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라이트 토치 3부작 1
모이라 버피니 지음, 강동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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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인류가 지구에서 사라진지 수천년 뒤의 일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십년 뒤의 모습도 상상이 가지 않는데 죽어 사라져 심지어 몸을 이루던 성분들도 이미 사라진 뒤의 일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구체적인 상황을 빼고는 딱히 지금의 우리와 달라진 것이 없구나, 세상 사는 것이 다 똑같구나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SF다.
#송라이트 (#모이라버피니 지음 #자음과모음 출판)는 인류가 멸망한 뒤 수천년 뒤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고 있는 SF소설이다. 이전 인류가 이룩한 것들이 대부분 소실되오 중세시대와 비슷한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이 시기는 안타깝게도 디스토피아다.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듯 멸망 후에 새로운 태동을 기대했건만 어김없이 힘있는 소수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된다. 남자와 여자의 선천적 차이에서 기인되는 차별(과부는 집 밖에서 일을 할 수 없다)부터 기관이 정해주는 남편이 그러한 얘이다.

여성들의 인권과 자유가 상당히 억압되어 있는 상황에서 엘사는 자유를 향한 탈출을 꿈꾼다.
사실 엘사는 더 심한 제약을 받는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이능력, 송라이트 때문이다. 송라이트는 토치라고 불리는 소수만이 가지는 능력으로 말을 하지 않고 서로의 내면에서 부터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보듬어 밝게 채워줄 수 있다. 이런 감시할 수 없는 소통망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당연지사(지금과 너무나 똑같다) 그들을 인간이 아닌, 인간보다 못한 ‘비인간’이라 칭하면서 박멸하려 애쓴다. 붙잡힌 토치들 중에 목숨을 구걸해 살아남아 다른 송라이터들을 잡아들이는 권력의 앞잡이가 된 사이렌들도 우리 역사의 예전과 지금, 어디에나 존재했던 흔한 악인이라 입맛이 쓰다.

진정한 자유를 찾기위해 시도를 하는 이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만연해진 악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을 막아서는 것은 누구보다 그것을 지지해줘야하는 것이 당연한 가족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을 귀가 따가운 소리가 아닌 내 안에서 울려퍼지는 다정한 소리로 나만큼 나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알아주는 같은 처지인 다른 토치들에게 마음이 가을 수 밖에 없다. 그들이 어찌보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인 것이다. 피를 나누었다고 가족인 것이 아님을, 깊게 공유하는 무언가가 서로를 이완시키고 빛이 가득한 하루하루를 선물하는 것이 가족임을 다시한번 깨닫게 한다.

송라이트 songlight 라는 단어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다. 자유를 꿈꾸며 떠나고 싶어하는 나약한 이들을 새장 속에 갖힌 새라고 한다면 그들이 내는 목소리가 송song이 될 것이다. 그들 서로의 노래가 서로에게 닿아 내 안을 밝은 빛light으로 채운다.

송라이트. 이능異能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으로 공감하고 이해하고 다독여 빛과 그 빛의 온기로 세상을 가득채우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함께 살아가기위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런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억압받고 차별받고, 숨겨야 한다는 것이 이미 잘못되었다.
인류의 문명이 멸망한 것이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 세상. 그것이 바로 <송라이트>속 디스토피아다.

이 이야기는 아직 두 권이 더 남아있다.
거대한 세계관에 영국 작가들의 최고 영예인 왕립 문학 협회 회원에까지 오를만큼 탁월힌 작가의 글실력이 더해져 방대한 분량이 오히려 축복처럼 여겨진다.

극작가인데 이 글만은 소설로 써야만 했다는 작가의 말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더 쉽게 더 널리 읽혀져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그런 작가의 바람은 이미 성공한 듯하다.

그 바람이 시원하게 내지르는 바람에 실려 더 멀리멀리 전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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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 있는 생각에는 틀이 있다 - 감각을 논리로 직감을 성과로 바꾸는 인사이트
사토 마키.아사미 아야카 지음, 조사연 옮김 / 알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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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책을 읽으려 마음을 먹을 때가 생각난다.
그냥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는게 아까워서.
그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자기계발을 위해 독서를 선택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뱉어내는 단어가 바로 ‘인사이트’였다.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다면 통찰즈음 되는 단어인 것 같은데 그냥 들었을 때는 어떤 깨달음을 말하는 것 같았다.

