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위기 - AI 시대, 누가 읽고 쓰는가?
크리스토프 엥게만 지음, 김인건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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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술과 전자매체의 발달로 어디서든 편하게 책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책을 펼치고 ‘읽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스스로 하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와 같은 각종 구술로 정보가 전달되는 플랫폼과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텍스트를 대신 읽어 빠르개 요약해주는 챗GPT같은 AI의 발달로 굳이 내가 수고할 필요가 없어졌다. 책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은 폭발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서, 출판계는 여전히 위기이다.
하지만 직접 ‘읽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게 큰 위기일까?

이제는 읽기의 시대가 아니라 읽기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고, 위임받은 사람이 말로 들려주는 구술 강연을 소비하며 정보를 받아들이는 시대이다.

그 어느 때 보다 읽고 말하는 것에 권위와 카리스마가 부여되는 시대인 것이다.
그 권위와 카리스마에 부합하는 깊이 읽기로부터 유례된 제대로 된 말하기, 들려주기(동시에 출처가 확실한 래퍼런스를 보여줌)는 읽기를 위임한 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청자들은 다시한번 자발적으로 독자가 된다. 자발적으로 읽기를 자처한 독자들의 열정과 이해력은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독자들은 또다른 새로운 화자가 된다.
독자가 화자로, 청자가 독자로, 다시 화자로.
이것이 정말 위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정보전달의 알고리즘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지는 과정일 뿐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강압적으로 요구받던 읽기보다 자발적인 읽기가 가능하다는 점, 쓰기(말하기)의 허들이 낮아짐으로 활발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등 이익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문제는 화자의 신빙성이다.
무분별한 AI의 사용으로 화자가 읽지도 않고 생산해내는 영상, 현재 AI의 문제점인 할루시네이션 (사실이 아닌 것응 AI가 만들어내는 현상)을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깊게 읽고 생각을 피력하고 함께 생각할 수 있도록 신뢰도 있는 자료를 제시하고, 자기 주장만이 답이라고 강요히지 않는 진정한 독자이자 화자들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면 올바른 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 올바른 순환에 우리도 참여해야한다.
청자이면서도 독자이길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제대로 책을 읽는 능력이 더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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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로매니악 1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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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인소(인터넷 소설)의 큰 부분을 차지하며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게 된 장르인 판타지. 우리나라에서 그 원조를 찾으라면 아마도 <퇴마록>이지 않을까.
1000만부 판매신화라는, 아마 다시 현실에서 보기 힘들 기록을 세운 퇴마록, 그리고 퇴마록을 쓴 이우혁 작가.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읽으며, 내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가 어릴적부터 좋아했던 책으로 언급하면서 조금 더 인기가 올라간 <퇴마록>의 이우혁 작가의 아픈 손가락이랄까, 신문에 연재되다 연재가 중단되었던 테크노 스릴러 <파이로매니악1> (이우역 지음 반타 출판)이 25년만에 전면개정 및 완결되어 세상에 선보여졌다.

실제 그 시대의 사회상과 무기학을 담았던 원래의 <파이로 매니악>은 그 사이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을 반영해 시간대를 2030년대의 근미래로 설정하고, 상황도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어날만한’일로 바꾸어서 출간되었는데 오히려 저자가 하고자하는 이야기의 근간을 흔들지 않는 적절한 설정인 것 같다고 저자 스스로 말하고 있다.

저자가 글의 뼈대에 놓은 화두는 무엇일까.
내가 1권을 읽어보고 생각하기로는 ‘법의 정의구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듯 했다.

사회에서 첨단 무기로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살해하는 연쇄살인이 벌어지는데 사용된 무기는 자동으로 소각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고 남겨진 것은 PM(파이로매니악)이라는 이름뿐이다.
테러라고 나라에서 규정하고 군 일부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PM으로 살인을 이어오고 있는 세 사람. 동훈, 영, 희수는 방산비리를 덮으려는 정부에 의해 다른 나라에 국가기밀을 팔아넘기려한 파렴치한이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들도 죽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버젓이 살아있는 죽어도 죽지못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복수다.

이들은 죄가 없으나 도망다니고 있고, 이들을 이렇게 만든 권력자들은 떵떵거리며 희망찬 하루를 살아간다. 법은 누구의 편인가. 교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용서와 반성. 그들이 나와서 다시 자지르는 악행은 누구의 탓인가.

진정 억울한 피해자들은 왜 빌어먹을 세상에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현실을 비판하며 살아야하는가.
법이 지켜줄 수 없다면 내가 직접 해야하지 않을까.
법을 어겨가면서라도.

