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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아포칼립스
연상호.전건우 지음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6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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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수를 대표하는 명곡이 만들어진 계기를 들어보면, 좋은 음악은 가사와 멜로디가 같이 떠오른다고 하더라.
좋은 글도 작가가 쓰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저절로 소재가 떠오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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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아포칼립스 (#연상호 #전건호 씀 #은행나무 출판)는 영화 <부산행>, <얼굴>을 만들어 낸 연상호 감독의 영상적 언어와 스릴러 문학의 거장 전건호 작가의 활자 언어, 멜로디와 가사가 동시에 작성된 명곡과도 같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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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재를 찾아내면 좋지만, 매번 독특하기는 어렵다. 뻔하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익숙하다는 것이고, 익숙하다는 것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그만큼 쉽다는 뜻이다.결국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거장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닐까. 그 기준으로 <닥터 아포칼립스>의 두 아버지는 거장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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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 잘나가는 뉴스앵커의 딸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불의의 사건으로 작은 병원에서 수술도 집도하지 않고 살아가던 의사를 만나 감염되면 돌이킬 수 없을 줄 알았던 좀비화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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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앞두고 말끔히 처리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과 뜻을 같이 하는 거대병원. 그들에게는 감염자를 사살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쉬운’길을 선택할 명분이 필요하다.
저 작은 병원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수술이 실패로 끝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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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울 수 있는 스토리에 인물만의 서사가 부여되고 그 서사들이 인물들을 ‘연’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천으로 기워낸다. 얼굴까지 문신으로 뒤덮인 조폭, 의료기기 회사 직원, 모든 것을 버린 의사, 출세의 욕망에 눈이 먼 의사, 뉴스 앵커, 작은 병원의 나이많은 원장과 간호사 등 각자 기워진 연으로 이야기는 향처럼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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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말을 뜻하는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라는 소재는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꺼내기 아주 좋다. 죽음 앞에서 누구나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에게 최선의 결말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기에 억지로 독자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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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인간은 파벌이 갈린다. 나만의 ‘우리’를 위하는 쪽, 모두의 ‘우리’를 위하는 쪽. 머리로는 모두의 우리를 좇지만 과연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그 선택을 당연하게 좇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덮으면서도 시원하게 내 입장은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가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것은 모두가 같은 마음일테니 이렇게라도, 시뮬레이션으로라도 올바른 것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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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던 것을 선택하는 것 보다 가끔이라도 생각해본 것을 따를 확률이 많은 법이니까. 그러면 만약에 실제로 아포칼립스와 같은 상황이 와도 조금은 더 인류에게 다음이라는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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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을 활자로 겪으며 그 안에서 누군가의 입장에 공감하며 읽어나가게 된다. 그것이 책장 하나하나를 넘기는게 마음아프게 할수도,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기고 싶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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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서 더 나아가 <닥터 아포칼립스>는 활자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재생이된다. 읽는 동안 이 인물은 배우 누가 맡으면 딱이겠다가 저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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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재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책에 푹 빠져 웃고 울고, 마음아파하고 기뻐하고 내 세상에 인물들을 데려와서 책과 나의 세상을 합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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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넘어가는 페이지터너가 재밌는 책의 또다른 이름이라면 이 책은 끝내주는 페이지터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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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게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속도감과 몰입감이 상당한. 얼른 시나리오로 각색되길 바라는. 극장에 걸린다면 기꺼이 한자리, 아니 두자리 차지하고픈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