#센스있는생각에는틀이있다 (#사토마키 #아사미아야카 지음 #알레 출판)을 읽으면서 인사이트라는 단어의 정의부터 다시 내릴 수 있었고, 왜 그런 독서가 삶을 바꾸지 못했는지 왜 내가 얻었던 ‘인사이트‘는 효과가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인사이트는 ‘사람을 움직이는 숨겨진 본심’을 말한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표현은 ‘사람을 움직이는’과 ‘숨겨진’이다. ‘숨겨진’은 애초에 문제가 잘못되었거나 겉으로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있는 조사결과의 빈틈을 찾는 것이다. 이것은 참신함과 즉효성으로 이어져 마케팅에 큰 도움이 된다.

나처럼 마케팅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신함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럼 또다른 키워드 ‘사람을 움직이는’에 주목해야한다.
이것때문에 책에서 얻은 깨달음이 진짜 인사이트가 되지 못한다. 사람을(나를)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인사이트와 비슷한 무언가로 파인딩스, 상식/통념, 니즈 세가지를 소개하는데 이 중 책에서 무언가를 깨닫고 발견했지만 사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을 파인딩스로 분류한다.)

어떤 것이 사람을 움직이는 것일까.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일단 어떻게 움직이길 원하는지 목표가 뚜렷하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에 부합하는 파인딩스들만이 사람을 그 목표로 움직이게 하는 인사이트가 된다.

뚜렷한 목표 설정이 되어야 그 후에 그 방향에 부합하는 인사이트들을 떠올리는 방법들이 도움이 된다.
각 단계를 거치면서 개념아 변하는 출세어모델을 연마하고 익숙해 지면 그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인사이트를 도출해낼 수 있는 역설 모델을 연마하는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이것은 위에서 말했던 인사이트가 아닌 파인딩스, 상식, 통념들을 인사이트로 변환시키는 노력이다.

목표를 확실하게 만드는 것 까지의 노력, 단순한 깨달음들을 진정한 인사이트로 변환시키는 노력.
결국 인사이트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재능(직감)의 영역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을 들여 노력하여 발전시키고 마침내 얻을 수 있는 직관이었다.

이 자체로도 위안이 되는데 상당히 구체적이고 쉽게 서술되어 있어 노력에 필수조건인 용기와 인내를 고양시켜준다. 데이터에서 기인된 팩트는 더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AI보다 잘 할 수 없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경험과 관찰에서 도출된 이면의 감각이 필요하다. 그것도 행동하게 만드는 정교한 틀과 함께여야 가능하다.

오늘도, 미래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인간일 수 있도록,
인간만의 고유영역을 갈고 닦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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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거품에 거품 물지 않기
이시은 지음 / 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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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간다는 것.
“열심히는 필요없어. 잘 해야지.”같은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요즘에는 특히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승승장구하는데 나는 제자리, 내가 준비한 기획은 그냥저냥 흘러가나 수챗구멍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져버린다. 결국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면 나의 시간은 그냥 흘러간 것이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시계추마냥 집과 회사를 왔다갔다하는.

그래서 그럴까. 쉽게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한 회사에서 오랜세월 근무하는 것이 경이로운 수준이다.
5년, 10년, 15년… 그렇게 회사를 지속적으로 다닐 수 있는게 정말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때문일까?
무언가 이룬 것이 없어보이는데 회사를 그렇게 지속해서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거품에거품물지않기 (#이시은 씀 #달 출판)은 카피라이터로 24년 근무해온 워킹맘의 특별하고도 보통의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회사를 꿈꾸며 준비를 하고 있는 작가의 회사 이야기를 들으면 신선하다.
아마 내가 일하고 있는 직업과의 차이때문에 그럴 것이다. 카피라이터란, 광고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는구나. 클라이언트와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타인의 삶을 지켜보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공감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패기만 넘쳤던(결국 그것마저 넘쳐 흘러 사라진)신입시절부터 첫 카피를 만들려고 전전긍긍하던 모습,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철야, 주말근무를 불사하던 모습, 출산, 육아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또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대면 한번 한적없는 작가가 들려주는 일상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회사를 다니고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기콜콜 주고받는 것은 보통의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제목이기도 한 ‘물거품에 거품 물지 않기’마인드다. 잠도 못자고 퇴근도 못하며 준비한 일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우 모두 한번씩은 겪어봤을 것이다.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오만 감정이 교차되는 그것에 몇날 며칠을 정신을 못차린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싶어 혼자, 또는 동료들과 물거품을 안주삼아 쓴 소주를 하염없이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런일이 있었구나싶다. 돌이켜봐야할만큼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것과 그런 일을 겪고도 또 다시 살아냈다는 사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죽을 것 같던 일도 결국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거다. 이 경험으로 허망한 일이 생기면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한다. 결국 회사를 다닐것이고, 또 살아갈테니까. 그런일도 거품물면 나만 손해다.

