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을 포기한 사람들 - AI 시대,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
메리 미즐리 지음, 여인옥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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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을포기한사람들 (#메리미즐리 지음 #헤이북스 출판)은 도덕철학의 시선에서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판단을 그만두는 두 가지 이유를 들고 있는데, ‘각 문화는 모두 옳으므로 외부인이 평가할 수 없다.’ 라는 상대주의, ‘개인마다 도덕이 다르기 때문에 타인이 판단할 수 없다.’ 라는 주관주의가 그것이다.

모두 다른데 어떻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을까?
내가 아는 도덕은 옳고 그름에 앞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태도이다. 거창하지 않더라도 매 순간 우리는 판단을 내려야한다. 깊게 생각하지 않는 사소한 것들도 포함해서. 그런 판단의 족적들이 모여 자신만의 지도가 되어 길을 잃지 않고 삶을 걸어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자신만의 도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옳지 않다고, ‘판단질’이라며 판단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판단도 허락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판단 그 자체이지 판단하는 행위가 아닌데 말이다. 판단 내리기 쉽지 않음을, 다른 사람들의 질타가 두려움을 다른 사람에게도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해서 숨기는 것이다.

겸손의 미덕, 판단하지 않고 존중하는 관용.
이러한 전제들이 우리 스스로가 판단하는 능력을 막아버렸다. 과연 이러한 전제들이 과연 맞는 것인지 따져보지 않고 그냥 받아들여 버렸다. 왜? 그리고 정말? 이라는 의문과 의구심을 내 주위에 당연하게 존재해 온 것들에 가져보는 것. 그것이 철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철학 입문서이다.

판단이라는 이런 철학적 행위의 비실천은 AI의 도입으로 더 극심해지고 있다. ‘AI에게 물어보니까~’라는 말로 이 판단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내 탓 아니라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는다.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질문에 각자의 답을 내릴 수 있다면 AI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AI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넘어 우리 보편적인 삶을 이야기하면서 큰 답을 찾는다. 이 경험은 앞으로 새로운 시대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헤쳐나갈 수 있는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그 힘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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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코어
오타쿠코어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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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작품을 감상해야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기에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자신만의 세상에 갖혀있고,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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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장면들을 애니메이션 인물이라는 대상을 제외하고 보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어릴 적 만화는 백해무익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만화를 좋아한다는(성인이 되어서도)것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충돌을 피하기위해 더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에 숨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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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코어 (#오타쿠코어 씀 #모티브 출판)은 오타쿠에 대한 안내서임과 동시에 ‘갓반인’과 오타쿠, ‘패션 오타쿠’와 ‘진짜 오타쿠‘, 취향과 성향에 따른 오타쿠들 사이에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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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 속에서도 다양한 분야와 성향이 있다는 것과 다양한 입장(시선)을 보고 있다보니 오타쿠라는게 특정 사람들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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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적지 않은 나이지만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새로운 시즌(쿨)을 기대하고 기다린다.
극장판이 나오면 극장에 가기도 한다. 굿즈는 아직 손대지는 않았지만 주인공 또는 등장인물들의 입장이 되어 가슴아파하고 눈물도 찔끔나고 며칠을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다양한 작품을 보지 않았다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인기있는 ‘대중픽’만 본다고 오타쿠가 아닌 것는 아니다. 하지만 ‘찐 오타쿠’들의 문화는 알지 못하기에 조심하고 지양해야할 태도와 질문들이 있다. 이런 것을 신경써야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라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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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즈음, 오타쿠의 시선에서 이해한 일반인들을 표현하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그 사람들은… 남친/여친 덕질을 하고 있었음… 그래서 맨날 지들 남친을 모에화하고, 궁금하지도 않은 남친 얘기를 나한테 했던 거임…오타쿠가 갓반인한테 그게 뭔데 씹덕아" 할 만한 얘기를 하는 것처럼…” 덕질이라는 것은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살짝(또는 많이)미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나는 것이지 않나.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오타쿠의 사랑이 더 열정적이고 충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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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고, 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이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런 사람, 이런 생, 이런 사랑도 있다고.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멋지고 배울만한 것을 찾는 것.
그것이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하는 이 세상에서 당연하게 가져야 하는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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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덕후가 이끈다라는 말도 있지 않나.
