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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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국이 침략하고 부족간 전쟁이 발발하고 땅이 초토화된다. 그런 흉흉함을 견뎌내고 승자에게 권력이 안전하게 집중되게 하는 힘. 바로 종교이다.

인류에게 수많은 위기가 찾아왔지만 그럴 때 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 종교덕에 인류가 지속될 수 있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만큼 종교가 사람들의 삶에서 의미없는 적이 있었을까. 종교는 예전의 영광을 그리워하여 천국에 이르는 길이라며 포섭을 하고, 사람들은 종교가 있다는 사람을 같은 종교가 아니라면 썩 반기지 않는다.

‘쓸모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이 태평성대인가. 그렇지 않다.
전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고, 사람들의 삶이 퍽퍽한 정도도 극에 치달았다. 역사에서 살펴보자면 종교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미쳐야 할 때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종교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고의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현대를 대표하는 지성 #시몬베유 와의 학문적 교류(시대를 초월한 텍스트로 나누는 우정으로)의 흔적인 #종교에관하여 (#김영사 출판)에서 종교와 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얄팍한 나의 이해력으로 받아들인 정도는 종교는 수직의 주의, 채움이 아닌 관조, 영혼의 비움, 우정을 기반으로 한 사랑, 순수하고 참된 아름다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

시몬 베유의 사유가 깊이 담긴 문장에서 한병철 작가가 공감하며 길어올린 것들인데 결국 종교는 순수해야한다.
순수하다는 것은 무언가 의도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들어주고, 바라봐주고 이해해주며, 스스로를 아름답게 여기도록 하고, 그러한 심적 충만함에서 감사와 사랑, 우정이 샘솟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를 보면 어떤가.
우리는 무언가를 관조하고 진의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을 소모한다. 모든 것에 원인과 결과, 이해타산을 따지며 SNS와 인터넷 세상을 멍하니 향유하며 스스로도 이 세상도 바라보지 않는다. 스스로를 비워 영적인 무언가가 채워질 틈을 주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을 소비하며 스스로 안을 가득가득 채운다.

그러니 종교도 이해득실을 따지게 되어버렸다.
종교도 기꺼이 사랑하는 것을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사람과 너무 가까이 있었기때문일까. 자기들만의 영성을 돌보기보다 포교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라 강요받는다.

진정으로 우러나는 말보다 사람을 꿰어내기위한 감언이설을 뱉어낸다. 의도가 있어 의도적으로 뱉어낸 말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모은다. 그렇게 사람들을 모으면 자신의 세勢를 불려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린다. 이해타산의 극치, 정치로.

물론 이런 모습이 종교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옳은 종교적 사명을 가진 종교인이 있을 것이고, 깊이 받아들여 내적 안정감과 충만함을 가득 채운 행복한 신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이제는 극히 일부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의도, 이해관계, 물욕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쉼을 제공해 주어야할 종교가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에 관하여>를 읽다보면 분명 흔히 사용하는 단어인데 우리가 사용하는 뜻과 다른 단어들이 등장한다. 솔직히 책 속 대부분의 단어가 그러하다.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의도’인 것 같다.
시몬베유와 저자가 사용하는 단어에는 의도가 담겨있지 않다. 그저 받아들인다. 받아들이기위해 비운다. 수동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 단어들에는 의도가 담겨있고 스스로 배불리기에 급급하다. 능동적이다.

능동, 수동. 우리는 능동이 ‘좋은 것’이라 교육받는다.
그리하지 않음으로 깨닫고 우정이 샘솟고 영적 충만함을 얻는 제대로 된 종교를 삶에 받아들이는 방법은 ‘수동적인‘삶이다.

아마 그래서 우리사회에서 종교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지도 모른다.
종교를 무조건 가지라는 것은 아니다. 종교라는 말을 ’믿음‘으로 바꿔보라. 그러면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응당 그래야하는 쪽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스스로를 향한, 또는 종교를 향한.

욕심내지 않고 응당 그래야하는 쪽으로 기꺼이 흘러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읽어보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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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지에 머무는 밤 - 당신이 찾던 다정한 상실
박소담 지음 / 서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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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지. 뜻부터 찾아봤다.