심지어 이 세 사람의 개인적인 복수는 국가의 안보와도 큰 연관이 있다. 개인의 복수가 사회의 이익이되는 상황. 그럼에도 그들을 파이로매니악, 방화광이라 여전히 부를 수 있을까.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빌런같은 히어로인 것은 아닐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부터 최근 웹툰과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비질란테 까지. 솜방망이 처벌이 이루어지는 법의 한계를 다루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여전히 현실인 이야기.
이런 영웅들을 원하고 응원하지만 현실에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모두 안다.
그래서 결국 조금 더 현실적인 법의 체제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것인데 1987년도에 개정된 헌법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쉽게 바뀌어서는 안되고, 모든 법의 기초가 되는 헌법의 성격상 광범위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오용되고 남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는 필요하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의 인식과 현실에서는 결국 범법이지만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첨단 무기로 긁어주는 인물들에게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응원하며 볼 수 있다는 것이 소설의 매력이 아닐까.

매력적인 소설이다.

퇴마록과 이우혁을 사랑하는 독자, 세상의 전복을 마음 속으로만 기원하던 성실한 사회인들에게 고구마 한 입 뒤에 건내는 사이다처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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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이 제일 맛있단다
모니카 김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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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K-FOOD, K-DRAMA등 다양한 것들에 K라는 수식어가 붙어 식상하긴 하지만 괜히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하지만 딱 하나 안타까운 단어가 있다면 바로 K-장녀(장남)이다.

모든 문화권에 첫째는 존재하지만 유난히 K로 수식된 첫째들은 더욱 고롭다. 아마 일본과 중국과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비슷할 것이다. 가족의 유대감이 강하고 유교의 문화에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착하고 자랑스러운 아이가 되는 삶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 보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먼저 깨닫고 그것이 선택의 기준이 된다. 물론 자기 자식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것은 알지만 첫째들이 그 상황과 함께 받아들이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심지어 집안 사정이 어렵거나, 한부모가정이거나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 스트레스는 배가 아닌 제곱으로 증가한다.

#눈알이제일맛있단다 (#모니카김 지음 #다산북스 출판)은 없는 형편에 미국으로 거주지를 옮긴 가정의 K-장녀의 이야기이다.
이 장녀의 가정환경으로는 가난하고, 아버지가 집을 나갔으며 그로인해 엄마는 우울증을 겪고 여동생이 하나 있어 모든 것을 챙겨야하는 상황이다. 입학 장학금을 받아서 일정 학점 이상을 유지해야하는 것도 더해져 말그대로 머리가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이럴 때 그 또래에게는 가족보다 친구가 더 큰 위안이 되고 더 편안한 집이 되어주지만 타국에서 친구마저 없다. 그러다 장녀가 알게된 것은 생선 눈알의 맛이다.
알다시피 우리에겐 수많은 민간신앙(?)이 있다.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자면 안되고 다리를 떨면 복이 나가고 이런 것들 중 하나인 생선 눈알은 그것을 먹으면 행운이 깃든다고 한다. 남편이 떠나고 한동안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던 엄마가 매일 병적으로 생선 눈알을 파먹는다. 엄마의 권유로 한번 입에 넣는 눈알의 맛, 젤라틴 처럼 톡 터지면서 감칠맛 풍부한 짭쪼롬한 무언가가 입안에 퍼지면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경험은 장녀에게 생각 이상으로 자극적이었다. 엄마가 먹은 생선 눈알의 효능은 푸른 눈동자를 가진 백인남자와의 만남으로 돌아오는 듯 했지만 이 백인남자에게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항상 이런 것들은 첫째만 알게되고 끙끙 앓는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터질 것 같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짜증만 나는 장녀의 머릿속에는(꿈속에서조차도)온통 푸른 눈동자 뿐이다. 푸른 눈동자를 입에 넣어 음미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는다. 그런 그의 앞에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완벽한 계시, 노숙자의 시체가 놓여진다. 그것도 푸른 눈의. 그렇게 푸른 눈동자의 맛을 알아버리고, 왜때문인지 그녀의 눈 앞에는 온통 푸른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 천지다. 그녀는 과연 어떻게 될까.

