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류지에 머무는 밤 - 당신이 찾던 다정한 상실
박소담 지음 / 서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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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지. 뜻부터 찾아봤다.

하천이 잘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극히 규모가 작은 저수시설로써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형태, 또는 늪지대의 비표준어.

#소류지에머무는밤 (#서로 출판)을 쓴 #박소담 작가가 바라본 소류지는 무엇이었을까.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았다던데.

나는 아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너무 일찍 철들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최대한 늦게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평생 그런 것들을 알고 일부는 제 몸에 품고 살아야하는데 최대한 늦게 알면 좋지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때문이다.

박소담작가는 안타깝게도 이 두가지 모두를 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이가 좋지않았던 부모가 결국 헤어지고, 생활전선에 갑자기 뛰어들어야했던 엄마는 인생을 비관하며 간혹 아이들 탓을 했다. 때때로 폭력도 가했다.

그런 집을 피해 작가가 몸과 마음을 맡겼던 곳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이었다. 근육 다 빠진 얼굴로도 손녀를 보면 한껏 웃으시는 할아버지와 따뜻한 밥으로 배터지는 사랑을 보여주신 할머니에게서 ‘가정’을 배웠다.

그곳에서 바라본 것이 소류지이다.
나는 야트막하게 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밖에서 바라보면 윤슬이 반짝이지만 발을 담그면 한없이 푹푹꺼지는 늪.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 우리 인생 같지않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약해지는 그녀를 늪에 빠지지 않게 방향을 이끌어 준 것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그녀의 오른손었다.

그녀의 엄마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이혼하기 전에 그녀에게 시를 들려주고 그림 그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살림이 빠듯해지자 자기가 물려준 것들이 돈이 되지않는다며 업으로 삼기를 반대했지만 오른손은 그녀를 붓으로 이끌었다.

숨을 쉴 수 없고 기절할 것 같은 두통에서 작가를 살아있을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붓을 들어 쏟아냈다. 의도적으로 붉은 색을 피하고 녹색 나무와 숲을 그렸다. 그림 속 나무 하나하나는 사람이었고 나무들이 이루는 숲은 작가를 둘러싼 세상이었다.

예술은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고고한 척 하는 취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처럼 예술로 겨우겨우 숨을 쉬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일부, 또는 전체를 도려내어(또는 복제하여) 캔버스에, 노트에 옮긴다. 우리는 정확한 사연을 알지 못함에도 그것들에 동화된다.

작품에 나를 투영시킨다. 그렇게 나무 옆에 또 한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그렇게 숲을 이룬다. 그렇게 공기 중에 신선한 산소가 차오른다. 그렇게 숨을 쉰다. 그렇게 살아간다.

혼자 작업실에 콕 박혀 피워내는 한 그루의 나무이지만 그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추위를 함께 등을 맞대어 견뎌낼 또 다른 나무도 필요하고 토양, 물, 공기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혼자 가슴 속 응어리를 뱉어내게 함과 동시에 사회 속 함께 살아가는 한명의 인간으로 작가를 살아가게 한 예술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한 점으로 부터 360도로 퍼져나가는 물 표면의 파문.
그것은 사랑이자 다정함이다.

연필로, 붓으로 건내는 온기있는 오른손이 고백하는 수줍은 사랑이다.

윤슬의 아름다움을 보게하고 나누게 하며, 늪에 발이 빠져도 건내는 따뜻한 손과 같은 글이다.

눈물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따스함이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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