하천이 잘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극히 규모가 작은 저수시설로써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형태, 또는 늪지대의 비표준어.

#소류지에머무는밤 (#서로 출판)을 쓴 #박소담 작가가 바라본 소류지는 무엇이었을까.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았다던데.

나는 아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너무 일찍 철들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최대한 늦게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평생 그런 것들을 알고 일부는 제 몸에 품고 살아야하는데 최대한 늦게 알면 좋지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때문이다.

박소담작가는 안타깝게도 이 두가지 모두를 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이가 좋지않았던 부모가 결국 헤어지고, 생활전선에 갑자기 뛰어들어야했던 엄마는 인생을 비관하며 간혹 아이들 탓을 했다. 때때로 폭력도 가했다.

그런 집을 피해 작가가 몸과 마음을 맡겼던 곳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이었다. 근육 다 빠진 얼굴로도 손녀를 보면 한껏 웃으시는 할아버지와 따뜻한 밥으로 배터지는 사랑을 보여주신 할머니에게서 ‘가정’을 배웠다.

그곳에서 바라본 것이 소류지이다.
나는 야트막하게 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밖에서 바라보면 윤슬이 반짝이지만 발을 담그면 한없이 푹푹꺼지는 늪.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 우리 인생 같지않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약해지는 그녀를 늪에 빠지지 않게 방향을 이끌어 준 것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그녀의 오른손었다.

그녀의 엄마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이혼하기 전에 그녀에게 시를 들려주고 그림 그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살림이 빠듯해지자 자기가 물려준 것들이 돈이 되지않는다며 업으로 삼기를 반대했지만 오른손은 그녀를 붓으로 이끌었다.

숨을 쉴 수 없고 기절할 것 같은 두통에서 작가를 살아있을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붓을 들어 쏟아냈다. 의도적으로 붉은 색을 피하고 녹색 나무와 숲을 그렸다. 그림 속 나무 하나하나는 사람이었고 나무들이 이루는 숲은 작가를 둘러싼 세상이었다.

예술은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고고한 척 하는 취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처럼 예술로 겨우겨우 숨을 쉬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일부, 또는 전체를 도려내어(또는 복제하여) 캔버스에, 노트에 옮긴다. 우리는 정확한 사연을 알지 못함에도 그것들에 동화된다.

작품에 나를 투영시킨다. 그렇게 나무 옆에 또 한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그렇게 숲을 이룬다. 그렇게 공기 중에 신선한 산소가 차오른다. 그렇게 숨을 쉰다. 그렇게 살아간다.

혼자 작업실에 콕 박혀 피워내는 한 그루의 나무이지만 그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추위를 함께 등을 맞대어 견뎌낼 또 다른 나무도 필요하고 토양, 물, 공기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혼자 가슴 속 응어리를 뱉어내게 함과 동시에 사회 속 함께 살아가는 한명의 인간으로 작가를 살아가게 한 예술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한 점으로 부터 360도로 퍼져나가는 물 표면의 파문.
그것은 사랑이자 다정함이다.

연필로, 붓으로 건내는 온기있는 오른손이 고백하는 수줍은 사랑이다.

윤슬의 아름다움을 보게하고 나누게 하며, 늪에 발이 빠져도 건내는 따뜻한 손과 같은 글이다.

눈물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따스함이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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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의 세 가지 빛깔 -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 그리고 잃어버린 쿨의 제국
제임스 캐플런 지음, 김재성 옮김, 이기준 감수 / 에포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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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클래식.

원래는 클래식 음악이라고 불리는 장르에서도 특정한 시기를 지칭하는, 굉장히 형식을 중요시한 고전주의 음악을 일컫는 단어이지만, 그 의미가 점차 넓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시대를 초월해 수많은 사람들이 듣는 것은 물론, 유행처럼 흘러가지 않으며 예술성을 지닌 것을 ‘클래식’이라 일컫는다.

