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클래식 수업 10 - 비틀스, 대중의 클래식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10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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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지금까지 클래식을 널리 알리기위해, 클래식이 어렵지 않고 수백년의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를 알려왔던 #난처한클래식수업 (#민은기 씀 #사회평론 출판)시리즈가 10권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선택한 음악가? 음악현상? 음악?은 비틀스였다. 영국에게 밴드의 본고장이라는 칭호를 안겨준 애비로드의 그 비틀스가 왜 갑자기 클래식책에서 나왔을까? 민은기 저자는 클래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정의내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클래식이라하면 쇼팽, 라흐마니노프같은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조성진, 임윤찬이 연주하는 그것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클래식은 전쟁 이전의 우리가 ‘클래식’이라 생각하는 음악 중에서도 고전주의의 양식을 따르는 음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미 느꼈겠지만 클래식이라는 단어는 다른 의미로 더 널리쓰인다. 전쟁 이전의 ‘형식을 갖춘’ ‘교양있는 사람들이 듣던‘음악. 그것이 넓은 의미의 클래식이다.

하지만 양차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인종의 문제, 이념의 문제로 클래식들이 핍박받으면서 원래의 위상이 사라진다.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자신의 사상을 선전하는데 사용한 것은 유명한 일화. 그런 이유로 그 이후의 음악가들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듣기좋은 음악보다 독자적으로 메시지를 담고 의미를 담기 시작했다. 형식주의와 같은 현대음악의 사조들은 그렇게 내면에 집중한 나머지 듣는 이들과는 멀어졌다.

그 이후로 미국의 컨트리송, 블루스, 재즈 등이 일상생활 속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음악이라능 장르가 나타나고 현대음악은 비교적 클래식 쪽으로 분류되어 클래식은 난해한 음악이라는 이미지가 더 강해진다.

대중음악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
기술의 발달로 원본이 존재하지 않고, 그로인해 오리지널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를 상실하고, 예술이 아닌 그냥 팔기위한 수단으로 그 가치가 격하되었다.

이렇게 현대음악의 지나친 추상화, 아방가르드.
지속성 없이 빠르게 소비되기만 하는 대중음악으로 예술이자 대중적인 음악은 사라질 위기에 쳐해졌다.

그때 바로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듣고, 예술성마저 지닌 현대의 ‘클래식’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이 등장한다. 그것이 바로 ‘비틀스’이다.

그 이후로 비틀스의 멤버 소개, 비틀스의 역사가 서술되고 안티 비틀스라는 롤링스톤즈로 대변되는 거친 음악이 비틀스와 세상을 양분하는 사회적 현상 등이 서술된다.

그냥 대중음악이라기에는 시대를 대표하고,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고, 평화를 외쳤으며, 자체가 하나의 사회현상이며 또 다른 사회현상을 야기할 수 있는 존재감. 그리고 전주만 듣자마자 ‘아름답다’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예술성까지.

‘클래식’이라는 칭호를 받으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난처한 클래식 수업>을 통해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다음 세대에게 영감이 되어주고 래퍼런스가 되어 줄 수 있는 시대를 아우르는 생명력. 비틀스는 비록 해체되고 멤버들도 나이를 먹고 세상을 떠났지만 음악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모두가 좋아하고 기꺼이 듣는다.

현재를 현재답게 해주는 음악이자 현재의 모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물음표를 그리게 만든다.
그로인해 언젠가의 현재가 될 미래를 태동시킨다.

한 시대를 대표함과 동시에 다음 세대를 태동시키는 단단한 생명력의 태동. 그것이 클래식이다.

비틀스가 현시대의 슈베르트라는 말을 들었듯이, 인기있는 보이밴드를 지칭하는 제2의 비틀스가 아니라 모차르트, 베토밴의 제 1 클래식, 비틀스 제 2 클래식을 잇는 제3의 클래식이라 불릴 수 있는 음악이, 예술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끊임없이 클래식이 태동하는 역사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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