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
마쓰바라 하지메 지음, 정한뉘 옮김 / 나무의마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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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하나를 얼마니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의 답, 바로 #만약세상에서까마귀가사라진다면 (#마쓰바라하지메 씀 #나무의마음 출판)이다.

동물행동학자로 까마귀의 생태와 행동을 연구해온 까마귀 박사인 저자는 어느날 까마귀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한권의 책을 써냈다.
놀라운 것은 저자의 전공은 생물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종교, 신화, 문학을 넘어 ‘포켓몬스터’ ‘귀멸의 칼날’같은 애니메이션까지 폭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공이 아니라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물행동학자라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인 묵묵히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으로 폭넓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긴 자신의 전공 쪽으로는 까마귀가 지금 이순간부터 자연에서 사라졌는지, 애초에 까마귀라는 종이 존재한 적이 없었는지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의 상상력은 참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까마귀가 사라졌을 때를 예상하는 것을 넘어 까마귀를 대신 할 수 있는 ‘대역’을 고르기위한 오디션을 치르는 것도 참신하고 위트 있었다.

까마귀가 담당하고 있는 ‘청소동물’ ‘도시에 사는 동물’ ‘머리가 좋은 새’ 카테고리 별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동물들을 이상형 월드컵하듯이 탈락시키는데 과연 그는 누구를 최종후보로 낙점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자. 까마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동물이 있었다면 그것은 ‘까마귀’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까마귀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똑같은 습성을 보여주는 까마귀 뿐인 것이다.

결국 무언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원래 까마귀는 민간 신앙이나 고대 신앙에서는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었으나 기독교와 같은 삼대종교에서 그 위치를 내어주고, 해충을 잡아먹어 이로움을 느끼던 농경사회가 주류에서 밀리면서 도시에서 쓰레기 봉투나 뜯는 불필요한 새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색도 검어서 불길하다나. 결국 ‘까마귀가 없어진다면’은 ‘필요없어 보이는 OO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속편한 불편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로 생태계라는 거대한 태엽을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고 있다. 까마귀도 쓰레기 봉투를 뜯고 귀중한 차에 새똥이나 묻히는 것 같지만 쓰레기를 청소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가로수의 유충들도 잡아먹고.

무언가 하나가 빠지면 내가 아는 세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적응된 불편함이 아닌 새롭고 낯선 불편함과 마주하게 된다. 굳이 새로운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일장일단. 하나의 장점이 있으면 하나의 단점이 있다. 우리는 그걸 밸런스라 말하고 보통이라 말한다.

보통이라는게 지루하고 의미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축한 내 세계가 문제없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몹시 귀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그런 보통의, 익숙한 내 세계를 그대로 잘 유지하는 것도 좋은 삶의 방향이다. 내 세계에서 작가처럼 낯선 호기심을 가지는 것도 물론 좋다.

유쾌하고 즐겁게.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우리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유쾌하면서도 정성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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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아포칼립스
연상호.전건우 지음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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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수를 대표하는 명곡이 만들어진 계기를 들어보면, 좋은 음악은 가사와 멜로디가 같이 떠오른다고 하더라.
좋은 글도 작가가 쓰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저절로 소재가 떠오른다고.

#닥터아포칼립스 (#연상호 #전건호 씀 #은행나무 출판)는 영화 <부산행>, <얼굴>을 만들어 낸 연상호 감독의 영상적 언어와 스릴러 문학의 거장 전건호 작가의 활자 언어, 멜로디와 가사가 동시에 작성된 명곡과도 같은 작품이다.

독특한 소재를 찾아내면 좋지만, 매번 독특하기는 어렵다. 뻔하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익숙하다는 것이고, 익숙하다는 것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그만큼 쉽다는 뜻이다.결국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거장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닐까. 그 기준으로 <닥터 아포칼립스>의 두 아버지는 거장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 잘나가는 뉴스앵커의 딸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불의의 사건으로 작은 병원에서 수술도 집도하지 않고 살아가던 의사를 만나 감염되면 돌이킬 수 없을 줄 알았던 좀비화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생긴다.

선거를 앞두고 말끔히 처리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과 뜻을 같이 하는 거대병원. 그들에게는 감염자를 사살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쉬운’길을 선택할 명분이 필요하다.
저 작은 병원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수술이 실패로 끝나야만 한다.