그리고 두번째는 성과없이 흘러온 시간이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작가는 책에서 ‘운을 모은다’라고 표현하는데 성과가 없었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것은 후에 무언가 큰 성과를 달성하는데에 필요한 운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한다.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도류’오타니가 세상 모든 운을 야구에 모으고 싶어 다른 취미를 잘 하지않고 떨어진 쓰레기는 꼭 줍는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성과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과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 별 큰일 아닌 것 같지만 그 자체로도 후에 어떤 큰 행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없다.
결국 해낸다는 것. 그러니 믿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늘 한번 바라본 적이 언제인가.
매일 하늘 바라보기 챌린지도 있더라.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다보면 이런 사소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결국 무언가를 해내게 할 ‘운’의 총량을 채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운을 모으는 특별한 과정이다.
그러이 평범한 일상 속 평범한 일들은 실은 특별한 것들이다. 그런 일들을 하는 우리도 특별하다.

그런 낙관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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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의 나에게 Entanglement 얽힘 5
연여름.조우리.황모과 지음 / 다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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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칠 때.
그런 때는 생각보다 많다. 아니 대부분의 시간이 힘들고 지친 날들이 일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일상을 꼬박꼬박 꾸역꾸역 일어나 살아낸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거창하지 않았다.
“뭐 다 그렇게 사니까.”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아니라 흔하디 흔한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일반성. 각자의 구체적 형태가 다르더라도 그 본질은 같다는 절대로 떨어지지 못한다는 그 얽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세계의나에게 (#연여름 #조우리 #황모과 씀 #다람 출판)은 너무나 당연해 잊고있던 이 얽힘을 세 편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웹소설 속 나와 같은 이름의 영웅, 나의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난 ’누군가에게 악몽‘인 꿈 속 세계, 이 세상 여기저기에 살아가고 있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
어쩌면 실존하지 않는 웹소설 속, 또는 꿈 속 세상.
이것들과는 다르게 나와 같은 세상 속에서 실존하지만 그 존재를 몰라 실존하지 않는 것과 다를바없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어쨌든 사람들이 위안받는 경우는 한가지였다.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웹소설 속에서 영웅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나에게 질 수 없다며 힘을 내기도 하고, 병에 걸린 환자는 고독함을 느끼지만 보호자와 치료자는 환자가 생기면 동시다발적으로 함께 생기는 세트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꿈을 그냥 가짜라고 해버리면 나의 꿈 속 세상이 현실인 누군가는 얼마나 고독할까.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버젓이 여기서 이렇게 숨쉬고 고통받고 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달라는 것이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접점이 한번도 없었던 사람들도 공감하지 못할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뭐 어떤가. 그렇다고 나와 이름이 같은 타인의 안녕을 빌어줄 수는 없는 걸까?

세상에 절대 불가능한 것은 없다.
다른 이의 상황이 절대 나에게 벌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구체적인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심지어 동일한)감정을 유발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타인의 악몽을 외면하는 것일까.
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지만 이 세상에서 기쁨을 나누면 듣는 사람은 배가 아프고 슬픔을 나누면 듣는 사람은 ‘꼬수워’한다.

이게 다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에서 우위에 서는 것으로 삼기 때문이다.
직접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바라보는 나를 나에게 투영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감을 잃고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나만의 철옹성을 쌓아올린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다.

