회민주주의가 나이든 계급들보다 젊은 계급들가운데서 더 강력한 지지를 얻는다는 건 전반적으로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비율이 21-22살의 계급들이라서 좋은지에 대한 여부는 의문스럽다 또한 이런 젊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확신이 단단한 요소에는 전혀 속하지 않는다는 걸 매우 분명하게 해야하고, 그리고 사회민주주주의에 투표를 던지거나 실제로 사회민주당원으로 활동하는 건 굉장한 차이가 있으며 혹은 군대 내에 반군국주의의 여파로 뒤따른 모든 개인적인 위험에도 마주할 준비를 마쳐야한다. 심지어는 심리”, “제안”, “피의 논리로 다른 지면에서도 다뤘지만, 규율을 무너뜨릴 수 있거나 강력하게 기여하는 요인일 수 있으며, 계산적으로도 군대의 3분의 1이라도 이런 영적이고 도덕적인 정신적인 상태로 유지할 수 없게하거나 적어도 자국의 적에 맞서, 노동운동에 맞서, 쿠데타로, 폭력적이고 위헌적인 행동으로 고용도 어렵게 한다는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특히 전쟁을 위해 예비군과 예비역을을 동원하는 경우에는 군국주의에 더 부정적일 수 있는 건 사실이다. 190610, 보르베르트(Vorwaerts)의 한 군사적 협력자는 전쟁 시 소집한 예비역들과 예비군 병사들 가운데 지목하면서 이 경우에는 전체 군대의 대략 5분의 4를 이루며 적어도 100만 명은 여전히 군국주의적인 의미에서도 의지할 수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고 했으며 분명하게, 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심지어 군국주의적인 대중의 제안”, 또한 집단적인 정신병을 인정하면서도 숨길 수는 없다. 그리고 지휘권을 가진 군국주의적인 당국의 제안은 여기서도 군사적인 부역자들의 계산에도 큰 흠집을 낼 수 있다.

 

여기서 달성했던 건 노동운동 내에서도 전반적인 선전의 수단들로부터 성취할 수 있었다. 미래의 군인들에게도 특히 호소하면서도 지금까지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선전가의 활동으로 이뤄낸 건 거의 드물며, 잘 알려진 군 복무 의무자들을 위한 안내서”(Guide to Those Liable to Military Service) 외에도 1906년 여름에 당 집행위원회가 발행했던 전단지는 이보다 적절한 건 알지 못할 정도이며 두 출판물 모두 군대에 복무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법률적인 조항만을 다루고 있다. 진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모든 걸 저절로 이뤄질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며 분류하자면 이런 정적주의와 운명론은 역사적인 유물론의 의미에서 심각한 실수라는 건 사실이며, 모든 선전의 뒷처리들도 마찬가지고 일반적인 반대운동만이 아니라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도 정당할 수 있지만 독일 내 반군국주의 선전을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개선해야하는 건 사실이다. 독일 남부에 젊은 수비대는 용감하게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공로도 있으며, 물론 작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곧 이어질 것이고, 목적이 어렵다면 곧바로 활동적인 지원도 찾아봐야 한다. 독일에서도 무정부주의적인 반군국주의 싹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독일에 사회민주주의도 독일 노동운동의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핵심이자 정예부대인가?”라는 질문도 계속 던지고 있으며, 지나치게 조심하거나 확신하지도 않으며 문제를 밤늦게까지 씨름하고 해결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부족하게 무장했지만 모든 힘과 전투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발휘하며, 세계대전이나 러시아 개입1)이라는 사실과도 마주했으며 어느 정도는 피해낼 수 있었지만, 그리고 독일 사회민주주의도 여기에 책임져야하는가?

 

그리고 마침내, 독일 노동자들은 반군국주의 선전의 시야에도 떠오른 경찰의 노동자 대학살에 충분하게 박차를 가할 준비도 되지 않았는가?

 

이대로 둘 순 없기에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군국주의도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말을 내뱉도록 허용할 수 없고 눈감을 수도 없으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위험한 군국주의를 닿는 한 미리 줄여보고자 서둘러 반군국주의 선전을 개시하라!

 

그리고 분류하자면 독일에서 선전은 특히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뒤로 미룰만한 이유도 없으며 반대로, 오히려 가속하여 전진하고자 하는 동기여야한다.

 

독일 프롤레타리아가 고통스러워하는 자국의 정치적인 상황은 자포자기할만큼 절박해졌으며 독일 프롤레타리아트가 활동할 시기도 이제 충분히 무르익었다.

 

참조

 

1. 이런 희한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건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1906114일 독일의회에서 부엘로우(Buelow) 왕자가 발표한 이후에도 의심스러운 건 줄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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