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클래식 수업 10 - 비틀스, 대중의 클래식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10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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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지금까지 클래식을 널리 알리기위해, 클래식이 어렵지 않고 수백년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왔던 #난처한클래식수업 (#민은기 씀 #사회평론 출판)시리즈가 10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선택한 음악가? 음악현상? 음악?은 비틀스였다. 영국에게 밴드의 본고장이라는 칭호를 안겨준 애비로드의 그 비틀스가 왜 갑자기 클래식책에서 나왔을까? 민은기 저자는 클래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정의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클래식이라하면 쇼팽, 라흐마니노프같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조성진, 임윤찬이 연주하는 그것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클래식은 전쟁 이전의 우리가 ‘클래식’이라 생각하는 음악 중에서도 고전주의의 양식을 따르는 음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미 느꼈겠지만 클래식이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로 더 널리쓰인다. 전쟁 이전의 ‘형식을 갖춘’ ‘교양있는 사람들이 듣던‘음악. 그것이 넓은 의미의 클래식이다.

하지만 양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인종의 문제, 이념의 문제로 클래식들이 핍박받으면서 원래의 위상이 사라진다.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자신의 사상을 선전하는데 사용한 것은 유명한 일화. 그런 이유로 그 이후의 음악가들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듣기좋은 음악보다 독자적으로 메시지를 담고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형식주의와 같은 현대음악의 사조들은 그렇게 내면에 집중한 나머지 듣는 이들과는 멀어졌다.

그 이후로 미국의 컨트리송, 블루스, 재즈 등이 일상생활 속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음악이라능 장르가 나타나고 현대음악은 비교적 클래식 쪽으로 분류되어 클래식은 난해한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진다.

대중음악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
기술의 발달로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그로인해 오리지널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를 상실하고, 예술이 아닌 그냥 팔기위한 수단으로 그 가치가 격하되었다.

이렇게 현대음악의 지나친 추상화, 아방가르드.
지속성 없이 빠르게 소비되기만 하는 대중음악으로 예술이자 대중적인 음악은 사라질 위기에 쳐해졌다.

그때 바로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듣고, 예술성마저 지닌 현대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비틀스’이다.

그 이후로 비틀스의 멤버 소개, 비틀스의 역사가 서술되고 안티 비틀스라는 롤링스톤즈로 대변되는 거친 음악이 비틀스와 세상을 양분하는 사회적 현상 등이 서술된다.

그냥 대중음악이라기에는 시대를 대표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고, 평화를 외쳤으며, 자체가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또 다른 사회현상을 야기할 수 있는 존재감. 그리고 전주만 듣자마자 ‘아름답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예술성까지.

‘클래식’이라는 칭호를 받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난처한 클래식 수업>을 통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다음 세대에게 영감이 되어주고 래퍼런스가 되어 줄 수 있는 시대를 아우르는 생명력. 비틀스는 비록 해체되고 멤버들도 나이를 먹고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모두가 좋아하고 기꺼이 듣는다.

현재를 현재답게 해주는 음악이자 현재의 모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물음표를 그리게 만든다.
그로인해 언젠가의 현재가 될 미래를 태동시킨다.

한 시대를 대표함과 동시에 다음 세대를 태동시키는 단단한 생명력의 태동. 그것이 클래식이다.

비틀스가 현시대의 슈베르트라는 말을 들었듯이, 인기있는 보이밴드를 지칭하는 제2의 비틀스가 아니라 모차르트, 베토밴의 제 1 클래식, 비틀스 제 2 클래식을 잇는 제3의 클래식이라 불릴 수 있는 음악이, 예술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끊임없이 클래식이 태동하는 역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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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마지막 수업 - 삶의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보이는 것들
모리 슈워츠 지음, 김미란 옮김 / 부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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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 aphorism.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깊은 체험적 진리를 나타내는 문구.

이 아포리즘이 #모리슈워츠 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라는 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구루가 되었던 모리 슈워츠는 왕성한 활동 중에 루게릭에 걸려 죽음을 확정된 삶을 살아간다.