소설이 가진 매력이라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누군가가 대신 해준다는 카타르시스가 크지 않을까. 실제로 K-장남의 삶을 살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둘째도, 셋째도, 막내도 각자의 고충이 있음을 알지만 그들이 모르는 첫째들만의 고충이 있다. 그것은 첫째들끼리만 안다.(안타깝게도 첫째 주변엔 첫째들이 많다. 비슷한 것들끼리 끌리는 거겠지)어릴적부터 뇌까지 전달되지도 않고 반사처럼 ‘힘들다‘를 뱉어내면서 팔사적으로 갈무리해온 것은 폭력성이었다. 물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는 확신은 있었지만 생각만으로 하는 폭력도 횟수가 많아지면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눈알이 제일 맛있단다>는 이러한 리미트를 해제한 인물의 이야기다. 행운이 깃든다며 권해 삼킨 생선 눈알에서 시작된 K-장녀의 행운 찾기는 피비린내와 분노가 가득하다. 분명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은 맞으나 마냥 욕할수만은 없었다. 너무나 나같은 인물이 책 속에서 내가 상상만 하던 것을 하고 있으니 솔직히 통쾌하기도 하다. 해방감도 느껴진다. 수많은 K-첫째들에게 대리만족을 주기위해 이 책을 쓴 것일까?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처럼 끝없이 나아가는 주인공에게 너무나 쉽게 매료된다.

하나만 더, 하나만 더. 결국 끝까지 단숨에 읽게되는 중독성 강한 자극적인 맛을 자랑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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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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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食口. 음식을 나눠먹는 말그대로 입을 공유하는 절대적 친밀 집단. 아마 가족이라는 말의 이음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가족은 혈연血緣이니 즉 식구는 피로 이어진 사이라고.

#카프네 (#아베아키코 지음 #은행나무 출판)의 초반에도 식구의 의미는 변함없다. 어느것 하나 부족함없이 자라온 것 처럼 보이는 가오루코의 삶은 그 식구에 대한 갈망으로 조금씩 무너져내렸다.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남동생 하루히코의 찬란한 빛만큼의 어둠으로 식구임에도 사랑받는 식구가 되지못한 누나 가오루코. 하지만 그런 누나를 어릴적부터 살뜰히
챙겨온 하루히코이기에 견뎌냈고 살아냈다.

식구에 대한 결핍은 자기만의 완전한 가정을 꿈꾸게 하는 법. 완벽한 남편을 만나 완벽한 육아를 위해 돈도, 집도 준비했지만 책임질 식구, 아이는 생기지 않는다.
생기지 않는 아이,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 그리고 갑자기 자신의 침대에서 죽어서 발견된 남동생.

식구라 할 수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가오루코는 망가져간다. 모두가 떠난 먼지와 쓰레기더기마 쌓인 집에서 술에 의존해 살아간다. 그런 그녀를 꺼내준 사람이 바로 남동생의 전 여자친구 세쓰나다.

남동생의 유지를 이루어주기위해 만났지만 차가운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세쓰나는 셰프경력을 발휘해 가오루코에게 따뜻한 밥을 선사한다. 혈연이 아닌 식구로, ‘식구’의 의미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세쓰나가 해준 요리로 다시 삶의 의지를 붙잡은 가오루코는 세쓰나와 요리와 청소가 ‘시급한’집들을 방문하는 봉사활동을 함께 한다. 지쳐버린 아내이자 엄마, 부모 병간호에 지친 아들,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는 여동생을 무척이나 아끼는 일찍 어른이된 아홉살 된 오빠.

혈륜의 역할에 지쳐 차마 식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며 세쓰나와 가오루코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사람은 저마다의 아픔이 있는 법.
아픔을 치유하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겠지만 기꺼이 식구가 되어주는 것은 가장 확실하고 가장 따뜻한 치료법이다.

결국 혈륜에 한정되었던 식구의 의미가 무한히 확장되면서 책 속 모든 인물들이 저마다의 식구와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다.
책의 제목 <카프네>는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겨주는 행동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이다.

진정한 애정이 있어야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겨줄 수 있고, 머리에 닿는 손을 허락할 수 있다.
둘이었던 것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순간. 그 순간이 특별할 수 있는 것은 그 둘의 관계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연인, 부부, 형제, 자매 그리고 식구.
카프네가 허용되고 온전해질 수 있는 관계이다.

1인 가족이 늘어가는 요즘, 결혼도 연애도 포기하는 젊은 층이 많아진다. 그들은 필요없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 유튜브 등 다양한 식구들을 찾는다.
식구는 특정한 형태는 없지만 단하나 필수적인 조건은 바로 온기이다. 아무리 난방을 켜고 두꺼운 옷을 입어도 채워지지 않는 온기. 나누어야 더욱 훈훈해지는 그 온기를 가진 식구는 어느시절이나, 오히려 지금의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식구를 만들자. 식구라는 이름의 따스한 울타리를 가져야한다. 법, 피로 얽혀있지 않아도 식구는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카프네>가 알려주고 있다.

