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현대지성 클래식 71
찰스 디킨스 지음, 정회성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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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법.
21세기 지금에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이 두가지가 지금의 모습을 갖게된 격변의 사건. 프랑스 대혁명.
영국이 있는 곳엔 프랑스가 있고, 프랑스가 있는 곳엔 영국이 있었던, 그 당시 세계의 패권을 다투던, 영국과 프랑스. 그 두 나라의 수도, 런던과 파리. 그 두도시에서 벌아지는, 아니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

#두도시이야기 (#찰스디킨스 지음 #현대지성 출판)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읽어서그런지 모든 이들의 삶이 생생히 그리고 잔인하게 내 안에 아직도 박혀있다. 귀족층은 부패했고 법은 아이러니 하게도 정의보다 그 부패를 보호한다. 양심이 있는 귀족들은 염증을 느껴 파리를 떠나 런던으로 향하기도 한다. 부패를 지키는 법은 시민들을 지키지 않는 것을 넘어 숨통을 죄어온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 하게도 상황이 급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보편적인 삶의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사랑하고 복수하고 사회에서 부야받은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보통’의 나날들을 보낸다.

두 계층사이의 너무나도 다른 ‘보통’의 나날들이 하루하루 쌓이다보면 어느새 격변의 날은 다가온다.
하지만 그 격변의 날에도 찰스 디킨스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닌 그 순간에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집중해 글을 쓴다.

각자의 인생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주목되는 하나의 삶이 있다면 해서는 안될 사랑을 하는 변호사. 시드니 칼튼의 삶이다.

일로 대변되는 이전의 삶에서 신념을 지키지 못한 시드니 칼튼은 살았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사랑을 만나 신념을 지킨남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신념을 지켰기에 죽었으나 살았다.

부활.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 예수님이 보여준 기적으로도 유명함과 동시에 불로장생을 원하는 인간의 또다른 욕심이기도 하다. 인생 2회차와 부활의 차이점은 부활한 예수의 몸에 남아있는 못자국, 스키드마이다.
이 스키드마는 죽음을 기억하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음을 뜻한다.

그는 죽음과도 같은 삶에서 신념을 지키지 못했다는 흉터를 잊지않고 간직한 채 사랑에서 죽음과도 같은 생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그의 사랑이 향한 그녀는 물론, 인물네 매료되어 잠시 잊고있던 대혁명 상황에 떨고있던 보통의 농민들에게도 평온한 하루를 선물한다.

신념을 지킨 것이 나아가 의도치 않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다.

예수의 부활로 많은 백성들이 환희에 빠진 것과 비슷해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몸뚱아리가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자기의 신념,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느냐, 그것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 살아간다는 행위는 이때껏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던 신념을 지키지 못한 ‘죽은’ 사람이 용기를 내 실천으로 옮겼을 때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된다.

역사적 사건 그 자체보다 인물들에 집중했던 이 이야기는 한사람의 ‘부활’로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의의를 그 어떤 역사서보다도 더 우리들의 가슴에 와닿게 전달하고 있다.
부당함에도 권위에, 삶의 힘듦에 무릎꿇고 죽은듯 살아가던 사람들이 악과 타협했다라는 스키드마를 잊지 않고 목숨을 걸고 타협하지 않음으로 모두가 진정한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으로 ‘부활’한 사건이라고.

실제로 프랑스를 깊게 겪어보지 못한 영국인이 역사서를 탐독하며 사람들에게 주목하여 천부적인 공감과 이해능력으로 참고한 역사서를 쓴 역사가보다 그 당시 프랑스를 더 잘 이해하고 담아냈다.

피로 얼룩진 역사이나 그의 삶은 마냥 처절하지 않았다.
타협하고 신념을 지키지 못한 모습이 더 처절했다.
위협을 무릅쓴 그 행위가 그에게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 어떤 순간보다 환희에 찬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모습으로 그 때 혁명에 함께 했던 사람들의 환희를 보여주었다. 그들의 환희가 지금 우리에게는 숨쉬듯 , 해가 비추듯 우리 곁에 있다.