여생餘生 이라는 단어를 듣고나면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 죽음을 받아들이고 남은 인생을 값지게 즐겁게 유의미하게 살고자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

#모리와함께한마지막수업 (모리 슈워츠 지음 #부키 출판)은 그것이 가능했던 사람의 깨달음이다.

사라지는 감각. 다리에서부터 올라오는 죽음의 감각을 느끼면서도 그는 숨어서 마지막을 준비하지 않았다. 다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죽음에 대해서 진실되게 이야기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 수많은 가슴을 울리는 아포리즘을 관통하는 하나의 문구,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알 수 있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를 남을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가 <모리와 함께한 마지막 수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간결하지만 묵직한 아포리즘들은 사람에 따라 모든 문구가 마음에 와닿지는 않을 수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살아온 환경에 따라 어떤 것은 도저히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책의 아포리즘은 예시일 뿐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각자의 진리, 자신만의 아포리즘을 반드시 깨닫게 될거라는 것에 대한 예시말이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동일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삶에서 죽음을 멀리 떨어트려 놓고 생각하려 하고,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노화나 질병 같은 것들마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애써 외면한다.

거울을 보면 주름이, 빠져버린 근육이 그로인해 굽어버린 몸이 보일텐데.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같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다고 외면해서 예방할 수 있었단 것들을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 살아가는 자신 또는 주변인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외면을 치유한다.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에 놓는다.
그럼으로 죽음을 삶의 끝에 놓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부분에 넣어 그 이후의 삶을 더욱더 의미있고 후회없이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더 나은 삶의 프로모터로 삼는다.

그렇게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수정하고, 삶을 생각하며 죽음을 수정한다. 그렇게 삶을 더할나위없이 매끈한, 완전무결한 순환고리로 만든다.

그렇게 삶을 살아가는 나에 대한 강한 확신은 나를 행복하게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고, 자신의 현재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객관적으로 먼저 나서 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 것들이 모여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는 모든 순간들이
더 행복하고 더 주체적이고 더 자기스럽게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것이다.

그런 모리의 아포리즘들이 아름다운 색채를 자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클로드 모네의 그림들과 병치竝置/倂置 되어있다.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모네는 모리 슈워츠가 루게릭를 겪은 것처럼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시력을 상실해 갔다. 세상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존재 이유로 그려냈던 그 눈을 잃는다는 상실감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모네는 멈추지 않았다.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 까지 그림을 그렸다. 명료한 형태가 있던 그의 화풍은 나중에는 세상과 경계가 모호한 그저 빛의 형태로 변화한다. 아니 발전했다. 오직 모네만이 그릴 수 있는 유일한 화풍이었으니까 발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네의 가장 유명한 <수련>연작 시리즈가 바로 그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죽음과 같은 순간에 멈추지 않고 그 안에서 더욱 더 자신밖에 할 수 없는 자신스러움을 찾아갔던 두 거장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장. 어찌 찾아가지 않을 수 있겠나. 몇 시간이고, 몇 번이고 그들의 작품 앞에 앉아 멍하니, 그럼에도 남김없이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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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는 밤 - 그림과 문장과 삶을 엮은 내 영혼의 미술관
이소영 지음 / 청림Life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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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감성적이 되는 것인지 차분해지는 것 때문인지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럴 때 글을 쓰면 아주 솔직한, 감정이 절절하게 써진다. 아침에 보고 낯 뜨거워 수정하고 싶어질만큼. 하지만 나는 그란 시간과 그런 글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평생을 감정을 숨기고 절제하라고 배웠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정확한 색을 표현하기에 물감 색이 부족할 지경인 이 다채로운 세상을 스스로 색을 줄여 바라보다니, 잿빛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고 기쁨이 있을까.

비록 해가 떠있을 때 수정하더라도, 자기도 몰랐던 솔직한 심정을 알게되지 않나. 그렇게 조금더 자신을 스스로 잘 보듬어 줄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의 색이 조금은 돌아오지 않을까.

이런 귀한 몽상의 밤을 더욱 더 만끽하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음악, 그림, 책, 따뜻한 차 한잔 같은 것들 말이다.
막상 감정을 끄집어 내려하면 막막한데 이러한 것들이 감정의 물꼬를 터준다. 그 터진 물꼬는 너른 감정의 강이 된다.