그래서 지금은 다양한 클래식, 고전이라 분류되는 것들이 있다. 대중음악에는 전쟁이후 문화현상이 되었던 ‘비틀스’, 미국인들에게는 ‘컨트리송’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흑인에게서 시작된 재즈. 그 재즈에도 클래식이라 불릴만한 명반이 있다.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가 만들어 낸 앨범 <Kind of Blue>이다.

<Kind of Blue>는 재즈를 춤을 추는 음악에서 감상하는 음악으로 격을 상승시켰다. (그렇게되면서 대중성은 조금 줄어들었으나 골수팬은 증가했다)

#블루의세가지빛깔 #마일스데이비스존콜트레인빌에번스그리고잃어버린쿨의제국 (#제임스캐플런 씀 #에포크 출판)은 이 위대한 앨범을 탄생시킨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의 인생을 조명한다.

각자의 삶은 물론 세 사람의 만남, <Kind of Blue>앨범 녹음 현장, 그 이후의 삶까지 담겨있다.
워낙 재즈 그 자체인 사람들이라, 그들을 따라가는 것이 곧 재즈의 20세기 역사여행을 떠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시나 <Kind of Blue>앨범을 녹음하는 스튜디오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놓은 부분이었다.

요즘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각 악기들 사운드의 밸런스를 잡고 공간감을 배치하지만, 이들의 스튜디오 안에서는 트럼펫을 어느정도 높이만큼 들어올릴지, 마이크로 부터 몇발자국 떨어진 곳이 제일 소리가 좋은지 몸소 부딪혀 최고의 소리를 찾는다.

그리고 나서 그들의 앨범은 대부분 원 테이크. 한번에 한곡 전체를 완주한 연주 그대로 앨범에 심었다.
물론 이때도 프로듀서에 따라 수십번 연주를 해서 최고의 부분들을 정교하게 이러붙여 한 곡을 만드는 스플라이싱 기법을 사용했지만(이 앨범의 프로듀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Kind of Blue>만은 예외였다.

재즈의 뚜렷한 특징인 ‘즉흥성’을 지켜내며 마일스가 원하는 자연스럽고 살아있는 사운드를 ‘완성도’까지 잡아내며 재즈 역사상 최고의 앨범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의 생생한 사진과 신문에 실린 공연 광고 등 볼거리도 풍성하고, ‘그’ 프랭크 시나트라 전기의 결정판이라 불리는 <프랭크 : 더 보이스> 와 <시나트라 : 더 체어맨>을
쓴 작가의 필력이 마치 그 시절에 내가 살아서 그 사람들이 앨범을 만드는 스튜디오에, 연주하는 공연장에, 그들의 옆집에 있었던 것 같은 생생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럴까.
<Kind of Blue>뒤에도 또 다른 고전을 완성해나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마냥 즐길 수 없었다.
각자의 음악은 각자의 ‘블루’를 뽐냈지만 하나의 공통된 아픔, 마약이 그들의 삶에 엉켜붙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마일스 데이비스나 존 콜트레인은 극복해냈으나 빌 에번스는 빠져나오지 못했다.

잘나가는 재즈 아티스트임에도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유일한 것, 피부색에 대한 소외감을 극복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마약이라는 것이 참.

결국 재즈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세명의 거장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책은 이 세명과, 한장의 앨범, 재즈뿐만이 아니라 20세기 음악시장의 모습과 인종차별, 마약 까지 담아 그 시절의 삶 전체를 담아내고 있다.

재즈의 성지라 불리며 관광객들이 찾는 뉴올리언스, 뉴욕, 캔자스시티, 시카고가 어떻게 성지가 되었는지, 무엇을 발판삼아 지금의 위상을 가질 수 있었는지 한 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다.

펼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두꺼워야하나 싶었지만, 덮는 순간에는 이렇게까지 압축해낸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뿐이다.

위대한 세사람은 떠나갔지만 이 책에 손을 올리고 있으면 그들이 열정적으로 연주하며 흘리는 땀과 심장박동, 스테이지의 담배냄새가 고스란히 떠오르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 분명, 재즈를 검색하고 듣고, 재즈바로 달려가고 싶을 것이다. 자기만의 ‘블루’를 찾아 나서는 배의 커다란 돛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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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것이 살아남는다 - 대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진화론적 생존 법칙
대니얼 R. 브룩스.살바토레 J. 에이고스타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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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서 고전이라 불릴만한 명작들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것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다. 자연선택설이라는 이론으로 모든 종은 진화한다라는 이론을 수십년 자연을 관찰하며 밝혀냈다.

