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제2차 세계 대전사
권성욱 지음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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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얼마나 좋은 말(현상)인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없이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행복을 보장하는 말.
그 평화는 누가 유지하는가.
우리 각자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각자의 이권과 서로의 견제를 위해 얼기설기 엉켜있는 강대국들이 선을 넘지않고 정도를 지키는 것에 달려있다. 그럼 우리는 강대국일까? 전세계 휴대폰 시장을 애플과 삼성이 양분하고, 케이팝을 비롯한 우리의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민족의 우월성을 자랑스러워하는 유럽에까지 메인스트림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강대국이 아니다. 전쟁을 억제하고, 누군가의 침략이 발생했을 때 강력하게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까. 만약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중국이 국경을 넘어온다면? 영원한 동맹국이라 믿었던 미국이 우리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지금 우리의 생활수준을 유지하며 방어해낼 수 있을까?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했던 전쟁으로 남은 세계2차대전은 80여년 전의 먼 미래가 되었지만 전쟁의 불씨는 지금 우리 주위에 달라붙어있다.
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아직까지 대치중이고, 이스라엘과 중동은 세계의 화약고라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폭죽터지듯 자주 폭탄이 터진다.

이제는 이란이 미국에 대한 거부감을 주변 친미국가에 화풀이를 하고있다. 대만은 같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중국 본토에 햇볕을 나눠주었으나 국제 스포츠 경기에 국기도 걸지못하고있다.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아니라고 상관이 없을까? 당장 기름값만해도 30%가까이 상승했다. 앞으로 더 오를수도있다. 파병을 해야할지도 모른다. 원조품을 보내느라 큰 지출이 발생한다. 세계의 경제가 휘청이면 무역으로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경제는 더 휘청인다.
그렇다고 강자를 욕하지 못하고 버티고 속시끄럽게하는 약소국을 욕할 것인가? 그들이 참았어야 할까?

주권을 잃고 열강들에 의해 국토가 두개로 쪼개진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올바른 가치관이 맞는가?

우리도 다시 번지는 매쾌한 화약냄새를 대비해야한다.
그런 준비는 정치인이나 국가차원에서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중대사한 일은 국가가 국민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국민투표 등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의견을 물을 때 정확한 판단을 하려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제대로 알려면 우리 역사에서 전쟁 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공부해야한다. 타산지석, 반면교사 무엇으로든 삼으면 된다. 다만 강대국들의 승자들의 역사가 아니라 강대국들 사이에서 전쟁을 겪었던 약소국들의 역사를 참고해야한다. 강대국의 역사도 알면 좋지만 우리의 선택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소국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었는지 그 원인과 행동, 그에따른 결과를 알아보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아프리카, 핀란드, 발트3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스, 알바니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등 많은 나라들의 데이터를 하나하나 익혀 교차검증을 하다보면 최선의, 적어도 옳은 방향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많은 역사서와 전쟁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미국을 영웅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약소국의제2차세계대전사 (#권성욱 씀 #열린책들 @ 출판)는 현실과 역사의 빈틈을 채워주는 아주 훌륭한 자료이다.
용기를 내어 맞서기도, 연합국과 독일군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이권을 챙기기도, 독일편에 붙기도 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같은 선택을 해도 어떤 선까지 행동하느냐에 따라 또 결과는 천차만별로 나눠진다.

그 방대한 경우의 수들이 실례들로 가득 채워져있는 아주 귀한 책이다.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아주 흥미로운 전쟁이야기로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올바른 선택을 하길 간절히 바라며 길잡이를 자처하는 저자 덕에 다가오지 않은, 일어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상상 속의 미래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다.

우리 각자가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나라의 올바른 길잡이가 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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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신입 차윤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지혜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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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사에 취업한지 일년만에 회사가 사라지고 (운좋다고 해야겠지)운좋게도 다른 계열사인 백화점으로 옮겨 뜻밖의 브랜딩을 해야하는 상황에 빠진 주인공 차윤슬의 이야기라는 것을 어느정도 파악하고는 #중고신입차윤슬이야기를시작합니다 (#김지혜 지음 #오팬하우스 출판)이 어떤 재미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일상에서도 겪고있는 회사원의 좁은 사무실에서 팀원들과 부대끼며 열심히 돈을 버는 모습을 굳이 책으로까지 봐야하나 싶었다. 브랜딩이라는 분야에 흥미가 나에게 있는지도 의심스러웠고.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완전히 오해였다.
직장인의 비애를 말하는 듯 하지만 한꺼풀 벗겨내면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윤슬은 백화점의 캐릭터를 만들어야하는 프러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캐릭터만 만들어내면 될 줄 알았지만 왜 이 캐릭터여야하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납득시킬 세계관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깨닫고 미궁에 빠진다. 본부장에게 까이고 또 까이며 수많은 야근이 무색하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기길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한 난관을 헤쳐나갈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 ’이와중에‘ 매주 참여하고 있는 글쓰기 강의이다.