그렇게 150년 동안,
<두 도시 이야기>도 우리 곁에 환희의 순간을 여전히 들려주며 그렇게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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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인문학적인 음악사 - 수천 년 역사가 단숨에 읽히는 교양 음악 수업 세상 인문학적인 역사
정은주 지음 / 날리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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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설 음악시간에 베르디의 오페라를 듣고, 대학시절 교양을 갖추겠다고 용감하게 신청했다가 끝내 굴복한 ‘서양 음악의 이해’수업, 그 이후로도 유명 연주자의 클래식 연주를 실처럼 가늘게나마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양음악사’라는 거대한 흐름은 나에게 미스테리이다.

시대의 흐름은 나열할 수 있지만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이해되지 않았다. 구분할 수 있는, 구분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말이다.

#세상인문학적인음악사 (#정은주 씀 #비욘드날리지 출판)은 수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에 대한 탐구의지를 유발하는 책이었다. 음악으로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들과 엮어가며 음악이 생겨나고 변해가는 과정을 담고있는데,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들 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는 오페라로 큰 의미가 있었다와 같은 한줄요약, 19세기에 들어서 지금의 지휘자가 탄생했다처럼 보통의 음악사 책에는 담겨져있지 않을 뒷이야기야 담겨있어 어떤 독자가 읽더라도 하나쯤은 무조건 기억할 수 있는, 서양음악사라는 퍼즐을 시작하는 퍼즐조각 하나를 쥐어준다. 퍼즐조각을 손에 쥐고 있다면 퍼즐을 맞춰보고 싶지 않을까? 그만한 동기부여가 될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나는 운이 좋게도 몇조각의 퍼즐을 더 손에 쥐었다.
20세기의 음악은 전쟁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과 여성음악가들이 그것이다.

조성진의 앨범에 수록되어있어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이 프랑스의 바로크 거장 프랑수아 쿠프랭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1차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영웅들을 위한 헌정곡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라벨을 음악만으로 어느시대에 배정해야하는지는 너무 높은 레벨이고, 라벨=무슨시대 라고 외워봤자 시간이 지나면 헷갈리기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며 라벨의 곡에 전쟁의 비극이 담겨있다라는 사실은 절대 까먹지않을 것이라 자신감이 들만큼 명료하게 다가왔다.

문학에서도 여성작가들은 배척당해왔는데 음악의 역사에서도 그랬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그것만큼 문학도 음악도 같은 흐름이었을텐데 연관짓지 못하고 따로 생각하는 내 자신도 충격적이긴했다.)
원치 않게 어린나이에 수녀원에 들어가 교회음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을 남겼으나 수도원밖으로 그녀의 작품도 나서지 못했던 성인 힐데가르트 폰 빙엔, 남성 유명 인물의 누이, 아내 같은 타이틀이 실력보다 더 유명했던 피니 멘델스존, 클라라 비크 슈만은 세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백곡을 작곡, 수천번의 연주, 최초 음악대학 교수와 같은 이정표를 남겼다.
물론 서양 음악사 최초로 이름은 남긴 여성작곡가 마달레나 카술라나도 남성에게만 지성과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생각이 허황된 오류라는 것을 역사에 남겨 수많은 여상 후학들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물론 아직 클래식에서 여성의 입지는 좁긴 하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작가의 말이 역사는 지난 것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순간,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시간까지 담겨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외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흥미롭다고 표현하기에는 좀(많이)그런 쇼팽의 장례식이 2주가 지나서야 열린 이유라던지, 하이든의 진정한 장례식이 145년만에 열리게 된 이유같은 이야기들이 포기하지 않고 이 책을 완주하게 해준다.

