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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고침 서양미술사 3 - 치유와 연결의 순간들 : 초현실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ㅣ 새로고침 서양미술사 3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4년 12월
평점 :
수천 수만년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아 켜켜이 쌓여있지만 짧은 기간 가장 임팩트 있던 시기를 고른다면 20세기가 아닐까. 20세기를 전후로 세상은 그야말로 차원이 달라졌다. 2020년대에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코로나 이전과 이후의 삶의 모습이 달라진 것 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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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세계 1,2차 대전을 치르면서 그전까지 이룩해온 역사들은 파괴되었다. 전복顚覆되었다.
우리를 외치면서 이쪽과 저쪽을 나누었고, 이쪽이 아니면 말그대로 학살했다. 유전자를 없애려했고 문화를 없애려했다. 그렇게 핏물가득한 전쟁을 지켜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존의 개념과 정의들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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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인류가 살아있는 동안 두고두고 회자될 참극이 벌어지게 한(물론 오역, 남용이지만)것들을 바라만 보아도 매쾌한 폭약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족, 친구, 삶의 터전, 일상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울분을, 슬픔을 표현하기에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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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고침서양미술사3 (#이진숙 씀 #돌베개 출판)은 이렇게 기존의 방식을 거부하고, 응어리진 속마음을 표출해내기위해 기존의 양식들을 버리고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만큼 새로운 형식으로 세상을, 인간을, 자신을 표현한 현대예술을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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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올해의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이 전시되는 시즌이 있는데 익숙하지 않았다.
일단 미술이라 하면 가장 익숙한 형태인 회화가 거의(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없고 명확한 형태도 없다.
작품 옆 해설을 보아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심지어 감상에 방해된다고 작품별 해설을 제공하지 않는 전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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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불친절한 전시가 다 있냐며, 현대미술은 어렵다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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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부터 미술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해왔다.
이 작품은 이런 의미가 담겨있는거야. 이러한 알레고리가 숨겨져 있으니 놓쳐서는 안돼라며 하나의 작품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는 생각으로 작품을 보아왔다.
아마 소수의 권위있는 엘리트들이 만들어놓은 스토리가 다수의 대중을 지배하면서 발생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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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비싼) 작품을 보고나서 좋지 않으면 내가 문제인가 싶어서 그냥 좋다고 눈치보며 말 할 수 밖에 없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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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들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은 것이 현대미술이 아닐까? 기존의 사조를 버리고, 마침내 붓까지 벗어던져버린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작품들.
캔버스를 벗어나 하나의 동산을 만들기도, 관객들이 직접 들아기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다시 볼 수 없는 그 순간에만 고유하게 존재하는 퍼포먼스로, 원래 만들어져있던 예술품이 아닌 오브제(레디메이드)를 작품으로 만들고, 자신의 피를 뽑아 자화상을 만들어내고 이런 것도 미술이야?라고 할만한 것들을 두려움 없이 스스럼없이 세상에 내어놓으면서 그들은 스스로를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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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주변사람들과 많은 것들을 나누는 시대가 아니라 혼자 고립되는 세상에서 자기자신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방식으로 관조하고 세상에 들어냄으로 스스로를 치유하는 것. 그것이 내가 <새로고침 서양미술사>에서 본 현대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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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보다 자신을 더 위하는 것 같은 현대미술을 어떻게 봐야하는지 이전의 감상법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알 턱이 없다. 이게 맞나? 나는 이렇게 보이는데? 오답일까봐 마음 속에만 담아두었던 그 감정들이 모두 현대미술에서는 정답이었다.
그렇게 보면 된다는 것을, 현대미술의 계보 보다는 작품과 미술가, 그리고 세상에 초점을 맞춰 저자 개인의 사유를 적어놓은 에세이 같은 이 책이 올바른 예시가 되어준다. 그렇게 자신감이 생기고 현대미술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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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온전히 들여다 보았을 때 비로소 시선은 세상으로 향한다. 자신을 토해내고 맑아진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많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아픔, 물질만능주의, 환경 오염 등으로 해맑게 웃어야 하는 아이는 웃지못하고 매서운 눈매의 어른아이가 되어버렸다. 표지에 있는 요시모토 나라의 작품 속 아이가 눈에 밟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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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흰 벽에 걸려있던 미술이 여러형태가 되면서 미술관을 벗어나 우리의 생활터전으로 들어와 융합되고 있다. 어쩌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렸던 것을 회복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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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그러하듯이 미술도, 인간도 잊어버렸던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올바른 모습으로 돌아가는 자가치유를 하고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