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평점 :
끝없이 반복되는 11월 18일.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던 반복의 초기. 예측불가한 하루에 대한 연인의 불안 속에 묘한 짜릿함이 담겨있다는 것에 기시감을 느끼던 주인공.
그 기시감은 11월 18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실제로는 11월 18일에 속하지 못한 완벽한 타인이 될거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을까.
⠀
하루동안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고있는 그녀였지만 영원과도 같은 11월 18일 하루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할 뿐이다.
⠀
지구의 공전에서 벗어나고 단 한번의 자전만 허락받은 그녀는 그 하루 속 자신의 무의미함에 두려움을 느낀다.
의미가 없기에 해야할 것도, 하고픈 것도 없다.
그런 그녀를 사로잡는 것은 계절이다.
영원한 11월 18일, 그 18일을 벗어나 19일, 20일, 12월, 1월을 살면 맞이할 차갑고 매마른 공기, 겨울을 소망한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기차에 올라 국경을 넘어 북쪽으로 향한다. 스톡홀름, 런던, 몽펠리에. 조금이라도 다음 계절이 먼저 다가오는 곳으로 향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누리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
매일 오르는 기차 안에서, 평소에는 책을 읽으나 들리지 않거나 소음과 같아 듣지 않았던 타인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온다. 그들의 이야기 안에는 당연하듯 내일과 미래가 담겨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이입하며 그녀도 그 흐름속에 서 흘어가는 상상을 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이탈과 회귀의 반복 속에서 문득 놓쳤던 것 하나를 더 신경쓰게 되는데 바로 부모님의 일상이다. 독립한 후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하루를 따라 밟아보는 그녀의 발걸음이 내 마음 속에도 짙은 발자국을 남겼다.
⠀
우리는 당연하단듯 내일을 오늘로, 또 어제로 보내며 살아간다.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늙기 싫고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는 순간들이 있다. 평범한 것으로부터 한번의 일탈. 그것은 놀라우면서도 짜릿한 이벤트로 여겨질 수 있다. 하나의 특권처럼. 하지만 혼자 멈춰서서 하루동안 하는 모든 것이 의미없는 일이 되어 아무것도 남지않은 것이 반복되면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소외로, 고독으로 바뀐다.
⠀
그때서야 비로소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잃어버린다는, 어쩌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거라는 불안함이 공기처럼 내 곁에 머물고 있던 것들을 소중하게 만든다.
⠀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갖혀 내일의 소중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다가오던 내일같은 일상적인 것들에 가치를 깨닫는 이야기라 울림이 컸다.
똑같은 크기의 공간에서 부피는 항상 일정하다. 단위만 바뀔 뿐.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얼마나 밀도있게 감각하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 내 하루의 부피는 달라진다.
⠀
매 초, 매 분, 매 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소중하게, 감사하게 느끼는 농도짙은 삶.
내 안을 가득채우다 못해 나를 팽창시킨다. 나를 좀 더 큰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게 나의 부피가 달라지고 나를 담고 있는 이 세상의 부피도 달라진다.
⠀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나를 담고 있는 세상을 좀 더 큰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답이 이 책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와 함께 나도 계속해서 밀도있게 나아가고 싶다.
⠀
#부피의계산에대하여 #솔레이발레
#은행나무 #국제부커상최종후보
#부피의계산에대하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