음악만의 기준에서 음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쇄술, 종교, 전쟁과 같은 다른 인문학적 요소와 나란히 두고 바라보게하여 더 잘 기억에 남게, 더 잘 순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책의 서문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이 유구한 서양음악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왜 음악사를 알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최소한 알아야하는 것들을 알려줘서 흥미를 유발하고 그 흥미를 계기로 더 방대한 역사를 스스로 관심을 갖고 익히도록 유도하는 책이다.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가득담겨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재밌게, 관심갖게 해줄까를 고민한 흔적이 빼곡히 담겨있다.

이런 애정어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 초대장을 받았으면 가야지.

음악의 세계로 스스로의 첫발을 망설이고 있다면 웡카의 골든티켓 같은 이 책을 선택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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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문과생의 과학 수업 - 우주, 지구, 생명을 향한 질문과 탐구
어윈 샤피로 지음, 조은영 옮김 / 초사흘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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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지금처럼 이렇게 지구의 지배자같은 위치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하버드문과생의과학수업 ( #어윈샤피로 지음 #초사흘달 출판)을 읽으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바로 ‘질문’이다. 지금처럼 밤에 활동을 할 수 없어 멍하게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아무런 광원도 없고 환경 오염도 없으니 별과 달이 얼마나 장관이었을까. 그냥 쳐다만 보았다면 우리도 우리 다음의 어떤 종의 박물관에 우리 이전에 지구에 살았던 종으로 자연사 박물관에 유골이 전시되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바라본 하늘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계절과 기온, 식물의 성장과 같은 것들과 하늘에서 깨달은 패턴을 연결하며 문명을 꽃피웠다. 더이상 돌아다니지 않아도 목숨을 건 사냥도 하지 않아도 됐다.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이 ‘왜 그럴까?’ ‘어떻게?‘에 투입되었다.

그렇게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그것으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지구의 나이와 우주의 탄생을, 지구의 오랜 역사 동안 존재했던 종들을 화석으로 연구하고 방사능 동위원소 반감기를 이용해 존재 시기를 연구하고 지구에 있었던 대멸종의 원인을 유추했다. 다시 시선을 우주, 태양계로 돌려 우리와 같은 또다른 지적 생명체를 찾으려 애쓴다.

이 모든 것들은,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지만 허버트 조지 웰스가 타임머신을 생각해 낸 것처럼 처음 떠올린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의 말을 흘려듣지 않고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붙여 연구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를 보충해주며 빈자리를 채웠다. 그 모든 질문들이 쌓이고 그 질문들의 빈틈을 서로 보완해주며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거대한 세계가 이루어졌다.

제목은 문과생의 과학수업이지만 이과생의 문학수업도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문과 이과로 나누어져 있지만 과학에도 수많은 세부 학문들이 있듯이 결이 다를 뿐 공통점은 확실하다. ‘왜’라는 질문이 시작이었다는 것을. 질문의 종류에 따라 질문을 채우는 방식의 차이일뿐,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와 같은 동일한 질문의 답을 찾아나가는 동반자이다.

진화에서도 인간의 정신만큼은 신의 개입한 것이다라는 개념이 오랜 기간동안 남아있었다. 아마 인간의 정신이 ‘존재’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 아닐까. 과학이 ‘존재’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종교라는 거대한 세력이 후원자로,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로 군림했던 시기이니 어쩔 수 없는 선입견은 존재했을 것이다. 결국 종교는 여전히 큰 영향력을 차지하나 신념의 한 종류가 되었고 존재를 규정지으려는 인문과학, 자연과학은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내고있다.

요즘 화제인 양자물리학이 아무리 많은 부분을 설명하더라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라는 것이 우리 인간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결국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
우리모두 너무나 잘 알고있는 사실이다.

방대한 양에도 어느것 하나 끝을 맞이한 부분이 없다는 것도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인간과 닮았다.

괜히 어렵고 나랑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듣고나면 여전히 미울수는 있어도 그래서 그렇구나 이해는 할 수 있게된다. 이 책도 그런 것 같다. 과학을 여전히 싫어하고 힘들어 할 수는 있으나 우리가 숨쉬듯 우리 주위에 과학이 이처럼 가득하구나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인식하는 만큼 세계가 넓어진다고.
그런 의미에서 나의 세계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끝없는 것으로 확장시켜주었다.
그 안에서 나 개인의 가능성도 덩달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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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곁에 두기로 했다 - 나를 흔들고 키우는 힘
김형준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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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극복해야 할 것들을 나열했을 때 상위권에 랭크되는 녀석일 것이다. 불안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만큼, 불안은 싫고 그만큼 익숙한 녀석이다.

