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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리포트 - 인생 제2막을 위한 융 심리상담
대릴 샤프 지음, 정여울 옮김 / CRETA(크레타)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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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먹을만큼 먹어서 왜 그러는거야?
나이도 먹을만큼 먹어서 이제와서 나는 왜 이러는 걸까?
남들이 봐도 이해할 수 없고, 내가 나를 봐도 이해할 수 없다. 늦게 사춘기라도 온걸까.
우리 부모님도 나 때 이랬을까? 흔들림없이 나를 키워내고 멋지게 살아오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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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릴적 봤던 다섯살난 못말리는 친구의 엄마가 삼십대 초반의 설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참 충격적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의 삼십대 초반과 우리 세대의 삼십대 초반은 천지차이이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아직 어른이 덜 된 것일까. 늦게 온 것 같은 사춘기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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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찾게되는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카를 융이다. 카를 융은 중년이 되어서야 맞이하는 수많은 심리적 흔들림을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아주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라 말한다.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진정한 자아와 찬란한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 제 2의 사춘기가 아닌 제 2의 성장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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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문적인 심리서적을 혼자 끝까지 읽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나 융의 심리학이 그러한지 그의 지식이 녹아들어있는 소설형식의 글이 제법 많다. 하지만 어디에서 융을 느껴야 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만을 좇은 책들이 많다. 재미와 전문성 그 적절한 밸런스를 찾기가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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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밸런스가 잡혀진 책이 #서바이벌리포트 (#대릴샤프 지음 #크레타 출판)이다. <서바이벌 리포트>는 C.G.융 연구소 출신인 융 학파 분석가인 대릴샤프가 가상의 상담자 ‘노먼’과 융 분석가 ‘나’를 찾아오며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형식으로 내용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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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에게 상처받고, 일에도 지치고, 그런 일들로 인해 우울해하는 ‘노먼’을 상담하면서 ‘나’도 융 분석학을 배울 때 스스로에 대해 함께 상담하던 분석가를 떠올리면서 융 심리학의 전문적인 내용을 병렬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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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먼’에 이입하기도 하고, 욕하기도 하며 ‘나’의 수련생활을 따라가며 페르소나, 아니마, 그림자 등 융의 어려운 이론들을 자연스럽게 익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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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노먼을 다시 일으켜세워준 것은 융의 심리학도 한 몫 했지만, 자기 이야기를 마음껏 꺼내도 말을 자르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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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안정되고 경력이 쌓이다보면 나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꺼내는 것이 쉽지않다. 배우자는 나름의 고충으로 지쳐있고, 동년배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수도있고, 어린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부모나 윗사람에게 말하면 ‘다 그렇다’며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해결책을 알려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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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말을 시작하면 아무런 방해없이 계속 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도 일단 처음을 시작하고 계속 써봐야 방향성이 잡히고 더 나은 글로 나아간다.
말도 시작해서 계속 하다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무의식에 머물렀던 것들이 말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내가 미쳐 몰랐던 것일수도 있고, 애써 외면해왔던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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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뒤집어 쓰고있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무의식 속 스스로를 자각하고 그 스스로와 제대로,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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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묵히 들어주어 계속 말을 하게 해서, 속에 담긴 말을 뱉어내게 해서 마주하게 하는 것이 아주 주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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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주 작은 질문들로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만 하고 들어주는 것과 융이 제시한 꿈 분석, 그림 그리기, 글쓰기와 같은 적극적 명상과 같은 기법들이 어우러졌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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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융 심리학이 널리 인용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반드시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에는 힘듦이, 그 힘듦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가 담겨있다. 융의 심리학은 그것들을 넘어 앞으로의 인생에서 어떻게 오롯한 나로 존재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꾸고 버티는 것 이상으로 생기있고 충만하게 스스로를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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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으냐가 아닌, 마주친 난관들을 어떻게 이용해 결국 도달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인생의 항해일지이다. 생존기‘서바이벌 리포트’라는 이름이 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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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항해하는 또 다른 항해사들 손에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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