단조로울 수 있는 스토리에 인물만의 서사가 부여되고 그 서사들이 인물들을 ‘연’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천으로 기워낸다. 얼굴까지 문신으로 뒤덮인 조폭, 의료기기 회사 직원, 모든 것을 버린 의사, 출세의 욕망에 눈이 먼 의사, 뉴스 앵커, 작은 병원의 나이많은 원장과 간호사 등 각자 기워진 연으로 이야기는 향처럼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다.

대종말을 뜻하는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라는 소재는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꺼내기 아주 좋다. 죽음 앞에서 누구나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에게 최선의 결말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기에 억지로 독자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 인간은 파벌이 갈린다. 나만의 ‘우리’를 위하는 쪽, 모두의 ‘우리’를 위하는 쪽. 머리로는 모두의 우리를 좇지만 과연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그 선택을 당연하게 좇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덮으면서도 시원하게 내 입장은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가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것은 모두가 같은 마음일테니 이렇게라도, 시뮬레이션으로라도 올바른 것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지 않던 것을 선택하는 것 보다 가끔이라도 생각해본 것을 따를 확률이 많은 법이니까. 그러면 만약에 실제로 아포칼립스와 같은 상황이 와도 조금은 더 인류에게 다음이라는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책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을 활자로 겪으며 그 안에서 누군가의 입장에 공감하며 읽어나가게 된다. 그것이 책장 하나하나를 넘기는게 마음아프게 할수도,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기고 싶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닥터 아포칼립스>는 활자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재생이된다. 읽는 동안 이 인물은 배우 누가 맡으면 딱이겠다가 저절로 떠오른다.

책을 읽는 재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책에 푹 빠져 웃고 울고, 마음아파하고 기뻐하고 내 세상에 인물들을 데려와서 책과 나의 세상을 합치는 것.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터너가 재밌는 책의 또다른 이름이라면 이 책은 끝내주는 페이지터너이다.

순수하게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속도감과 몰입감이 상당한. 얼른 시나리오로 각색되길 바라는. 극장에 걸린다면 기꺼이 한자리, 아니 두자리 차지하고픈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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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 김영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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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애인에게 (#백영옥 지음 #김영사 출판)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 이 무슨 막장 드라마인가 싶었다.
구성도 나의 이런 오해를 완벽하게 증폭시킨다. 여자 셋, 남자 하나. 막장도 이런 막장이 있을까.

하지만 아름다움과 동시에 덤덤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듯하게 여기게 하는 작가 특유의 문체를 따라 읽으면 막장 스토리를 볼 때 같은 그런 흥분은 없다. 뉴욕에서, 홍콩에서, 서울에서 덤덤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랑을 한다. 그 사랑의 이유도 제각각이다. 결혼을 해서 뉴욕에 완전한 정착을 꿈꾸고, 상대방은 온전히 깊은 사랑을 했다. 누군가는 수업시간이 뒤바뀐 상대방의 휴대폰에 담긴 글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혼자만의 짝사랑은 상대방의 부부가 머무르고 있는 집에 세를 얻어 들어가게 만든다. 부부가 여행으로 비운 그 집안에서 그녀는 그의 흔적을 찾으면서도 아내의 아픔도 함께 관찰한다. 혼자 남편의 외도을 의심하며 시간을 보내기위해 뜬 완성되지 못한 스웨터(아마 남편에게 줄 선물용이었을 것이다.)를 여자 스웨터로 다시 만들어 놓는다.

자신이 원하는 안정된 정착을 놓칠 위기에 있으면서도 아내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마지막 진실된 사랑이라 생각했지만, 상대편에게는 그것마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척도로 마음을 할퀸다.

<애인의 애인에게>속 등장인물들은 어느 누구도 사랑에 성공하지 못한다. 성공. 사랑에 성공한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함께 있기만해도 좋은 것? 눈빛만 봐도 서로 아는 것? 영원을 약속하는 것? 가족을 꾸리는 것? 그런 것들을 성공이라 말하기엔 대부분 결혼까지 가는 사랑은 평생의 한번이고, 마냥 좋았던 사랑도 헤어지면 끝이다.
결혼 전에 했던 사랑, 결국 헤어진 사랑은 그럼 실패한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사랑은 각자의 성공의 모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사랑에서 각각의 슬픔, 기쁨을 느끼고 깨우고 배운다. 다음 사랑은 조금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또는 더 잘해야지 라는 다짐과 그 다짐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내 안에 간직한다.
조금 더 나은 나, 미래를 꿈꾸고 노력하는 나. 그것도 사랑의 성공이 아닐까.

