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을 위한 요구

 

 

 

 

반드시 군국주의는 내부에서 자멸하고 분열하는 많은 병균들을 품고 있으며 틀림없이 전반적인 자본주의 문화에도 서로를 산산조각낼 수 있는 모순적인 요소들도 많이 내포하며 그 중에선 작지 않게는 과학적, 예술적, 윤리적인 진형의 경향들도 군국주의에 맹공격을 가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짐플리치시무스(Simplicissimus) 저작을 훼손하는 활동도 결코 과소평가할 순 없다.1) 크롬웰(Cromwell)의 역사관에서 1790년 프랑스와 1806년 독일의 역사는 얼마나 군국주의 체제가 더럽고 썩어서 그 자신도 무너지는지를 잘 알려준다. 물론 착상의 일종으로 사람들과 국가 권력 가운데 모든 피비린내 나는 분쟁들에서 고유한 혈액의 심리가 활발하고 강력해지면서 혈액의 최면술이나 심지어는 안드레예프가 언급한 세력들의 상관관계를 결정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피의 논리가 바로 있다. 이 모든 건 그 자체로는 유기적인 분열 과정의 일부로 선전의 필요에 대한 물음과 아무런 연관은 없으며, 자본주의에서 모든 서로다른 생활의 모습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걸 훌륭한 반대운동들의 틈새와도 잘 연관할 수 있어야한다.

 

군국주의에서 특수한 위험을 보여줄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최종적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무장한 도둑과 마주하고 있으며, “돈이냐 목숨이냐”(la bourse ou la vie)지만 돈이고 목숨이고!”(la bourse et la vie) 심지어 도둑의 도덕도 앞선다. 군국주의는 미래에 큰 위험일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타격하지 않더라도 현재에도 실재한다. 군국주의는 경제적인 생활에도 희생적인 제물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발전에도 흡혈귀이고 계급들로 모으는 주된 거짓말쟁이다. 군국주의는 또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운동을 형성하는 계급투쟁의 전술들에서 마지막 비밀이자 공개적인 규제자이기도 하다. 모든 중요한 물음들도 자본주의의 잔혹한 권력으로 주된 기반인 군국주의로부터 결정한다. 군국주의는 반국주의 활동들도 무력화할 수 있으며, 군국주의는 무더위 속의 태풍이 엄습하고 방해하면서 당 활동은 부진해지고 의회주의는 더욱 더 나태해진다.

 

군국주의의 약해지게 하는 건 할 수 있는 한으로 평화롭고 유기적으로 발전하거나 적어도 할 수 있는 한으로 무력적 충돌도 제한하고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생활과 당 투쟁으로 신선한 생활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걸 의미한다. 군국주의에 맞서 무자비하고 체계적으로 싸워온 결과로 당은 튼튼해지고 혁명적인 정신으로 스며들면서 혁명적인 정신에도 활력을 돋구는 원천이다.

 

이 모든 걸 이루는데 필요한 군국주의와 싸우는데만이 아니라 특수한 방식으로도 싸워나간다. 이런 많은 파생한 결과들을 가지는 위험한 구조는 대담하고 대규모로도 강력하게 다뤄야만 대처할 수 있고 군국주의에 부합하는 행위도 구석구석 도처에서도 지칠 줄도 모르고 많은 파생한 결과들도 여전히 주목받는다. 군국주의에 맞서 싸우는데 흔한 류로 반대운동의 위험한 여건보다 더욱 탄력적이고 적합한 특수한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한다. 독일에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런 개념에 맞서고자 싸우고 있으며 지금도 노력하고 있으며, 마지못해 이겨낸 모든 의심과 염려를 불식하고자 여성과 젊은 사람들에게도 특수한 선전도 펼친다. 농업 노동자들 가운데서도 반대운동만이 아니라 개별적인 수공예품들로 노동조합 선전도 세부적으로 다루었으며 마침내, 다른 나라들에서도 성공적으로 해낸 반군국주의 선전도 짚어볼 수 있으며 아마도 만하임에서 부결했던 114개의 동의안에도 빠르게는 시일 내에 기본적인 발상에 대한 문제도 전반적으로 알아낼 것이다.

 

분류하자면 이런 행동은 1900년 국제 회담에서 만장일치로 해결해서 잘 알려진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런 특수한 선전에 대한 요구가 군국주의에게 역사적은 아닌 무정부주의적인 개념과 전혀 관련은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아래에서도 군국주의가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가장 분명하게 의식하며 잘 알고 있고 물론 우리는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의 일부에만 불과하기 때문에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는 수준에 놓는 먼 발상도 전혀 가지지 않는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본주의에서도 특히나 해롭고 위험한 삶의 표시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우리의 전반적인 반대운동은 형태도 구체적으로 띠면서 자본주의적인 삶의 표시에도 직접적으로 맞선다. 우리는 반군국주의 세력과 함께 싸우면서도 흔한 정치 투쟁과는 별개로 한계를 지적할 수 있으며, 즉 반자본주의적이고 반군국주의적이며, 노동조합 투쟁과 협동조합과 교육적인 투쟁도 함께하면서 나란하기를 바란다.2)

 

반군국주의는 역사적으로 본래 이론적인 일반론에서도 중요하고 효과적이고 실천적인 운동으로도 성장한다면, 반군국주의는 모든 곳에서도 자라날 수 있으며, 연대한 민병대의 군대를 사용하면서도 자국의 적에 맞서면서 함께하는 건 물론이고, 국가들이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에 맞선다는 건 단 하나의 중요한 근거도 없다. 지금까지도 이런 군대 투입들을 실제로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으며, 또는 너무 오래 전에 발생해서 사람들의 의식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불을 질러 타오른 후에도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건 언제나 사회민주주의가 자부할 수 있었다. 반대로 역사와 사회학, 비슷한 정당들의 경험들에서도 배우고 미래를 멀리 내다볼 수 있었으며, 그리고 이런 경험으로 훨씬 나은 전진을 할 수 있었다. 역사, 사회학, 이런 경험은 반군국주의에 대해서 참으로 분명하게 피력하며. 시기적으로도 무르익었다.

 

참조

 

1. 폰 제플린 소장(Major General von Zepelin)<교차로>(Kreuzzeitung), 19061223일 자에서 이 위험을 세부적으로 기록했다.

 

2. 위에서 특수한 반군국주의 선전이 필요한 추가적인 이유로는 P.165에서부터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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