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베토벤의 침묵을 듣다
김재철 지음 / 열아홉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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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직업을 평생한다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 직업을 평생을, 80이라는 세월동안 70년을 해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이다.
유명 배우이자 배우자인 윤정희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로도 유명한 백건우 피아니스트는 평생의 경력, 그 대부분을 수많은 음악가들 중 베토벤을 가장 많이 연주하고 가까이 뒀다.

베토벤 사후 200주년이 되는 2027년(3월 26일)을 한 해 앞둔 연야제같은 2026년, 저자와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을 기리는 4박 5일간의 여행을 다녀와 #백건우베토벤의침묵을듣다 (#김재철 지음 #열아홉 출판)라는 기록을 남겼다.

평생을 고국 오스트리아에서 떠나지 못했던 베토벤이 지금 이 시대에 우리처럼 세계 곳곳을 여행다녔다면, 고야, 고흐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직접봤다면 어떤 음악을 만들었을지 상상해보고, 현실의 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한 베토벤의 사랑과 백건우와 윤정희의 사랑이야기를 하며 사랑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토벤이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베토벤을 누구보다 깊게 느낀다. 70년의 세월이 베토벤을 객체客體가 아닌 또다른, 그와 동시에 본인과 다름없는. 죽지 않고 여전히 곁에 살아있는 친구가 되어있는 피아니스트에게는 그 어떤 공간도, 그 공간을 가득채워 진동하고 있는 공기에서 언제나 베토벤을 그렸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청력을 잃어가면서 끝없는 좌절감에 빠진 위대한 음악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외면을 담아내기보다 내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을 그의 심정을 이해할 듯 하면서도 오히려 청력을 잃은 뒤의 작품들이 더 명작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그 시기를 남김없이 태워낸 위대함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공기 속에서 퍼져나가는 진동을 느끼려 하늘을 바라보던 모습이 절로 생각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화려한 미사어구 없이 뱉어내는 백건우 피아니스트의 말을 들으니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최선을 다한 것도 물론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것이었다. 들리지 않는다고 음악을 멈출 수 없었다. 자신의 전부였으니까. 자신의 마음 속에 가득차서 터질 것 같은 무언가들을 뱉어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반려인 병간호에 최선을 다한 것도 당연한 것이었다. 희생이나 헌신이 아닌 음악도 사랑도 두 예술가에게는 삶 그 자체였다.

아이러니한듯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둘의 음악의 절반은(어쩌면 그 이상)은 그 고통의 순간과 사랑이 만들어 낸 것이니까 말이다.

클래식을 편협하게 듣는 ’클린이‘ 입장에서 뭣도 모르면서 “베토벤은 나이가 더 들어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말을 뱉으면서 잘 듣지 않았었다.
하지만 <백건우, 베토벤의 침묵을 듣다>를 보고나니 정말 제대로 베토벤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를 잃고도 최선을 다해 나아갔음에도 그 끝은 말마저 닫아버린 침묵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발버둥친 위대한 작곡가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의 음악에 음표보다 음표 사이사이에 담긴 침묵이 듣고싶어졌다.

하고픈 말이 많으면, 진심을 담으면 그것의 최선의 형태는 침묵이다. 묵묵히 바라봐주고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 그렇게 침묵으로, 공기 중 진동으로 체온과 진심을 전하는 것. 그런 조용하고 묵직한 진심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느껴보고 싶어졌다.

그렇게 일년 정도 애쓰다보면 200주년이 되는 그 날. 조금 더 진심으로 베토벤을 기릴 수 있지 않을까?
tmi같지만 어머니가 백건우 피아니스트를 참 좋아해서 같이 연주회를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내년에도 분명 있을(저자가 공연 기획을 하니 무조건이다. 자리를 못구할 수 있지만)테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음악과 삶, 사람을 사랑한 두 위대한 거장이 함께 전하는 이야기를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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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루스트 - 삶의 슬픔과 희열, 위로와 예술을 알려준 우리들의 프루스트를 찾아서
김주원 외 지음 / 현암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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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푸르스트. 내가 이십대 때 책의 설정을 인용한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재미있게 보면서 책의 존재를 알았더랬다.