막연히 가지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동경을 잡지사를 벗어나 백화점에 다니면서 바로소 시작한 것이 의아하긴 하지만 마침 야근을 유발하는 구름 프로젝트가 곰곰히 생각하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백지에 끄적인 단어하나로 시작하는 글쓰기와 무척 닮았던 것이다.

꼭 소설만이 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윤슬은 글쓰기 수업과제로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쓰고, 자신을 나타내는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을 받고 수행한다.
자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십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거의 인생 처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취업 자기 소개서. 쓸 말이 없어서 깜빡이는 커서만 한참 바라보고 있던 것이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비로소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게 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의미인 것이다.

잊고있던 어린시절의 기억과 자신도 몰랐던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발견하는 과정을 통해 공간을 넘나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음을 연결해주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구름 마법사 소피아’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사무실에서 회사원들이 열심히 일을하는 것뿐인데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윤슬이 회사와 관계없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그녀를 가득 채우고 그 여운은 회사일까지 번져나간다. 공적인 글쓰기이지만 그 안에 알게모르게(아마 자기 스스로는 알겠지)자신만의 글쓰기도 담겨있다.

작가는 스스로의 일상에 글쓰기를 들였을 때, 일상이 얼마나 풍성해는지 그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종의 ‘글쓰기 뽐뿌’같은 글이랄까.

실제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장 잘 모르는 사람 중 하나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있다.
힘듦을 기쁨을, 그리고 슬픔을 다른 사람에게 곧이곧대로 보이는 것을 삼가는 것을 미덕으로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힘들다 말하는 것은 나약한 사람으로, 기쁘다 말하는 갓은 가벼운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한번 더 나라는 존재가 입을 타게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에 기민하게 반응하는지는 하나도 모른채 상사의 비위, 가족의 비위, 친구의 비위를 맞추기위해 세상의 눈치를 보며 산다. 그러니 삶의 기쁨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이 아름다운 색으로 칠해져 우리의 눈을 멀게할 수 있을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라고 했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상대방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 글쓰기이다. 내 안에 부유하고 있던 생각들이 형태가 생겨 명확하게 나에게 다가온다.

그렇게 나만의 색을 발견하고 그 색으로 세상을 물들이는 과정을 거쳐 삶은 더 다채롭고 풍성해진다.
행복은 멀지않고 거창하지않고,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일상을 너무 뜨겁지 않은 따뜻한 행복으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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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도현 옮김 / 클로츠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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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것, 놓치고 있던 것,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익숙함을 떠나서야 비로소 떠오른다고 했던가.
#월든 (#클로츠 출판)을 쓴 #헨리데이비드소로 가 딱 그러했다. 그는 익숙한 곳을 떠나 외딴 월든 호수 마을의 숲에서 2년을 살아냈다.

직접 땅을 파고, 집을 짓고, 곡식을 기르고 돈을 벌어보고, 철새의 이동, 월든 호수의 얼음, 개구리와 개미 등을 살피며 실험을 하고 자연을 관찰했다.

2년 중 1년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담아놓았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하버드까지 나온 수재의 괴짜같은 일탈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로는 전혀 흔들림없다.
그의 수많은 깨달음보다 그의 태도에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월든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고 목적의식이 분명했으며,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일들에 더할나위 없을 만큼의 최선을 다한다.

혼잡한 도시에서는 고요히 집중하기가 쉽지않다. 높은 인구밀도로 어디서나 소음이 들릴 것이고, 원하지않는 정보들이 귀를 타고 흘러들어와 집중을 방해한다.
결국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일에 정신이 쏠리고 그것을 이야기하는데에 합류한다. 그렇게 시간을 죽여가며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답을 얻기위해 소로는 월든으로 떠나왔다. 시끄럽고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게 온 정신이 쏠려있는 사람들을 떠나 직접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그렇게 자기 자신, 스스로를 톺아본다.

