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 인문학적인 음악사 - 수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읽히는 교양 음악 수업 ㅣ 세상 인문학적인 역사
정은주 지음 / 날리지 / 2025년 12월
평점 :
학창시설 음악시간에 베르디의 오페라를 듣고, 대학시절 교양을 갖추겠다고 용감하게 신청했다가 끝내 굴복한 ‘서양 음악의 이해’수업, 그 이후로도 유명 연주자의 클래식 연주를 실처럼 가늘게나마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양음악사’라는 거대한 흐름은 나에게 미스테리이다.
시대의 흐름은 나열할 수 있지만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이해되지 않았다. 구분할 수 있는,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세상인문학적인음악사 (#정은주 씀 #비욘드날리지 출판)은 수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에 대한 탐구의지를 유발하는 책이었다. 음악으로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들과 엮어가며 음악이 생겨나고 변해가는 과정을 담고있는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 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는 오페라로 큰 의미가 있었다와 같은 한줄요약, 19세기에 들어서 지금의 지휘자가 탄생했다처럼 보통의 음악사 책에는 담겨져있지 않을 뒷이야기야 담겨있어 어떤 독자가 읽더라도 하나쯤은 무조건 기억할 수 있는, 서양음악사라는 퍼즐을 시작하는 퍼즐조각 하나를 쥐어준다. 퍼즐조각을 손에 쥐고 있다면 퍼즐을 맞춰보고 싶지 않을까? 그만한 동기부여가 될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나는 운이 좋게도 몇조각의 퍼즐을 더 손에 쥐었다.
20세기의 음악은 전쟁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과 여성음악가들이 그것이다.
조성진의 앨범에 수록되어있어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이 프랑스의 바로크 거장 프랑수아 쿠프랭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1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영웅들을 위한 헌정곡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라벨을 음악만으로 어느시대에 배정해야하는지는 너무 높은 레벨이고, 라벨=무슨시대 라고 외워봤자 시간이 지나면 헷갈리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며 라벨의 곡에 전쟁의 비극이 담겨있다라는 사실은 절대 까먹지않을 것이라 자신감이 들만큼 명료하게 다가왔다.
문학에서도 여성작가들은 배척당해왔는데 음악의 역사에서도 그랬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그것만큼 문학도 음악도 같은 흐름이었을텐데 연관짓지 못하고 따로 생각하는 내 자신도 충격적이긴했다.)
원치 않게 어린나이에 수녀원에 들어가 교회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남겼으나 수도원밖으로 그녀의 작품도 나서지 못했던 성인 힐데가르트 폰 빙엔, 남성 유명 인물의 누이, 아내 같은 타이틀이 실력보다 더 유명했던 피니 멘델스존, 클라라 비크 슈만은 세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백곡을 작곡, 수천번의 연주, 최초 음악대학 교수와 같은 이정표를 남겼다.
물론 서양 음악사 최초로 이름은 남긴 여성작곡가 마달레나 카술라나도 남성에게만 지성과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허황된 오류라는 것을 역사에 남겨 수많은 여상 후학들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물론 아직 클래식에서 여성의 입지는 좁긴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작가의 말이 역사는 지난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순간,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시간까지 담겨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흥미롭다고 표현하기에는 좀(많이)그런 쇼팽의 장례식이 2주가 지나서야 열린 이유라던지, 하이든의 진정한 장례식이 145년만에 열리게 된 이유같은 이야기들이 포기하지 않고 이 책을 완주하게 해준다.
음악만의 기준에서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쇄술, 종교, 전쟁과 같은 다른 인문학적 요소와 나란히 두고 바라보게하여 더 잘 기억에 남게, 더 잘 순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책의 서문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이 유구한 서양음악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음악사를 알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최소한 알아야하는 것들을 알려줘서 흥미를 유발하고 그 흥미를 계기로 더 방대한 역사를 스스로 관심을 갖고 익히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가득담겨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밌게, 관심갖게 해줄까를 고민한 흔적이 빼곡히 담겨있다.
이런 애정어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초대장을 받았으면 가야지.
음악의 세계로 스스로의 첫발을 망설이고 있다면 웡카의 골든티켓 같은 이 책을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