타인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조차도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기위해 나의 경험 나의 생각을 투영해야하는데 자신과도 공감하지 못했으니 무엇에대가 무엇을 투영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타인과 알게모르게 얽혀살아가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켜주는 것은 물론 시선을 내 안 깊숙한 곳으로도 향하게 해준다. 이 세상에 내가 모르는 곳이 존재하는 것 만큼 내 안에도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와도 세상과도 지독하게 얽혀 정전기가 따끔하게 일도록 하나되어 살고 싶어지게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책이다.
정전기 때문에 겨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그럼에도 누군가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려 따끔함을 견디듯이 또 그 상대방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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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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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면 이것이 정말 나와 같은 인간이 만들었단 말인가 입이 자연스레 벌어지는 놀라운 것들이 가득하다. 높디 높은 유리벽 건물, 튀어나올 것 같은 입체영상,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첨단 문물들, 이제 인간의 입지를 걱정하게 만드는 AI까지. 이것들을 보면 떡 벌어진 입에서 ‘정말 예술이네!’ 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예술. 예술은 도대체 뭘까?
이렇게 우리를 애워싼 모든 것이 예술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미술관과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왜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발걸음을 붙잡는 작품을 만나는 것일까.

#진짜예술가짜예술 (#장프랑수아마르텔 씀 #서스테인 출판)은 ‘인공물’과 ‘예술’을 구분짓는다. 예술이나 인공물이나 모두 사람이 만들어냈으니 인공물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바로 ‘의도’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이끌어내는 의도. 이것을 사라, 이것을 선택해라, 이 사람을 뽑아라와 같은 명백한 의도가 인공물은 그 아름다움 속에 터질듯이 가득하다.

하지만 진짜 예술은 의도가 없다. 아니 아예 사람 자체가 없다. 분명 사람이 만들고 자신의 삶 한 부분을 똑 떼어다가 옮겨놓은 것이지만 만들어낸 작가가 담겨있지 않고 독립된 무언가가 된다. 그래서 예술의 물감, 석고, 청동 등의 다양한 표면 속은 커다란 여백이 존재한다. 그 여백은 가능성이다. 결코 찾지 못할 답을 찾는 것이기도 하며, 그러는 와중에 각자가 발견한 수많은 의미가 될 가능성.

수만년 전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부터 르네상스, 인상주의를 넘어 현대미술까지 형태는 무수히 변해왔지만 ‘발전’하지는 않았다.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쌓이는 시간에 상응하는 다양성이 축적되는 과정이었다. 예술은 본래 인간을 필수조건으로 삼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을 수도 있고, 처음 인간들의 삶에 나타났을 때부터 완성되어 있던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그런 것을 지금에 와서 의도를 구겨넣어 탄생하기도 전부터 이미 예술의 본질과 멀어지게해 또 하나의 인공물로 격하시키는 오늘날은 오히려 퇴보한 것이 아닐까.

예술을 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네와 고흐같은 유명한 화가들도 돈이 없어 애를 먹었고, 자신이 표상하던 것이 아닌 것들을 그려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에 최선을 다했다.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만 조금 양보했을 뿐인 평소와 조금 다른 이것들은 작가에서 떨어져 나와 무한한 가능성을 갖춘 부족함없는 예술이 되었다.

심미안.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눈.
소소한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우리 본능이 이미 무엇이 예술이고 예술이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능력은 오랜 시간 선조때부터 해온 것들이 세포에 새겨져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것이 지금에 와서 진짜, 가짜를 구분하게 된 것은 사람을 그럴듯하게 속여야 이득이 되는 사회 구조의 탓도 있지만 예술을 이전만큼 우리 각자의 삶에 깊게 넣어두지 못했기 때문인 것도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살롱전에 수십만명의 인파가 들어오는 것은 우수운 일이었다고한다. 지금은 예술말고고 즐길 것들이 많지만 예술을 곁에 두는 것 만큼 우리를 성장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없다. 많이 겪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더욱더 교묘하고 간사해져가는 ‘가짜 예술 만들기’에 속지 않으려면 진짜 예술을 더 많이 보아야 한다.
진짜 예술은 정답이 없다지 않나. 각자의 느낌이 모두 정답이다.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 그림의 표면이 갈라진 크랙이 더이상 아쉽지 않다. 그 크랙 하나하나, 그 틈 하나하나가 우리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가 연결될 가능성들이니까.

진짜 예술에 대한 갈증을 유발한다.
그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차가운 물 한잔.
그것이 진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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