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램프 - 2025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바누 무슈타크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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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나는 부커상이 SF소설에게 주는 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하트램프 (#바누무슈타크 지음 #열림원 출판)를 읽으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없는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쓴 줄 알았다. 하지만 부커상은 영국에서 출판된 그 해 최고의 책에 수여하는 상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음직한, 어딘가에서는 비슷한 일이 일어났(진행중일)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단편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라기엔 신이 과연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만큼 부당한 것들에 둘러싸여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런 비통한 일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니 또 뒷맛이 썼다.

20세기 양차대전을 겪으면서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사람들의 권리가 점차 평등해졌다. 노예, 여성들 까지 모두 차별없는 한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 굶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해 죽는 아이들이 있듯이, 여전히 동등한 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여성들이 존재했다.

바로 종교 근본주의와 가부장제로 탄압받는 ‘어머니’이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가족이게 바치는 희생에 대한 존경을 받아야함이 마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12편이 담겨있다. 그 안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출산하고 더이상 애기를 낳지 못하게 하는 수술도 수치로 여겨진다. 그리고 출산 후 제대로 된 휴식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런 친구를 가엽게 보는 여성은 한달이 넘도록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게 해서 몸을 회복시켜줬던 어머니를 잃는다. 세상을 잃고 돌아온 그녀를 맞이하는 것은 같은 날 죽은 그 친구이다. 자신은 건강해서 괜찮다며 일주일만에 스웨터를 입고 장을 보러 나왔던 친구마저 세상에 없다.

다른 여성은 최후의 믿을 곳이어야하는 친정이 폭력을 행사하는 곳이고, 아들에게 재산이 다 상속되어 먹고 살기가 요원하다. 무슨 오만과 편견 속 시대도 아니고.

여자는 고등학교까지만 다니면 된다고 영특한 첫째딸은 결혼도 전에 이미 또다른 엄마, 또다른 아내 역할을 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글 속의 여성들은 이런 현실 속을 살아가기만 할뿐 평가하지 않는다. 슬퍼할 뿐 어찌하지 않는다. 내가, 나의 어머니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또 그의 어머니가 겪어오면서 당연한 것으로 세겨진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적응해버린 것이다.

현실을 더 잘 받아들이고 살아가기 위해서 택한 전략이겠지만 이 여성들이 처한 환경은 생태계와 같은 천재지변이 아니다. 누군가 잘못되었다 목소리를 내야 ‘그런가?’라는 의심이 생기고 그 의심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트리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트 램프>는 그 트리거의 역할을 한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알았을까? 실제 그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자기 나라 여성이 쓴 책이 큰 상을 받았다고 읽어보면 왜 이 책이 그렇게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는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에서 발생하고 있는지 이 세상에 있는 나, 너, 우리 모두가 알게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꽝꽝 얼어있는 곳에 돌을 하나 던지고 또 던지다 보면 표면에 금이 갈 것이고 결국 깨어져 다시 물이 흐를 것이다. 매말라있던 곳을 촉촉하게 적실 것이고 새로운 환경을 싹틔울것이다.

우리의 눈이, 신경이 미쳐 닿지 못하는 곳이 이렇게 꽁꽁 얼어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문지 해결의 첫 단계인 문제가 있음을 항상 인식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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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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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본소설이 제법 괜찮다는 사실이다.
소모성이 짙은 단순한 이야기에도 책을 덮을 때 마음에 따스함이 가득해졌고 문학성에 집중한 별게없는 잔잔한 소설도 잔뜩 쌓인 책을 정리하다보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여전히 일본은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기에 문학이 그 사람들을 담아낸 것일까.

그런 일본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꼽자면 아쿠타가와상이다. 오직 신인작가에게만 주어지는 상으로 앞으로 일본의 문학을 부탁한다는 기대감을 보여주는 상이다.

최근에 아쿠타가와상이 ‘해당작품없음‘으로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아 바로 직전 상을 수상한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런 상의 이름으로 제정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몬‘ ’코‘ 등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서른 다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픈 역사를 가진 작가다.

그런 작가의 단편 중 12편을 골라 담은 #아쿠타가와류노스케단편선 (#성림원북스 출판)으로 작가를 처음 마주했다.
유일하게 알고있던 작품이었던 ‘라쇼몬’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해 평가를 내리거나 판단을 내리면 꼭 반대의견을 덫붙이고 있었다. 왜그럴까 생각하며 주욱 읽어가다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톱니바퀴’와 ‘어느 바보의 일생’을 보면서 순간 멈칫했다.

