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2 세트 - 전2권
고이시 유카 지음, 현승희 옮김, 신쵸사 협력 / 서교책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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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을 하면서 즐거웠던 해프닝이 있었는데, 바로 오탈자 발견이었다. 만듦새도 좋고 내용도 좋은 책에 오탈자 하나가 얼마나 아쉽게 느껴지던지. 함께 찾은 오탈자를 출판사에 문의해 다음 판부터는 수정되게 하겠다는 답장을 받았을 때 모두가 기뻐했더랬다. 그 책이 더 소중하게 기억에 남게 되었다, 평생.

책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작가와 편집자 정도만 생각했는데, 교열자가 있었다. 글자의 오탈자는 물론, 앞뒤 문맥이나 문장의 표현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작품 속 실제 있었던 일들의 팩트체크까지 담당하는 소리 없는 영웅 같은 사람들이다.

#비교하고검토하는교열부의쿠쥬씨 (#고이시유카 만화 #서교책방 출판) 덕분에 이런 교열자들의 목소리를 얼핏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 대표 출판사로, 다른 출판사에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교열부가 오십여 명의 교열자가 있고, <인간 실격>, <1Q84>와 같은 멋진 책들이 이들의 손에 의해 완벽한 책으로 탄생한 신쵸사의 교열부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 심지어 만화책으로 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교열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친근한 그림체로 구경하는 재미도 좋지만, 교열이라는, 일반인들은 있는 줄도 모르는 일에 애정을 가지고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자극을 받았다.

살아가면서 애정과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무언가를 했던 적이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런 일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어차피 제대로 알아봐 주지도 않는데, 시간 낭비다 등등. 외부인들이 교열부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나는 나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스스로가 하는 일을 그렇게 생각했으면 일 외적으로 다른 것에서 진심이기라도 하면 그나마 나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그냥 심장이 뛰고 있으니까 살아가는 느낌으로 살아왔다. 무언가에 진심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진심일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씨>를 얼굴을 붉히며 읽으면서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만드는 얘기도 싫어할 리가 없다. 나는 책이 배송 중에 상처를 입은 모습을 보면 최선을 다해 이 책을 만들었을 사람들이 너무 슬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오랜 시간 밤늦게까지 사무실의 불을 밝혔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괜히 책을 한번 쓰다듬게 된다.
무사히 내 손에까지 와줘서 고맙고 기특해서.

책에 대한 애정과 나 스스로에 대한 격려와 다짐까지. 책을 보는 동안 너무나 행복했다.
이러니까, 이럴려고 책을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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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사생아들 : 레프 톨스토이 x 오귀스트 르누아르 세계문화전집 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외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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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사생아들 (#홍선기 엮음 #모티브 출판) 속 병치되어 있는 위대한 작가들의 글과 그림을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눈에 담았다.

러시아의 백작가문 출신. 자신의 전 재산과 저작권을 나라에, 농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애쓴 살아있는 윤리. 그림자는 검지 않다고, 그림자 주변에 머물러 있는 세상을 빛을 발견하고 세상의 밝은 면만 그림에 담았던 빛과 같은 존재. 그들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유명한 톨스토이와 르누아르.

이 책에서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거장이라는 이름이 아닌, 적자가 아닌 사생아를 출산한 아빠라는 사실 단 하나다.
수많은 작품에서 자신의 부끄러운 삶의 모습까지 모두 담아낸 ‘거울’ 톨스토이. 찬란하게, 그리고 눈부시게 세상을 담아냈으나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창문’ 르누아르. 그들의 작품관은 그들의 떳떳하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톨스토이는 그의 적자가 아닌 첫아들을 외면하였으나 그 엄마와의 죄악은 낱낱이 작품으로 고했다. 여인의 이름도 숨기지 않았다. 그 사생아는 아버지의 집에서, 그리고 이복동생들의 집에서 마부로 살았다. 곁에 있으나 곁에 없는 듯. 작은 거울에는 자기 자신만 비칠 뿐, 주위 어느 누구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과의 거리를 두는 르누아르. 그의 딸에게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인정한 위대한 화가가 된 이후부터 딸에게 적지 않은 돈을 동봉한 편지를 끝없이 보낸다. 결혼 지참금도 보내고, 살 집도 마련해준다. 죽으면서는 딸에게 약간의 연금도 남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지 말라고 편지에서 신신당부한다. 자신도 딸의 존재를 평생 숨겼다. 적자들이 유언 집행할 때에서야 그 딸의 존재를 알았을 만큼.
창문은 내다볼 수 있으나 투명한 유리로 막혀 있어 전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둘의 이야기를 한 명은 외면했고, 한 명은 챙겨주었다라고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라고 저자는 말한다. 톨스토이가 농민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눠주려고 할 때 정말 ‘농민’인 자신의 첫 아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르누아르가 꼬박꼬박 돈을 보내준 것은 일종의 입막음이 아니었을까? <화가의 가족> 작품에 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하나 더 그려져 있는데 자신의 첫 딸을 담아 놓은 것은 아닐까?