그리고 제법(한참)시간이 지나 북스타그램을 나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존재만 알 뿐, 번역본이 이쁘다는 것만 알 뿐(아! 어영부영하다 번역이 13권으로 완성되었다는 것도 아네!)읽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12권까지 나왔을 때 딱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인데,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 새로운 한 해의 목표로 한달에 한권씩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완독을 결심하더라. 따라 하고 싶었으나 블로그를 그만둬버리는 바람에🙈(그분은 완독하셨을려나 문득 궁금하네)

수많은 크고 작은 북스타그래머들을 보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련된 피드를 찾아보기 쉽지않다. 이미 다 읽어버리신걸까? 라는 조바심이 문득 들지만, 그만큼 유명세만큼 읽기를 시도하는데에 많은 심력이 든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박경리 작가의 대작 <토지>는 매년 도전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데 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드물까? 그럼에도 성경처럼 머리맡에 두고 읽고, 전공을 하기도 하며, 원서로 읽고싶어 불어불문과로 진학하는 팬층이 두터운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프루스트 (#유예진 엮음 김주원 최양현 외 3명 씀 #현암사 출판)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마르셀 프루스트를 몹시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선정한 각자의 주제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풀어낸 10명의 목소리가 담겨있는 책이다.

원작을 먼저 읽고 읽어야하는 것 아닌가 싶었지만, 오히려 <나의 프루스트>를 읽으니 비로소 원작을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솟아오른다.

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야 하는가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으면 이 책마저 다 읽어내기 힘들었을텐데 그렇지 않다. 자신의 선조가 일제강점기 때 손수 옮겨놓은 문서를 바탕으로 책을 엮기도 하고, 피아니스트인 한 사람은 자신이 이해한 프루스트를 피아노에 녹여낸다.
위대한 작가인 버지니아 울프의 글에서 프루스트의 흔적을 발견해 수집해 놓기도 하고(그러는 와중에 읽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다시 읽기도 한다. 그렇게 꼭 숙제하듯이 각잡고 앉아 눈 부릅뜨고 읽을 필요없다고 말해준다.)한 작가는 글을 쓰고픈 욕망, 글을 쓸 수 있다는 용기를 프루스트에게서 배웠다며 그와 그의 작품을 작가라는 정체성의 동반자라고 고백한다.

이 글들을 읽다보면 그들에게 프루스트와 그의 저서는 해야만 하는 숙제, 일이 아니라 그것들을 견뎌내며 해야할 이유를 알려주고 해낼 힘과 용기를 주었으며, 그의 글에서 깨달은 것들을 자신의 본업에 녹여내어 한걸음 더 나아가기까지 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큰 영향력을 주는 책이 또 있을까. 보통 대장편을 읽기를 시도해서 성공하면 깨달음보다는 과업을 달성했다는 뿌듯함이 더 클텐데 이들에게는 완독은 당연한 것이고 거기에서부터 비로소 제대로된 시작이었다.

이 긴 글을 몇번이고 다시읽고, 중간 중간 꺼내 읽어도 익숙해질만큼 읽어내는 것은 누가 시켜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말 ‘순수한’ 프루스트 애독자들이었다.

소위 ‘덕질’이라 부르는, 특정 아티스트를 좋아해 그의 모든 것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서 ‘오타쿠’가 바람직하지 못한 왜곡된 이미지로 넘어와서 그렇지, 실제로 스스로를 ‘덕후’라 칭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얼굴에서 빛이 난다. ‘덕질’할 때만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활력이 넘친다. 긍정적인 에너지가 나에게도 스며든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행위에서 에너지를 얻어 일상을 더 건강하고 활력있게 살아가고, 주변사람에게도 긍정적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 세상은 무언가에 푹 빠져 몇번이고 곱씹고 재생산해내는 ‘덕후’. 이 세상은 ‘덕후’들이 움직인다는 것이 괜히있는 말이아니다.