모든 사건은 끝이라는 형태가 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살아숨쉰다. 그러다보면 좋았던 것이 나빴던 것으로, 나빴던 것이 좋았던 것으로 바뀌는 경우들을 마주한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말고는 변화가능성을 가진 불확실한 것들이 모여 우리를, 삶을 이룬다.

어찌될지 모르는 것을 미리 실패로 여기는 것 보다 성공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로 보면 어떨까.
마치 우리가 밤하늘의 별을 보듯이 말이다.
우리가 보고있는 밤하늘의 별은 이미 사라진 과거의 사건이다. 하지만 우리는 별을 보며 생각에 잠기도 문득 깨닫고, 마음 먹는다.

그래서 힘들 때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 보는 것이 아닐까.
이미 사라진 무의미한 것들인데 존재감은 확실한.

그런것이 하늘이 아닌 우리의 일상에도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니 두려워도, 실패해도, 아파도 겁먹지 말고
기꺼이 사랑하자.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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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부 : 삼체문제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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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이 예정되어 있다면 어떨까?
그런데 그 예정된 멸망이 450년 뒤에 일어날 일이라면?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멸망인가?

#삼체 (#류츠신 씀 #자음과모음 @ 출판)를 읽으면서 나에게 계속 물었던 질문이다. SF소설은 너무나 먼 미래, 그래서 터무니없어보이는 것들을 장황하게 써놓는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 어떤 장르보다 사회적 요소가 높다는 것은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의 내가 바라본 <삼체>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450년 뒤 지구에 도달할 외계문명을 대비하는 소수의 엘리트들도 진심으로 지구를 위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너무 멀어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 같기도 한 이것을 자신의 방어수단으로, 공격수단으로 정치적으로 활용한다. 이것에 대항하는 ‘지구 삼체 조직’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침략자들의 도착을 도와 지구를 정복하려는 ‘강림파‘, 삼체 그 자체를 신처럼 숭배하는 ‘구원파’, 소수의 두 파벌에 들지못한 평범한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후손이라도 살아남기위해 인류를 배신하는 ‘생존파’. 로 나누어진 모습을 보면 하나의 이념아래 완전히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한번 깨닫는다.

심지어 지구 삼체 조직에서도 외계의 존재로 부터 받은 메시지를 ‘강림파’만 독점하고 있으니 이러한 갈등은 더 심화될 수 밖에.

인간은 결국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중요한 순간에는 결국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삼체>는 인간을 멸망이라는 극한의 상황까지 데려다 놓고 인간들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하고있는 꼬락서니를 보라며, 인간은 본디 이기적인 존재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왜 멸망의 카운트다운을 이렇게나 늦추어 뒀을까.
인간의 추악함도 아직 고칠 수 있고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450년이라는 과연 현실인가 곰곰히 생각하게 되는 여지는 언젠가 현실로 다가올 인류의 끝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곰곰히 생각해 최선의 방안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배려 같았다.

비록 이제 3권 중 한권, 가장 얇은 1권을 읽었지만 말이다. 2,3권을 읽고나면 ‘그럼에도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남는 책이면 좋겠다.

몹시 애정하는 인친분의 추천을 받아 꼭 읽겠노라 다짐했던 삼체를 #삼체1권4주완성속독반 으로 겨우 읽어냈다.
매주 토요일 7시부터 10시까지 공백님 유뷰트 라방에 모여 실시간으로 함께 읽고, 공백님이 스케치북에 핸드메이드로 그 주 분량을 요약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읽으니 어느새 1권을 다 읽어낼 수 있었다.