#그림읽는밤 (#이소영 지음 #청림출판)은 누구랑 비교할 필요는 없지만, 누구보다 충실한 감성 충만한 48번의 밤이 담겨져있다. 그 밤의 매개체는 그림과 책이다.

미술 에세이스트 이소영 작가는 직업상 마음에 박히는 글과 그림이 항상 있었을 것이고 예민한 감각이 그것들을 곱씹어보고 필사하고 감상을 쓸 것이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생각하고 쓰게하는 글과 그림이 어느 지점에서 합쳐졌다. 하고자 하는 말의 결이 같은 것들을 정성스럽게 하나로 엮었다.

유명함보다는 저자의 마음에 박혔던 작품들을 큐레이션해서 보여주고, 고백하면서 그와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써보게 한다. 자기만의 감상을 적어 스스로 저자로 나아가게 한다. 감상에 젖는 법을 익히게 한다.

미술 비기너인 나에게는 처음보지만 시선을 잡아끄는 그림이 제법 있었다. 그중 하나를 예로 들자면 29번째 밤. 에밀리오 롱고니의 <홀로>라는 작품이다.
저자는 여인은 책상에 얼굴을 묻고 세상과 자신을 잠시 단절시키는 중이며, 손을 맞잡은 모습은 기도라기보다는 스스로를 간신히 붙들어 세우는 마지막 안간힘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전문가답게 롱고니가 빛으로 영혼의 떨림을 포착하는 화가이며, 작품 하단의 백합이 부활을 상징한다며 여인이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의 문장과 엮어낸다. “실패에는 해결책이 없네. 나아가는 힘만 있을 뿐이야. 그 힘을 만들어 내야 해결책이 뒤따라오는 것이지.”라는 문장이 작품 속 그녀를 벌떡 일으켜 세울 것 같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으니 나 스스로도 작품을 보고 상상해 보았다. 초 하나에 의지해 속앓이로 밤을 보내다 그대로 잠이든 그녀는 백합의 기분좋은 향기를 맡으며 잠에서 깬다. 밖은 오늘의 또다른 해가 고개를 내밀 준비를 하고 있다. 그녀를 잠식했던 고민들이 빛과 향에 으스러진다. 그녀는 누운 상태로 기분 좋은 기지개를 켠다. 기지개를 켜며 마주잡은 손에는 활력과 각오가 담겨있다.

저자의 해석과 비슷한 듯 하지만 나는 희망을 조금 더 그녀 곁에 가까이 두었다.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가 아닌 이미 일어난 준비가 거진 완료된 상태로 보았다.

곧장 일어나서 씻으며 탁상에 눌려 빨개진 볼을 보며 피식 웃을 것이다. 아마 그 자국도 금방 사라질 것이다. 오늘 그녀에게는 활력과 생명력이 넘치니까.

생텍쥐페리의 글처럼 나아갈 힘을 충전한 그녀의 하루를 응원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내일도 함께.

전시회를 다녔지만 그 감상을 이렇게 글로 남겨본 적이 없었다. 사진을 찍지만 다시 꺼내보는 일도 적다. 그렇게 그 그림과 감상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되지 못했다.

<그림 읽는 밤>은 큐레이션뿐만 아니라 주체적으로 감상을 적으며 체화시켜, 자양분이 되게 해주는 책이다.

48개의 그림, 48개의 문장. 100여개의 작품이 감상, 필사는 물론 스스로 감상하는 법을 익히게 해준다.
이 책을 따라 감상을 해낸다면 앞으로의 매일이 ‘그림 읽는 밤’이 될 것이고. 그렇게 삶 전체가 충만해질 것이다.

내일이 기대된다.