#불안을곁에두기로했다 ( #김형준 지음 #스노우폭스P 출판)을 펼치면서 문득 깜짝 놀랐다.
당연하게 나는 최근 언제 불안했지?를 돌이켜보니 상당기간 불안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왜 불안해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일단 나는 대문자S로 생각을 하긴 하지만 깊게 하지 못한다. 불안이 나를 스멀스멀 옥죄어 오더라도 에이 몰라 생각안해! 가 되어버려서 혼자 굴을 파지 않는다.
아마 이것도 불안에 대한 내성이라면 내성이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불안하지 않았던 이유가 <불안을 곁에 두기로 했다>책 속에 있었다.

저자는 9번의 이직을 하면서 불안을 긴세월동안 온몸으로 직격당한 사람이다. 이직경력이 쌓이다 보면 많은 이직횟수가 도리어 이직의 발목을 잡는다. ‘될까?’라는 불안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불안에 대한 책을 쓸만큼 인생을 일궈냈다.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끌어앉음으로, 동력원으로 삼았다.

불안은 성실한 준비를 방해한다. ‘될까?’라는 끝없는 의구심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행위를 무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성장과 성장을 위한 준비를 멈추게 해 가능성을 0으로 만들어버린다. 준비하면 가능성이 아무리 작더라도 0은 되지 않는데 불안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결국 저스트 두 잇 Just Do it. 일단 움직이는 것이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방법이다.
무언가를 시작했고 해냈다는 성취감 그 하루하루가 쌓여 부의 감정이 나를 잠식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이다.

내가 불안하지 않았던 것도 여기에 있다.
올해 들어 책을 읽고 기록으로 남기고 달리고 글을 썼다.
무언가를 깨닫고 받아들이고 열에 일곱 여덟은 사라졌더라도 두세개는 체화되어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었음을 스스로 느꼈다. 드러누워서 게임하고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줄어들어 아쉬울 때가 있지만 딱히 새로 그것들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성취감과 나아지고 있다는 것, 뭔가 유의미한 행위로 나의 자유시간을 채우고 있다는 뿌듯함 같은 것들의 맛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여 행동하라고 말한다.

내가 사용하는 에너지가 한곳으로 모이게해서 더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결국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내가 하고픈 모습대로 사는 것으로 가기위해 나를 이끌어 주는 것. 그것이 불안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집중력을 얻기위한 명상, 음악 한곡에 오롯이 집중하기, 불안과 집착을 끊어내기 위해 그런 감정들을 유발하는 것들에 의도적으로 들어가 이겨내려 애써보는 ‘노출치료‘같은 직접적인 방법들까지 언급되어 있다.

수많은 심리학, 성공학 명사들의 이론과 말들이 신뢰도를 높인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내 몸안에 채워준다.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이 시점에 이런 자기계발적 요소가 담긴 책은 아주 좋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나는 많이 겪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때까지 0인 상태에서 출발해야 했다면, 이 책을 따르는 것은 내 상태가 0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무언가 시작되어있는 상태에서 더 좋은 쪽으로 방향을 트는 것이니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게 들리지만 무언가 해왔던, 많은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책을 읽냐 묻던,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의 답을 비로소 찾은 느낌이다.

어떠한 순간을, 기회를 잡을 준비였던 것 같다.
다음 한해가 기대로 가득찬 것은 참 오랜만이다.
좀 더 나은 내가 될 것 같은 기분.

<불안을 곁에 두기로 했다>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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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나의 것
니컬러스 파담시 지음, 김동욱 옮김 / 롤러코스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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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나의것 (#니컬러스파담시 지음 #롤러코스터 출판) 속에는 인종, 종교, 성정체성, 남성성(폭력성) 과 같은 다양한 혐오거리들이 담겨있다.