2권, 3권도 혼자서 읽을 수 있지만(2,3권이 어마어마하다는데 1권만 읽고 끊을 수 있을소냐) 또 공백님과 다른 분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은 널리 읽혀야하고 함께 읽으면 더 좋은 책이 된다 했던가.
그렇게 <삼체>는 나에게 몹시 좋은, 기억에 남을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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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자기 철학이 필요한 나이 - 내 삶에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싶은 당신에게
이서원 지음 / 땡스B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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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知天命. 비로소 하늘의 뜻을 알았다라는.
공자의 <논어>에 실린 말이다.
오십. 비로소 세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일까.

최근 삼십, 불혹 같은 나이와 철학이 합쳐진 책들이 큰 인기를 끌었었다. 그 책들의 철학은 비트겐슈타인 같은 철학자들의 개념을 다루고 있었다. #오십자기철학이필요한나이 (#이서원 지음 #메가스터디북스 출판)을 맨 처음 보았을 때 그래서였을까. 오십이라는 나이에는 어떤 철학이 더 잘 어울릴까 고민해보았으나 오십이라는 나이도, 머리 속에 들어있는 철학도 몇개 되지 않았기에 쿨하게 포기하고 책을 열었다. 그리고는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누군가의 철학을 차용하지 않는다.
난독증일까. 책의 제목에 이미 답이 있었다.
그냥 철학이 아닌 ‘자기’철학.
인생의 반환점에서는 더이상 다른 이들이 아닌 나 자신이 중요한 것이었다.

저자는 오십은 스스로에게 한번도 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던지게 되는 나이라고 말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이 말을 들으니 책 속에 있는 또다른 문장과 자연스레 이어진다. “스스로 질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철학자다.“

질문이 가진 힘은 무엇일까.
질문의 목적은 답일까? 물론 그럴 수 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질문은 의미없는 것일까? 답을 구하려 애썼던 시간도? 결국 질문이 가진 의미는 비로소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결로 꾸준히.

지금 시대에는 나이가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십까지만 해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사회에서 아둥바둥해야하고, 아이들을 키워야하고 노후를 준비해야하는 등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 그 삶 속에서 이런 질문들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제도 속에서 최선의 것들을 모아 내일을 준비하는 것이 더 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얽매이던 것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철학을 생각해낸다는 것은 쉽지않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아이들도 다 자라고 치열한 경쟁에서 한발짝 물러날 수 있는 오십이 자기만의 무언가를 세우고, 그것으로 반환점 이후를 완주할 힘을 얻기 적당한 때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저자본인의 이야기와 여러 사회 속의 일화들을 들려주며 스스로의 무언가를 세우는 방법으로 안아주기, 내려놓기, 마주하기, 정돈하기, 물들이기를 알려준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것, 모두가 제자리 걸음하는 것이 문화라는 것에서 시작해 타인의 시선에사 자신을 내려놓고 나보다 다른 것들 더 신경쓰다 미처 듣지못했던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관계를 돌아보고 정리하며, 그렇게 나의 세상을 오롯이 나의 색으로 물들여보라 말한다.

결국 나를 찾는 것은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비우는 것이었나. 수많은 소리와 색 중에서 나만의 것을 찾으려면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생 집중의 양은 정해져있다지 않나. 나 자신을 찾는것에서 마저도 나 이외의 다른 것들 때문에 고생할 필요가 있나.

그래서 나 이외의 것들을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다.
스마트 기기의 용량정리하듯. 용량이 확보된 기기는 버벅거림이 줄고 성능이 하향되지 않듯이 우리는 그렇게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를 찾는다. 점점 속도도 붙는다.

내가 있어야 너도 있고 우리도 있다.
이 단순한 진리를 마음먹고 실천할 수 있는 나이가 오십이라니. 삶이 측은해 지기도 하면서도 그때까지 잘 버텨낸 것이 얼마나 축하받고 인정받아야 하는 일인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깨달은 또 하나.

미리 할 수 있다면.

이 책에서 알려주는 자기철학을 세우는 것을 오십이 아닌 조금 더 일찍 할 수 있다면, 쉽지않은 사회에서 흔들림을 조금 더 잘 견뎌내고 단단히 뿌리내려 조금 더 잘 자랄 수 있지 않을까.

나와는 상관없는 것들이라기엔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 내용이 너무 많았다.
조금 더 자신을 살펴라고 격려해주는 어른 같은 책이다.
어른의 지혜가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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