무언가에 대한 열렬하면서도 평온하고 속은 뜨거우나 주변에는 따스함만 전해지는 밝은 에너지 가득한 사랑이 가득담겨있는 책이다. 프루스트와 그의 책에 대한 연서이다. 더할나위 없는 영업 광고이다.

어느덧 그가 세상을 떠난지 백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하늘에서 흐뭇하게 웃고있을 것이다.

나도 덕후가 되고싶게 만드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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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객관 - 과잉 정보의 시대, 본질을 보는 8가지 규칙
키코 야네라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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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무언가가 궁금하면 바로 휴대폰을 열어 검색하면 된다.
텍스트를 읽기 싫다면 유튜브에 검색하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스트립트를 읽어준다.
팩트fact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 온갖 정보가 너무나 쉽게 유입된다. 하지만 그러한 팩트들은 정말로 팩트인가? 내가 믿고있는 사실들은 정말 ‘진짜’인가?

#직관과객관 (#키코이네라스 지음 #오픈도어북스 출판)은 이 세상을 이해하는데에 사용되는 우리의 직관과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온갖 통계학적 실험결과를 그래프를 첨가하여 보여주기도 하고, 체르노빌과 코로나사태를 포함한 안타까운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 여러가지 요인들에 대해 들려주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을 주욱 따라가다보면 우리를 포함한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다. 유전에서도 복합유전이라고 하나의 형질에 여러 유전자가 개입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의 표현형에도 수많은 개입이 발생하고 그로인해 수많은 경우들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자보다 더 많은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얼마나 복잡하겠나. 어떠한 현상이 왜 그렇게됐는지 이해하는데에도 수많은, 예기치못한 각자 다른 영역에서 그 원인들을 찾아봐야한다. 이 복잡함은 결국 결과와 이해의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내가 알고있던 것, 배운 것으로 ‘이것은 이것때문이야!’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가 무지하고 이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밖에 되지 못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불확실한 상황에도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싶어하는 스스로의 욕망에 패배하는 것이다.

이 불확실성과 복잡함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큰 방향은 맞게 나아갈 수 있도록 저자는 데이터를 강요한다.
여기서 데이터는 단순히 숫자와 통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숫자와 통계는 ‘정보’일 뿐이다.
숫자와 통계를 겸손한 태도로 냉정하게 분석한 ‘데이터’를 성급하게 ‘직관적으로’ 확신하지 않는 것이 더 깊고 폭넓게 사고하여 삶을, 이 세상을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다.

이 세상은 객관적이지 않다. 각자의 세상은 각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한 결과값이다. 그러니 모두의 세상은 같지 않고 제각각이다.
현실이라 우리가 믿고있는 것이 사실은 ‘주관적 현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세상이 불확실하고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내가 편향된 정보를 모아 섣부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 우리 주위에 파도처럼 부유하고 있는 정보들이 사실이 아닐수도있다는 경계심으로 이 세상을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력에 대해 이해하고,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침으로 현대적 사고를 할 수 있게 <직관과 객관>이 이끌어 준다.

삶의 태도도, 방향도 올바른 길로 이끄는 나침반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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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복제된 학교를 탈출하시오 하늘과 땅의 방정식
도미야스 요코 지음, 김소희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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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시절에 전학을 가본 적이 없다.
중학교로, 고등학교오 올라갈 때 처음이 친한 친구들이 한 반이 아니라 조금 힘들었지 학창시절동안 매년 익숙한 얼굴들을 보며 보냈다.