무언가에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것은 물론, 그 뜨거운 열정을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
세상을 꾸준히 재미있게, 살만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은 사랑과 뜨거운 열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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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좀 더 멋지게 살 수 있는 방법. 그 방법을 알 수 있는 힌트가 이 얇은 책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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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타티프
토니 모리슨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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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타와 트와일라.
이 흑인 또는 백인(누가 백인인지 흑인인지 정확하게 정해져있지않다) 여덟 살 소녀들의 삶 수십년이 50페이지의 짧은 분량에서 쏜살같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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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이자 둘이 공유하고 있는 보호 시설에서의 함께 했던 기억에서부터 성인 여성으로, 엄마로 살아가면서 중간중간 만나 묶는 매듭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함께 했던 보호 시설에서의 기억도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있다.
불량소녀들의 괴롭힘을 당하는 나이든 여성을 방관했는지 동조해 괴롭혔는지, 그녀가 백인이었는지 흑인이었는지 너무나 큰 차이임에도 정반대의 기억.
이러한 정반대는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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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부유하고 누군가는 힘겹게 살아가고, 누군가는 부모의 권리를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식의 권리를 옹호한다. 이렇게 시소처럼 누가 흑인인 것 같았다가 백인인 것 같은 상황이 계속되어 인종을 맞춰야 하는 것 같지만 인종보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우위에 서고 약자가 생겨나는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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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강자. 영원한 약자.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지만 특히나 영원한 강자와 약자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 정의가 살아있어서가 아니다. 억눌린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더 못한 상황의 사람들을 발견하고 되갚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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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어준다라는 아름다운 해결책도 있지만, 당한 것이 있는 입장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어딘가 해소라도 해야 겨우겨우 살아나갈 수 있지 않나. 인종과 윤리, 분명 집에 있으나 집이 아닌 것 같은 디아스포라. 아마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명확하게 둘로 나누는 것을 계속하다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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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희고 검은 것보다 회색이 더 많다. 완전히 극에 치우쳐 있는 것은 잘 없다. 하지만 나와 다르면 그때부터 자세히 살펴보는 것을 그만두고 선을 긋는다. 그렇게 이쪽저쪽으로 사방팔방으로 선을 긋다보니 내가 오롯이 발디딜 곳 하나 없고, 나와 함께 하는 사람하나 없다. 저마다 자기가 그어놓은 선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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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립애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선을 지우고 선 너머에 있던 사람들을 이분법적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는 것. 차이점이 아니라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편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같은 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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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과 인종, 기억, 우정, 폭력, 방관, 배척.
짧은 이야기 속에서 끊이없이 이것들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갖혀있지 말고 넓게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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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ㅣ 을유사상고전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사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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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던 니체.
드디어 #차라투스트라는이렇게말했다 (#프리드리히니체 씀 #을유문화사 출판)을 마침내 펼쳐 평소보다 조금 더 큰 덩어리로 그를 만났다.
책을 읽지 않아도, 철학을 몰라도 니체라는 이름과 저 문장은 많은 사람들이 안다. 이것에서부터 오해는 쌓여간다. ‘신’ 그 자체를 부정하는 반종교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우니까 말이다. 물론 그 ‘신’도 포함되어 있지만 ‘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 짐이 정말 당신의 것인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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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짐에 억눌려 한걸음 겨우 내딛으며 살아간다. ‘학생이라면’, ‘남자라면’, ‘가장이라면’, ‘여자라면’, ‘어른이라면’ 같은 짐들 말이다. 이런 것들 누가 만든 짐인가? 정말 우리 스스로가 몇날며칠 심사숙소한 결과인가? 이 ‘짐’이 바로 ‘신’이다.
니체는 ‘신’으로 대표되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들이 제각각의 연유로 합의하고(또는 강제한) 존재해오고 있는 규율들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고 자기 자신이 궁리하면서 만든 ‘진짜’규정들을 지켜나가는 정신을 가지기를 니체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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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간이 나아가는 정신 변용의 과정을 니체는 낙타, 사자, 아이로 구분짓는다. 위의 짐들을 짊어지고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무분별한 상태가 낙타, 정말 당신의 짐이 맞는가 라는 ‘용’(오랫동안 존재하며 커지고 굳어진 기존의 규범)의 뜨거운 입김과 같은 질문에 아니라며 포효하며 맞서는 것이 사자,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을 넘어 놀이하듯이 자신을 발견하는데 온마음을 다하고 자기만의 규칙을 정하고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나 재미있다는 듯 웃어넘기며 다시 그 과정들을 반복하는 것이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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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와 다시 일어나 반복하는 것.