‘어느 바보의 일생’은 소설이라기보다 작가의 마지막 유서같은 글이었는데 51개의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진 이 글은 작가의 인생, 생의 마지막에 눈 앞에서 펼쳐지는 주마등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멈칫한 이유는 이 글 속에 들어있는 인물들이 앞에 수록된 단편 속에서 등장했던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 단편들은 나에게 소설로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진짜 이야기가 담긴 비밀편지로 보였다.

실제로 그는 태어나기 전 딸을 잃어 정신병에 걸린 어머니를 보며 자랐고, 당연히 받아야할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끊임없이 불안했고 행복을 좇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행복해야 하니까.

그렇게 자라지 못한 아쿠타가와는 빛보다는 어둠에 집중했다. 천국보다는 끝없이 불타는 지옥을 그려냈다.
그렇게 자신 안을 가득채우고 있는 어둠을 토해내도 빈 부분을 빛으로 채우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않았다.

자신도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으나 기쁨보다는 이 아이는 무슨 죄가 있어 자신과 같은 부모를 만났는지라는 자괴감에 빠지고,(배우지 못한 부모의 사랑과 유전적 걱정이 심했다고 한다.)가장을 잃은 가족의 생계까지 챙겨야 하면서 삶에 부담감이 더욱 심해지고 끝없이 어두워 지는 내면에 침잠하여 바깥세상을, 빛을 결국 보지 못하고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이런 작가의 스토리를 알고나서 책에 수록된 글을 다시 살펴보니 ‘귤’이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수록된 글 중에 유일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빛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녀가 감사의 마음으로 던져주는 귤, 달리는 기차에 담겨있는 인생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에서 그는 잠시나마 자신이 불안해하며 쥐고있던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는다. ‘귤’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끝없이 글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글은 거짓없이 자신이 바라보고 느껴왔던 세상을 담아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쉴 수 없었기에.

글을 쓰기위해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글이라도 썼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글 자체가 삶이었고 작가 그 자체였던 작가.
그래서 신진작가들에게 온 마음을 다한, 거짓없고 꾸밈없는 참된, 자신같은 글을 써달라는 마음을 담아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쥐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줄 수 있는 가장 밝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아쿠타가와처럼 괴롭지만은 않기를.
내면에만 집중하지 말고 세상 속 아름다운 오색빛깔들을 만끽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래야 그도 세상의 빛을 하늘에서나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후배들의 글로 위안받았기를, 속이 빛으로 가득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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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은 아홉 개의 집 - 반지하 원룸부터 신도시 아파트까지
이규빈 지음 / 새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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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에 있는 첫 집은 가게에 딸려있는 작은 단칸방이었다. 아버지가 간판업을 하셨는데 가게안에 미닫이문이 달린 방이 한칸 있었고 그 옆에 조그마한 연탄을 피울 수 있는 수도시설이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다섯살 터울인 내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살았다. 그리고 주인세대가 3층에 살고있는 단독주택의 1층으로 이사를 갔다. 방 두개,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 거실까지.
부족함이 없는 집이었다. 집 건물 외벽과 담장사이 공간에 보일러가 나와있었고, 보일러를 눈, 비, 직사광선 따위에서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샤시에 라면, 과자따위를 비상식량이라는 이름으로 몰래 숨겨두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층 아이가 부모없이 굶고 있으면 그곳에서 라면하나 꺼내 끓여주기도 하고, 이백미터 남짓한 골목에 전화도 필요없이 큰소리로 이름만 부르면 약속이 잡히던 사람냄새 물씬나는 곳이었다. 이 집에서는 고2때까지 살았더랬다.
그 다음엔 낮은 연립주택의 탑층으로 이사갔다. 부모님이 직접 타일과 문을 교체하고, 내방에는 다다미가 깔아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한 향이 났다. 비록 수험생이라 집에서 잠만 잤지만 ㅎ
그집 다음에 아파트로 이사갔다가 군대를 다녀와 이층주택으로 이사해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일을 시작하면서 혼자살기 시작해 계약기간이 끝날 때 마다 이사를 다녔다. 이사 생각만하면 치가 떨릴만큼.

#나를지은아홉개의집 (#이규빈 씀 #새움 출판)을 읽으면서 저자가 내 또래라 그런지 비슷한 형식으로 집을 옮겨가는 모습이 추억여행을 하게하여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집’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집’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집’이라고 생각하는 공간들은 위에 나열한 곳까지였다. 혼자 살면서 여섯번 이사를 했지만 그 중에서 ‘집’이라 생각드는 곳은 작년에 이사온 현재 집 뿐이다.

내가 몸을 누이고 밥을 먹고 비바람을 막아준 곳인데 왜 어떤 곳은 집이고 어떤 곳은 집이 아닐까? 이 질문이 책을 읽는 동안 떠나지 않았다.