#복제된학교를탈출하시오 (#도미야스요코 지음 #다산책방 출판)은 주인공인 아레이가 갑작스럽게 초등학교 중학교가 합쳐진 신도시의 학교로 이사가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꿈 속에서 7일동안 매번 나타나 미래의 언덕으로 오라던 삼색(카오스)고양이. 처음 등교한 날 아레이에겐 특이한 일이 벌어진다. 학교와 똑같은 모습인데 학생과 선생님이 아무도 없고 하얀 안개만 자욱한 것이다. 심지어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 믿고 의지(?)할 사람은 학교 전체 3명뿐인 8학년(중2) 학우 Q 뿐이다. 숫자에만 민감하고 나머지에서는 평균보다 살짝 아래인듯한 Q는 그 괴상한 학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숫자와 관련된 마방진을 해결해서.

원래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 아레이와 Q 앞에 꿈 속 카오스 고양이가 나타난다. 그리고 처음듣는 황당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천신에게 패하여 황천으로, 그림자계로 숨어든 황천귀가 인간 세상을 고대로 복제한 곳에서 힘을 키우고 있다고, 그래서 천신의 가호를 받는 ‘깃든자’들이 힘을 합쳐 그림자계로 가 황천귀를 물리쳐야한다고. 그림자계에서 돌아오는 방법은 복제가 완벽하지 않아 현실과 다른 ‘빈틈’이라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깃든자들은 소위 천재라 불리는 존재들로 각자의 분야가 있다. 아레이는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기억력, Q는 8자리 곱셈도 암산으로 가능한 수학적 능력, 삼색 고양이는 언어가 되기 전 사념을 읽어내어서 천신의 뜻을 읽고 전할 수 있는 디코더(그렇다. 고양이도 깃든자다.)

그리고는 깃든자는 7명이라며 나머지를 이 둘보고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고양이는 사라진다.

학교에서 깃든자들을 찾기 시작한 아레이와 Q는 우연히 동급생 히카루와 아레이에게 고백편지를 날린 후배 하루코와 함께 다시 그림자계에 갖혀진다. 마침 그 둘도 고양이 꿈을 꾼 깃든자였고 각자의 능력을 각성해(괴력, 파사의 음악)일상 세계로 돌아온다.

그렇게 그들은 나머지 깃든이를 찾아나서며 <복제된 학교를 탈출하시오>시리즈가 진행되는 것 같다.
시리즈의 1권이라 세계관도 설명해야하고 주인공들도 모여야 해서 스토리 진행이 더딜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아마 인생에서 가장 도드라진 특징을 보이는 청소년기의 인물들이 주인공들이라 그 자체로 다체롭기 때문일 것이다. 각 권의 분량도 많지않아 군더더기 없는 것도 한 몫했다.

무엇보다 인생에서 가장 앞날에 대한 확신이 없는 청소년기,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는, 루틴을 벗어나는 것을 싫어하는 주인공이 패턴이 바뀐 첫날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전체 이야기의 전제인 것이 와닿았다.

청소년기에 겪는 수많은 변화들이 불안을 유발하고 백해무익한 것이 아닌, 버텨내고 극복한다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또 소위 ‘먼치킨’이라 불리는 압도적으로 강한 한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각각 잘하는 것이 다른 일곱명이 모여 서로를 보완하고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야한다는 관계의 중요성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소년들은 어른처럼 가면을 쓰지 않는다. 무덤덤하지 않고 생생하게 외부의 자극에, 내부의 목소리에 솔직하게
반응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그때는 목숨같이 여기는 절친과 모든 것을 공유한다. 그런 청소년들의 이야기에 어른들도 쉽게 감화되는 것을 깨달았다.

유치한 이야기라 생각하지 말고 솔직한 이야기라고 여기고, 읽는 동안만이라도 자기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그것 하나만으로 수 많은 고전,명작처럼어쩌면 그 이상으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읽어야할 가치는 차고 넘친다.

귀한 책, 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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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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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듣기만해도 기분이 이상해지는 마법같은 단어다. 우울증이 정신의 감기라고 불리는 마당에도 정신병원은 진료 한번 받으러 문을 열기가 어렵다.