그러한 혐오거리들이 주인공 데이비드가 좋아하는 락스타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공연 중 뱉은 것을 시작으로 점점 심화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락가수가 종교차별적 발언을 ‘한번’ 했다면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 가수를 여전히 응원해야 할까 바로 손절해야할까.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해서 봐야 하느냐는 오랫동안 뜨거운 감자였다. 이 자체로도 찬성과 반대가 존재할 수 있지만 자신과 의견이 다른쪽을 혐오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데이비드는 이부동생 조이가 함께 좋아했던 락가수를 발언 한번에 손절하고 종교차별주의자로 낙인찍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혼자 여전히 그를 응원하고 그의 노래를 사랑한다. 그의 이름이 적힌 후드를 여전히 입고 다닌다.

차별을 당한 무슬람 측에서도 반응이 다르다.
하산은 인종, 종교와 관계없이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말하고 자신은 하지않겠다고 분명히 말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학업에 열중한다. 조용히 흔들리지 않는다.

하산의 베프들은 차별에 대한 분노를 참지 않는다. 술과 마약으로 자신을 벼랑으로 내몰고 폭력을 일삼는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점점 변해간다.
데이비드는 스스로를 영국인이라 생각하지만 이란 출신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사회에서는 이방인일 뿐이다.

학교에서 극심한 괴롭힘을 당하지만 엄마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지금의 사회에 구성원으로 녹아들길 바랬지만 엄마는 홈스쿨링으로 외면을 택하는 순간 둘 사이는 멀어진다. 차별의 분노는 자신의 정체성인 무슬림, 아리아인으로 향한다.

그렇게 분노를 해도 자신은 결국 이방인.
그가 택한 곳은 인터넷 속 세상이다.

같은 처지인 하산은 숨지 않는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말하고, 사과할 일에는 진심을 담아 사과한다. 그런 방식은 데이비드에게 낯설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가 어울려 살아가는 영국의 현실을 뼈아프게 담아내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사람들이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데이비등와 하산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사회보다 개인에 더 주목했다.
이 책에서 차별과 함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표현의 자유’이다.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이 세상에 큰 의미가 있기에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도 반대하기도 하는 것이다.

데이비드도, 하산도 차별에 표현한다. 그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물론 그 둘이 그런 방식의 표현을 택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런 선택을 한 것은 결국 자신의 자유의지였다. 그에 따른 결과도 선택한 자신의 몫이다.

차별하는 세상의 참담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과 동시에 그 울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이 나아가는데 에너지원으로 쓸 것인지도 이야기하고있다.

가난을 비롯한 결핍이 원동력이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진정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결핍을 극복한 사람은 결핍을 부의 감정 그자체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양의 감정으로 치환해서 이용한 사람들이었다.

사회도 바뀌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애석함에도 불구하고 차별을 당하는 사람도 자신을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결국 살아가야 하지않나. 다음 세대는 조금 더 나아진 세상을 살기를 바라지 않나. 분명 해야할 것이 존재함을 양 극에 서있는 사람 둘다, 모두 알고있다.

uncanny valley 불쾌한 골짜기이론은 인간과 매우 유사하지만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나 행동을 접할 때 느끼는 불쾌감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과 다른 가축이나 동물에게 혐오감을 느낀적이 있나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잔인하다라는 생각은 해봤어도 혐오감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결국 자기 자신과 같은 종인 인간에게 뭔가 위화감을 주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질 때, 우리는 혐오감을 느끼는 것이다. ‘다름’에서 기인하는 감정일까 ‘비슷함’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이 문장을 쓰면서 뒷맛이 쓴 걸보면 후자가 답인가 싶다.

원래 같은 것임을 인지한다면 고난 속에서도 방법과 방향은 존재한다.

길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멀더라도 이 길 끝에 있는 빛을 보고 나아갈 수 있기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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