이 책 <카프네>가 외롭지 않았냐고, 식구가 필요하지 않았냐며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카프네 그 자체인 것 같다.

함께 온기를 나눌, 서로의 머리카락을 쓰러넘겨줄, 카프네, 식구와 함께하는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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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태도 - 공간 디자이너 황유정의 감각과 사유
황유정 지음 / 아트북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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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미셸 프랑크와 샤를로트 페리앙의 가구들을 좋아한다.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빈약하지 않으며 무드있으면서도 가볍지 않다. 실용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름다우면서 기능은 당연하게 가져가는 디자인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주 잘 보여주는 사전이랄까.

가구 중에서도 특히 1인용 소파를 좋아하는데 내 몸보다 조금 더 큰 것을 좋아한다. 팔걸이도 큼직하게 있어서 소파와 같은 방향을 향하게 앉는 것도 가능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큼직한 팔걸이 하나하나에 내 오금과 등을 기댈 수 있는 자세로도 이용이 가능한 모양과 크기의 소파.
내가 쓰는데로 내 몸에 맞게 변해가고 낡아가는 모습이 나를 보여주는 증명사진 같아 반갑다.

소파는 가장 작은 건축이다 라는 말이 있다.
몸에 붙는 건축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자체로 벽과 바닥, 가구, 그것들이 모여 이루는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간의태도 (#황유정 지음 #아트북스 @ 출판)는 저자가 겪은 파리, 런던, 뉴욕, 그리고 서울. 네 가지 도시 그자체, 도시 속 건축, 건축 속 가구까지 모든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말하는 공간에서 가장 의미있는 개념으로 ‘태도’가 거론되는데 무척 흥미롭다. 건축은 공간에 흐르는 공기, 재료의 온도, 빛의 방향과 자태, 사람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으로 그 안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조금씩 바뀌게 만드는데, 그 변화를 야기시키는 것이 바로 공간의 ‘태도’이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떠올려보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최애장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왜 최애일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라. 그러면 거기를 방문했을 때의 날씨, 건물의 물성,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온도, 그 안의 소리와 냄새 모든 것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독특한 질감들이 떠오르면서 거기서 느꼈던 나의 ’감정‘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 감정은 내가 떠올렸지만 그 감정까지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바로 그 공간, 그 공간의 태도이다.

가득 차있는 듯 하나 공간은 결국 사람이 들어와 움직이면서 공간만의 독특한 리듬이 생겨난다.
그 리듬은 공간의 태도와 반응해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만들어진 스토리들은 그 공간의 태도들을 변화시키기도, 강화시키기도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있는 파리의 노천카페의 의자, 마주보게 되어있는 서울 카페의 의자처럼 뚜렷한 형태를 띄면서.

아무리 낡고 작은 공간이라도 내 방, 내 집은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절대적 참으로 여기게 할만큼 편안하다.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면서 공간이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의 태도‘와 나의 리듬이 합쳐져 내가 원하는, 추구하는 것들을 향하도록 시간이 쌓여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생의 태도는 공간의 태도로 부터 배우기도 하고 응원받기도 한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든든하지 않은가. 태도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런 단순한 것들이 모인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다고 했던가.
내가 되고 싶고 가지고 싶은 삶을 가장 나와 가까운 곳에서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내 책상, 내 집, 내 사무실 같은 공간들이다.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등한시했던 내 공간들을 다시 찬찬히 바라보았다. 내가 좋아하고 편안하다 느끼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지만 일상이라는 이름의 게으름(옷더미, 옷더미, 그리고 옷더미 등등)에 묻혀있다.
원래 있던 것과 그 위와 빈 공간을 덮고있는 게으름이 공간의 여백을 제로에 가깝게 없애고 있으나 여백을 유지하게끔하는 요소가 있으니 바로 인간(나)이다.

계속 침대 이불 속으로 숨어들고만 있는 나를 꺼내고 공간을 돌보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공간들을 유심히 보고 싶다. 그 안에서 내가 놓쳤던 공간과 내가 쌓아놓은 태도를 발견하고 그렇게 다시 살아가고 싶다.

공간의 태도로, 그 안에서 공간과 시간을 쌓아온 나의 태도에 비로소 시선을 향하게 되었다.
공간이라는 인생의 스승을 마침내 만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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