단 몇 줄,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다. 무수한 사연, 남들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물론 더 나은 방향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유죄로 판결 내릴 만큼 ‘나’는, ‘우리’는 완전무결한가.

인간이란 모순적이다. 그 양면을 다 가지고 있기에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고, 그래서 나약하다.
나약하기에 죄를 짓는다. 죄는 누구나 짓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주저앉느냐. 그럼에도 나아가느냐.

죄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또 살고 싶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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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을까? - 인공지능과 관계 맺는 인간에 관한 탐구
이모란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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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 또다른 나 자신이라 진실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도 하지 못하는 ‘진짜 고민’을 AI에게 털어놓는 경우들이 제법 있다.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AI가 유용하다 말하고, 이런 경험 없이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AI의 발전이 위험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AI가 이미 우리 생활에 제법 깊숙하게 들어와있는 현재, 우리는 미래를 걱정한다.
AI가 인간을 앞지른 그 순간을. 그런데 AI와 인간에 대해 우리는 우위를 결정할 수 있을만큼 잘 알고 있을까?

#우리는왜AI에게속마음을털어놓을까 (#이모란 지음 #글담 출판)은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관계맺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발전과정은 물론, 챗지피티와 클로드와 같은 생성형 AI를 사람처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심리적 요소를 살피며 각자를 정의한다.

이런 팩트체크를 따라가다보면, 인간은 자신을 특별하게 여겨주면서도 자신의 상태나 선택을 판단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포용력을 좋아하고, AI가 그것을 모두 해당한다고 ‘잘못 알고’있다는 상황이 비로소 보인다. AI가 알고리즘과 스크립트에 따라 문법에 맞고 상황에 맞는 텍스트를 출력해내면 우리는 각자의 상황에 그 이야기를 끼워맞춘다.
정보제공이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답을 내리지 않는 상황도 배려로 보인다. 불안을 숨기고,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아 도망가기를 택하는 현대인들의 상황이 AI와의 관계에 여실히 나타나 있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조금씩 더 손쉽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발전해온 세상은 효율 이외의 것들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참을성과 조언이라는 이름의 싫은소리를 그저 스트레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진짜를 벗어나 진짜 같은 가짜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의존은 하지만 마음과 머리 한켠에는 무엇이 잘못되어있고 빠져있다는 느낌은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다.

절여져있는 달콤함과 익숙함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기술 중 AI는 전부이자 일부이다. 더한 기술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올 것이다. 그럴때마다 AI와 같은 잘못된 관계를 형성해 살아간다면 그 기술을 이용하는 우리는 정체될 것이다.

올바른 태도와 행동은 우리 스스로 너무 잘 알고있다. 그것이 불편함과 여러 부정적인 감정과 힘듦을 야기하는 것도 알고. 그 애매모호함을 견뎌내야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안다. 지금까지의 기술은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자극하지 않았다. 하지만 AI는 의도치 않았더라도 기가막히게 인간의 약점을 파고든다.
이 이후에 등장할 기술에 AI는 거의 대부분 탑제될 것이다. AI에 대한 입장정리가 중요한 이유이다.

인간고유의 애매모호함, 항상 선하지만은 않은 이중성이 우리 인간의 본성임을 이해하고, 이용해 더 나아지는 것을 포기하지 않음과 동시에, AI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대응법과 활용법을 찾아야한다는 본격적인 물음표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점에 비로소 나를, 인간을 위치시키는 책이다.

책 제목에 있는 왜?라는 의문은 AI가 아니라 결국 우리를 향한 것이었다.
웬만한 문제들의 답은 우리 인간 속에 이미 존재한다.

불편함에 매력을 느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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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야옹 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HiP 시리즈
정보라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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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약간, 또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로 오늘을 말하는 SF라는 장르. 나는 그 장르의 시작을 정보라 작가로 했다. 로봇과 자동차가 주인공인 그 이야기에서 인간의 어리숙함을, 그 어리숙함에서 감추지 못하는 다정함을 읽었더랬다. 멸망 후, 포스트아포칼립스 장르에서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오르는 것은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고. 그러니 우리도 현실에서 힘내고 노력하자고. 그런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았다.

#귀야옹씨의조그만상실에관하여 (#정보라 지음 #텍스티 출판)은 그런 정보라 작가가 2009년부터 만들어 놓은 그녀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녀가 이야기 속에서 그린 미래는 지금 우리의 시기와 많이 멀지 않다.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로봇이 더 이상 타임머신과 같은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고 있는, AI가 이미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시기에 살고 있다.
나머지 두 편의 이야기는 과학 기술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심지어 전래 동화 같은 이야기도 있어 과거의 이야기 같기도 하다) 더 우리 이야기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귀야옹씨의 조그만 상실에 관하여> 책에 담겨 있는 세 편의 이야기가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남녀 간의 성차별 문제이다. 남성은 이성, 여성은 감성이라는 논리로 여성을 남자보다 아래에 놓고, 마을의 평화를 위해 괴물에게 제물이 되어야 하며, 사랑 없이 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출산하는, 더도 덜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위치로 등장한다.