혼자사는 집이었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서도 옆에 있는 사람이 서운할 정도로 잘 지내는 타입이라 그것이 주된 요인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 스스로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절에 살았던 곳이 나에게 ‘집’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급하지 않은 사이의 공간에서의 시절동안, 나는 정체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준비만 하던 시간, 요즘 뭐해? 라는 질문이 부담스러워 사람도 잘 만나지 않던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꿈도 온정도 박탈당한체 스스로를 그곳에 가두었다.
인생에서 가장 오랜시간을 잠을 자고, 잠 못들며 보낸 방 하나, 거실하나의 그 공간들을 사회에서 내가 무언가를 다시 해나가기 시작하면서 벗어나서야 내가 머무는 곳이 또다시 ‘집’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에서 ‘지은’ 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집은 인간이 만들어 낸 공간이지만 그 공간은 엄마의 자궁처럼, 품처럼 비, 바람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듬어 키워낸다.
그 품 속에서 어떤 시간들을 견뎌냈는지에 따라 나는 다른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말그대로 ’지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그 공간들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그 공간들은 나를 보듬어주고 키워준 곳이 아닐까?
스스로 세상을 외면하고 있었으니 나를 보듬어 준 것은 ’집‘뿐이었다.

그냥 힘들었다며 짙은 검은색으로 스스로 그곳들을 덮어버리고 외면했던 것이다. 그 공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지어진‘것이었다.
그렇게 그 공간들도 나의 ‘집’이 되었다.
그렇게 나라는 개인의 역사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개인의 역사를 말할 때 집은 빠질 수 없다.
그 개인의 역사들이 모여 인류의 역사가 되듯, 개인의 집들이 모여 동네가 되고 도시가 되고 국가가 된다.
결국 역사란 내가 속해있던 공간이 지은 ‘나’의, 우리의 모음이다.
지극히 개인적임과 동시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집’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잘 것 없지만 아늑한 내집. 얼른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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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으로 나오는 말까지만 진짜 루프테일 소설선
왕후민 지음 / 루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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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가지의 이야기가 #내입으로나오는말까지만진짜 (#왕후민 지음 #미디어샘 출판)에 담겨있다. 여섯개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인물들의 다른 시선, 다른 시간대의 ‘같은‘ 이야기이다.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평범하다‘이다.
책 속의 인물들의 일상은 평범하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그렇다. 나부터가 그러하니까.

재수하고,학교 기숙사에서 낯선 룸메이트를 만나고, 알바하고, 자취하고, 연인과 동거하고, 옛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고, 마음이 담긴 (또는 마음이 담기지 않은)사랑을 나누고. 놀랄 것 없는 일들이 주된 스토리다.

’블랙 유머‘라는 책 소개에 걸맞는 장면들도 나온다. 실제로 저항없는 웃음이 단말마처럼 터져나온다. 하지만 이내 정신차리고 웃음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는지, 아니 이 글에 이렇게 웃은 적이 아예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뗀다.
그래서 아마 유머 앞에 ‘블랙’이 붙은 것이 아닐까.
모두가 공감하고 익숙한 것이지만 이런 것을 즐겼다는 사실 그 자체가 왠지 부끄럽고 약점같은 것으로 느껴지는 것. 아이러니 하게도 ‘블랙’이라 이름 붙은 것이 그냥 유머보다 더 생활밀착형인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왜 우리는 우리의 일상과 가장 닮은 것을 외면하려 하는 것일까. 실제로는 어느하나 빼고 살아가기란 쉽지않은 것을 각자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텐데.
그만큼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빛 하나 보이지 않고 어둡고 막막하기 때문일까?

분명 익숙한, 그래서 더 공감하고 재미있게 느껴짐에도 ‘블랙’이라는 단어를 하나 덫씌움으로 나와는 관계없는 ‘어둠’으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

나도 그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일들따위 나라는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나를 꾸미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며 살아간다. 속인다기보다는 뭐랄까. 굳이 알려줄 필요가 있을까? 분명 나의 약점이 될 것들인데.
속이지 않는다고 확언할 수 있는 이유는 내사람이라는 바운더리에 들어있는 사람은 모두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입으로 나오는 말까지만 진짜>을 읽으면서는 그런 것들을 ‘진짜’가 아닌 것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살아간다면 ‘진짜 나’는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주고 응원해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스스로가 자기자신에게 엄격하고 까칠하지만 나를 제대로 바라봐주고 엇나감에도 묵묵히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니까.

있음직한, 있었던, 그러나 숨기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보면 결국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지면에 글자 대신 떠오른다.

