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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가을 에디션)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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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보지말고 숲을 보라.
정답이라고 생각할만큼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행하려고 하는 구절이다.
한발자국 떨어져서 전체를 보라는 말이겠지만 그것은 재미없는 일이다. 숲이라는 단어 하나에 너무나 많은 개별적인 무언가들이 놓쳐진다. 편백나무 소나무, 가문비나무, 삼나무, 버드나무, 녹나무 등 수많은 서로다른 무언가들이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그 이야기도 계절에 따라 다르다. 한 그루당 적어도 4개의 이야기, 숲으로 따진다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야기들이 숲이라는 단어하나에 가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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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아야 의 #나무 (#책사람집 출판)을 보면 그 나무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해진다.
지금보다 세상이 조금 더 초록초록했던 20세기를 살아온 저자는 노년에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일본 각지의 나무들을 관찰하며 다닌다. 우리가 단풍놀이, 꽃놀이 가는 여유로움과는 사뭇다르다. 무언가 하나를 안다고 말하려면 1년은 보아야한다는 작가 평생의 신조때문인지, 사계절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의 특징때문인지 삶을 정리하는 순간의 나무 탐방은 생이 끝나기 전에 ‘알고’끝마치고 싶어 조바심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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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남은 날동안 평안함만을 빌며 무탈하게 살아가는 다른 노년들과 달리 조바심을 내며, 무더운 8월 한여름의 편백이 내뿜어 내는 그 에너지처럼 열정적으로 넓은 일본을 돌아다니는 백발의 저자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다짐하게 하지만 그 조바심이 이는 와중에 쓴 글들은 정갈하고 고요하다.
마치 여름에 더 커질것이다라는 의지를 뿜어낸 나무가 자기가 아니라는 듯이 하늘을 찌를듯 웅장하게, 두껍게 자랐으나 부담스럽지 않고 조용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가을의 편백나무 같은 저자의 글이 알게모르게 요동치고 있던 내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힌 후에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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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문호였던 아버지의 독특한 교육아래(세자매에게 각자의 나무를 주고 돌보도록하고 관리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말라 당부하는 등 식물과 가까운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가진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에 대한 질투심이 원동력이 되어 평생을 식물을 곁에 뒀던 저자가 노쇠한 몸을 이끌고 또 나무를 보러 다녔던 것은 왜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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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마음을 알지는 못하겠지만 삶을 제대로 알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나무>를 읽으며 들었다.
저자의 삶과 함께해온 나무. 그 나무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마음을 다해 관찰한 내용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추억, 또는 지나온 일상, 평생을 당연하게 행동하게 했던 말로 꺼낸적 없는 신념, 생각들을 함께 엮어냈다.
결국 나무를 보면서 자기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톧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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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어떤 삶을 살았나, 내 생은 어땠나를 의식적인 행동으로 무의식적으로 깨닫는 과정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게 해주지 않았을까. 긴 세월동안 이어져온 15편의 이야기가 저자의 유작으로 발표 된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시간을 들이고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여름의 태동을 겨울의 버팀을 보아야 가을이 휴식임을 알 수 있듯이, 인생도 살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음을 적당한 열광이라는 산문에 더할나위 없이 걸맞은 토양에 정성껏 심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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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마지막에 자서전, 회고록을 남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역사를 따라가며 그 사람과 공명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지만 이렇게 비에 젖은 나무둥치 아래에서 맡을 수 있는 향이 가득한 수필들로 시대를 초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더 진하게 뇌리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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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후각적 감각이 동시에 쓰인 공감각적 심상이라 그럴까. 내가 본 그 어떤 자서전보다 더 와닿는, 그럼에도고요한. 그로인해 책을 덮은 나의 마음도 평온한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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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에는 좋아하는 매화를 찾아다니고, 지천에 핀 벚꽃길을 달리며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을 투영하는 연두빛 어린 잎들을 감상했더랬다. 올해는 거기에다 단풍을 만끽했다. 늦은 휴가 덕분에 시기가 그랬던 이유도 있겠지만 단풍에서도 무언가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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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만끽한 지금 <나무>를 만나서 참 다행이었다.
열정적으로, 그러면서 일상적이고 차분하게.
나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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