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몬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일본소설이 제법 괜찮다는 사실이다.
소모성이 짙은 단순한 이야기에도 책을 덮을 때 마음에 따스함이 가득해졌고 문학성에 집중한 별게없는 잔잔한 소설도 잔뜩 쌓인 책을 정리하다보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

여전히 일본은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다던데,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기에 문학이 그 사람들을 담아낸 것일까.

그런 일본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꼽자면 아쿠타가와상이다. 오직 신인작가에게만 주어지는 상으로 앞으로 일본의 문학을 부탁한다는 기대감을 보여주는 상이다.

최근에 아쿠타가와상이 ‘해당작품없음‘으로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아 바로 직전 상을 수상한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런 상의 이름으로 제정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라쇼몬‘ ’코‘ 등의 작품으로 유명세를 얻었던, 서른 다섯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픈 역사를 가진 작가다.

그런 작가의 단편 중 12편을 골라 담은 #아쿠타가와류노스케단편선 (#성림원북스 출판)으로 작가를 처음 마주했다.
유일하게 알고있던 작품이었던 ‘라쇼몬’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해 평가를 내리거나 판단을 내리면 꼭 반대의견을 덫붙이고 있었다. 왜그럴까 생각하며 주욱 읽어가다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톱니바퀴’와 ‘어느 바보의 일생’을 보면서 순간 멈칫했다.

‘어느 바보의 일생’은 소설이라기보다 작가의 마지막 유서같은 글이었는데 51개의 짤막한 글들로 이루어진 이 글은 작가의 인생, 생의 마지막에 눈 앞에서 펼쳐지는 주마등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멈칫한 이유는 이 글 속에 들어있는 인물들이 앞에 수록된 단편 속에서 등장했던 사람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 단편들은 나에게 소설로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진짜 이야기가 담긴 비밀편지로 보였다.

실제로 그는 태어나기 전 딸을 잃어 정신병에 걸린 어머니를 보며 자랐고, 당연히 받아야할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끊임없이 불안했고 행복을 좇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누구나 행복해야 하니까.

그렇게 자라지 못한 아쿠타가와는 빛보다는 어둠에 집중했다. 천국보다는 끝없이 불타는 지옥을 그려냈다.
그렇게 자신 안을 가득채우고 있는 어둠을 토해내도 빈 부분을 빛으로 채우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않았다.

자신도 결혼하고 아이도 낳았으나 기쁨보다는 이 아이는 무슨 죄가 있어 자신과 같은 부모를 만났는지라는 자괴감에 빠지고,(배우지 못한 부모의 사랑과 유전적 걱정이 심했다고 한다.)가장을 잃은 가족의 생계까지 챙겨야 하면서 삶에 부담감이 더욱 심해지고 끝없이 어두워 지는 내면에 침잠하여 바깥세상을, 빛을 결국 보지 못하고 수면제를 털어넣었다.

이런 작가의 스토리를 알고나서 책에 수록된 글을 다시 살펴보니 ‘귤’이 아픈 손가락이 되었다.

수록된 글 중에 유일하게 세상에 존재하는 빛을 바라보았다. 어린 소녀가 감사의 마음으로 던져주는 귤, 달리는 기차에 담겨있는 인생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에서 그는 잠시나마 자신이 불안해하며 쥐고있던 모든 것을 손에서 내려놓는다. ‘귤’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끝없이 글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글은 거짓없이 자신이 바라보고 느껴왔던 세상을 담아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숨쉴 수 없었기에.

글을 쓰기위해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라 글이라도 썼기 때문에 그만큼이라도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글 자체가 삶이었고 작가 그 자체였던 작가.
그래서 신진작가들에게 온 마음을 다한, 거짓없고 꾸밈없는 참된, 자신같은 글을 써달라는 마음을 담아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쥐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앞으로 걸어가는 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줄 수 있는 가장 밝고 아름다운 이름으로.
아쿠타가와처럼 괴롭지만은 않기를.
내면에만 집중하지 말고 세상 속 아름다운 오색빛깔들을 만끽하기를, 행복하기를 바라며.

그래야 그도 세상의 빛을 하늘에서나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후배들의 글로 위안받았기를, 속이 빛으로 가득찼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