달구어진 도장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 마냥 생생하게 떠오르는 나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대로 책을 덮어야할까. 그냥 나와는 상관없는 ‘소설’로 스스로를 속이고 읽어야할까.
내가 택한 방법은 등장인물의 이름 대신 내 이름을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렇게 외면하지 않고 ‘그래 그랬던 적도 있었지.’ ‘그래, 나도 지금 그래.’라고 맞장구치며 나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고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랄까.
있었던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그것에 매몰되어 오늘을, 내일을 말아먹을 수는 없다.
결국 내 스스로가 그것을 소화해내야하는 것이다.

한발 앞으로 내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힘차게, 제대로 발을 디뎌 밝고 뒤로 밀어내는 힘이다.
그것이 현실에 단단히 두발 붙여 살아가게 한다.

책을 읽으며 또렷해지는 나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수긍하고, 소화하여 덜 어둡고 칙칙하게 만든다.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면서도 유머를 잃지않는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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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그리스 로마 신화 : 2 저항의 계보 일상이 그리스 로마 신화 2
한호림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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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독파민’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부터 그것을 느끼게 해준 책이 있었다. 바로 ‘그리스 로마 신화‘이다.
주신, 번개의 신 제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저승의 신 하데스, 전쟁의 신 아테나 등을 비롯한 수많은 신들과, 그들과 얽힌 인간들의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롭던지(바람둥이라는 단어를 제우스에게서 배운 것 같다), 그때는 신화 곡 인물들의 이름을 공룡이름 외우듯 외우고 다녔었다. 물론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나이가 먹은 지금은 오히려 신화와 멀어졌다. 근친상간(!), 불륜과 같은 어른들이 더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이야기임에도 신화는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않는 신들의 이야기일뿐, 하루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쓸데없는 것일 뿐이다.
그러다 문득 책을 읽자 싶어 고른 두툼한 그리스 로마신화를 펼치면 인물도 많고 이름도 어렵고 스토리도 아주 난리부르스다. 결국 덮고 또 거리감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신화를 잘못 차용하는 경우들이 발생한다. 대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과잠’에서 의대생들 마크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지팡이에 뱀이 똬리를 틀고있는 심벌인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의술로 죽은자까지 되살려냈던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서 유례했다.
‘치유의 지팡이’라고 불리는데 서양권과는 달리 신화가 일상이 아니다보니 다른 지팡이로 오용하는 경우가 더럿있다. 뱀 두마리가 지팡이를 감고있고 그 지팡이에 날개가 달려있는 로고를 쓰는 곳들이 있는데 이것은 도둑의 신이었던 헤르메스의 심벌이다.

일상에 녹아들어있지않은 신화를 가져다가 사용하다보니 이런 실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더이상 인세와 동떨어진 신화가 아니라 우리가 모든 드라마의 설정만큼 막장이라 사람냄새나고 친근한 사람사는 이야기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책이 있으니 바로 #일상이그리스로마신화 (#한호림 씀 #책읽는고양이 출판)시리즈가 그것이다.

내가 읽은 책은 그 시리즈의 두번째, #저항의계보 이다.
신화 속 절대왕좌의 세대교체를 재미나게 들려준다.
1대 우라노스가 아들 크로노스에 의해 거기(!)를 싹둑(?)당해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이야기(심지어 우라노스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와 그 크로노스도 자신의 아들인 제우스에게 제압당하는 이야기까지 3대에 걸친 왕좌쟁탈전을 들려준다.

그 이야기 속에는 신들의 ‘관계’가 자연스래 녹아있는데 신화로 읽었을 때는 복잡했던 그들의 관계가(어떤 신의 부모인데 원래 부모자식간이었다거나 조손관계였다거나😂)
이런 이야기들을 어머어머 세상에 걔가 그랬데~라며 따라가다보면 더이상 신화가 아니라 우리랑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지지고 볶는 세상 사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렇게 친숙해지고 우리주위에 알게모르게 숨겨져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점점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항상 그자리에 있었으나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것들이 우리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 반대로 묻고 싶다. 도움되고 유익한 것만 하고 있는가? 인생이 성공적인가? 즐거운가? 행복한가?

나아가려면 휴식도 해야하고 스트레스를 낮추고 행복감을 주는 관심사나 취미가 있어야 한다.
행복은 성과주의가 아니지 않나.

일상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갖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쓴 저자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군인 시절 월급보다 비쌌던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사서 읽고 또 읽었다. 신화를 몹시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책에 가득 담겨있다. 애써 찾지 않아도 모든 페이지에서 보인다.

시시껄렁한 농담 같아도 짙은 고수의 향기가 느껴진다. 무언가를 쉽고, 재밌게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너무나 사랑했기에 전문가가 되었고, 모두가 좋아해줬으면 좋겠기에 쉽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꼭 신화가 아니더라도 이처럼 좋아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면 좋겠다. 그러고 싶게 만드는 유쾌하면서도 행복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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