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은 아홉 개의 집 - 반지하 원룸부터 신도시 아파트까지
이규빈 지음 / 새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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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속에 있는 첫 집은 가게에 딸려있는 작은 단칸방이었다. 아버지가 간판업을 하셨는데 가게안에 미닫이문이 달린 방이 한칸 있었고 그 옆에 조그마한 연탄을 피울 수 있는 수도시설이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다섯살 터울인 내 동생이 태어날 때까지 살았다. 그리고 주인세대가 3층에 살고있는 단독주택의 1층으로 이사를 갔다. 방 두개,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 거실까지.
부족함이 없는 집이었다. 집 건물 외벽과 담장사이 공간에 보일러가 나와있었고, 보일러를 눈, 비, 직사광선 따위에서 보호하기 위해 설치해놓은 샤시에 라면, 과자따위를 비상식량이라는 이름으로 몰래 숨겨두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층 아이가 부모없이 굶고 있으면 그곳에서 라면하나 꺼내 끓여주기도 하고, 이백미터 남짓한 골목에 전화도 필요없이 큰소리로 이름만 부르면 약속이 잡히던 사람냄새 물씬나는 곳이었다. 이 집에서는 고2때까지 살았더랬다.
그 다음엔 낮은 연립주택의 탑층으로 이사갔다. 부모님이 직접 타일과 문을 교체하고, 내방에는 다다미가 깔아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한 향이 났다. 비록 수험생이라 집에서 잠만 잤지만 ㅎ
그집 다음에 아파트로 이사갔다가 군대를 다녀와 이층주택으로 이사해서 강아지와 고양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다 일을 시작하면서 혼자살기 시작해 계약기간이 끝날 때 마다 이사를 다녔다. 이사 생각만하면 치가 떨릴만큼.

#나를지은아홉개의집 (#이규빈 씀 #새움 출판)을 읽으면서 저자가 내 또래라 그런지 비슷한 형식으로 집을 옮겨가는 모습이 추억여행을 하게하여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집’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집’이라는 것을 정의하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집’이라고 생각하는 공간들은 위에 나열한 곳까지였다. 혼자 살면서 여섯번 이사를 했지만 그 중에서 ‘집’이라 생각드는 곳은 작년에 이사온 현재 집 뿐이다.

내가 몸을 누이고 밥을 먹고 비바람을 막아준 곳인데 왜 어떤 곳은 집이고 어떤 곳은 집이 아닐까? 이 질문이 책을 읽는 동안 떠나지 않았다.

혼자사는 집이었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는 혼자서도 옆에 있는 사람이 서운할 정도로 잘 지내는 타입이라 그것이 주된 요인은 아닐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 스스로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절에 살았던 곳이 나에게 ‘집’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급하지 않은 사이의 공간에서의 시절동안, 나는 정체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준비만 하던 시간, 요즘 뭐해? 라는 질문이 부담스러워 사람도 잘 만나지 않던 시기였다. 그렇게 나는 꿈도 온정도 박탈당한체 스스로를 그곳에 가두었다.
인생에서 가장 오랜시간을 잠을 자고, 잠 못들며 보낸 방 하나, 거실하나의 그 공간들을 사회에서 내가 무언가를 다시 해나가기 시작하면서 벗어나서야 내가 머무는 곳이 또다시 ‘집’이 되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에서 ‘지은’ 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집은 인간이 만들어 낸 공간이지만 그 공간은 엄마의 자궁처럼, 품처럼 비, 바람과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듬어 키워낸다.
그 품 속에서 어떤 시간들을 견뎌냈는지에 따라 나는 다른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말그대로 ’지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그 공간들이 다시 눈앞에 떠올랐다. 그 공간들은 나를 보듬어주고 키워준 곳이 아닐까?
스스로 세상을 외면하고 있었으니 나를 보듬어 준 것은 ’집‘뿐이었다.

그냥 힘들었다며 짙은 검은색으로 스스로 그곳들을 덮어버리고 외면했던 것이다. 그 공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지어진‘것이었다.
그렇게 그 공간들도 나의 ‘집’이 되었다.
그렇게 나라는 개인의 역사가 비로소 완성되었다.

개인의 역사를 말할 때 집은 빠질 수 없다.
그 개인의 역사들이 모여 인류의 역사가 되듯, 개인의 집들이 모여 동네가 되고 도시가 되고 국가가 된다.
결국 역사란 내가 속해있던 공간이 지은 ‘나’의, 우리의 모음이다.
지극히 개인적임과 동시에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집’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잘 것 없지만 아늑한 내집. 얼른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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