그런 정신병원에서 한 가정이 살아간다면, 열살 남짓한 아이가 살아간다면 어떨까? 감옥에서도 출산을 하면 보육시설로 이동된다는데 정신병원에서 ‘정상적인’성장, 생활이 가능할까?

#죽은이는모두날아오른다 (#요아힘마이어호프 지음 #사계절 출판)속 주인공 ‘요아힘’(작가의 자전적 작품이다.)과 그의 가족의 이야기다.

천오백명의 환자를 돌보는 어린이 청소년 정신병원의 원장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아난 요아힘은 병동시설의 이름으로 알파벳을 떼고, 아버지의 생일 때마다 집에 초대되어 함께 식사하는 병원 환자와 친구로 지내고, 학교를 가기위해 많은 환자들을 규칙적으로 지나가야하는 환경에서 살고있다. 유치원에서 분노장애 증상을 보여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집에서 보내지만 그는 환자가 아니다.

아들에게 자상하지만 환자들에게 더 자상한, 자기가 하는 일에서는 완벽하지만 나머지에서는 살짝 나사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는 아버지, 묘하게 아들들을 맥이는(?) 그러나 분노증상이 보일 때마다 꼬옥 안아 달래는 어머니, 요아힘을 놀리고 괴롭히느라 바쁘지만 애정가득한 두 형. 모두가 ‘정상’과 ‘비정상’ 두가지 모두를 품고 살아간다.

반려견과 피를 나누고 싶다며 상처입히고, 항해를 하고싶다며 요트보다 정박지를, 면허보다 요트를 먼저 구입한 멀미에 취약한 아버지, 시골 별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만든 가마에서 만든 숯으로 바베큐파티를 벌이는 등 일상적인 모습이 유쾌하게 세밀하게 담겨져있다.

정신병원과 그 안에서 지내고 있는 환자들은 위험요소가 아닌 돌보아야 하는 약자임과 동시에 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똑같은 사람이며, 요아힘 가족의 생계가 가능하게 해주는 아버지의 일터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들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가 정신병원이라는 것과, 등장인물들이 누가 환자이고 누가 ‘일반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아니 구분할 필요가 없다.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과연 ‘정상’은 무엇이고 ‘비정상’은 무엇일까?
일반인과 환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읽는 동안, 그리고 책을 덮고나서도 끝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본 질문이다.
이 질문에 내가 내린 답은 ‘다수’가 정상이라는 것이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는 사람, 외형적으로 특징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그러지 않고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에 비해 소수다.
그래서 나와는 다르다라는 다수의 인식이 다름을 틀림으로 구분짓는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말할 정도로 마음에 상처를 가진사람은 수없이 많고, 무언가에 서툴거나 일반적인 수준보다 ‘비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그럼에도 다수이기에 ‘정상’으로 분류한다.

부모나 형제의 죽음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비정상’은 아니지 않나.
요아힘에게 ‘정신병원’은 그러한 배움과 상실, 집이 세상의 대부분이던 유년시절의 모든 것을 닮고 있는 ‘집’이었다.

유년 시절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도 있지만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고 내 안 깊은 곳에 자리잡아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요아힘은 비정상적인 곳이 아니라 조금 특별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 시간들이 그의 안에 켜켜이 쌓여 ‘특별한’사람이 되었다.

다만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갔다 다시 돌아온 곳은 요아힘 스스로에게도 낯선 곳이 되었고, 마지막을 앞둔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낯선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요아힘의 그런 마음도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순간들이 쌓여 또다른 내일의 요아힘을 만들어낼 것이니까. 그냥 유년기의 자신과 결별하는 성장통을 뿐이다.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닌 다를뿐이다라는 사실과 삶의 모든 순간의 경험으로 특별한 내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뭐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도, 분명 뭔가 달라졌다. 이별이란 이름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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