우리가 ‘종의 기원’에서 가장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 진화, 적자適者생존이다. 환경에 ‘가장’적합한 종만이 살아남는다. 이전보다 더 ‘나은’특성을 가진 종이 된다. 라며 최상급와 우월의 의미로 두 단어들을 해석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되었다.

#완벽하지않은것이살아남는다 (#대니얼R브룩스 #살바토레J에이고스타 씀 #더퀘스트 출판)은 우선 이 오해들을 지적하며 책을 시작한다.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이 적자赤字가 아닌 ‘그럭저럭 살아갈만한’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진화도 더 우월한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물 속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진화를 거쳤다고 육지에서 사는 종이 물 속에서 사는 종보다 더 우월한 것은 아니지 않나.

이 두가지 개념을 정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인간이 이 두 개념을 오해한 것 처럼 살아가고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류는 인간이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생각해내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환경오염, 그로인한 기후변화. 이때까지 인간이 잘 통제해 왔다는 믿음에서 지속적으로 꺼내드는 전쟁까지.

수많은 현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발생하고 있다. 생물학적 진화는 만화 속 그것처럼 순식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물에서 육지로 이동한 것도 물고기 한마리가 우연찮게 육지에 올라와서 갑자기 부레가 폐가 되고 그런 것이 아니다. 진화하는지 알아챌 수도 없음 만큼 당대세대는 해당사항이 없음이 확실할 정도로 느린 속도로 일어난다. 육지로의 이동도 실제로는 물 속에서 이미 폐의 발달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발생했다. 환경이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래서 완벽히 환경에 걸맞는 진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물속에서 폐를 가진 종은 최고로 잘 진화한 종이 아닌 것이다.

자연의 진화는 그래도 시간이 오래 걸림이, 현실과 속도의 괴리가 치명적이지 않았다. 그것또한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하지만 인류가 처한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단축해야한다. 그 위험이 자연적이지 않은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이고, 인간뿐만이 아니라 지구전체가 위협받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호모사피엔스에게 미래란 없다.
거창하게 ‘인간세’라 명명하고 줄기차게 달려왔건만 현재는 인간세의 가을이다. 저물어가고 있는.
지속을 논할 시기다 아니다. 생존을 논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기에 놓여있다.

다윈의 진화론과 현장 생물학자인 저자들이 말하는 자연스러운 진화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인간들의 불확실한 미래를,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수많은 종들이 멸종하는 천재지변을 겪으면서도 존속이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진화였기에.

우리도 인간이지만 동물이고, 환경 위에서 군림하고 있는 듯하지만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이라면 응당 따라야하는 대법칙이 존재한다.

그것을 따르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임을 수십억년의 지구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래도 인류의 기발함이 있기에 기대할 수 있다.
원래라면 멸종에 가까운 단계, 개체가 거의 사라지고 살아남은 개체들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 뿐이지만, 잠재력이 비교적 높은 인간이기에 효과적으로 행동하고 행동을 수정하는 방향도 있는 것이다.

많은 종이 끈기를 가지고 있지만 없던 끈기를 만들어내기에 조금 더 유리한 종이 인간이다.
이성과 지성이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두렵게도 하지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용기를 내게 하기도 한다.

마치 병목을 맞이한 종의 두갈래 길 같지않나.
병목에서 반등을 할 것인지, 종말과 다름없는 엔딩을 겪고 또 다시 적응을 택할 것인지.
겁먹고 변하지 않을지 지금 당장 변할 용기를 낼지.

자칭일 뿐이었던 ‘호모 사피엔스’.
그 이름에 걸맞는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
그 방법은 ‘진화론’속에 있다.

당장 선택하고,행동하고.
기꺼이 실패할 용기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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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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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글을 써온, 이동진이 내일 노벨문학상을 받는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고 말한 #줄리언반스 의 마지막 책 #떠난것은돌아오지않는다 (#다산북스 출판)속 작가본인 줄리언은 예순이 넘어서 잊었던 친구 스티븐과 진을 다시 만난다.