실제로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한 답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강요받는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자기 스스로를 관조할 시간도, 여력도, 의지도 사라진다.
소로는 자신의 깨달음 뿐만 아니라 깨달음 까지의 과정도 세밀하게 담아놓았다. 깨달음을 알려주고픈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마다 무엇을 깨닫는지는 높은 확률로 다를 것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까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소로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숲으로 숨어들 수는 없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월든’을 찾아야 한다.
‘월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잠시 멈추는 것도 좋다.
멈추면 도태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멈추어서 자신을 마주해서 무언가를 깨닫는 것이 더 앞서는 일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 멈춰서서 느긋하게 누리고 싶은데 다른 사람을 따라 나아갈 필요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니까.

눈 앞에 무한한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 더 넓은 세상이 우리 안에 있다.
그 세상의 콜럼버스가 된다면,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 깨닫는다면 자신이 해야할 일에 확신을 가질 것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임을 잊지말라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제대로 살아보라고 말한다.
2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그의 구체적인 깨달음들은 빛이 바랜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제안해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로 개인의 깨달음이라는 나무 한그루, 새 한마리들을 따라 관찰하며, 스스로를 정직하게, 오롯이 바라보기라는 큰 숲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괜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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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이도현 옮김 / 클로츠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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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것, 놓치고 있던 것,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익숙함을 떠나서야 비로소 떠오른다고 했던가.
#월든 (#클로츠 출판)을 쓴 #헨리데이비드소로 가 딱 그러했다. 그는 익숙한 곳을 떠나 외딴 월든 호수 마을의 숲에서 2년을 살아냈다.

직접 땅을 파고, 집을 짓고, 곡식을 기르고 돈을 벌어보고, 철새의 이동, 월든 호수의 얼음, 개구리와 개미 등을 살피며 실험을 하고 자연을 관찰했다.

2년 중 1년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담아놓았는데 어떤 이들에게는 하버드까지 나온 수재의 괴짜같은 일탈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로는 전혀 흔들림없다.
그의 수많은 깨달음보다 그의 태도에 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월든에서 행하는 모든 일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고 목적의식이 분명했으며,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일들에 더할나위 없을 만큼의 최선을 다한다.

혼잡한 도시에서는 고요히 집중하기가 쉽지않다. 높은 인구밀도로 어디서나 소음이 들릴 것이고, 원하지않는 정보들이 귀를 타고 흘러들어와 집중을 방해한다.
결국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것 보다 다른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일에 정신이 쏠리고 그것을 이야기하는데에 합류한다. 그렇게 시간을 죽여가며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답을 얻기위해 소로는 월든으로 떠나왔다. 시끄럽고 스스로가 아닌 타인에게 온 정신이 쏠려있는 사람들을 떠나 직접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자연을 바라보며 그렇게 자기 자신, 스스로를 톺아본다.

실제로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한 답은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강요받는 역할을 수행하다보면 자기 스스로를 관조할 시간도, 여력도, 의지도 사라진다.
소로는 자신의 깨달음 뿐만 아니라 깨달음 까지의 과정도 세밀하게 담아놓았다. 깨달음을 알려주고픈 것이 아니라 그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마다 무엇을 깨닫는지는 높은 확률로 다를 것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기까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소로처럼 모든 것을 내던지고 숲으로 숨어들 수는 없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월든’을 찾아야 한다.
‘월든‘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다.

속도를 조금 늦추고, 잠시 멈추는 것도 좋다.
멈추면 도태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멈추어서 자신을 마주해서 무언가를 깨닫는 것이 더 앞서는 일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 멈춰서서 느긋하게 누리고 싶은데 다른 사람을 따라 나아갈 필요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니까.