북스타그램_우주 @woojoos_story 모집, @chungrimbooks 도서 지원으로 #우주서평단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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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괴담
온다 리쿠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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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데뷔 30년을 맞이한 거장 #온다리쿠 가 스스로가 가장 사랑하는 장르 호러를 들고 찾아왔다.
그런데 설정이 묘하다.
프로듀서, 외과의사, 검사 등 사회의 중추를 맡고있는 배나온(누군가는 머리도 휑하다)중년 아저씨들이 교토, 요코하마, 도쿄, 고베를 돌아다니며 온갖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괴담을 돌아가며 이야기한다.
한번 만날 때마다 여러군데 찻집을 돌아다니고 찻집 하나에 괴담 하나씩. 시작 때 “커피 괴담에 잘 오셨습니다.”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커피괴담 (#열림원 출판)은 온다리쿠가 긴 시간을 들여 쓴 연작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책 속에서 주인공들이 찾아가는 찻집들도 실제로 존재하는(존재했던)곳이고 그들이 말하는 괴담도 실제로 있었던(겪지 못했어도 들었던)이야기들이다.

한번씩 들어본 것 같고 내 주변에도 있었던 일 같은 괴담을 차 한잔과 평온한 일상으로, 이해관계없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는 핑곗거리로 삼는 것을 따라 읽고 있노라면 이 책이 호러물인지를 잊는다.

이 책을 밤에 읽게되어서 괜히 무서웠는데 현생을 살아가느라 일년에 한번 보기도 힘든 친구들이 보고싶어지는 뜻밖의 효과가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감상에 젖어 마음이 따뜻해지는(?) 호러물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모임 한번이 끝날 때마다 다몬이 섬찟한 경험들을 겪으면서 이 책 장르는 호러라고, 잊지말라고! 해주지만 커피가 주는 향긋하고 편안한 이미지 때문인지 여기저기에 보여선 안될 것들이 을씨년스럽게 담겨있는 표지가 무섭지? 라며 애쓰는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전설의 고향, 엠M (모..모르실려나)을 보면 너무 무서워서 눈 감고 귀막고 지나갔어? 묻기 바빴는데, 심지어 절반도 제대로 보지 못했으면서 보고나면 무서워서 이불 밖으로 발도 못내밀고 얼굴 내놓는 것도 무서워서 얼굴까지 뒤집어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을 자곤 했었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는데도 무섭지 않았던 이유는, 호러보다 더 잔혹한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싶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괴담은 결국 현실이다. 우리는 그러한 현실이 매일 뉴스에서 보며 밥을 먹고 일을하며 살아간다. 스트레스 받을 때 괜히 매운음식과 공포영화를 찾는다. 물론 나에게 직접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믿기에 그렇게 오락거리로 소모할 수 있을 것이다.

차 한잔과 좋은 사람들과 키득거리며 나누는 괴담. 그 시간동안 등장인물이 겪는 미스터리한 일은 언제라도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찻집, 카페는 들어가는 순간 외부와 격리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끄럽고 무덥고 비가 내리는 바깥과 문 하나 차이일 뿐인데 조용하고 향긋하고 인테리어에 따라 낮인지 밤인지도 구분이 모호할 때가 있다.

이런 카페의 특성이 괴담을 주고받을 때 이것이 이야기인지 지금 겪고 있는 일인지 미묘한 어긋남을 야기한다.
그래서 카페와 괴담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캔디맨을 다섯번 부르고 아무도 없는 카페문이 열릴 때 종업원도 흠칫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오락거리로 소모하며 편한 사람들과 시시콜콜 이야기를 주고받고 차를 마시고 술잔을 부딪히며 같이 하룻밤 잘 수 있다면 아주 훌륭하지 않은가.

무섭지 않았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이러다 밤에 꿈을 꿀수도 있지만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마음이 더 컸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이 책에서 친구들이 나눈 괴담보다 더 무섭고 소름돋는 학창시절 찌질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새우고 싶다.

일단 맛있는 커피부터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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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김선형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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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넘게 여전히 한창의 생기를 유지하는 책이 있다.
그것을 우리는 고전이라 부르고 필독서로 분류하여 널리 읽도록 장려한다. 그런 책들에는 무슨 매력이 있을까?

#제인오스틴 탄생 250주년인 2025년 그녀의 생일인 12월 19일 즈음 그녀의 작품들이 새로운 옷을 입고 세상에 축포를 쏘아올렸다.

