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류지. 뜻부터 찾아봤다.⠀하천이 잘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서 경작지에 공급할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극히 규모가 작은 저수시설로써 평지를 파고 주위에 둑을 쌓아 물을 담아 놓은 형태, 또는 늪지대의 비표준어.⠀#소류지에머무는밤 (#서로 출판)을 쓴 #박소담 작가가 바라본 소류지는 무엇이었을까. 반짝이는 윤슬을 바라보았다던데.⠀나는 아이를 키우지는 않지만 아이는 아이답게 너무 일찍 철들지 않기를 바라는 편이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면 아이는 일찍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것들을 최대한 늦게 알기를 바라는 것이다. 평생 그런 것들을 알고 일부는 제 몸에 품고 살아야하는데 최대한 늦게 알면 좋지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때문이다.⠀박소담작가는 안타깝게도 이 두가지 모두를 피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이가 좋지않았던 부모가 결국 헤어지고, 생활전선에 갑자기 뛰어들어야했던 엄마는 인생을 비관하며 간혹 아이들 탓을 했다. 때때로 폭력도 가했다.⠀그런 집을 피해 작가가 몸과 마음을 맡겼던 곳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계신 시골집이었다. 근육 다 빠진 얼굴로도 손녀를 보면 한껏 웃으시는 할아버지와 따뜻한 밥으로 배터지는 사랑을 보여주신 할머니에게서 ‘가정’을 배웠다.⠀그곳에서 바라본 것이 소류지이다.나는 야트막하게 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밖에서 바라보면 윤슬이 반짝이지만 발을 담그면 한없이 푹푹꺼지는 늪.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 우리 인생 같지않나.⠀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면서 몸도 마음도 약해지는 그녀를 늪에 빠지지 않게 방향을 이끌어 준 것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그녀의 오른손었다.⠀그녀의 엄마는 시인이자 화가였다. 이혼하기 전에 그녀에게 시를 들려주고 그림 그리는 것을 보여주었다.살림이 빠듯해지자 자기가 물려준 것들이 돈이 되지않는다며 업으로 삼기를 반대했지만 오른손은 그녀를 붓으로 이끌었다.⠀숨을 쉴 수 없고 기절할 것 같은 두통에서 작가를 살아있을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붓을 들어 쏟아냈다. 의도적으로 붉은 색을 피하고 녹색 나무와 숲을 그렸다. 그림 속 나무 하나하나는 사람이었고 나무들이 이루는 숲은 작가를 둘러싼 세상이었다.⠀예술은 삶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고고한 척 하는 취미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이처럼 예술로 겨우겨우 숨을 쉬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일부, 또는 전체를 도려내어(또는 복제하여) 캔버스에, 노트에 옮긴다. 우리는 정확한 사연을 알지 못함에도 그것들에 동화된다.⠀작품에 나를 투영시킨다. 그렇게 나무 옆에 또 한그루의 나무가 자란다. 그렇게 숲을 이룬다. 그렇게 공기 중에 신선한 산소가 차오른다. 그렇게 숨을 쉰다. 그렇게 살아간다.⠀혼자 작업실에 콕 박혀 피워내는 한 그루의 나무이지만 그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추위를 함께 등을 맞대어 견뎌낼 또 다른 나무도 필요하고 토양, 물, 공기 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혼자 가슴 속 응어리를 뱉어내게 함과 동시에 사회 속 함께 살아가는 한명의 인간으로 작가를 살아가게 한 예술의 위대함을 다시한번 느꼈다.⠀한 점으로 부터 360도로 퍼져나가는 물 표면의 파문.그것은 사랑이자 다정함이다.⠀연필로, 붓으로 건내는 온기있는 오른손이 고백하는 수줍은 사랑이다.⠀윤슬의 아름다움을 보게하고 나누게 하며, 늪에 발이 빠져도 건내는 따뜻한 손과 같은 글이다.⠀눈물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따스함이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