눈 앞에 무한한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 더 넓은 세상이 우리 안에 있다.
그 세상의 콜럼버스가 된다면,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 진정 깨닫는다면 자신이 해야할 일에 확신을 가질 것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임을 잊지말라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제대로 살아보라고 말한다.
2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그의 구체적인 깨달음들은 빛이 바랜 것 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제안해주는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로 개인의 깨달음이라는 나무 한그루, 새 한마리들을 따라 관찰하며, 스스로를 정직하게, 오롯이 바라보기라는 큰 숲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괜히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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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윌북 클래식 브론테 세 자매 컬렉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박찬원 옮김 / 윌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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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목이 #폭풍의언덕 일까?
<폭풍의 언덕> (#에밀리브론테 지음 #윌북 출판)을 덮을 때 까지도 제목이 의아했다. 이 책의 원제는 워더링 하이츠 wuthering heights로 이 책의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저택의 이름이다.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라는 이름을 가진 아름다운 저택과 세트처럼 등장하는 집으로, 그 저택 간의 거리는 대략 6km정도이다.

하지만 이 두 저택은 보란 듯이 분위기가 다르다. 한 곳은 이승 한 곳은 저승(심지어 지옥)이라 여겨질만큼.
그 두 저택의 괴리감만큼 같은 인물이라도 어떤 저택에서 살아가느냐에 따라 삶도 다른 인물이라 할 만큼 180도 달라진다. 아마 폭풍의 언덕이란, 워더링 하이츠가 있는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장소를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언덕보다는 자택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더 책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더링 하이츠는 2대에 걸쳐 복수를 꿈수는 히스클리프를 말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곳이고, 헤어턴에게는 삐뚫어진 부정을 못박게했음에도 세상의 전부였던 곳이다.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가지지 못했다는 불만은 날이 곤두선채 동거동락한 오랜 시간 앞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서로에게 고운 말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그들은 자기도 모르게 서로 사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히스클리프에게 사랑이자 삶 그자체였던 캐서린에게서 태어난 캐시는 유순하고 정많은 아버지에게서 스러시크로스에서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할 줄 알았으나 워더링 하이츠의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가장 큰 사랑의 대상은 아버지를 헤친 원수로 여겼기에.

세대를 대물림하며 희대의 복수를 꿈꿨던 히스클리프는 어느날 자신의 복수의 완성을 더이상 바라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스스로도 그 이유를 정의하지 못한다. 배운 적이 없었기에. 다만 헤어턴을 보면 그에게 그러고 싶지 않음은 느낀다.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지도, 부르지도 못하고.

결국 히스클리스가 허망하고도 측은하며, 악마같은 모습으로 새상을 떠나고 남겨진 젊은 세대 캐시와 헤어턴은 미래를 약속하고 웨더링 하이츠를 뒤로하고 스러시크로스로 떠나갈 준비를 한다.
두 세대에 걸친 워더링 하이츠와 스러시크로스를 드리웠던 어둠은 마침내 걷혀질 준비를 한다.

<폭풍의 언덕> 초반을 읽는 동안은 스러시크로스 그레인지와 워더링 하이츠가 정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스러시크로스는 응당 그래야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곳, 워더링 하이츠는 그러지 못한 곳으로.

하지만 이것은 상대적이었다.
자신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찐사랑(!)을 버리고 스러시크로스로 떠난 어떤 이에게는 워더링 하이츠가 돌아가고 싶은 사랑이 흐르는 곳이었고, 원치 않게 워더링 하이츠에 갇힌 어떤 이에게는 스러시크로스가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이었다.

하지만 지옥같은 워더링 하이츠에서 지옥같은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곳에서 세상 그 어떤 곳도 줄 수 없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끼며 ’진짜 내집‘으로 여기는 인물들도 있었다.

결국 건물House가 집Home이 되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이러한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 ’사람과 살을 부대끼며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랑을 말하고 있는 책이지만 연인끼리의 사랑보다 가족끼리의 사랑에 가깝다. 배우지 못해 깨닫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자기도 모르는 무언가가 싹튼다.
무덤을 다시 파내도 풀리지 않는 평생의 복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이었다.
그도 자신이 그러한 이유가 사랑이었다는 것을 결국 알았을 것이다. 평생에 걸쳐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평생을 부정하는 길이라 여겼을 것이다.
다만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자신의 전부였던 그녀를 혼자 느끼며 평생 거의 없던 기쁨을 느꼈던 것을 보아 그녀가 그것이 사랑임을 알려준 것이 아니었을까.
비록 그의 그런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는 공포스러웠겠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요치않다.

평생 대부분을 집에서만 보냈던 작가가 사랑했던 황야와 집 그곳을 가득채웠던 사랑이 <폭풍의 언덕>에 가득 담겨있다. 에밀리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이야기 끝에 남겨진 두 남녀는 오래동안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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