#엘리 에서도 #김선형 번역가 버전의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이 출판되었다. 이런 작품들은 세상에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한다. 대형 출판사부터 중소 출판사까지 모두 저마다의 가치관을 담아서 우리말로 원문을 번역한다. 미흡하지만 2025년에 몇 권의 고전을 읽어본 경험으로 번역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따라 같은 작품이라도 분위기가 다르고, 같은 문장이라도 의미하는 것이 큰 차이가 난다. 그러니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가 그 책을 접하는 타국 독자들의 첫인상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클래식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악보,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여 오역이 아닌 한 최대한의 해석을 한다. 같은 곡일지언정 똑같이 연주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초보자들에게는 그런 다양함이 오히려 독이 된다. 무엇이 오리지널인지도 모른 상태도 의도가 담긴 것들을 마주하다보면 어떤 부분이 다른지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구분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친절한 해설이 없을까 절로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디어제인오스틴 #젊은소설가의초상 이 바로 그 친절한 해설서이다. 엘리의 제인 오스틴을 번역한 김서형 번역가가 직접 쓴 에세이로, 제인 오스틴이 소설이라는 장르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 시대배경, 제인 오스틴의 개인사를 설명하면서 자신이 어떤 의도로, 무엇에 중점을 두고 번역을 했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자신이 번역한 문장을 실제로 보여주기도 한다.

가령 Sense and Sensibility 라는 원제가 왜 <이성과 감성>으로 번역되었는지, 그렇다면 왜 원제가 Reason and Feelings 로 하지 않았는지를 이 책을 발표할 때의 시대상들을 보여주며 유추한다. 그것을 이용해 자신이 <이성과 감성>에서 어떻게 두단어를 공유하는 sensible을 구분해서 번역했는지도 알려준다. 물론 자신이 번역한 문장과 함께. (작품에 sensible을 혼용해 두어서 독자도 생각하면서 읽기 좋게 되어있다)

번역가는 건강상의 이유로 번역일을 더이상 하지 못할 뻔 했다고 고백하며 자신이 하고싶었던 제인 오스틴 작품 번역을 더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말하며, 제인 오스틴의 글이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이유 중의 하나를 이야기해준다.

“제인 오스틴은 언제나 고립되어 있거나 깊은 절망에 빠져있거나 상실을 애도하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도 더이상 사랑하는 일로부터 멀어져 고립될것이라는 불안과 두려움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그냥 번역이 하고 싶어서 일하고 싶었어요. 새로운 방식으로 번역을 발화하고 싶어서, 사랑하는 작가를 함께 읽고 함께 사유하고 싶어서, 그 과정에서 슬픔과 고독과 절망을 관통해 제인 오스틴과, 나 자신과, 문학과, 독자와, 그리고 세계와 연결되고자 분투하고 싶었어요.”라며 비평이자 번역이자 고백인 이번 작업을 했다고 말한다.

세계 대전 중에도 병사들에게 문고판 서적들이 배포되었는데(참호 속에서 즐길거리를 주고 싶었나보다)그곳에서 가장 인기있던 작가가 바로 제인 오스틴이었다.
제이나이트로 스스로를 부르는 제인 오스틴의 광팬들은 평생 그녀의 문장과 함께하고, 모든 것을 잃고 무너져 버린 순간에 제인 오스틴의 책만 읽으며 다시 일어설 에너지를 비축한다.

읽는 재미는 물론 그 속에서 희망과 위안끼지 담겨있는 것이다.

나도 작년 책을 읽으면서 여성 작가들에게 눈이 많이 갔다. 남성 대작가들의 글로 훌륭했지만 여성 특유의 예리한 감성과 관찰력, 유려한 표현력은 그들만의 고유한 재능이자 영역이었다. 남성 여성 성별로 구분 지어지는게 아닌 하나의 불가침 의 장르로 인정받는 요즘 그들이 있기까지 제인 오스틴도 그 이전에 이미 왕성한 활동을 해왔던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작가들이 있었음을 깨닫았다. 나에게는 제인 오스틴이 그 시작이다.

나도 제이나이트가 되고 싶어졌다.
좋은 번역가를 만난 것 같다. 그가 옮긴 제인 오스틴을 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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