둘은 대학 때 연인 사이었다가 헤어진 이력이 있고, 스티븐이 진을 잊지 못해 재회의 순간을 줄리언에게 부탁한다. 그렇게 다시만난 진과 스티븐은 결혼을 한다.

하지만 결혼이 삐걱거린다. 상대방을 완전히 바라보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한 남자와 상대방만을 바라보는 맹목적인 사랑을 인정하지도, 할 수도 없는 여자의 만남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이 그 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별 의미가 없다. 두사람이 서로에게 잘 맞는지만이 중요하다.

혈액암으로 죽지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암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작품 속 줄리언은 다가오는 죽음을 흐릿해지는 기억과 유한성으로 표현하는 것에서 끝내지 않는다.

소설인지 수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글로 픽션은 현실에서 있음직한 일로 현실을 향하는지 스토리성을 위해 과장, 왜곡을 통해 현실과 동떨어지는지를 질문하고 관찰한다.

절대로 본인들 이야기를 소설로 쓰지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지키지 않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예전의 그들로 생각해 여전히 판단하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정답으로 유도한다. 결국 그것들은 오해를 낳는다.

바라지 않았던 결말. 소설인가 현실인가.

끊임없이 ‘기억’에 관해 곱씹는다.
기억은 사실인가,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특성부터, 기억을 잃어버린 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나라고 할 수 있는가를 소설 속에서, 작가 본인이 등판하는 에세이로 끝없이 이야기하고 질문한다.

하지만 답은 없다.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맡긴다. 평생을 작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독자에 향한 신뢰가 묻어난다. 충분히 스스로 생각하여 답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300페이지가 되지 않는 책임에도 500페이지짜리 책보다 읽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읽기어려운 문체가 아님에도 그렇기에 왜그럴까 한참을 생각했다.

아마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억을 하나 둘 잃어버리는 것 처럼 책 속 이야기에도 중간중간 구멍이 나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어있는 곳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고, 그 빈 곳을 상상으로 채워가며 읽어야 하기에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만의 생각으로 빈곳을 채워가는 읽기는 작가와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또다른 오독, 오해로 나아간다. 그렇게 모호해 지고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고,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다.

“나는 공식적으로 떠나고 이 책은 나와 당신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다”작가가 한 말이다.

절대적으로 객관적이지 않은 기억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간. 사실에 자기들만의 각색을 얹은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들 까먹으며 구멍이 뽕뽕 뚫려있다.
그것으로 스스로를, 타인을 판단한다. 당연히 오독할 것이다.

기억은 무엇인지, 우리의 삶을 얼마나 잘 알고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 자체를 글 전체로 형상화 했다.

평생을 글을 써온 작가의 물음표 그 자체인 글이다.

공식적인 마지막 물음표를 던지면서도 독자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않는다. 굳건히 자리를 지켜줘서 고맙다며, 그리울 것이라며, 오랜 세월 자신과의 관계를 기쁘게 여기길 바란다며 본인은 그러했다고 작별을 고한다.

생물학적 부고 후에 책이 출간되는 것보다 살아생전 문학적 부고를 먼저 알리는 것을 택한 작가의 위트가 가득담겨있다. 노인이지만 찐친들끼리 있을 때 나오는 편안한 어투가 가득하다. 독자들에게도 점잖빼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진심으로 동화되어 생각하고 구경하기를 바란다.

자기는 물러나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구경하길 바란다며.

소설은 한물간 장르다라는 말이 나온 때부터 수십년을 소설을 쓰며 소설을 유지해온 작가의 소설에 대한, 그 소설을 읽는 독자에 대한 애정이 500페이지 같은 270페이지네 담겨있다.

분명 작가의 이전 작품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작가를 떠내보내지 못하고 또다른 대화를 이어나가게 하는 책이다.
끝없는 대화, 각자만의 해설. 그것이 소설이니까.

더이상의 신작은 없지만 걱정없다.
작가도 독자를, 스스로를 너무 걱정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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