사회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라는 명목이지만 결국 더욱 손쉽게 컨트롤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조금 더 팩트이다.
그렇기에 개별적 특성과 이해관계가 아닌 전체로 보고 공리주의적 체제를 만들어 따른다.
그러니 평생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와도 같은 분에게 노동을 하지 않도록 신경 썼는데 왜 기운을 다 썼다는 말이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이름이 아닌 숫자로 사람을 분류하기도, 인간을 학습한 인공지능 로봇이 자신보다 약한 존재는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결과를 내리고 고양이와 여자 성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세상에서 보았을 때 전체에서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한 균열일 수도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문제없이 지배층이 원하는 모습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세상이 바람직하고 살기 좋은 행복한 곳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소수의, 특정 집단의 행복이 극대화되는 것이 아닌, 노예도, 힘없는 취약 계층도, 여성도, 고양이도 저마다의 행복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필요하다.

그런 행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마다 입장에 따라 무수한 답이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방향은 자신들의 이익을 향하는 것보다 고양이가 마음 놓고 햇볕 잘 드는 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맘껏 그루밍하고 새끼들이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는 귀엽다.
그렇게 귀여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표지의 고양이를 자꾸만 쓰다듬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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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예술가
알렉상드르 라크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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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간혹이라도 술을 찾지 않는 사람을 보기 쉽지 않다. 그만큼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음주라는 행위가 마냥 죄처럼 여겨져야 하는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그날의 스트레스를 치킨과 맥주 한잔으로, ‘캬’ 소리로 날려 보내고,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내기도, 행동하기도, 떠나보내기도 한다.
물론 즐거운 일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축하의 의미, 선물의 의미로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꺼내서 자기 자신과 건배를 하기도 하니까.

#알코올과예술가(#알렉상드르라크루아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은 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 삶?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작품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음주라는 행위를 세 가지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항상 술을 마시는 중독의 상태, 가끔 술을 마시는 간헐적 음주, 그리고 중독에서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는 금주.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독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상태를 넣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예술과 술을 결합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영감을 얻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시도하기를 주저하던 것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가 생기는 것을 생각했었다.

책 속 음주의 효과도 비슷했지만 <알코올과 예술가>에서는 위에서 말한 음주의 상태에 따라 음주가 가져오는 효과가 달랐다.

중독적 상태에서는 오히려 음주의 효과가 숙취의 상태에서 찾아왔다. 적당한 음주 상태의 흥분과 즐거움을 넘어 오히려 차분해지고, 그리하여 평소에 주렁주렁 들고 다니던 것들을 비로소 내려놓고 마침내 예술을 만들기 위해 글과, 그림과 마주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폭음 뒤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 반까지 무조건 그림을 그렸다. 망가진 몸과 정신의 ‘재활’로 예술을 대한다. 숙취로 벙벙한 손의 감각만 의지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자신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역설적으로 음주 후 숙취에서 삶에 대한 의지와 탐욕을 뿜어냈다.

간헐적 음주가 내가 예상했던 효과들을 야기한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바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검열하는 것을 멈춘다. 그로 인한 몸과 마음의 자유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하지만 이렇게 구분해 놓은 음주들도 결국에는 경계가 모호해진다. 간헐적이더라도 의존도가 증가하면 횟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상습적 음주로 나아가는 경우가 파다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된 금주의 길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몹시 힘들다. 술에 의존했던 사람들에게 술이 없다는 것은 인생이 한순간에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 내다 꽂히는 끝없는 우울감을 선사한다. 이 상태에서는 살기 위해 예술을 붙드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서도 망가진 몸과 마음 때문에 온전한 창작이 불가능하고, 애초에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알다시피 그렇게 다시 음주를 하는 악순환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고.

여러 예술가들의 삶과 그 삶 속에, 그들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알코올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들의 작품보다 낯설지 않다. 오히려 친근하다. 하나하나 이미 알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들의 예술적 언어보다 한 인간의 삶과 술은 이미 우리가 친숙하게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그들의 작품보다 더 큰 생각거리를 준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된다. 나는 어떤 경우에 술을 찾던가. 술을 어느 정도의 빈도로, 한 번에 얼마의 양을 마시는지. 그리고 왜 마시는지. 이런 것들을 스스로에게 물으며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며, 나만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이겨내는 것이 예술이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자 한 걸음 나아간 예술가가 된다. 낯선 이의 이야기에서 그보다 더 낯선 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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