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보도와는 다르게 조사해봤지만 해외 반도체 산업에 대한 비중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무분별한 대출 강화, 금융 자본과 투자 유치 비중을 늘렸기 때문에 생겨난 결과는 아니던가. 또한 국내 외환 시장에서도 연준은 금리 인하로부터 은행 거래에 대한 활성화를 바라고 있지만, 실제로는 부르주아 독재로부터 생겨난 정부로는 늘어난 빚이라는 국가 채무로부터 포기한 정책 뒷수습을 감당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중심으로 많은 공학 인재들은 미국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바로 컴퓨터에 대한 생산권을 주장하기 위해서였고, 지금은 가상 공간에 대한 구글 투자 유치까지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비트 코인 매수 시장, 온라인 거래와 선물 옵션이란 합법적인 도박 사업을 투자와 매수로부터 자본가들에 대한 재산 축적을 늘리고자 두둔하거나 더욱 몰두하겠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도 자본 시장에서는 자유롭게 거래될 수 있고, 부분 유료화 정책들로부터 독점 소프트웨어에 대한 권리를 체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학자들은 간과하곤 한다. 기술이 사람을 먹여살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든 개발에서 투자되는 기술이란 오히려 무엇도 발명하지도, 도움을 주지 않을거라 장담하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똑같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발에만 몰두하고, 정작 올바른 교육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참 드물다. 먼저 투쟁한 사람들은 정작 그러한 기술을 앞다투어 자신들의 도구라는 목적이자 수단으로 선점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묻는다. 인공지능 논의는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공학 기술이란 단지 매우 편리하기 때문에, 그리고 알아서 값을 계산하는 기계를 발명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발전해왔다. 그리고 같은 계산 값이 그대로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면 바로 기계적 유물론을 맹신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논의에 대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바로 현실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 대입했기 때문에 자신이 바로 치명적인 오류를 범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철학에서 오래된 난제였던 주관적인 오류란 여기서 더욱 명백하게 풀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소프트웨어 독점 소유권을 비판할 때면, 그들은 도대체 그게 자신들에게 무슨 이익을 내세우기 때문에, 또는 이롭기 때문에 엉뚱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교육이란 배우고자 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모든 영역에서도 배울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늘 배우고자 한다. 독점 소유권으로 정작 재산을 늘릴 수 있는 자산이나 재산으로 아직도 배 채우려는 자본가들에 대한 프로그램만 만들고는, 정작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즐겁게도 만들 수 있던가. 분명하지만 정작 기계는 단지 인류를 복종하기 위해 설계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똑같이 되묻고는 싶다. 보람마저 헛되도록 하는 그러한 허항된 망상이라면 이제 그만둘 때도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