이것이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위버멘쉬)의 조건이다.
만들어낸 규칙은 시간이 지나며 겪는 경험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에게 또다른 기존의 것이 될 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놀이하듯 즐겁게, 그리고 능동적이고 진심으로(놀이에 진심이지 않을 수 있나) 넘어지고 깨져도 또 다시 일어나 파괴하고 탈피하는 사자와 아이를 무한히 반복하는 ‘강자’이다.
말이 쉽지 니체도 사람인지라 넘어지고 깨지는 과정동안 고통스러워하고 흔들린다. 이것을 니체는 춤으로 극복한다.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의 말에 의하면 니체는 정신으로 춤을 춘 최초의 춤추는 철학자였다.
춤 동작 하나하나를 익히면서 발 끝으로, 직접 세상을 느낀다. 능동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며 반복으로 동작을 익히고 능숙해진다. 마침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세상과 하나가 된다. 주체성과 끝없는 나아감(반복)은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 ‘웃음’까지.
그렇게 니체는 마침내 명랑의 철학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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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의 힘으로, 초인적 심상으로 니체는 ‘영원회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 반복이, 이 삶이 계속해서 반복되더라도 너는 이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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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의 선택이 반복되기에 주저앉을 것인가. 그렇기에, 그럼에도 기꺼이 반복 위에 올라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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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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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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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나의, 우리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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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안의 사람을 읽는 눈
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 김철 편역 / 히읏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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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하면서 삶은 나날이 풍족해지고 편해지지만 살아가는 사람들은 점점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에서 표류한다. 즐거움을 찾지못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대나무숲도 없다.
그냥 작은 방에 몸을 누이는 것. 그것만이 위안이 된 시대이다. 빠르고 복잡해진 사회 그 자체가 문제일까?
사람이다. 사회에서 허우적거리느라 사람사이를 신경쓸 겨를이 없어졌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일단 눈 앞에 주어진 것들을 해내야 하기때문에 자신을 살펴보는 것은 나중으로 차일피일 미루어진다. 그러다보니 타인도 살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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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시안의사람을읽는눈 (#발타자르그라시안 씀 #히읏 출판)은 400년 전 학자이자 사제였던 그라시안의 인간관계에 대한 글들이 적혀있다.
어디서 들어봤음직한 문장들도 있고, 처음 생각해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문장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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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은 무기요, 인품은 그 무기를 쥔 손이다.“, ”서투른 완성보다 늦은 완성이 낫다.“,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상인의 기질을 조금 가져라 순수함만으로는 세상을 살 수 없다.“, “불쾌함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같은 문장들이 고개를 끄덕이게도, 가만히 생각해보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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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처세술이란, 상사, 친구, 동료, 부하, 배우자, 자식 다양한 타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도 그 관계를 바로잡거나 점검하는 것은 그 관계 속에 있는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갈등, 불만, 온갖 반응들을 하게 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관찰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보인다. 그 상대방에 맞춰 나는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상대방이 불편해 할 질문이나 대답을 내어놓는다. 불쾌함과 불편은 적절함의 다른 이름이다. 자기 뜻대로 되지않아 박차고 나가는 사람은 거기까지이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은 적절한 그 무언가를 나와 함께 만들어간다. 불쾌함과 불편함이 사라질 수 있도록, 또 다시 선을 넘지않는 긴장으로 그것들이 치환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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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충분한 고민, 스스로와의 대화가 부족한 상태로 상대방만 살펴보고 있으면 상대방을 절대로 알 수 없다. 상대방을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일 오랫동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아야한다.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어떻게 하고 싶어하는지, 왜 이렇게 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이야기 나누고 답을 찾아야 한다. 나 자신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나를 이해하는 것. 그로인해 나를 잘 다스리는 것. 그것이 타인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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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라시안의 말들은 유효했다.
결국 사람 속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시간을 들여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헛된 일은 전혀 아닐 것이다.
나, 그리고 타인과의 처세술.
그 시작으로 아주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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